< --16장. 국인부와 언리미티드-- >
신영그룹의 회장을 비롯한 가족들이 사는 대규모 저택은 어지간한 마을만 한 규모에 100개가 넘는 방으로 이루어져 있다. 집은 물론 집 근처와 주변 산. 도로까지 몽땅 사유지인데다 전통 한옥에 가까운 디자인으로 보여도 집 내부와 문 등이 다 현대식인데다 경비원들이 거주하는 구역과 첨단 방범시설이 갖추어져 있기 때문에 그 누구라도 함부로 들어올 수 없는 장소다.
"아빠!"
"보람아. 민정아....... 다행이다. 다행이야. 난 큰일 나는 줄 알았구나......."
나는 고풍스러워 보이는 디자인의 방 안에 앉아 감격의 재회를 하고 있는 중년의 남성과 두 딸을 보고 있었다. 당연하지만 현현은 이미 푼 상태였다.
"그나저나 어떻게 된 거에요?"
"지금 그것 때문에 집안이 엄청 시끄러워. 언리미티드사 그놈들이 우리 경호팀을 막고 실랑이를 벌이더군. 정부와도 이야기 중인데 녀석들이 생각한 것 보다 끈이 많아서 곤란하던 차였다."
보람과 민정의 아버지는 신영그룹의 회장. 강태성의 8번째 자식이다. 신영그룹 권력의 중추라고는 할 수 있는 위치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직계 혈통인데다 사업을 열심히 배워 어느 정도 힘이 있다고 알고 있다.
"오빠는요?"
"억류되어 있었지만 정부를 통해 항의하니 풀어준다는군. 아무리 미쳐도 서로 뻔히 아는데 인질극을 할 수는 없겠지."
아무런 힘도 없는 일반 시민이라면 모르겠지만 막대한 재력을 가진 신영그룹이 상대라면 국인부도 언리미티드도 함부로 움직일 수 없다. 심지어 그들은 절대 떳떳할 수 없는 범죄를 저질러야 하는 입장이 아닌가?
물론 우리 셋은 도로에서 광란의 질주를 함으로서 교통범죄를 저질렀지만 국인부인지 언리미티드인지 모를 녀석들의 차량은 선팅이 심하게 되어 있어서 우리 얼굴이 찍힌 건 하나도 없다. 심지어 자동차를 타고 달릴 때 옷으로 앞부분을 좀 가려 우리
얼굴이 드러나지 않게 막았으니 결과적으로 우리를 엮을 그 어떤 수단도 없는 것이다.
'물론 막가자고 하면 방법이 없지는 않겠지만....... 그 방법을 쓰지는 않겠지.'
만약 국인부에서 내가 [밀리언]이라는 걸 알리고 보호를 요청하는 방법을 쓴다면 신영그룹 역시 나를 보호해 줄 수 없겠지만 그들이 괜히 비공개적으로 왔을 리 없지 않은가? 그들은 [공개된]기술로는 감지가 불가능한 나를 사로잡음으로서 비밀리에 유품을 얻으려 하고 있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공개적으로 밀리언으로 공표되면 국가적인 보호를 받는 건 물론이고 현재 위치와 일거수일투족이 기록된다. 밀리언이 만들어내는 유품은 그 가치가 너무나도 크기 때문에 누군가 노리는 상황을 막으려 하는 것. 막말로 내가 국가에 원한을 가지고 망명 신청을 한다면 국가로서는 막을 방법이 없지 않은 것인가?
그들이 미치지 않은 이상 무려 EX급 밀리언인 나를 함부로 할 수 없다. 일차적인 납치가 실패한 시점에서 그들이 사용할 수 있는 대부분의 방식이 봉쇄된 것이다.
"그나저나. 자네가 그 도장 친구인가?"
"인사가 늦었군요. 김지훈이라고 합니다. 어찌어찌 그녀들과 같은 처지가 되어 쫓기
게 되었지요."
공손히 대답하자 민정의 부친. 중석이 묻는다.
"그나저나 청명에게 이겨서 마스터가 되면....... 게임 속 능력이 따라온다는 게 정말인가? 솔직히 믿기 좀 어려웠는데 언리미티드 사가 저렇게까지 난리 치는 걸 보면 사실인 것도 같고."
그의 말에 반문한다.
"사장님도 네버랜드를 플레이하시는 겁니까?"
"물론일세. 돈 좀 버는 이들 중 네버랜드를 플레이하지 않는 이가 몇이나 있겠나? 물론 나는 나이도 많고 감도 느려서 제대로 플레이 해 보지도 못하고 네 번이나 죽었지만........ 다행이 가단차 지역에 유저들의 마을이 생겨서 안정적으로 플레이하는 중이지."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수많은 몬스터. 다른 세력의 방해를 뚫고 막대한 자금까지 써 가며 기어코 유저들의 도시를 왜 만드나 했는데 바로 이런 유저들을 잡기 위해서인 것이다. 난 전혀 실감하지 못하지만 네버랜드는 너무나 하드코어한 난이도 때문에 일반 유저는 뭘 해보지도 못하고 죽어나가기 일쑤니 어떻게든 그들의 플레이가
가능하게 만든 것이다.
그리고 당연하지만 유저들의 마을에서가 아니면 적응하지 못하는. 그러니까 돈 많고 나이도 많은 유저들이 게임을 하려면 어떻게 하겠는가?
'현질이지 뭐.'
그렇다 현질이다. 현실의 돈을 써서 다른 유저들의 힘이나 장비를 구하는 것이다. 네버랜드에는 장비에 레벨제한 같은 게 달려있지 않아서 고급 무장으로 떡칠하면 누구라도 강해진다. 물론 그래봐야 정말 강한 이를 만나면 그냥 털려 버리니 약한 유저가 너무 비싼 장비를 들고 다니기는 힘들겠지만 실력이 뛰어난 유저를 고용해서 다니면 안전도 보장받을 수 있을 것이다.
"뭐, 어쨌든 유저시라면 설명하기 쉽겠군요. 흠 민정아? 내가 보일까?"
"아니 그냥 내가 보이지....... 합!"
짧은 기합과 함께 민정의 몸에서 쑤욱-! 하고 반투명한 무언가가 튀어나온다. 모습은 여성의 그것이지만 전체적으로 뿌옇게 생겨 마치 유령처럼 보이는 모습이다.
"세, 세상에....... 이건?"
중석은 영화 속 CG로나 재현이 가능한 광경이 눈앞에서 펼쳐지자 믿을 수 없다는 듯 신음했다. 사실 반신반의 하고 있었을 텐데 대놓고 써 버리니 당황하는 것이다.
"보조스킬 <염체(念體)>에요. 이렇게 보기에는 그냥 신기한 기술 같으시겠지만 상당히 강력한 스킬이죠. 이렇게......."
콰직!
민정의 앞에 나타난 염체가 근처에 있는 청동 재떨이를 잡자 한순간에 우그러져 동그란 철구로 변해버린다.
"낼 수 있는 힘 자체가 강한 데다 육체랑 다르게 속도에 제한이 없죠. 방어도 사실상 효과 없으니......... 뭐 하여튼 그런 거예요."
차분히 설명하며 염체를 회수한다. 그리고 그런 그녀를 중석이 놀랍다는 듯 바라본다.
"우리 딸이 똑똑하다는 건 알았지만 대단하구나. 나는 숙련자에도 들어갈 수가 없는데."
"어머. 저 천재인 거 이제 아셨어요?"
훗. 하고 웃으며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는 민정의 모습에 보람이 웃는다.
"그래봐야 10전 4승 6패지."
"뭐? 5승이지 왜 4승이야! 네 번째 승부는 네가 판정패잖아!"
"판정패가 어디 있어? 승부의 세계는 냉정한 거야!"
티격태격 하는 둘의 모습을 보며 어깨를 으쓱인다. 자신들을 노리는 존재가 생겼다는 것을 아는 그녀들이지만 공포에 떨거나 하지는 않는다. 지금의 그녀들은 나약한 여자가 아니라 강한 전투력을 가진 전사이기 때문이다.
"아, 그런데 사장님. 죄송하지만 저희 아버지를 이곳으로 모셔도 되겠습니까?"
"부친을 말인가?"
중석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예. 어쩌면 인질을 잡으려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대가는 치르겠습니다."
타임슬립을 아무런 부담 없이 할 수 있게 되면서 내가 모은 돈만 해도 상당하다. 솔직히 마음만 먹으면 천문학적인 돈을 벌수도 있지만 어차피 큰돈이 필요한 곳도 없는 데다 시선을 끄는 게 싫어 자제했을 뿐 나 역시 상당한 규모의 자산가라고 할 수 있는 것. 그러나 중석은 고개를 흔들었다.
"그런 건 필요 없네. 내 딸들을 도와준 은인한테 그럴 수는 없지. 다른 가족은 없나?"
"아버지뿐입니다."
"아버지뿐인가....... 알았네. 쉬고 있게. 너희도 힘들었을 텐데 좀 쉬고."
"응."
중석이 방을 나가고 민정이 나에게 말한다.
"그럼 방을 안내해 줄게. 우리 방 근처인 게 좋겠다."
"너희 방? 이 근처에서 살아?"
"그럴 리가. 하지만 워낙 방이 많은 집이잖아? 별로 오지는 않지만 우리 방이 따로 준
비 되어 있어. 네 방도 그 근처에 있는 걸로 하면 되겠다."
"아 그러고 보니 오빠도 운동 하지? 여기에 헬스장하고 테니스장하고 농구장까지 다 있으니까 심심하면 나와서 운동하면 돼. 식당은 저기 길 따라서 오른쪽에 뷔페식으로 있는데 가기 싫으면 인터폰으로 배달시키면 되고. 대신 가져다 달라고 하려면 메뉴를 정해놔야 하는 건 알지?"
집으로 돌아왔다는 생각 때문인지 완전히 생기발랄한 보람의 목소리를 들으며 황당해한다.
'아니 집에 식당이 따로 있어? 게다가 가기 싫으면 배달을 시키라고?'
나 같은 서민 입장에서는 상상도 못할 상황에 황당해 한다. 중석이 대가를 치르겠다는 내 말을 비웃지도 않은 채 넘긴 이유를 알 것 같다.
"아 저기 그런데 혹시 여기에 캡슐 있어?"
"물론이지. 안 그래도 캡슐 있는 방으로 안내하려고 했어."
"안 쓰는 방에 캡슐이 있어? 돈이 많긴 하구나......."
기막혀 하며 그녀들이 안내하는 방으로 따라간다. 마당에 징검다리처럼 박혀 있는 바위들을 건너 도착한 곳은 ㄱ자 모양의 커다란 한옥집이다.
다만 재미있는 게 겉으로 보면 전통식으로 만든 건물 같지만 집에 들어가려면 문에 설치된 카메라에 안면인식으로 인증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 좋아. 이제 오빠도 등록 해 놨어. 메인 센터에서 수락하면 어지간한 시설은 다 이용할 수 있을 거야."
"첨단을 달리는구나. 첨단을."
지잉.
나무인 '척'하던 문이 열리고 그 안으로 들어선다. 재미있는 건 전통 한옥 같은 디자인인 주제에 문이 여닫이가 아닌 미닫이라는 것이다. 하긴 자동문이 여닫이면 뭐가 낄 일이 많으니 이렇게 해 놓은 것이리라.
"그럼 우린 가 볼게. 로그아웃 한지 너무 오래 되어서 급한 일은 빨리 처리해야겠다."
"로그아웃한지 얼마나 되었는데?"
"벌써 이틀도 넘었어."
"거의 1개월인가....... 알았어. 들어가서 보자."
"안녕!"
"에이 왠지 따돌림 당하는 것 같아. 오랜만에 서대륙이라도 가야 하나."
손을 흔드는 민정과 투덜거리는 보람이 떠나고 방 안으로 들어간다. 나도 네버랜드 속 시간으로 10일 가깝게 부재상태니 어서 들어가 상황을 정리해 놓기 위함이었다.
그랬는데........
"안녕~. 드디어 혼자가 되었구나?"
기잉- 철컥.
뒤에서 문이 닫히는 소리를 들으며 꼼짝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안에 들어오기 전 분명 방 전체를 훑어보았었기 때문이다.
확신한다.
분명 조금 전에는.
방 안에 아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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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가 되었구나아아아---! 혼자가 되었구나아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