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장. 기연. 기연. 기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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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쳤군.'
그렇다. 미친 난이도다. 히어로야 아프로디테 교단의 사제들을 다 승급시키면(네임드를 히어로로 승급시켜도 히어로급의 마음을 얻은 걸로 쳐 준다.)간단하겠지만 레전드 10명이라니........ 다시 말해 그것은 드래곤급 존재 10명의 마음을 빼앗으라는 말이 아닌가? 초월자 쯤 되면 만나기도 어려운 존재들인 만큼 관계를 맺는 것도 쉽지 않겠지만 어떤 말도 안 되는 호감도 락이 튀어나올지 모르는데 어찌 다 유혹하라는 거야?
게다가 더 미치는 건 그렇게 강렬한 존재들의 처녀를 받으라는 것. 뭐, 이것도 히어로는 문제가 아니지만 일반적으로 레전드급 정도 되면 나이가 한두 개가 아닌데 어떻게 처녀일 수가 있나? 상식적으로 이게 가능한 퀘스트야?
'후우. 뭐 천천히 하지. 시간제한이 있는 것도 아니고.'
중얼거리며 걸어 나간다. 최초에는 나체였지만 어느 순간 몸에는 백색의 턱시도? 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는 양복이 입혀진다.
"다음 일정은 어떻게 되어있지?"
태연하게 묻자 곧 문 옆에 대기하고 있던 에린이 다가와 차분한 목소리로 설명한다.
"국왕과 그 자제분들과의 식사가 있습니다. 밤 이후에는 은총을 받을 사제가 셋 대기 중이고요."
"아우 왕가에서는 날 왜 이렇게 불러 대는 거야? 다 거절 못해?"
"저, 저기 지금도 왕성에서의 요청 10건 중 9건은 거절하고 있는 건데요. 이번에도 거의 일주일 이상 교황님을 못 만났다고 간청하는 터라......."
난감한 그녀의 표정에 한숨 쉰다.
"내가 자기들하고 정기적으로 봐야 할 사이도 아닌데 말이야."
"너무 그러지 마세요. 그래도 왕인데."
일정은 빡빡하다. 그야말로 잠도 안자고(잘 수가 없다. 사실 밤이야 말로 가장 바쁜 시간이니까.......)이것저것 해야 할 정도로 바쁘게 살고 있는 것이다. 사실 왕이 부르는데 이렇게 무시한다는 것도 정상적인 상황은 아니다. 왕이
'당장 끌고 와라!'
라고 소리치는 게 당연한 일 아닌가?
그러나 그 국왕조차 내 앞에 서면 함부로 말을 놓지도 못하고 건방지게 행동하지 못한다는 걸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내가 홀로 왕국을 뒤집어 놓을 수 있는 강자라는 것을 아는데다가 직위나 혈통에 상관없이 나에겐 함부로 할 수 없는 위엄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었다.
"마차는?"
"준비되었습니다. 교황님."
에린의 안내를 따라 신전을 나선다. 내가 신전에 온 지 고작 3개월이지만 신전의 규모는 이미 몇 배 이상 커진 상태다. 근처 건물들을 다 구입한 후에 규모를 키운 것이다. 건축 설계상 힘든 부분은 내가 대지의 정령을 불러서 해결 보았다.
[히히힝!]
"안녕 귀염둥이."
어지간한 대형차보다도 커다란 마차를 끌고 있는 것은 이제는 도시의 명물이 되어버린 유리마(琉璃馬)다. 페가수스처럼 커다란 날개를 달고 있는 유리마는 유리를 빗어 만든 커다란 말에 보조스킬
<생명부여>
를 사용해 만들어낸 작품이다. 무려 3시간동안 50만 테라의 마나를 소모해 만든 이 유리마는 유리로 만든 몸체를 가지고 있음에도 물리적인 타격에 몹시 강하며 빠르고 힘도 세고 영원히 지치지 않으며-
'무엇보다 멋있지! 매우!'
그렇다. 이 녀석들은 매우 멋지다. 50만 테라 '따위'의 마나를 소모하는 거야 관심도 없는 일이지만 무려 3시간동안 능력을 유지해 스킬을 발동시키는 건 너무나도 귀찮고 힘든 일이다. 말이 좋아 3시간이지 마력설계를 3시간 내리 쉬지도 않고 하는 건 제자리에 앉아 쓰기 싫은 논문을 쓰는 것처럼 고통스러우니까.
하지만 그 결과 만들어진 이 녀석들은 매우 마음에 든다. 유리로 만들어졌다고는 하지만 완전히 투명하게 만드는 대신 마치 크리스털과 프리즘을 붙여 만든 것처럼 몸 여기저기에 굴절과 반투명을 사용했기 때문에 빛을 받으면 몹시 아름답게 빛나기 때문에 일단 이 녀석이 거리에 나서면 그 누구도 눈을 떼지 못할 지경인 것이다.
"교황님께서 드십니다!"
우리 마차는 단 한 차례의 검문도 없이 왕실까지 직행했다. 원래 이러면 안 되는 법이 지만 난 그런 게 없는 존재다.
"앗! 로안 오빠!"
식당으로 들어서자 주변을 서성이고 있던 금발의 소녀가 반색하며 다가온다. 몸을 꽉 조이는 백색의 드레스를 입은 그녀의 이름은 라우라 더 센트럴로 너무나 당연하게도 센트럴 왕국의 공주였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공주님. 국왕폐하는 아직 안 오신 겁니까?"
"아, 그게 아버지는 일이 좀 있어서 못 오실 것 같다고 하셨어요. 식사는....... 우, 우리 둘이 해야겠네요. 하하하."
어색하게 웃는 그녀의 모습에 대충 눈치를 챘다. 오호. 이 아가씨가 쫓아 내셨구먼. 그러나 단둘이 식사 하는 건 나 역시 바라는 일이기에 지적하지 않고 테이블에 앉았다.
당연하지만 식사는 훌륭했다. 이곳이 왕가이기 때문이기도 했고 내가 온다는 소식에 특별히 신경을 써서이기도 했다. 공주와 나는 이런저런 잡담을 나누며 식사를 마쳤고, 후식으로 과일을 먹기 시작했다.
"아, 그러고 보니 공주님도 센트럴 아카데미에 다니신다고 했는데 사실입니까?"
"네. 부족하지만 솔로몬의 탑에 다니고 있어요. 솔직히 마법 보다는 교양이랑 인맥을 만들러 다니는 수준이지만요."
그녀의 말대로 그녀의 마법 수준은 2서클에 불과했다. 물론 마법이라는 학문 자체가 그리 간단한 것이 아니어서 2서클도 낮은 건 아니지만 최고의 교사와 환경을 가진 그녀라는 걸 생각하면 그리 좋은 수준도 아닌 것이다.
'하지만 대단하긴 하군. 고작 이만한 수준인데 히어로 NPC라니........'
그러나 몬스터나 NPC의 등급이 무력만으로 나뉘는 게 아니라는 걸 생각하면 사실 당연한 일이다. 그녀는 소드마스터의 무력아니 아크메이지의 마법력만큼이나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권력(權力).'
그렇다. 그거야 말로 그녀가 가지는 힘이다. 물론 권력만으로 히어로 NPC에 달하는 건 왕족뿐이고 공작가의 자제는 네임드 NPC에 불과하다. 공작 정도면 히어로 NPC가 아닐까 확인했지만 공작은 스스로
[정치]
와
[지휘]
스킬을 완성자까지 올린 존재라서 직위랑 상관없이 히어로 NPC였다.
"그나저나 소식은 들으셨습니까? 제가 아프로디테의 성에 학원장(學園長)을 맡을 예정인데."
아프로디테 성이라 함은 센트럴 아카데미에 존재하는 다섯 개의 학원 중 하나로 센트럴 학원에는 무학을 가르치는
[치우의 산맥]
과 마법을 가르치는
[솔로몬의 탑]
. 정령술을 가르치즌
[퀴벨레의 숲]
과 기술을 가르치는
[토트의 공방]
과 함께 있는 곳이다.
다만 지금까지 아프로디테의 성은 제대로 돌아갈 수가 없었다. 학원장을 하려면 마스터급 이상이어야 하는데 교단의 유일한 하이프리스트인 네레이야가 파견을 나갈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가르칠 과목도 분명하지 않았고.
"아! 저도 그 소식 들었어요. 그런데 아프로디테의 성에서는 뭘 가르치실 생각이시죠?"
그녀의 말에 부드럽게 웃으며 답한다.
"교양입니다."
교양과목이라고 들어는 봤니?
"교양이라고요?"
"예. 저희 아프로디테 교단은 미와 사랑을 노래하는 만큼 예절 부문에서 발전을 해 왔고 음악이나 미술 부분에서도 성과를 보여 왔으니 그것에 대해 가르칠 생각입니다. 아름다워 지는 기술도 있고요."
내 말에 라우라가 비상한 관심을 보인다.
"아름다워지는 기술이요?"
"예. 미안공(美顔功)이라고 하지요."
"요, 요 근래에 아프로디테의 사제들이 급격히 아름다워진 것과 관련이 있는 건가요?"
그것에 관해서는 그야말로 전국이. 아니, 전 대륙이 들썩이고 있는 내용이라 한다. 60의 매력을 가진 여인이라 하면 국가 전체를 뒤져봐도 한 둘 나오기 힘든 절세미녀라고 할 수 있는데 지금 아프로디테 교단에 있는 113명의 사제들은 평균 매력 60대라는 무시무시한(?)경지에 이르고 말았기 때문이다. 과거 아프로디테 교단이 미녀 집단이었다면 지금의 아프로디테 교단은 절세 미녀 집단이다. 상황이 이리 되었으니 외부에서 궁금해 하는 게 당연하리라.
'어떻게 이렇게나 단시간 내에 저렇게나 아름다워 질 수 있지?'
어느 세상 어느 국가건 여성들에게 있어 아름다움이란 매우 중요한 삶의 목적이라 할 수 있다. 아프로디테 교단의 미녀들이 원래부터 이렇게 아름다웠다면 그냥 놀랍고 말 일이지만, 아름다워 질 수 있는 비결이 있다면 상황이 좀 달라진다.
"미안하지만 사제들의 비결은 그게 아닙니다. 미안공을 수련하면 아름다워지는 게 사실이지만 이렇게 짧은 시간 내에 가능하지는 않거든요."
"그럼....... 뭐죠?"
"제 교황으로서의 능력이라고 하면 이해하기가 쉽겠군요. 제 사랑을 받는 여성은 자신이 간절히 원하는 재능이 급속도로 성장하게 됩니다. 아름다워지기를 원한다면 미모가. 힘이 세지길 원한다면 근력이. 무술을 잘 하고 싶다면 체술능력이. 똑똑해 지고 싶다면 지능이 올라가지요."
위험할 정도로 강력한 힘이었지만 나는 이걸 절대 비밀로 감춰두지 않았다. 보물은 지킬 능력이 없는 이에게는 재앙이지만, 일단 그걸 지키고 적극 활용할 수 있는 강자에게는 어마어마한 힘이 된다. 어차피
[진실의 눈]
을 사용해 나를 보면 이 능력을 대충 알 수 있는 이상 오히려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정말....... 엄청나군요. 그것도 학원에서 가르칠 생각인가요?"
"이론이라면. 하지만
[실습]
은 아무나 받을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죠. 그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에게만 내리는 은총이 될 테니까."
"그럼 저는 그만한 가치 있는 사람인가요?"
============================ 작품 후기 ============================ 내 말에 안 그래도 가깝게 앉아 있던 라우라가 바짝 다가와 내 오른팔을 안는다. 그리고 촉촉한 눈동자로 나를 올려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