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장. 아프로디테의 신전 -- >
'아.'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교황이 없다.'
그렇다. 교황이 없었다. 공적치를 모으는 건 교단의 신도라면 누구라도 할 수 있지만 그 공적치를
[기적]
으로 바꾸는 건 오직 교황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미 아프로디테 교단의 교황인 나에게 무신 치우가 관심을 가지는 것 역시 같은 이유겠지. 어쩌면 체면 때문에 나서지 못할 뿐 다른 신들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을지 모른다.
"공적치라........"
중얼거리며 복장을 점검한다. 다시 몸을 살피니 원래 입고 있던 옷이 멋대로 벗겨져 땅에 떨어져 있는 상태였기에 대충 개서 인벤토리에 넣고 라이온 하트를 등에 메었다 가, 생각보다 비주얼이 별로라는 생각에 왼쪽 허리에 찼다.
약간은 풍성한 금발을 가지런히 정리하고 흰색 양복에 흰색 티셔츠. 그리고 비슷한 색이지만 약간 은빛이 감도는 넥타이를 차례로 점검한다. 양복+장검이라는 사상 초유의 패션이었지만 워낙 옷 태가 좋은데다가 내 몸에 딱 맞게 줄어들었기에 바짝 조여들어 늘씬한 몸매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게다가 패션의 완성은 뭐다?
"괜찮군."
피식 웃으며 내 옆에 있던 하넬을 바라보았다. 혹시 일반 신도도 공적치에 대해 아는 게 있는지 물어보려는 것이다.
주르륵.
그런데 뜻밖에도 쌍둥이 중에서도 언니인 하넬의 볼에 눈물이 흐르고 있다. 난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왜, 왜 울어?"
"너무 눈이 부셔요. 흑흑."
"......."
리액션을 취하지 못했다. 이 녀석이 진심인지 개그를 치는 건지 분간을 못 했기 때문인데 분위기를 보아하니 리얼인 것 같았다.
'뭐냐 이게.......'
반응이 너무 격렬해서 오히려 기가 찰 지경. 언제나 차분하던 네레이야까지 볼을 발갛게 물들였을 정도다.
"옷을 갈아입어야 하나?"
"아, 안돼요! 완전 어울리거든요!"
"맞아요! 멋있어요!"
그녀들의 말에 문득 장난기가 들어서 자세를 취한 후 머리를 쓱 뒤로 넘겼다. 당연하지만 모델도 아니니 어색한 자세였지만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교황님 완전 짱이에요!"
"꺄악! 세상에....... 세상에!"
"죽어....... 허억. 나 죽을 것 같아!"
눈을 번뜩이며 헐떡이는 그녀들의 모습에 순간 멈칫할 지경이다.
'뭐, 뭐야 애내들. 좀 무섭다. 미녀들인데도 무서워.'
이건 도도하고 사랑에 자유롭다는 아프로디테 사제들의 모습이 아니었다. 바꿔 말하면 그만큼 내 매력이 사기적이라는 뜻이기도 하리라.
"험험. 그나저나 교황님. 이렇게 무방비하게 기다려도 괜찮으시겠습니까? 하울 후작가에서 곧 책임을 물으러 올 텐데."
"아직도 그걸 걱정하는 거야?"
"교황님. 하지만......."
네레이야는 못내 걱정스러운 표정이다. 내 매력이 가지는
[설득력]
이 어마어마하게 강렬하다는 걸 생각할 때 그녀가 이렇게 걱정하는 건 그만큼 후작가와 아프로디테 교단의 전력 차이가 심각하다는 뜻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사제가 113명인데도 이지경이라니.'
그러나 냉정히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 113명의 사제 중 그나마 힐링이라도 할 수 있는 사제가 34명이고 전투가 가능한 사제는 불과 6명에 불과하니까. 나머지 인원은 그냥 미모나 가꾸는 정도지 뭔가 할 정도의 신성력을 가지고 있지는 못하는 것.
심지어 전투사제라고 해 봐야 일반 기사들조차 상대하기 버겁고 사제들의 치료능력도 전투 중에 사용할만한 수준은 아니다. 보조주문도 전투계열은 별로 없어서 굳이 후작가가 다 나설 필요 없이 기사단만 보내도 아프로디테 교단 같은 건 하루만에 묵사발이 날 것이다.
'더불어 그 뒤에 있는 왕국도 문제지.'
왕국 입장을 생각해 보면 아무래도 교단의 편을 들어주기보다 후작가의 편을 들어주는 게 당연하다. 후작이라는 건 왕과 하나 밖에 없는 공작을 제외하고는 최상위 귀족이라 할 수 있는 존재인 것이다. 물론 그렇다 해도 내 매력이면 모든 것이 무마된다. 극단적인 일이지만 내가 후작을 그냥 죽여 버린 후에 왕한테 가서
[사실 그는 정말 악한 이였습니다. 죽일 수밖에 없었어요.]
라고 말도 안 되는 개 뻥을 까면. 어쩌면 왕은
[역시 그랬군! 좀 의심스러웠어!]
라고 할지도 모를 정도로 강렬한 위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난 그럴 생각이 없다. 비록 프로그램이라 해도 이들은 이성을 가진 존재들이니 그딴 짓을 하다가는 언젠가 파국이 오기 때문이며, 그보다 굳이 그럴 필요조차 없기 때문이다.
'그래. 왜 매력으로 상대를 꼬셔야 하겠어?'
척. 척. 척.
그때 멀리서 일사불란한 발자국 소리가 들린다. 사제들을 전부 건물 안에 들여보내고 망보는 사람도 두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녀석들은 눈치 채지 못한 것 같다.
"좋아 그럼 갈까?"
"어디를....... 말입니까?"
"마중."
그렇게 말하고 가장 먼저 문을 열고 신전을 나선다. 113명의 사제들은 우왕좌왕하면서도 나를 따랐다.
저 멀리 200여명의 병사들과 10여명의 기사들이 다가오는 게 느껴진다. 후작가의 장자가 중상이 되도록 얻어맞은 건. 그것도 같은 귀족도 뭣도 아닌 신관 나부랭이에게 얻어맞은 건 귀족사회에서 상당히 큰 문제이니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으리라.
물론 나는 그냥 사제가 아니라 교황이지만 동네 모임 정도의 규모 밖에 안 가지고 있던 아프로디테 교단은 유일의 하이 프리스트였던 네레이야 하나로 명맥만 간신히 유지되던 단체이니 그들이 쉽게 넘어갈 리는 없는 것이다.
"죄인 로안 필스타인은 당장 무릎을 꿇고 앞으로 나서라! 그렇지 않으면 아프로디테 교단은 오늘 큰 재앙을......."
"싫어 "
"....... 엇?!"
찰나(刹那)를 가동해 순간이동에 가까운 동작으로 맨 앞에서 소리치던 기사의 코앞까지 접근했다. 명색에 오러 사용자인 그는 대경해 검을 잡으려고 했지만.
'이건 뭐야. 거의 멈춘 수준이잖아?'
황당해한다. 눈앞에는 텍스트가 떠올라있다.
<신경가속(神經加速)을 가동합니다! 순발력 보정에 중첩! 30배 가속에 들어갑니다!>
<시간의 지배자 효과가 발동합니다! 시간가속이 30배->
90배로 증폭됩니다!>
<평온한 가속이 가동합니다! 가속된 신경속도에 맞춰 움직임이 가속됩니다!>
미친 가속이다. 가뜩이나 15배까지 증폭시키던 순발력이 125에 도달하자 30배로. 그리고 거기에서 시간의 지배자 효과로 200%증폭이 걸려버리자 90배 시간증폭이 걸린 것이다.
말이 좋아 90배 시간증폭이지 이건 말도 안 되는 수준이다. 오러 사용자인 기사는 적의 모습을 발견하고, 그래서 검을 잡기까지 0.1초밖에 걸리지 않을 정도의 고수였지만........ 그 0.1초가 나에게는 무려 9초나 되는 것이다. 물론 9초가 뭐 그리 길다고 그래? 라고 물어볼 수도 있지만 보통 사람도 아니고 극강의 신체능력을 가진 나에게 이건 정말 엄청나게 긴 시간이다. 게다가 검 손잡이에 손을 대는 데까지 9초라는 건 검을 뽑기까지 다시 10초 이상의 추가시간이 필요하다는 소리가 아닌가?
"이거, 이거 어쩌면."
게다가 평온한 가속....... 이게 또 무서운 스킬이다. 내 신경 속도에 맞춰 육체의 움직임까지 가속시키는 이 스킬은 내가 90배의 시간 속에서도 정상적으로 움직일 수 있게 만들어준다.
"진짜 왕국이 다 덤벼도 안 되겠는데?"
어이가 없는 상황에 웃으면서 기사의 몸을 후려쳤다. 다만 90배 시간가속이 걸려있는 만큼 죽지 않을 정도로 살살.
산책하듯 주변을 거닐며 옆의 기사의 뺨을 후려친다. 뒤쪽의 기사는 발로 차버리고 검을 반쯤 뽑아든 기사의 멱살을 잡아 던져 버린다.
퍼버버벅! 쾅!
"크억!?"
"켁!"
"미친---!?"
움직임을 멈추고 한 걸음 물러서자 기사들 전부가 비명을 지르며 사방으로 나뒹군다. 어느새 남은 건 검을 뽑아든 채 질린 얼굴을 하고 있는 사내 하나뿐이다.
"그 속도에 반응하다니 감이 좋군. 기사단장인가?"
"당신........ 당신은........"
30대 후반으로 보이는. 그러나 틀림없이 그보다 나이가 많을 중년 사내가 묵직해 보이는 클레이모어를 든 채 헐떡이고 있다. 그의 검에는 소드마스터의 상징이라는 검기가 맺혀 있었지만 그도 알고 나도 안다. 그 정도로는 내 털끝하나 건들 수 없다는 것을.
그리고 그 때문일까? 입술을 질끈 깨문 중년 사내가 소리친다.
"바라노니 나와라! 포효하라! 위대한 하울의 수호자여!"
키잉--!
순간 강렬한 기파와 함께 공간이 갈라지더니 거대한 강철기사가 나타나 그의 상체를 연다. 나는 막을 수 있었지만 중년 사내가 거인의 몸에 탑승하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오호. 타이탄이군."
[죽어라---!!]
그리고 그 순간 강철의 기사가 그 덩치에 걸맞는 거대한 검을 휘둘러 나를 공격해 왔다. 사실 이건 이상한 일이다. 비정상적인 일이었다. 사실 나 정도의 매력을 가진 이가 이정도의 신위를 보이면 아무리 강한이라도 마음이 꺾이기 때문이다.
'대충 알 것 같군.'
나는 매력의 힘이 꼭 상대에게 호감을 사는 쪽으로만 발동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매력은 단순한 외모 이상의 힘이기 때문에 상대방을 유혹할 수도 있지만 공포에 질리게 할 수도 있으며 위압감에 무릎 꿇게 만들 수도 있다.
[정치]
스킬이나
[지휘]
스킬 등이 모두 매혹스텟에 보정 받는다는 걸 생각하면 사실 이건 당연한 일. 그리고 나는 지금 그에게
[공포]
를 심었다. 막대한 공포에 그가 자신도 모르게 반발하게 만든 것이다.
쩌엉!
"맙....... 소사?"
"말도 안 돼! 타이탄이 휘두른 검을 맨손을 막다니?!"
신전 근처에 가득 들어차 구경하고 있던 왕국민들과 내 뒤에 있던 사제들이 비명을 지르는 소리가 들린다. 타이탄이 휘두른 거대한 검을 내가 오른손으로 잡아버렸기 때문이다.
[미....... 친! 이게....... 무슨?]
타이탄에 탑승한 소드마스터는 증폭기에 의해 강화된 검기를 이글이글 불타게 만들었지만 어림없는 소리다. 나는 금강초인(金剛超人)의 효과로 인해 유형화된 검기조차 막아낼 수 있으니까. 청명처럼 호신강기 전문 파괴 기공을 사용하지 않는 이상 나에게 상처 입히는 것은 불가능하다.
[으윽!]
타이탄은 내 손에 잡힌 검을 회수하려 했지만 나는 대지마법을 써서 주변 땅과 나를 일체화 시켜 버렸다. 물론 이렇게 해도 내가 검을 놓치면 말짱 꽝이지만.
'엄청나긴 하군. 육체능력으로 타이탄이랑 맞대결해도 압승이라니.'
125포인트의 근력을 가진 내가 무궁한 마나로 육체를 강화하자 타이탄조차 힘에서 밀려버린다. 문자 그대로 말이 안 되는 일이지만 그 말이 안 되는 육체가 바로 내 몸이다.
나는 웃었다. 그래. 왜 매력으로 상대를 설득해야 하는가?
"압도적으로 눌러버릴 힘이 있는데."
스릉!
왼손으로 적의 검을 잡은 채 오른손으로 라이온 하트를 뽑아 올린다. 이내 검에는 무지막지한 내공이 담긴다.
"울어라 승천룡(昇天龍)."
크아앙-!
포효하는 소리와 함께 거대한 용의 형상을 가진 검기가 타이탄을 휩쓸어 버린다.
쿠우우우----!
충격파가 주변으로 퍼져나간다. 우릉우릉 하고 울리는 대기에 주변 사람들이 신음한다. 잔뜩 몰려온 병사들은 감히 대항할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
"강해...... 엄청 강해........."
"맙소사."
경악하는 그들의 모습에 웃는다. 분위기가 대충 되었군. 나는 앞으로 걸어 나가 나동그라져 있는 타이탄을 밟고 올라갔다. 그리고 크게 숨을 들이켰다.
"들어라-----!"
<보조스킬. 군중제어(群衆制御)가 발동합니다!>
거대한 외침에 주변에 있던 모든 사람이 부르르 떠는 모습이 보인다.
"지금 이 이후로 누구도 감히 아프로디테 교단의 이름을 모욕할 수 없다!!"
<보조스킬. 고대신의 위엄이 발동합니다!>
스킬이 너무 많아서 중첩되는 스킬이 많다. 당연하지만 그렇다면 굳이 하나만 쓸 필요도 없겠지.
"이것이 나, 로안 필스타인의 뜻이다!"
<전용스킬. 드래곤 로어(Dragon Roar)가 발동합니다!>
막대한 마나를 담은 스킬들이 연속해서 발동함과 동시에 내 목소리가 주변을 넘어 도시 전체로 퍼져나간다. 이런 카리스마 계열 스킬은 모두 매력스텟의 보정을 받기 때 문에 효과는 막대하다. 구경하고 있던 이들 중 상당히 높은 경지에 오른 이들조차 후들거리는 다리를 주체하지 못해 비틀거리고 있다.
'좋은 시작이야.'
마음속으로 웃는다.
<헤레이스의 호감도가 90을 돌파했습니다! 헤레이스의 호감도 락이 해제되어 있기에 방해 없이 호감도 상승이 완료됩니다!>
<헤레이스의 호감도가 100이 되었습니다!>
<니콜라스의 호감도가 90을 돌파했습니다! 니콜라스의 호감도 락이 해제되어 있기에 방해 없이 호감도 상승이 완료됩니다!>
<니콜라스의 호감도가 100이 되었습니다!>
<이자벨의 호감도가 90을 돌파했습니다! 이자벨의 호감도 락이 해제되어 있기에 방해 없이 호감도 상승이 완료됩니다!>
<이자벨의 호감도가 100이 되었습니다!>
<게르트루드의 호감도가........>
단 한방에 아프로디테 교단의 사제 113명 중 무려 90명의 호감도가 100을 찍어버린. 후에
[위대한 선포]
라고 명명될 어느 날의 일이었다.
============================ 작품 후기 ============================ 어쨌든 초월자에 버프가 워낙 많아서. 전투형 초월자만 아니면 절대 질 일 없습니다. 게다가
[매력]
특화 초월자이니 전투형 초월자를 만나면 친하게 지내면 됩니다(.......) 그의 자식이나 아내를 살해한 정도의 악연이 아니면 어지간한 건 다 용서가 될 테니까요. 아 이놈 세상 살기 너무 편한데(..........) PS. 오랜만에 일일연재. 더불어 분량도 좀 늘려봤습니다 ㅠㅠ아니 여기 작가분들 은 다 너무 성실해서 일주일에 두세편 올리면 죽일놈이네요 ㅠㅠ PS2 말씀대로 119화를 보니 이미 110포인트에서 30배 증폭이 걸려있었군요. ㅠㅠ 너무 제약없이 힘을 주다 보니 슈퍼 먼치킨;;; 일단 수정했습니다. 99에서는 15배 가속 110에서는 20배 가속 125에서는 30배 가속입니다. 결과적으로 60배 가속이 90배 가속으로 늘었군요. 안 그래도빠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