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장. 아프로디테의 신전 -- >
"생각보다 빨리 왔네? 조금은 기다려야 할 줄 알았는데."
"가까운 곳에 있었습니다."
태도는 차분하고 정중하다. 110포인트의. 아니, 이제는 125포인트까지 올라간 매력을 가진 내 앞에서 이렇게 차분할 수 있다는 건 그녀가 대단한 정신력의 소유자라는 뜻. 순간
'유혹해볼까?'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다. 괜히 다른 여자의 무너진 모습을 볼 만큼 내가 여자에 궁한 인간은 아니니까.
"현재 사제의 숫자는 어떻게 되지?"
"이곳 신전을 말씀하시는 거라면 정확히 113명입니다. 치료 주문을 전문적으로 익힌 신관이 34명이며 전투 주문을 주로 익힌 신관이 6명입니다."
"나머지는?"
"부끄러운 수준입니다."
꾸벅 고개를 숙이는 그녀의 모습에 고개를 끄덕인다. 많이 부족하다는 뜻이지만 그래도 113명이나 있다니 대단하다.
"대륙 전체로 치면 숫자가 얼마나 될까?"
"사실....... 이곳을 제외하고는 제대로 된 신전이 많지 않습니다. 민간신앙으로 간간히 유지되는 정도이지요. 다 쳐봐야 200명 정도일 겁니다."
"오호 그럼 이곳에 절반 이상이 이곳에 있다는 말이군?"
"...... 그렇습니다."
네레이야는 참담하다는 표정이었지만 나는 웃었다. 오히려 그렇다면 더욱 잘 되었다. 괜히 이곳저곳 돌아다닐 필요 없이 여기에서 모든 일을 해결할 수 있다는 뜻이 아닌가?
"하이프리스트는 너랑 에린 둘이고?"
"네 교황님. 아, 그리고 그것에 관해 여쭤보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말해."
순순히 답하자 네레이야가 더없이 조심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교황님께서....... 일반 사제(프리스트)를 대사제(하이프리스트)로 만드실 수 있다는 게 사실입니까?"
"응."
별로 고민할 필요도 없는 답변이다. 애초에 사실인데 왜 고민하겠는가? 그러나 그녀는 내 답변에 당황하는 표정이다.
"어떻게...... 어떻게 그게 가능할 수 있습니까?"
"의심하는구나?"
"아, 아닙니다. 제가 어찌."
네레이야가 깜짝 놀라 고개를 숙인다. 그러나 나는 알 수 있었다. 그녀가 설레어하고 있다는 것을. 그러나 그러면서도 그럴 리 없다고 스스로를 다그치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다.
'아 요새 왜 여자만 보면 대충 알 것 같지.'
너무 세상이 쉽게 보여서 큰일이다. 나. 그러니까 절세 미남인 로안의 앞에 서면 여자들이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숨기지 못하기 때문일까? 왠지 모르게 표정이나 행동만 봐도 그 마음이 대충 짐작이 가고 있었다.
'이러다 로그아웃해서 현실로 갔을 때 내 주제도 모르고 막 설치면 큰일 나는데.'
너무 강한 무기를 가지면 무술 실력이 떨어지듯 너무 사기급의 몸을 가지고 있으니 인생이 너무 편해서 문제다. 로안의 몸을 가지고 있으면 세상 모든 일이 쉬워 자칫 현실에 가서 오만하고 착각 속에 빠져 사는 인간상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하물며 네버랜드의 시간은 현실보다 12배나 빨라 체감시간도 어마어마하지 않은가? 내가 에고가 확고히 잡힌 인간이 아니었다면 상당히 헤맸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정신 바짝 차려야겠다. 언제나 객관적으로.'
그렇게 다짐하며 네레이야를 바라본다.
"일단 묻지. 하이프리스트가 많으면 좋겠어?"
"물론입니다. 하이프리스트가 많다면 귀족들도 우리 교단을 함부로 하지 못하게 될 테니까요. 더 안정적으로 세를 넓힐 수 있고 저희 교도를 지킬 수 있게 됩니다."
결연한 표정이다. 사실 나는 아프로디테 교단 유일의 하이프리스트였던 그녀라면 하이프리스트가 넘쳐나는 상황을 싫어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그녀는 너무나 절실히 그것을 바라고 있던 것이다.
"교도를 지켜?"
"예. 아프로디테 교단은 언제나 외세에 휘둘려왔습니다. 빼어난 미모를 가진 여인이 많은 집단...... 이라는 건 누구나 욕심 낼 수밖에 없으니까요. 게다가 저희 교단은 힘이 약합니다. 최근 들어 무력을 키우려 노력했지만 그렇다 해도 한계는 명확하지요."
아프로디테의 신성력은 치료에 이용하는 것은 물론 사용자를 아름답게 가꿀 수도 있으며 공격에도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아프로디테의 신성력이 공격능력을 가지고 있다 해도 전문적인 마법사에 비할 수 없으니 사실상 평화적인 집단이라 봐도 무방하다. 게다가 결정적으로....... 아프로디테 교단에는
[아름다워야 하는 여성들의 집단]
이라는 강렬한 페널티가 있다. 그들은 자신의 몸을 한계까지 단련할 수 없다. 손에 굳은살이 생기고 근육이 생기면 어쩌란 말인가? 그들은 필사적으로 지식을 탐구해 마법을 익힐 수 없다. 너무 몰입하거나 햇빛을 못 받아 피부가 푸석푸석해지며 어쩌란 말인가?
애초에 아프로디테의
[방침]
은 전투와 거리가 멀다. 거기에 아프로디테 교단은 여성으로만 이루어져 있기에 아무래도 남성들에게 얕보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후후. 무슨 말인지 대충...... 응?"
웃으며 답하려다 들려오는 소리에 멈칫한다. 그리고 몸을 일으켰다.
"안 비켜! 어디 그 잘난 교황 얼굴 좀 보자니까?!"
"이러시면 안 돼요. 공자님. 교황님은 지금 기도 중......."
"꺼져 더러운 년아! 교황이 그렇게 반반하다면서? 왜. 그렇게 반반한 교황이 돌아오니 나 같은 건 이제 별로라 이거야?"
"말이....... 너무 심하군요. 교황님하고 상관없이 우린 이미 끝난 사이 아니었나요?"
"뭐? 이 개 같은 년!"
짝!
드라마에서 흔히 들을 수 있을 것 같은 대화와 효과음이 들린다. 내가 당장 가서 말리지 못한 것은 우리들이 있던 위치와 그들의 위치가 상당히 떨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귀가 정말 밝기는 엄청 밝네. 더 밝아진 것도 같고........ 친화력 때문에 그런가?'
왠지 모르게 주변의 바람이 소리를 실어다 준 것 같은 느낌이다. 별로 내가 원한 거 하는 것도 없는데 알아서 세상이 보정을 한다고 해야 하나?
"교황님?"
당연하지만 나와 같은 것을 듣지 못한 네레이야가 갑자기 문을 열고 이동하기 시작하는 내 모습에 당황했지만 나는 거기에 답하지 않고 발걸음을 빨리 했다.
"그만 두세요!"
"뭐야 넌 또. 오호....... 너도 제법 반반한데?"
"그만....... 두세요."
가까이 다가갈수록 느껴지는 기척은 상당하다. 신전에 온 것이 양아치 사내놈 하나가 아니라 다수라는 뜻이다.
딸깍.
문을 열고 건물 밖으로 나간다. 소란 때문인지 거리에는 어느새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상태다. 어이없게도 이 녀석은 많은 사람들 앞에서 아프로디테 교단을 모욕하고 있던 것이다.
"손님이 오셨군요."
"호오! 드디어 교황 나리께서 납시....... 었습.... 읏?"
험악하게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몸을 돌렸던 녀석이 내 모습을 보고 멈칫한다.
'아 제발.......'
나는 기도했다.
"제가 그 반반하다는 교황입니다. 저를 찾으셨습니까? 멧돼지씨?"
나는 기도했다.
'제발........'
"하지만 죄송하군요. 저희 교단은 아무나 막 들어올 만한 곳이 아닙니다. 무례는 용서해 드릴 테니 꺼져주시겠습니까?"
나는 기도했다.
'제발.'
그리고 멧돼지 녀석은 소리쳤다.
"뭐라고? 이 기생오라비 같은 놈이!! 나는 하울 후작가의 장자 알버트다! 고작 아프로디테 교단의 교황 따위가 나한테 이래라 저래라? 애들아! 이 새끼 죽지만 않게 패버려!"
그리고 신은 내 기도를 들어주셨다.
"고마워."
"....... 뭐?"
순간 예상치 못한 말을 듣고 멍청한 표정을 짓는 녀석을 보고 화사하게 웃는다. 왜냐하면 불안했기 때문이다. 너무나도 높은 매력을 가지고 있는 나는 그 자체만으로도 휘광을 뿜어낸다 해도 좋을 정도의 카리스마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정말 어지간히 불량한 놈도 그 위엄에 눌려 그냥 물러나기 십상이다.
하지만 녀석은 너무나 고맙게도 나에게 시비를 걸고 아프로디테 교단을 모욕했다. 내가 움직일만한 충분한 명분을 만들어 준 것이다.
고마워. (물러나지 않아)다행이야.
뻐억--!!
"컥!?"
가볍게 턱을 올려치자 녀석이 땅에서 1미터 가까이 뜬다. 턱뼈가 다 박살날 정도의 치명상이었지만 나는 캐치볼을 잡듯 가볍게 떨어지는 녀석의 머리를 붙잡아 버렸다.
"도, 도련님!!"
"저자식이!!"
같이 대여섯 명의 기사들이 깜짝 놀라 나에게 덤벼든다. 그러나 당연히도 어림없는 일이다.
뻐버버버벅!!
오른손으로 후작 아들놈의 머리를 붙잡고 채찍 치듯 왼팔을 휘두르자 철갑옷을 입고 있던 기사들이 모조리 쓰러진다. 맨손으로 친 거지만 갑옷들이 움푹움푹 찌그러져 있다. 나름 내공을 사용하는 모양이지만 경지와 육체능력 모두 하찮은 수준이었다.
"네레이야. 혹시 이런 녀석들이 자주 오나?"
"교, 교황님. 그는 후작가의 자제입니다. 그, 그렇게 하시면 후환이........"
"아직 나를 모르는구나."
웃었다. 뒷일 따위는 전혀 두려울 게 없다. 솔직히 말해 이런 작은 왕국 따위 통째로 덤벼도 이겨낼 수 있는데다, 감히 이들이 나에게 덤벼들 수 있을까? 평화적인 분위기에서 만나면 왕족조차 감히 말을 놓지 못하는 치명적인 매력을 가진 나에게?
휙. 우당탕!
들고 있던 후작 아들놈을 아무렇게나 집어던진다. 제법 힘을 실어 던졌기에 뒤늦게 더 달려왔던 기사들이 녀석과 함께 땅을 뒹군다.
"이제 교단은 그 누구에게도 비굴할 필요가 없다."
몸을 돌리며 웃는다.
"교단의 뒤에는 내가 있을 테니까."
============================ 작품 후기 ============================ 로안의 뒷배경을 하기에는 아프로디테 교단이 빈약합니다. 로안이 아프로디네 교단 뒷배경이죠(........)오오 치명적인 매력의 소유자;;;; 정치하면 대박날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