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장. 아프로디테의 신전 -- >
'세이프티 존(Safety zone)? 아니지.'
장시간 타입 슬립은 사실 어려웠다. 왜냐하면
[위험하지 않은 선]
을 찾아내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타임슬립을 사용하면 마나가 소모된다. 다만 여기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는데 그것은 마나가 소모되는 양이 매번 다르다는 점이다.
내가 타임슬립을 하고 똑같은 일만 하더라도 세상은 변한다. 다른 것과 별개로 내가 시간을 돌리는 자체가 세계의
[변수]
가 되기 때문이다.
상식적으로 내 능력이 단순히 시간을 되돌리는 것이라면 다이스 시스템으로 주사위를 굴릴 때 매번 같은 눈이 나와야 한다. 주사위를 굴려 30이 나왔다면, 같은 시간에 같은 방식으로 굴리면 100번을 돌리던 1000번을 계속 30이 나와야 하는 것. 하지만 내가 시간을 당겨 주사위를 굴리면 매번 다른 결과가 나온다. 이는 타임슬립을 해도 매번 세계가 조금씩 달라진다는 것을 뜻한다.
물론 이 차이는 크지 않다. 아니 오히려 극히 사소하다고 할 수 있겠지. 그러나 그 시간이 하루 이틀을 넘어서면
[변수]
가 점점 많아져서 마나 소모량이 폭증한다. 더 문제가 되는 건 이 소모량이 매번 다르기 때문이다.
최초 시간을 돌렸을 때의 미래와 바뀐 미래가 그다지 다르지 않으면 마나 소모량이 많지 않지만 뭔가 많이 바뀌게 되면
[징계]
역시 그만큼 강해진다. 게다가 이
[변수]
라는 건 내 근처에서 일어나는 것만 치는 게 아니라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나는 일도 치기 때문에 내가 짐작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
내가 현실 기준 3일. 네버랜드의 시간으로 36일의 시간을 되돌리면 최소 2억에서 최대 11억(짐작이지만.)테라의 마나가 소모된다. 말하자면 최소와 최대의 격차가 너무나 크다. 너무 적게 소모되어도 곤란하지만(다시 게임 속 기준 36일을 보내야 하니까.) 너무 많이 소모되면 상황이 정말 심각해진다.
[징벌]
로 로안이 죽게 되는 것이다.
목이 잘려도 죽는 로안의 몸이지만
[징벌]
에 생명력은 관계가 없다. 징벌은 대상의 체력과 생명력. 방어력과 온갖 수단을 다 감안해서 내려지기 때문에 생명력이 강한 로안이라면 오히려 훨씬 더 가혹한 징벌을 맞아 사망하게 될 것이다. 생존 따위는 불가능하다는 소리다.
물론 실수로 죽더라도 한순간 인식조차 못하고 죽지 않는 이상 진짜 죽음은 아니다. 나에게는 다른 세이브 포인트(Save zone)가 있으니까.
그렇다. 죽기 싫으면 돌아가면 된다.
네버랜드를 처음으로 시작하던 그때로.
'오메....... 그게 할 짓이냐.'
생각만 해도 오한이 든다. 이미 시간을 너무나 여러 번 돌려서 그때로 돌아가면 돌아버릴지도 모른다. 물론 경험과 실력이 쌓였으니 그때처럼 고생하지는 않겠지만, 또 초월자에 이르기 위해 수련할 자신이 없다.
'역시 자살이 편한데.'
내가 하려다 실패했던
[자살 노가다]
의 장점이 바로 그것이다. 나의 죽음은 그 자체만으로도 커다란 변수이기 때문에 그 하나만으로도 대량의 마나를 소모하니까. 즉 마나가 꽉 차 있을 때 바로 로그아웃을 한 후 자살 -> 소모된 마나를 확인 -> 그만큼 마 나 소모 후 나가서 자살 = 마나탈진 이라는 공식을 활용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가장 이상적인 방식이다. 어쨌든 내가 돌리는 시간은 수십 초에서 수 분 이내이니 외부 변수를 신경 쓸 필요 없어(변수가 있어도 그 정도 시간이면 100테라 내외이다.)안정적으로 마나를 소모할 수 있는 것이다.
짐작이지만 내 타임슬립은 원래 있던 미래를
[소멸]
시키고 새로운 타임라인을 만드는 능력이 아니다. 말하자면....... 내 능력은 바둑을 두다 한 수 무르는 것처럼
[세상을 이전의 형태로 되돌리는]
것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바둑을 무를 때 바둑판을 통째로 엎어 버리는 게 아니듯 내 타임슬립은 원래 있던 타임라인이 소멸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세상에는
[캔슬]
된 타임라인의 흔적이 남는다. 사람들은 간혹 그것을 데자뷰 같은 형식으로 받아들이기도 했다.
"사색에 빠진 모습도 멋있어......"
"세상에. 진짜 그림으로 남겨놨으면 좋겠다......."
잠시 이런저런 고민으로 멍해진 내 모습을 훔쳐보던 사제들의 중얼거림을 듣고 정신을 차린다. 원래 사제라고 하면 좀 경건하고 엄숙한 그런 느낌이 있지만 미와 사랑을 추구하는 아프로디테의 사제들에게는 그런 게 없다. 마치 사춘기의 여고생처럼 발랄한 느낌까지 있는 것이다.
"리아스. 이제 기도할 테니 돌아가."
[에엑 주인님 너무해요. 별로 한 것도 없는데.]
"하하 미안. 하지만 네 소환을 유지하려면 정신을 집중해고 있어야 한단 말이야."
물론 정신집중이라고는 해도 그녀를 처음 소환할 때에 비하면 아주 약한 수준에 불과하다. 다른 정령사들이 정령을 유지할 때의 문제는 그 정신집중이 아니라 소모되는 마나가 문제일 정도니까.
그러나 이것저것 해야 하는데 그녀를 유지하기 위해 사고를 할당하는 것도 골치 아픈 일이다.
[쳇. 대신 또 불러주셔야 해요?]
"물론이지."
사람 좋게 웃은 후 소환을 취소한다. 리아스는 아쉬운 표정으로 정령계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사제들이 수군거린다.
"와 상급 정령이야. 오러 마스터에 아크 메이지라는 말은 들었는데 거기에 상급 정령까지 소환하다니."
"대단해. 역시 교황님."
"그런데 공간의 정령이 원래 저렇게 생겼던가?"
물론 그녀들이 대놓고 내 근처에서 수군거리는 것은 아니다. 그녀들은 나와 상당히 떨어진 곳에서, 그것도 머리만을 배꼼이 내 놓은 채 자기들끼리 속삭이고 있었으니까.
'귀가 좋은 게 죄지 뭐.'
로안의 몸은 모든 감각이 탁월해서 가까운 거리라면 개미 기어가는 소리(!)까지 들을 수 있다. 게다가 그게 단순히 소리를 크게 듣거나 하는 것도 아니어서 느닷없이 근처에서 굉음이 난다 해도 별다른 충격 없이 견딜 수 있다.
"벤자민. 세실. 이블린."
"앗!"
"네!"
"이, 이름을 기억하시다니........"
뭔가 사소한 일에도 쓸데없이 감격한다는 느낌이지만 지능이 너무 높아 지식창고를 자유자재로 쓸 수 있는 나는 단 한번만 이름을 들어도 그 대상의 이름이 꼬리표처럼 붙어 다니기 때문에 헷갈릴 일이 없다.
"미안하지만 네레이야를 불러주지 않겠어? 슬슬 교황으로서의 업무를 하고 싶은데."
"서, 서두르겠습니다!"
"잠깐만 기다리세요!"
"아니 그리 급한 건 아닌데......"
어색하게 중얼거렸지만 이미 그녀들은 우당탕 거리며 사라진 이후였다.
"뭐 조용해져서 좋군."
피식 웃으며 아프로디테의 신상 앞으로 다가간다. 그리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자세를 취한다. 당연하지만 아프로디테를 존경해서 그런 건 아니고 팬 사이트에서 보았던
[유저 인터페이스]
를 불러오기 위해서였다.
<기도에 들어갔습니다. 눈을 감고 기도를 3초 이상 유지할 시 업적관으로. 5초 이상 유지할 시 캐시샵을 불러오실 수 있습니다.>
'일단은 업적관부터 들어가야지.'
3초 동안 기도를 하고 있다가 살짝 눈을 뜬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눈앞으로 가로세로 1.5미터 정도 되는 푸른색의 창이 떠오른다.
<업적관을 불러오셨습니다! 시간 가속 100배가 적용됩니다! 인터페이스 종료까지 남은 시간 9분 59초!>
<나는 유저다(업적관 최초 열람)업적을 달성하셨습니다! 업적 점수 50점!>
업적관을 열어냄과 동시에 세상이 회색빛으로 변하며 멈춘다. 업적관이나 캐시샵 사용 시 마냥 시간 끌다가 유저인 걸 걸리는 사태를 막아주기 위한 시스템일 것이다.
'몸은....... 당연히 안 움직이는군.'
정지된 시간 속에서 가속된 것은 오직 정신뿐이다. 그리고 그렇게 정지된 시간 속에서 떠오른 창을 바라본다.
<업적점수가 50점을 돌파했습니다!>
<업적점수가 100점을 돌파했습니다!>
<업적점수가 500점을 돌파했습니다!>
<업적점수가 1000점을 돌파했습니다!>
<업적점수가........>
<총 3250점의 업적 점수를 가지고 계십니다! 17개의 영단 선택권과 1080의 포인트를 획득하셨습니다!>
어지럽게 떠오르는 메시지들을 확인하며 업적 보상을 확인한다. 그 내용은 이랬다.50영단 하나 선택.100 영단 하나 선택. 10포인트200 영단 하나 선택. 20포인트 500 영단 하나 선택. 50포인트 1000영단 두개 선택. 100포인트 1500영단 두개 선택. 150포인트 2000영단 세개 선택. 200포인트 2500영단 세개 선택. 250포인트 3000영단 네개 선택. 300포인트 3500
[미개방]
'오호. 영단을 마구 주는군.'
당연하지만 어디까지나 내 기준일 뿐이다. 네버랜드에 존재하는 업적의 개수는 총 100여개이며 업적 점수는 총 10000점이지만 그 업적 하나하나가 그야말로 극악하다고 밖에 볼 수 없는 수준이기 때문에 업적점수를 1000점 이상 쌓는 유저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찾아보기 힘든 수준인 것이다. '그나저나 포인트는....... 아 그렇군. 보상을
[구입]
하는 형식이야.
'업적보상은 몇 점이면 뭘 주고 몇 점이면 뭘 주고 하는 식이 아니라 업적보상으로 얻은 포인트로 보상을 구매하는 식. 슬쩍 창을 바꿔 보니 구매 대상이 보인다.'
어디보자....... 오호? 인벤토리(Inventory)를 팔아? 게다가 미니맵(Mini-Map)에 스크린샷을 찍어 현실로 보낼 수 있는 카메라라.......'하나같이 막대한 효과를 가지고 있는 물건들이다. 그것들이야말로 유저를 유저답게 하는 NPC들이 가질 수 없는 물건. 하지만 나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건 그것들이 아니다.
나에게 중요한 건 특정 아이템을 더 강력하게 만들며 무엇보다 내 최대치의 마나를 늘릴 수 있는 물건.
바로
[강화권]
이다. ============================ 작품 후기 ============================ 2011년이 끝나고 2012년이 찾아왔습니다! 지구멸망한다고 그렇게 설레발 치던 2012년이군요. 신년기념으로 한편 올립니다. 나이를 먹을수록 대마법사에 가까워져 가는 것 같지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