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뒤로 걷는자 캔슬러-126화 (126/283)

< --12장. 정령계도 환계도 즐거운 곳이지. -- >

니힐리티는 슬쩍 나무 뒤에 숨어 있는 소녀를 가리켰다. 자그마한 체형에 반투명한 몸을 가지고 있는 그녀는 공간의 중급 정령이다.

"하지만 녀석은 몸이 잘 만져지지도 않는데."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상급 미만의 정령들은 정령력이 모자라서 안아봐야 아무런 쾌감을 느낄 수 없다. 상급 이상의 정령들은 불의 정령이라 활활 타든 물의 정령이라 차갑든 어쨌든

[실체화]

에 가까운 밀도를 가지고 있는데 그 이하의 정령들은 힘주어 만지면 흩어질 정도로 그 결집력이 약하다. 몸으로 꾹 눌러주면 그냥 흩어져 버리는 것이다.

[일단 계약만 하는 수밖에 없죠.]

"그런가....... 이리와."

가볍게 손짓하자 나무 뒤에 숨어있던 공간의 정령이 내 쪽으로 다가온다. 설레는 표정으로 내 주변을 빙글빙글 도는 그녀는 언어를 사용하지 못하는 존재다. 하급 정령이나 최하급 정령처럼 개나 고양이 정도의 지능을 가진 건 아니지만 인간에 맞먹는 지능을 가지지도 못해서 초롱초롱한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고만 있다.

"계약하자. 지배계약."

제의는 간단히 받아들여졌다.

<공간속성 중급 정령과 계약합니다! 계약종류는 지배계약!>

<900테라의 최대 마나와 9000테라의 가용 마나가 이전되기 시작합니다!>

<남은시간 59분 58초........>

과정은 간단했다. 눈치 때문인지는 몰라도 다른 상급 정령들을 따라 귀여운 소녀의 모습으로 변한 그녀였지만 그래도 안기에는 너무 약한 만큼 정상적인 계약 절차를 밟는 수밖에 없었다. 뭐 그게 더 쉬우니 상관은 없지만.

<공간속성 중급 정령과의 지배계약에 성공했습니다! 900테라의 최대 마나와 9000 테라의 가용 마나를 이전하셨습니다!>

<당신과 지배계약 정령과의 속성 궁합이 천왕(天王)급입니다! 지배계약 정령에게 존재 보너스가 붙습니다!>

<초월적인 성질의 마나를 주입하셨습니다! 지배계약 정령에게 존재 보너스가 붙습니다!>

<지배계약 정령의 정령력이 일정 수치를 넘어 상급 정령으로 진화합니다!>

<당신은 중급 정령을 성장시킴으로서 상급 정령에 이르게 만들었지만 필수 승급 조건이 충족되지 않았으므로 위대한 헤스티아 스킬이 전문가 9레벨에서 상승하지 않습니다!>

우우웅---!

당연하게도 공간의 중급 정령은 상급 정령으로 진화했다. 상급 정령조차 최상급 정령으로 진화할 정도의 존재 보너스를 받았으니 당연한 일이다.

[아아.......]

새로이 진화한 공간의 상급 정령은 대충 고등학교 저학년으로 보이는. 약간은 앳돼 외모를 가지고 있었는데 약간 멍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다 활짝 웃는다.

"이 녀석 왜 이래?"

[후후. 상급 정령부터 지성을 가지는 건 사실이지만지금 막 지성을 가지기 시작한 거라서 기본적인 정보를 다운로드 받고 있는 거예요.]

"호오. 차분히 공부를 하지는 않을 거라 생각했지만 그런 식인가."

현재 나와 계약을 한 정령 중에 정신을 차리고 있는 건 니힐리티와 공간의 상급 정령뿐이다. 어쨌든 내 행위를 버틸 수 있는 녀석은 없으니까. 그나마 이 둘이 멀쩡한 건 행위가 끝나고 상위 정령으로 진화하면서 몸 상태가 회복되었기 때문이다.

[주인님....... 나의 주인님.......]

공간의 상급 정령은 떠듬떠듬 중얼거리며 내 몸에 자신의 볼을 비볐다. 성숙함은 약간 모자라 보이는 그녀였지만 잘록한 허리에 미끈한 몸을 가지고 있는 그녀가 고양이처럼 내 몸에 볼을 부비는 모습은 더 없이 색정적이다.

푸욱!

[힉---?!]

거부할 이유가 없던 만큼 삽입하자 몸을 쫙 펴며 파르르 떤다. 그러나 내가 느끼는 쾌감은 별로 없다. 이제 막 상급 정령으로 진화한 그녀의 몸은 재현도가 몹시 낮아서 별로 비싸지 않은 오나홀에 물건을 집어넣은 것 같다.

"으음. 몸은 좀 더 신경 써서 만들어야겠는데. 특히 아랫부분은. 좀 더 주름을 늘리고 조임에 신경 썼으면 좋겠어."

[앗. 죄송해요. 죄송....... 더 신경 쓸게요.]

"점점 잘 하게 될 테니까 걱정하지 마."

씩 웃으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누군가 지금 내 모습을 본다면

'천사 같은 미소로 무슨 미친 소리를 하는 거냐!'

라고 소리쳤겠지.

[잠시만....... 이렇게요?]

기본적으로 고정된 육체를 가지지 않은 정령들은 비교적 빨리 자신의 형태를 바꿀 수 있던 만큼 내 분신을 감싼 그녀의 질이 자글자글 늘어나고 조임이 강해진다. 그러나  아직 부족하다. 물론 좀 나아지긴 했지만 말 그대로 주름만 늘어나고 단순히 압력만 강해졌기 때문이다.

"흐음 조금 더. 아니 이럴 게 아니라........ 너희들한테 선물을 주지."

무속성 주문. 창생(創生)을 발동한다. 현실에서 로안으로 화했을 때 봐서 지식창고에 저장해 두었던 일러스트집이나 인체해부도를 모아 한 권의 책으로 짜 올린 것이다.

[이건?]

"인간 여성의 육체에 대한 내용과 아름다운 여인들에 대한 그림들이 들어있어. 인간의 모습을 취하는데 도움이 되겠지."

무속성의 마력은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는 대신 모든 속성에 대응할 수 있기 때문에 물질화(物質化)하는데 가장 적당하다. 사실상 그 어떤 형태라도 구현하는 게 가능한 것이며 내가 평소 다루는 공격 주문과 달리 무속성만이 가진 특유의 힘이었다.

실제로 다른 속성의 정령들은 비록 아름다운 여성의 형태를 취한다 해도 인간이 아니라는 걸 한눈에 파악하는데 아무런 어려움이 없는데 비해 무속성의 정령인 니힐리티만이 인간과 구별하기 어려운 완전한 육체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물질화는 그 어떤 마력도 흉내 낼 수 없는 힘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와. 구현주문으로 책을 만들다니. 설마 책 한 권을 몽땅 외우시고 있는 거예요? 심지어 글자 책도 아니고 그림이 많은 이런 책을?]

"천재라 괜찮아."

현실에서 로안의 몸을 현현시키는 게 가능해지면서 현실의 지식을 게임 속의 지식창고에 저장하는 게 가능하게 되었다. 종말의 마탄이나 지고의 마탄과 다르게 이런 제작 주문은 주문 완성과 전혀 별개로 극렬한 난이도의 컨트롤이 추가로 필요하기 때문에 사용하는 마법사가 거의 없다. 아니 설사 할 수 있다 해도 너무 힘들기 때문에 안 하는 게 보통이지.

때문에 무속성은 매우 강력하고 범용성이 높은 속성임에도 그리 인기가 없다. 12개의 속성 중에서도 흔히 삼대속성(三大屬性)이라 불리는 광(光). 암(暗). 무(無)의 무속성임에도 사람들이 사용하질 않는 것이다.

'하긴 창생 주문을 사용하려면 그 물건에 대해 완벽하게 파악하고 있어야 하기 때문에 주로 사용하는 한 두 개의 물건을 제외하고는 사용이 불가능하다고 했었지.'

지금의 나처럼 스스로의 기억이 전혀 필요 없는. 그야말로 100% 지식창고에 저장이 가능한 마법사가 아니면. 바꿔 말해 지능이 99포인트에 달하지 않으면 흉내조차 낼  수 없는 묘기다.

[와. 이거 봐요. 저랑 체형이 비슷해요.]

"그래 나도 너 보고 그런 생각을 했었지. 아, 참고로 그거 유지시간이 3일이니까 서둘러서 보고."

그렇게 말하며 남은 마나를 확인한다. 마나가 줄기는 하지만 아직 꽤 여유 있다.

'다만 문제는 최대 마나가 줄어든다는 건데.'

물론 그렇다 해도 줄어드는 마나보다 늘어나는 마나가 많다. 현재 내 마나는 2억 2000만 테라로 최대 마나의 10%를 증가시키는 마나 탈진 상태를 일으키면 2200만 테라의 마나가 생기게 되니까.

"생각보다 소모가 커. 이래서는 마나가 늘어봐야 본전이군."

지금까지 소모한 최대 마나는 1819만 테라. 소모한 마나는 1억 8190만 테라이다. 내 최대 마나가 2억 2000만 테라이니 3810만 테라가 남은 셈인데 이걸 다 소모하게 되면 사실상 얻는 게 없다. 게다가 마나 탈진의 경우 최대 마나의 10%가 늘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약간의 손해를 보기까지 하는 것이다.

'뭐 그거야 계약을 캔슬하면 그만이지만.'

그렇다. 정령계약을 취소하면 소모되었던 내 최대마나는 고스란히 회복된다. 사실 계약을 맺기 시작했을 때부터 생각하던 바이지만....... 나에게 받은 마나를 신주단지 모시듯 챙기는 정령들의 모습에 차마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에휴. 다음부터는 정령계로 와서 검법이나 마법으로 소모시켜야 하나?"

그러나 그 말에 내 품에 안겨 허덕이던 공간속성의 정령이 화들짝 놀라 묻는다.

[예? 무슨 말씀이세요? 그 귀한 마나를 그렇게 써버리시겠다니.......]

"어쩔 수 없어. 최대마나 소모 없이 마나를 써야 할 일이 있어서."

어깨를 으쓱이자 녀석은 황당하다는 듯 말했다.

[네? 아니 그게 대체...... 그냥 저희한테 베풀어 주시면 되잖아요?]

"!!"

============================ 작품 후기 ============================ 문장사를 원하시는 분들 리플에 다시 쓰기 시작했습니다. 확실히 언제까지 미룰 수는 없죠. 슬슬 완결을 내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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