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뒤로 걷는자 캔슬러-122화 (122/283)

< --12장. 정령계도 환계도 즐거운 곳이지. -- >

정령 녀석들이 내 옆에 모여들어 쫑알쫑알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너무 많아서 솔직히 정신이 없을 지경이었기에 더 이상 시끄러운 걸 버티기도 귀찮아 그대로 소리친다.

"전부----조용---!!!!!"

[꺅?!]

[악?!]

[우와악!?]

포효와 함께 우르릉. 하고 뿜어지는 마나의 폭풍에 와글거리던 상급 정령들은 물론  주변에 있던 모든 정령이 사방으로 뿔뿔이 흩어진다. 그리 큰 마나를 담은 건 아니었음에도 충격이 꽤 큰지 비틀비틀 거리고 있다.

"아 녀석들 시끄럽게 굴기는. 야 너. 너만 이리로 와봐."

[앗, 네......]

내가 부른 것은 무의 정령이다. 150센티미터 중반의 자그마한 체구에 잿빛 머리칼을 길게 늘어트린 그녀는 요요롭던 초반 분위기와는 다르게 공손한 자세로 다가온다.

"흠. 넌 별로 정령 같지 않군. 무속성 정령은 다 이래?"

[전부 이런 건 아니에요. 다른 속성을 흉내 내기도 하고 그저 투명하기도 하죠. 다만 아무것도 아니면서 또한 모든 것이기도 한 무속성의 특성상 인간의 모습을 보다 완벽하게 구현했을 뿐이에요.]

드래곤 로어의 위력이 생각보다 강렬했던 건지 꽤 조심스러워진 태도. 나는 물었다.

"일단 계약에 대해 말해봐. 계약은 어떻게 하지?"

[아, 그...... 계약이라면 총 세 가지가 있어요. 하나는 정령사와 정령이 서로의 양해를  구한 후 소환이 가능하게 하는 가계약(假契約)이고 또 하나는 정령사의 최대마력을 정령에게 넘기는 전속계약(專屬契約). 마지막 하나는 정령을 소환사의 아래에 예속시키는 지배계약(支配契約)이에요.]

아무래도 키 차이가 30센티나 나는 만큼 나는 그녀를 내려다보며 설명을 들었다. 다만 중요한 것은 위에서 내려다보면 그녀의 가슴골이 다 들여다보인다는 것이다.

'헐 몸매 보게......'

150센티미터 중반의 작은 키이지만 그 밸런스는 폭발적이다. 어떻게 형태를 잡고 있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풍만한 가슴과 윤기가 흐르는 그녀의 허벅지는 그야말로 육감적이라고 밖에 평할 수 없는 극상의 육체라 할 만 했다.

'쩝. 이런 몸은 뒤치기 하기에 좋은데.'

그러나 당장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던 만큼 묻는다.

"세 계약은 각각 무슨 차이점이 있지?"

[대충은 알고 계시겠지만 저희 정령들이 물질계의 존재들과 계약을 맺는 이유는 '성장'과 '즐거움'이에요. 저희들은 물질계의 존재와 계약함으로서 더 상위의 존재가 될  수 있고 또 즐거움을 얻을 수 있죠.]

"즐거움?"

이해할 수 없는 발언에 의아해하자 무의 정령은 가볍게 한숨 쉬었다.

'아아 뭐야. 이렇게나 막대한 친화력을 가진 녀석이 아무것도 모른다니.'

라는 표정이다.

[이해하기 쉽게 말씀드리자면....... 그래요. 정령사의 마나는 저희들에게 식사와 같아요. 우리는 인간의 아이가 빵을 먹고 자라는 것처럼 정령사의 마나를 흡수함으로서 자랄 수 있고 또 음식을 먹어서 즐거움을 느끼는 것처럼 포만감과 행복감을 느껴요. 더불어 그 정령사의 친화력이 높으면 높을수록 음식의 맛은 더욱 더 각별하고 영양가도 많다고 할 수 있죠.]

몹시 흥미로운 설정이었다. 솔직히 바이올렛의 정령술을 보면서

'대체 왜 저 녀석들은 받는 것도 없이 물질계에 와서 저 고생일까? 싸우는 게 좋나?'

라고 생각했었는데 그럴싸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식사라...... 그런데 밥을 못 먹으면 어때? 위험한가?"

[그런 건 아니에요. 저희가 살아가는 기본적인 에너지는 자연계에서 흡수할 수 있으니 오직 성장에 필요한 에너지만을 정령사의 마나에서 얻는 거니까요. 그리고 식사라 고 예를 들었지만 저희에게 정령사의 마나는 저희에게 좀 더 큰 의미를 가져요.]

"큰 의미라고?"

[네. 정령사의 마나는 저희 정령들에게 있어 식사이기도 하지만 기호식품이기도 하고 오락거리이기도 하면서 성행위에서 얻는 쾌락과도 같죠. 그래서 우리 정령들은 이런 저런 고생을 하게 될 걸 알면서도 인간과 계약하고 싶어 하는 거예요.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 정령계에서의 생활은....... 평화롭기는 하지만 솔직히 미치도록 따분하거든요.]

그렇게 말하며 간절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본다. 그녀의 눈은

'그러니까 이 자식아 당장 나랑 계약 한다고 해!'

라고 말하고 있는 상태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했다.

"그런데 정작 계약에 대한 설명을 못 들었는데."

[아, 간단히 말씀드리자면 마나를 넘겨주는 방식의 차이라고 할 수 있어요. 먼저 가계약은 보통 정령사의 경지와 동등 혹은 상위의 정령과 맺는 계약인데 가용마나의 일부를 소모해서 가볍게 맺는 계약이라 언제든지 파기될 수 있죠. 계약 시 드는 마나는 별로 없는 대신 소환 때마다 상당한 마나를 소모해야 해요.]

"아까 네 설명을 기반으로 하자면........

'제가 부를 때마다 나타나 도와주신다면 맛있 는 식사를 드리겠어요.'

라는 계약이겠군?"

내 말에 무의 정령이 훗. 하고 눈웃음을 짓는다.

[똑똑하시네요. 비슷하죠.]

"그럼 전속계약은?"

[전속계약은 보통 동등한 정령과 정령사가 맺는 계약이에요. 정령사의 최대마나 중 일부분을 넘겨주는 대신 부르면 언제든지 나타난다는 계약이죠. 소환 시 사용되는 마나도 적고요.]

"흐음? 왜 최대마나를 받지? 최대 마나가 더 맛있어?"

[꼭 그렇지는 않지만 더 큰 장점이 있죠. 저희가 물질계의 진력(眞力)을 몸에 머금으면 설사 그 안의 마나를 흡수해도 마나가 정령력을 흡수해 스스로 차오르거든요.]

그녀의 말에 뭔가 깨달아진 바가 있었다.

"즉. 하루에 빵이 하나씩 나오는 마법의 항아리가 생기는 셈이군."

[네. 사실 저희들은 이쪽을 더 좋아해요. 식사를 불규칙하게 하는 것 보다는 정기적으로 하는 게 훨씬 더 좋죠. 가계약의 경우에는 막 몇 달씩 소환을 안 하는 경우도 있는데 차라리 안 먹고 살면 안 먹고 살지 맛만 보고 식사를 못하면 허기만 지거든요. 막 금단증상을 경험한 녀석들도 있어서 상급 이상의 정령은 가급적 가계약을 안 하려고 해요. 뭐 나중에 전속계약을 맺자는 약속을 전제로 하는 경우도 있지만요.]

"호오....... 그 마나량은 얼마로 정해져 있는데?"

[정령의 등급과 정령사의 속성피스에 따라 달라요. 속성피스가 많으면 많을수록 정령에게도 정령사에게도 높은 효율로 에너지가 교환되죠. 그리고 당신은 무속성 피스가 엄청나게 많아요. 정말 지금까지 본 적도 없을 정도로.......]

설명을 하면서도 계속 간절한 눈길을 보낸다. 아무래도 이 녀석은 정말 그 계약이라는 걸 하고 싶은 모양이었지만 나는 쿨한 남자이므로 가볍게 그 시선을 무시하고 묻는다.

"마지막으로 지배계약은?"

태연한 내 테도에 그녀는 토라진 표정이다.

[흥. 거의 할 수 있는 정령사가 없기는 하지만 일단 성사만 되면 아주 강력한 힘을 발 휘하는 계약이에요. 전속계약처럼 최대마나의 일부를 정령에게 주입한 직후 '그 마나의 10배치' 가용마나를 추가로 주입하는 계약이죠. 지배계약은 정령사들이 자기보다 훨씬 낮은 정령들하고 맺을 수 있는 계약인데 일단 맺으면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 소환이 가능하고 어지간히 무리한 부탁이라도 다 시킬 수 있어요. 소환 시간도 엄청나게 짧아져서 급박한 전투에도 자연스럽게 활용할 수 있죠.]

그녀의 말에 묻는다.

"너와 지배계약을 하려면 마나가 얼마나 필요하지?"

[네? 아니 죄송하지만 저는 상급정령인데요. 어지간한 상급 정령사도 전속 계약을 못 맺는데 지배계약이라니......]

떠듬거리는 녀석의 말에 피식 웃는다.

"싫어?"

[무, 물론........ 싫지는 않죠. 다만 마나가 부족하실 거예요. 저와 전속계약을 하기 위해 필요한 마나는 3만 테라니까요. 그나마 그것도 보통 상급 정령과 계약하려면 5만에서 최고 15만까지 필요한데 무속성 피스가 많으셔서 확 줄어든 거예요.]

지배계약을 위한 마나를 묻는데 전속계약의 마나를 말한다. 뭐, 지배계약에 필요한 마나는 저기에서 다시 10배의 가용 마나가 있으면 된다니 대충 어떻게 해야 할지 계획이 선다.

"내 이름은 로안 필스타인. 지배계약을 맺어도 될까?"

[에? 하, 하지만 마나가....... 혹시 아슬아슬하게 된다고 해도 정령계에 오는 건 1년에 한 번 뿐이에요. 당신 정도의 친화력을 가진 이가 저 하나랑 계약한다는 건........]

"계약하지 말까?"

============================ 작품 후기 ============================ 헥헥. 간신히 올립니다. 뭐 당연한 말이지만

[신혈각성]

이 초월자에 이르면서 정령계 이동의 쿨타임은 1개월 남짓입니다. 36일에 한번씩 쿨이 차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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