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뒤로 걷는자 캔슬러-121화 (121/283)

< --12장. 정령계도 환계도 즐거운 곳이지. -- >

센트럴에서 제공한 숙수 안에서 머리를 싸매고 있다. 너무나 기가 막힌 현실이 머리가 다 아파 올 정도였기 때문이다.

"아오 이건 또 뭐여........"

레전드 스킬들은 수련이 아닌 퀘스트 이행으로 그 경지가 오르며 그 난이도는 위로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험난해진다. 실제로 처음에는 처녀 하나 얻는 퀘스트가 10명의 네임드 NPC의 호감도를 100까지 올리는 것으로 올라가지 않았던가?

그래. 뭐, 어느 정도는 짐작했다. 명색에 레전드 스킬이니만큼 위로 올라갈수록 어려워지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니까.

"하지만 그래도 그렇지 이건........ 아 정말!"

짜증내며 퀘스트 창을 바라본다. 조화령(造化靈)수련. 세 번째 제한시간 없음목표사랑전설의 방중술이라는 레전드 스킬(Legend skill). 조화령을 습득했다. 지금까지의 스킬들과 다르게 조화령은 단순한 깨달음과 수련이 아닌 퀘스트의 달성으로 수련이 이루어진다.

조화령은 단순한 육욕이 아닌 마음을 다루며 다채로운 상대의 마음을 흔들어 놓음으로써 그 경지가 높아진다. 네임드급 이상의 NPC나 몬스터 30명의 처녀를 받고 호감도 100을 채우자. 더불어 네임드급 이상의 미망인 10명. 유부녀 5명을 유혹해 호감도 100을(한순간이라도 채우면 된다.)채워라.

보상: 조화령(造化靈) : 전문가 -> 완성자진행 상황처녀접수: 0/30미망인 유혹 : 0/10유부녀 유혹 : 0/5-현재 호감도 MAX : 네임드 10명. 히어로 7명. 레전드 1명.

"그냥 접수만 하는 것도 아니고 다 호감도 100채우라는 것도 미친 짓거리인데 뭐 미망인? 게다가 유부녀라고?"

어처구니없게도 이놈의 스킬은 남의 여자를 빼앗으라고 말하고 있었다. 물론 대놓고 그런 말은 없지만 미망인은 몰라도 유부녀라는 건 현재 남편이 있는 여인을 말하는 게 아닌가? 게다가 그냥 관계를 맺는 것도 아니고 호감도 100을 채워버리면 원 남편은 어떻게 되겠는가?

게다가 심지어---

"연상은 취향도 아닌데....... 정말 돌아버리겠군."

계속 투덜거린다. 하지만 이렇게 투덜거려도 결국 하긴 할 거라는 게 문제다. 애초에 도덕관념만으로 스킬 업을 포기하기에는 너무 멀리 와 버렸다.

"뭐 일단 이게 급한 것은 아니니."

대충 방안을 정리하고 밖으로 나온다. 그리고 느껴지는 감각에 따라 발코니로 나간다.

"앗 교황님. 다 쉬셨어요?"

"아직은. 그래도 그리 긴 계획은 없으니 내일이나 모래쯤에 출발할 거야. 교단에서도  기다릴 테고."

"와. 다행이네요. 안 그래도 언니들이 하루에 한 명씩 찾아와서 달달 볶아요. 제가 하이 프리스트가 된 걸 본 언니들은 그야말로 기겁을 하던데요?"

에린은 헤헤 거리며 웃었다. 이제 그녀는 아프로디테 교단에서도 둘 밖에 없는 하이프리스트이니 그 입지도 예전 같지 않으리라.

"그리고 바이올렛. 준비는 됐어?"

"네 여기......"

내 말에 바이올렛은 품 안에 소중히 안고 있던 한 권의 서책을 꺼냈다. 가죽표지에 감싸 있는 책은 어지간한 소설책 정도의 크기를 가지고 있다.

"어디보자."

책을 받아 휘리릭 보기 시작한다. 그리 어려운 내용은 아니었다. 금룡진결보다도 훨씬 쉽게 저장이 되는 걸 보면 등급이 그리 높지는 않은 모양. 때문에 나는 대략 10여분 만에 스킬을 입수할 수 있었다.

"잘 봤어 바이올렛. 고마워."

"엣, 에? 벌써 다 보셨어요?"

"뭐 별로 복잡하지는 않네."

고개를 끄덕이자 바이올렛의 눈이 새침해진다.

"우우. 아버지가 들으면 죽자고 덤비실 거예요."

"그럼 한방에 가는 거지. 아, 장비들은 좀 챙겨줘."

피식하고 웃으며 눈을 감는다. 정해진 술식대로 마나를 움직이고 약속된 언어를 발한다.

"열려라."

나직한 목소리와 함께 보조스킬.

<정령계 이동>

이 발동한다.

웅-!

뭐, 정확히 말하면 열려라. 라는 말은 정확치 않으리라. 정신을 차렸을 때, 어느새 나는 전혀 새로운 장소에 서 있던 것이다. 도착한 곳은 울창한 숲 속이었는데 온갖 생명력이 가득 차 서 있기만 해도 상쾌한 기분이 드는 곳이다.

"하지만 이건 뭐 홀딱 벗겨지다니."

정령계에는 오직 스스로의 육체만 가지고 들어설 수 있다. 물론 아이템을 가지고 들어가는 게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율법에 위반된 행동으로서 정령들에게 적대 의사를 밝힌 것이나 마찬가지 상황이기에 정령계 이동 스킬 자체가 몸만 이동하게 만드는 것. 홀딱 벗은 나체에 머쓱해 하고 있는데 새로운 텍스트가 떠오른다.

<정령계에 들어서셨습니다! 특수한 심법이나 마법을 사용하지 않는 이상 마나를 회복할 수 없습니다!>

떠오르는 텍스트에 고개를 끄덕인다. 정령계에 도착했다고는 해도 주변에는 아무것 도 없지만 굳이 정령을 찾아갈 생각은 하지 않는다. 사실 내가 여기에 온 것은 마나가 회복되지 않는다는 장점(?)때문이지 별로 정령계약 때문은 아니었으니까.

"좋아 짐작대로군. 그렇다면...... 응?"

하지만 미처 마법을 쓰기도 전에 여기저기서 뭔가가 다가오기 시작한다.

[끼이- 끼이-]

[까르르~!]

[움~! 움~!]

나무에서부터 다람쥐 모양의 정령이 생겨나 조심스럽게 다가온다. 근처에 흐르던 냇가에서는 작은 소녀의 모습을 하고 있는 물의 정령이. 땅에서는 두더지 비슷한 이미지의 땅의 정령이 접근하고 불어오는 바람에서는 바람의 정령이.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는 반투명한 새의 형태를 하고 있는 무의 정령이 접근한다.

[냐앙~]

[멍!]

정령들의 모습은 각기 다르다. 정령사들은 바람의 정령을 실프. 물의 정령을 운디네라고 부르고 그에 따라 다 비슷한 모습을 취하고는 하지만 사실 정령은 자연력의 집합체로서 어떤 모습이건 취할 수 있다. 딱히 정해진 모습이 없다는 것이다. 단지 이미지의 문제일 뿐 바람의 정령이 개의 모습을 하거나 불의 정령이 물고기의 모습을 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나저나 이 녀석들 왜 이리 엉겨?"

잠깐 사이에 수십 수백이 넘는 정령들이 접근해 내 몸에 자신들의 몸을 부비기 시작한다. 별로 강한 힘은 아니어서 문제는 없지만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몸에 녀석들이 몸을 문대니 좀 미묘한 기분이다.

"미안하지만 좀 떨어져 줄래?"

촤악.

말과 동시에 원을 그리며 정령들이 거리를 유지한다. 뜻밖에도 말을 매우 잘 듣는다.

"호오......"

신기해하며 천천히 걷기 시작한다. 조금 전만 해도 고요하던 숲이 조금씩 술렁이기 시작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나 때문인가?'

내 친화력은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어서 사실 친화력으로만 치면 정령왕하고도 얼마든지 계약할 수 있는 수준이다. 다만 마법적성이 높다고 궁극마법을 당연히 쓰는 게 아니듯 친화력이 높다고 해도 상위 정령과 계약을 맺고 또 소환을 하려면 소환술을 연마해야 한다.

[오! 찾았다! 굉장한데?]

그때 숲을 헤치고 커다란 늑대가 모습을 드러낸다. 놀랍게도 녀석은 강철로 만들어진 몸에 마찬가지로 금속에 가까운 털을 가진 금속 늑대였다.

"오호. 강철의 정령 같은 거야?"

[무슨 소리야? 그딴 정령은 없어. 난 땅의 정령이라고.]

녀석은 털을 빳빳이 세우며 으르릉거렸지만 그래봐야 살기는 없다.

'하긴 심각한 이유 없이 절세 미녀에게 화낼 수 있는 남자는 흔치 않은 법이지.'

상황이 좀 다르지 않냐고 되물을 수 있겠지만 사실 비슷한 경우다. 정령이나 환수들에게 친화력이란 '영적이 매력'이자 '자기 초월의 근본'이다. 스스로도 안정되어 있는 존재인 정령들이 불평등에 가까운 계약을 맺어 세계에 현계 하는 이유가 바로 이 친화력을 가진 인간들 때문이니까.

'친화력 있는 인간과 이야기하고 접하는 것만으로 즐거움과 보람을 느낀다....... 라고 했었지. 그리고 그 정도는 친화력이 높을수록 강해지고.'

슬쩍 녀석의 힘을 가늠한다. 이 정도면 대충 상급 정령 정도 되겠군. 상급 정령이라는 건 어지간한 마스터에 가까울 정도의 힘을 가진 존재라서 바이올렛의 경우 상급정령을 소환하면 그걸 통제하기 위해 움직이지도 못할 정도로 집중해야 하곤 했었다.

[앗 여기다! 앗 돌멩이 너 언제 왔어?]

그리고 그때 반투명한 몸을 가진 커다란 새가 모습을 드러낸다. 분위기를 보아하니 바람의 상급 정령이다.

[뭐야 너. 내가 먼저 왔으니 저리 가라.]

[호호호. 벌써 둘이나 모여 있었나요?]

공기 중의 수분이 모여들더니 삽시간에 물로 이루어진 여인의 모습으로 변한다. 성숙한 몸매의 여인을 형상화한 그녀는 소용돌이치는 물을 온 몸에 두르고 있는 상태다.

화르륵!

[으하하! 너구나! 완전 멋있는데!]

갑자기 허공이 타오르더니 불타는 몸을 가진 사자가 모습을 드러낸다.

치직! 치지직!

[쳇. 너무 늦었군. 벌써 이렇게나 모여들다니.]

하늘을 날며 온 몸에서 전기를 뿜어대는 족제비와.

[후후후. 뭔가 재미있어 보이는 걸.]

[재미있기는 개뿔. 싸움 나겠다. 싸움 나겠어.]

아무런 모양 없이 그냥 둥그렇게 떠다니는 빛 덩어리와 어둠덩어리도 있다.

"뭐야. 나한테 무슨 냄새라도 나는 거야? 이렇게 몰려들다니."

[냄새랑은 좀 달라. 너는....... 그래. 마치 어둠속에 빛나는 횃불처럼 아무리 멀리 있다 해도 선명하게 감각권에 들어오거든. 모르고 싶어도 모를 수가 없지.]

저벅.

그녀의 말을 듣다 고개를 돌려보니 인간과 완전히 똑같은. 그러니까 전기나 불꽃으로 이루어진 몸이 아니라 그냥 인간 여인 같은 몸을 가진 여성이 보인다. 여기가 정령계가 아니었다면 그냥 인간이라고 생각했을 정도다.

"너는?"

[무의 정령....... 하지만 정말 대단해. 온 몸이 찌릿찌릿할 정도의 친화력이라니......]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새 상급 정령들이 속성별로 와글와글 모여든 상태다. 자세히 보니 같은 속성을 가진 녀석들이 둘에서 최고 다섯까지 겹친 경우도 있어서 수십 체 정령들이 모여든 상태다.

"버글버글하네. 원래 상급 정령이 이렇게 흔한 거야?"

[흔하다니! 상급 정령만 해도 정령계에서 0.001%의 엘리트라고!]

맨 처음 내게 다가왔던 땅의 정령이 으르렁 거리며 강철의 털을 세운다. 이렇게 보니 늑대가 아니라 고슴도치 같다.

"그러고 보니 왜 이렇게 많이들 모여든 거야? 뭘 하려고?"

물론 짐작되는 바가 없는 건 아니지만 일단 그렇게 물어본다. 그리고 그러자 과연 상급 정령들이 서로를 바라보기 시작한다.

[잠깐. 내가 제일 먼저 왔어. 그러니까 계약의 우선권이 나한테 있다는 것쯤은 알지?]

[이런 멍청아. 너는 감각도 없니? 저 녀석 대지 속성 피스가 하나도 없다고.]

[뭐 진짜? 아, 안 돼. 정말이잖아!]

[오. 다행히 불은 있다.]

[으앙 바람이 없어...... 흑흑.]

[빛과 어둠도 있네.]

[후후후. 물도 있는걸.]

[하지만 무속성이 가장 강해.]

수군거리는 녀석들의 말에 새로운 사실을 깨닫는다.

'그렇군. 속성 퍼즐이 꼭 마법에서만 사용하는 건 아니라는 건가.'

속성 퍼즐이 하는 역할은

[마나 추출]

이며 그건 꼭 마법만 활용하는 능력이 아니라 정령술을 쓰는 데에도 필요한 것이다.

[저기. 나랑 계약하자. 내 불꽃이면 어지간한 녀석은 다 태워버릴 수 있어.]

[아냐. 나랑 해 나랑. 응? 나만 있으면 숲에서 그 누구보다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어.]

[그런 이상한 녀석들보다 나랑 계약하자. 사람은 적성에 맞춰 살아야 해. 네 무속성 은 정말 엄청나게 강력해 너라면 숨 쉬는 것처럼 나를 불러낼 수 있을 거야.]

정령 녀석들이 내 옆에 모여들어 쫑알쫑알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너무 많아서 솔직히 정신이 없을 지경. 난 더 이상 시끄러운 걸 버티기도 귀찮아 소리쳤다.

"전부----조용---!!!!!"

<전용스킬. 드래곤 로어(Dragon Roar)가 발동합니다!>

============================ 작품 후기 ============================ 그야말로 인기 폭풍! 만약 친화력 없는 녀석이 정령계로 이동하면 정령들이 그냥 나타나질 않아서 보통의 숲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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