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장. 대륙으로-- >
"가는 길에 조심하고...... 혹시라도 위험하면 내가 준 메테오 스크롤이라도 찢어서....... 으으..... 훌쩍."
"울지 말고."
"하지만....... 우우......"
나는 품에 안긴 에레스티아는 연신 눈물을 쏟으며 가슴에 머리를 비볐다. 절세미녀라고 할 수 있는 그녀가 이러고 있으니 솔직히 나쁜 기분은 아니다.
"너희들도 지금까지 고마웠어. 잊지 못하겠지."
"조심해. 네가 강하기는 하지만 대륙에는 별의 별 놈이 다 있으니까."
"후우. 괜히 씁쓸하네."
"다시 보길 빌게."
"못 보더라도 네 아이를 전력을 다해 지킬 테니까......"
"앗 재수 없는 소리 하지 마! 로안은 신족이니까 반드시 또 볼 수 있어!"
마중에는 레나와 엘리시아를 포함한 다섯 가디언이 다 온 상태다. 다만 결계를 위한 술식이 발동된 상태라서 그녀들이 몸이 희미하게 빛나고 있다.
"챙길 건 다 챙겼어?"
"응. 근데 솔직히 너무 많은......."
"아냐! 긴 세월 써야 하잖아! 괜히 어디에 보관하거나 남기지 말고 다 써! 알았지?"
"하하."
뭔가 묘한 기백까지 느껴지는 그녀의 말에 웃으며 머리를 쓰다듬어준다. 내 손이 쓱쓱 머리칼을 엉켜 버리자 새치름하게 나를 쏘아보는 시선이 너무나도 귀엽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마냥 이러고 있을 수는 없다. 어느새 해가 뜨고 있었다.
"이제 슬슬 시간이야."
"....... 응."
에레스티아는 내 품에서 빠져나와 그대로 일어섰다. 그리고 명령했다.
"결계를 구동하라."
"네 주인님."
네 명이 거의 동시에 대답하더니 그대로 사라져 버린다. 아마도 그녀들의 몸에 에레스티아가 걸어 놓았던 주문이 발동한 것이리라.
고오오오-----!!!
에레스티아의 몸에서부터 상상을 초월하는 마력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마치 거꾸로 올라가는 폭포처럼 뿜어진 그녀의 경이적인 마력은 그대로 하늘 끝까지 올라갔다가 혼돈의 숲에 떨어져 내렸다.
'엄청나군.'
마력량 자체는 충분히 따라할 수 있다. 나 역시 이제는 초월적인 마나를 가진 몸이니까. 그러나 마나를 짜 올려 주문을 만들어내는 센스와 거대한 힘을 끌어내는 초월적인 지능과 실력은 내가 흉내조차 낼 수 없는 종류의 것이다.
'싸운다면...... 진심으로 싸운다면......10초? 15초? 그 사이에 죽겠군.'
확실히 지금 내 전투력은 강력하다. 내 몸에 가해지는 버프는 너무나도 강하고 막대한데다 초월자에 들어서게 되면서 온갖 강화가 가능하게 되었기 때문에 지금의 나는 소드 마스터 급의 적이 10~20명 쯤 덤벼도 다만 시간이 걸릴 뿐 이겨낼 수 있을 정도. 하지만 그런 나조차 그녀의 전투력에 비하면 그야말로 하찮을 뿐이다. 초월자의 경지에 이른 마법능력이라는 건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하는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아니 뭐 정확히 말하자면 나도 초월자이긴 하지만.'
그러나 어디까지나 특수스킬에서의 초월자이기 때문에 싸움으로 초월자를 이길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 바꿔 말하자면 다른 종류의 그 어떤 초월자도 침대 위에서는 날 이길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지만 솔직히 말해 기쁘지 않은 건 어쨌거 나 성행위는 협소한 계통의 능력이기 때문일 것이다. 막말로 상대가 그냥 죽어라! 하고 덤벼들면 곤란하지 않겠는가?
'아마 생산스킬 초월자 같은 녀석도 나랑 비슷한 입장이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거대한 결계에 뒤덮이고 있는 혼돈의 숲을 바라보았다. 물론 결계가 뒤덮이는 장소는 에레스티아의 영역만으로 모든 혼돈의 숲이 뒤덮이는 건 아니다. 하긴 그렇게 하면 다른 드래곤이나 멸망의 마수 카울이 가만히 있지 않으리라.
"그나저나 카울은 어쩔까."
내 캐릭터 클리어를 위해서는 카울을 잡을 필요가 있다. 그러나 카울은 성룡을 뛰어넘는 전투력을 가지고 있어 드래곤들조차 쉽게 볼 수 없는 존재. 물론 웜급 드래곤이자 뛰어난 마법능력을 가지고 있는 에레스티아가 도와준다면 잡을 가능성이 꽤 높으며 종속의 인장에 사로잡힌 에레스티아는 내 부탁을 거절하지 않겠지만.
'위험해. 임신한 에레스티아를 싸우게 할 수는 없지. 게다가 카울이 약했다면. 그러니까 에레스티아보다 훨씬 약했다면 부모님이 살해당했다는 사정을 아는 에레스티아가 놔 둘 리가 없어. 어느 정도 각오가 필요한 강적이라는 뜻이야.'
게다가 캐릭터 클리어에 시간제한이 있는 것도 아니다. 물론 2회차에 스킬과 능력치 를 가지고 가기 위해서는. 그러니까
[전승]
을 위해서는 캐릭터 클리어를 해야 하지만 솔직히 지금 뭐하러 전승을 한단 말인가? 난 내 캐릭터. 그러니까 로안에게 조금의 아쉬움도 없다.
오오오오----!
그때 엘의 레어를 중심으로 오로라가 뿜어지기 시작한다. 느껴지는 것은 무궁의 마력. 이제 앞으로 그녀의 레어는 다른 드래곤이 연신 브레스를 날려도 무너지지 않는 철옹의 성벽이 될 것이다.
"이제 작별의 시간이네."
"그런가."
쓸쓸한 표정의 에레스티아를 가볍게 안아준다. 울음을 참는 듯 살짝살짝 움찔거리던 그녀는 이내 가볍게 몸을 떼더니 나와 입술을 마주쳤다.
웅-그리고 그와 함께 묘한 기운이 몸을 감싼다. 그리고 에레스티아가 입술을 떼자 왼 손등에 용의 얼굴을 형상화한 문양이 새겨지더니 텍스트가 떠올랐다.
<드래곤의 수호자. 드래곤 나이트의 모든 달성 조건을 완료하셨습니다!>
<직업이 무직에서 ->
드래곤 나이트(Dragon Knight)로 변경됩니다!>
<초월적인 존재인 드래곤에게 절대적인 신뢰를 얻음으로서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세례를 받게 됩니다!>
<모든 능력치가 10포인트씩 상승합니다!>
<드래곤을 제외한 모든 용족이 당신을 존중하게 됩니다!>
<전용 스킬. 드래곤로어(Dragon Roar)를 획득합니다!>
<전용 스킬. 전격 흡수를 획득합니다!>
<직업이 확정됨에 따라 새로운 직업을 얻기 위해서는 드래곤의 동의를 구함과 동시에 상당한 페널티를 감수하셔야 합니다!>
거의 EX급 스킬을 초월자까지 올린 정도의 보너스가 붙는다. 다만 스킬과 다른 게 있다면 직업은 하나 뿐으로 중첩이 안 된다는 정도? 게다가 평소랑 약간 다른 점이 있었다.
'왜 스텟 포인트가 안 돌아오지?'
그러나 의문은 금방 풀렸다. 스텟창을 열어 모든 스텟이 110이 되었다는(아니 행운은 원래 99포인트여서 109포인트. 뭐 1포인트 모자라다고 문제 될 건 아닌데 묘하게 거슬리는 스텟이다.)걸 확인했기 때문이다. 환골탈태를 하면서 더 이상 스텟 제한을 받지 않게 되었다는 것.
'이제 무한 스텟 포인트 노가다는 못하겠네.'
그러나 스텟의 중요함도 알기 때문에 실망은 없다. 99스텟만 해도 그렇게 엄청났는데 그 이상이면 어떻겠는가?
"이제 너는 용의 기사로서 그 어떤 누구도 무시할 수 없을 거야. 하긴 그런 게 아니더라도 너를 무시할 존재는 없겠지만 다른 드래곤들이 너에게 함부로 하는 상황은 막을 수 있겠지."
"고마워. 어제 뭘 하나 했더니 이걸 준비했던 거야?"
"응. 용의 기사는 우리도 함부로 만들 수 없거든."
그렇게 말하더니 내 몸을 강하게 껴안는다. 나는 마주 손을 뻗어 작은 새처럼 떨고 있는 그녀를 안았다. 스르륵----그때 에레스티아의 몸이 흐려지기 시작한다. 여기에 나타난 것이 그녀의 본신이 아닌 일종의 염체(念體)였기에 일어나는 형상으로 그녀의 본체는 레어 깊숙한 곳에서 알을 낳기 위한 준비에 들어간 상태다.
"이젠 정말 시간이네."
"응. 꼭...... 꼭 다시 봐야 해?"
울먹이는 그녀를 향해 웃어준다.
"기다릴게."
"...... 응!"
환하게 웃는 그녀의 모습이 이내 흩어져 사라진다. 어느새 나는 숲 속에 홀로 서 있는 상태였다.
"흐음. 길었군. 설마 혼돈의 숲에서 2년 넘게 지내게 될 줄이야."
이제야 혼자가 되었다. 말하자면 스타팅 포인트(?)에서 무려 2년을 지낸 격이니 어마어마한 일이라고 하겠다.
"그나저나 어디로 간다......"
에레스티아에게 받았던 가죽옷을 단단히 죄인 후 몸을 돌려 걷기 시작한다. 이 옷은 에레스티아의 비늘을 가공해 만들었다는 강력한 마법물품으로 언뜻 일반적인 가죽으로 보이지만 검기에도 상처가 나지 않을 정도로 튼튼하며 온갖 마법으로 떡칠이 되어 있는 마법기다. 게다가 디자인도 깔끔하면서도 세련되어 안 그래도 잘 생긴 로안의 얼굴을 잘 살려주고 있다.
"그러고 보면 유저들의 도시가 생겼다고 했지."
네버랜드가 서비스를 시작한지 1년하고도 2개월. 초창기에 네버랜드를 시작한 초창기 유저. 일명 개척자(開拓者)들과 몇 가지 권능(동의하에 다른 유저를 자신의 근처로 불러들일 수 있는 리콜 능력이라든지 죽어도 현실기준 1주일 후면 자동으로 부활할 수 있는 능력이라든지.)을 가지고 있다고 알려진 운영진들은 네버랜드를 시작한 신규유저가 자꾸 자꾸 죽어나간다는 것을 알고 특단의 대처를 하기에 이르렀다. 이제 유저들의 숫자도 제법 늘었으니 유저들만의 도시를 만들기로 한 것이다.
소문을 듣기로 그들은 몬스터가 많던 가단차 지역을 정리한 다음 새로운 워프 포인트 로 만들었다고 한다. 캐쉬 아이템 중 공간을 넘는 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텔레포트 스크롤을 사게 한 후 단숨에 이동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게임을 시작하고 최대한 신속하게 유저들의 도시로 이동하는 것이 죽음=계정삭제라는 가혹한 공식을 가진 네버랜드에서 초보들이 살아남는 방법이었다.
"좋아. 그럼 상황도 파악할 겸 가단차에 가 보기로 하고....... 그 전에 가까운 아프로디테의 신전도 찾아봐야겠군."
레전드 스킬(Legend skill). 조화령(造化靈)과 아프로디테의 신성을 성장시키려면 매번 주어지는 퀘스트를 수행해야 한다. 현재 조화령을 전문가까지 올리려면 네임드 NPC 10명의 호감도를 100까지 올려야 하고 아프로디테의 신성을 성장시키려면 하이 프리스트 급 신관 10명을 만들어야 하니 기회가 될 때마다 수행을 해야 할 것이다.
"광익."
샤앙-!
속삭임과 함께 빛으로 만들어진 한 쌍의 날개가 펼쳐진다. 시야 앞으로 십자선이 떠오르고 나침반과 함께 일종의 계기판이 떠오른다.
<광익스킬로 인해 비행모드로 전환합니다.>
마치 비행기 조종 게임처럼 몸을 움직일 수가 있다. 조작은 그리 어렵지 않아서 쉽게 컨트롤할 수 있었다.
슈우욱--!
순식간에 땅에서 수십 수백 미터나 날아올라 에레스티아의 레어를 둘러싼 오로라의 모습을 바라본다. 그것은 너무나 아름답지만 누구도 부숴낼 수 없는 종류의 것이다.
"언젠가 다시 보길."
그렇게 작별 인사를 하고 한 줄기의 빛이 되어 하늘을 가로지른다.
============================ 작품 후기 ============================ 모습을 바라본다. 그것은 너무나 아름답지만 누구도 부숴낼 수 없는 종류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