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장. 발현-- >
슈웅.
몸에서 힘이 빠지는 느낌이 들었다. 마치 풍선에서 바람이 빠지는 것만 같은 기묘한 감각....... 그리고 그 순간 나는 내가
[평소의 나]
로 돌아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만 물러나야 해. 처음이라 모르나본데 [그 상태]
가 계속해서 이어지지는 않는다고.]그렇다. 이것이 그녀가 언급했던
[그 상태]
라는 것이었다. 다만 다른 게 있다면 민정과 보람은 이 상태가 아까 끝났을 거라고 예상했던데 비해 거의 30분이나 늦게 끝났다는 것 정도?
후르륵.
민정과 보람은 잠시 별 말없이 커피와 코코아를 마셨다. 잠시 할 말을 정리하는 모양이었다.
"후. 뭐 일단 말하자면. 네버랜드를 플레이하고 있지?"
"응. 사실 너 때문에 시작한 거지만."
"엑? 나 때문이라니....... 아, 그 병실에서 말이구나."
내가 네버랜드를 플레이하게 된 계기는 그녀가 TV를 보다 네버랜드에 대해 언급을 했던 것 때문에 관심을 가지면서부터다. 사실 네버랜드의 존재 자체는 그 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별 생각이 없다 마침 하게 된 것이다.
'뭐 지금은 왜 이제야 시작했는지 후회할 지경이지만.'
고개를 끄덕이는데 보람이 말한다.
"오빠는 어느 직업 완성자야?"
"완성자라....... 혹시나 했는데 역시 마스터라는 게 그런 의미였군."
어떤 스킬이 완성자의 경지에 오르면 흔히
[마스터]
라는 칭호가 주어진다. 소드 마스터라던가 오러 마스터라던가 하는 것이 바로 그 예이다.
"뭐 사실 우리끼리 붙인 호칭이라 명확하지는 않아. 솔직히 말하면 아직까지 이유를 모르겠거든. 하지만 분명한 건 네버랜드를 하면서.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 안에서 경지를 올리면 올릴수록 몸이 좋아졌고 스킬이 완성자에 이르자 현실의 육체를 한순간 강화시키는 것 까지 가능해졌어.
"그게 말이 돼?"
"나도 몰라. 하지만 실제로 너도 겪어 봤잖아? 강화된 상태에서의 우리는 어지간한 성인 남성보다도 더 힘이 세고 반사 신경이나 민첩성이 한계까지 높아져. 다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지는 못하더라고. 강화된 상태라 해도 우리가 인간 여성 중에 가장 근력이 센 건 아니니까."
민정의 말에 보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만 대련이나 싸움에는 엄청 도움 되는 건 사실이야. 아까도 봤지만 우리 둘이 남자 열세 명을 쓰러트렸잖아? 우리가 유단자라고는 해도 그냥 여자라서 정면에서 붙으면 4~5명 정도가 한계고."
사실 정확히 말하면 여인의 몸으로 남자들을 제압하는 걸 그냥 여자가 할 수 있을 리 없지만...... 어쨌든 고개를 끄덕인다.
"확실히 나도 마스터가 된 건 사실이긴 하지만....... 그렇다면 우리 같은 인간이 꽤 있겠군?"
"하지만 찾기 어려워. 네버랜드의 캐릭터는 현실의 몸과 전혀 상관없이 생긴데다가 개발사인 언리미티드조차 계정이나 아이디를 관리하지는 못하니 사실상 완성자에 올라선 유저를 알아볼 방법이 없거든."
전혀 모르던 사실에 놀란다.
"개발사가 아이디조차 관리하지 못한다고?"
"응. 아이디를 관리하는 정도가 아니라 운영자들조차 유저와 NPC를 구분할 방법이 없어서 게임 속에서도 자기가 유저라고 밝히지 않으면 알아보기 어려워."
민정의 말에 보람이 말을 잇는다.
"뭐, 유저가 적으면 일일이 알아보면 되지만 비싸고 비싸서 접근성 떨어진다 해도 네버랜드는 세계 유일의 가상현실이잖아? 요새 들어서는 꽤 인기가 좋아서 유저 수가 250만을 넘어섰으니 일일이 확인하기도 어려워. 거기에 완성자의 경지에 오른 유저는 20명도 채 안 될 테고."
예전 알렌의 신전에서 10레벨 시험을 완료했을 때 청명은 내가 유저 중에서 다섯 번째 마스터(Master)라고 말했었다. 사실 스킬이 완성자에 오른다고 해도 청명을 이기기 어려우니 완성자의 수는 그것보다 더 많을 수도 있겠지만.
'아니 잠깐?'
순간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때문에 묻는다.
"왜 완성자가 아니고 마스터지?"
"....... 뭐?"
"너희가 붙였다는 이름말이야. 단순히 스킬이 완성자라서 이런 힘을 쓸 수 있다면 완성자라고 부르는 게 당연한데 마스터라고 부르는 건 이상하지 않아?"
내 지적에 민정과 보람이 멈칫한다. 그리고 그 모습에 나는 그녀들이 모든 진실을 말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뭐 당연하지.'
꽤 친해졌다고는 하지만 그리 깊은 관계는 아니다. 그냥 오다가다 아는 사이라고나 할까? 이런 비현실적인 상황에서 모든 정보를 다 늘어놓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녀들과 좀 더 가까워지려면 내 쪽에서 먼저 솔직해져야 할 것이다.
"아..... 음. 잠깐 오빠. 우린 그냥......."
"화난 건 아냐. 하지만 하나 맞춰볼까? 다른 완성자들은 이런 능력을 못 쓰지?"
웃으며 말하자 보람이 질린다는 듯 말한다.
"우와 귀신이네......."
"간단한 추론이지. 나는 막상 숨기면서 몰아붙여서 미안. 난 다섯 번째야."
가볍게 미끼를 던지자 민정과 보람이 움찔한다. 그리고 이내 민정이 못 말리겠다는 듯 웃었다.
"하우....... 내가졌다. 졌어. 하지만 속이려던 건 아니야. 사실 우리도 확신하지 못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이쯤 되면 확실하지. 몇 번째야?
"세 번째."
"보람이는?"
"네 번째. 하지만 거의 동시였어!"
절대 착각하지 말라는 보람의 말에 이런 능력을 쓰는 게 가능한 건 알렌의 신전에서 10레벨을 클리어한 마스터들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다섯 번째가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으니 이런 능력을 쓸 수 있는 건 다섯 명 정도이리라.
'하지만 현실에서 이런 게 가능하게 만드는 게임이라니........ 대체 네버랜드를 만든 밀리언 녀석들은 뭘 생각한 거지?'
물론 현대에 존재하는
[유품]
들은 하나같이 상상할 수 없는 기적을 행사하고 있다. 미국의 밀리언이 만들어낸 지름 10미터의 거대한 수정문. 통칭 헤븐즈 게이트(Heaven's Gate)는 총 다섯 개 존재하며 아무리 멀리 있어도 다섯 개의 문이 상시 연결되는 물건이다. 때문에 미국은 그중 한 문을 달에 설치함으로서 달에 막대한 물자를 상시 이동시킬 수 있게 되었고....... 결국 수많은 사람들이 상상으로만 떠올렸던 달나라 호텔을 만드는데 성공했다. 당연하지만 달에 헤븐즈 게이트가 설치되면서 미국은 전 세계적인 관광자원을 얻게 됨과 동시에 달에 존재하는 수많은 지하자원을 가져올 수 있게 됨으로서 그야말로 천문학적인 수익을 지속적으로 얻게 되었다. 소문을 들어보면 금성과 화성에도 헤븐즈 게이트를 설치할 계획이라고 하니 그 가치는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할 정도겠지.
그뿐이 아니다. 아프리카의 밀리언이 만들어낸 유품 소잉카(Soyinka)는 1000만 톤에 달하는 물을 빨아들여 원하는 지역에 비를 내릴 수 있는 거대한 먹구름으로 가뭄이 오는 지역에서는 생명의 비를 내리고. 홍수가 난 지역에서는 물을 빨아들임으로서 구제활동을 펼치는 게 가능하다. 소잉카 하나만으로 아프리카는 수없이 많은 사막을 녹지로 바꾸었으며 타국의 가뭄이나 홍수를 막음으로서 정치적 우위에 서는 게 가능하게 되었다.
'하긴 유품이라는 게 상식에 묶이는 물건들이 아니긴 하지.'
유품들의 힘은 어마어마하다. 겨우 단 한 명의 목숨을 대가로 만들어 졌을 뿐이지만 그 유품들은 그야말로 세계 전체에 영향을 줄 정도로 막대한 성능을 가지고 있어서 현대의 그 어떤 문명도 흉내 내거나 그 영역을 침범하는 게 불가능하다.
실제로 중국에서 밀리언을 고문하며 만들었던
[반경 100킬로미터 안의 모든 생명체를 죽이는 지옥의 사자]
. 통칭 수라나찰(修羅羅刹)은 그 어떤 현대병기도 쓰러트리는 게 불가능한 악몽의 화신으로서의 강력함을 세계 전체에 알렸다. 결국 중국 정부조차 녀석들 쓰러트리지 못해 밀리언이 죽었던 위치로부터 반경 100킬로미터는 지금 역시 그 누구도 들어갈 수 없는 죽음의 땅이 되었을 정도니까. 전문가들의 의견에 따르면 핵을 떨어트려도 안 죽을지도 모를 정도라고 했다.
"지훈아?"
"아 미안. 어쨌든 결국 알렌의 신전에서 10레벨을 넘겨야 이런 이상한 힘을 쓸 수 있을 확률이 높다는 말이지? 그럼 다른 마스터는 누가 있어?"
"일단 내가 아는 건 와이번 라이더(Wyvern Rider)인 아크란이 있는데........ 현실에서는 누군지 모르겠어. 개인 정보를 알리지 않은 상태거든."
"하긴."
민정과 보람은 어디까지나 일반인이다. 물론 비싸디 비싼 캡슐을 두 개나 살 수 있는 민정과 보람이 중산층의 평범한 가정일리는 없지만 그렇다 해도 누군가의 뒷조사를 하거나 할 정도는 아니라는 뜻이다. 그럴 이유도 없고.
'하지만 대단하군. 250만 명의 유저 중에서도 5명밖에 없는 마스터가 자매일 수 있다니.'
============================ 작품 후기 ============================ 유품이 가지는 힘은 그야말로 상상초월이라 병기로 만들어지면 그야말로 무시무시한 존재가 되지요. 그런데 막상 병기에 가까운 유품을 만들면 관리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잘 만들지 않습니다. 전투적인 유품을 만드려고 하면 유품을 만드는 밀리언이 그만큼 광기에 차 있어야 하는데 원래 광기란 적아를 가리지 않거든요. 너무 위험해서 만들지 말자고 전 세계가 암묵적으로 동의한 상태입니다. 물론 그래도 몰래몰래 만드는 녀석들이 있기는 합니다만 아직까지는 죄다 실패하고 있다는 설정(.........) 그나저나 오늘로 100회로군요. 혼자 자축 중. 와~~ PS.
이벤트로 연참을 바라시는 모양인데 매일 연재도 지금 간당간당합니다 ㅠㅠ 작가에게 뭘 받을까 생각하지 말고 작가에게 뭘 해주실 수 있을지 생각을...... 으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