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장. 아프로디테의 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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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말해줄래? 신족과 드래곤과 관계해서 태어난 아이는 뭐가 되지?"
그리고 그 말에 에레스티아는 말했다. 아니 소리쳤다.
"신룡(神龍)!"
"신룡?"
"정확히 말하자면 신룡족(神龍族)이지. 용신족(龍神族)이라고도 해. 그야말로 드래곤 중의 드래곤. 신의 특성과 용의 마력을 모두 가지고 있는 궁극의 용족이야! 신룡족은 신마전쟁 때 다 죽어버려서 이제는 없지만......... 그 전까지만 해도 드래곤 로드는 언제나 신룡의 피를 이은자들이 계승했었지. 심지어 그들이 가진 신룡족의 피는 상당히 희미한데도 그랬어."
반짝반짝 거리는 눈으로 재잘대는 에레스티아의 모습에 슬쩍 웃는다. 차갑고 이지적인. 그러면서도 성숙한 아름다움을 뿜어내던 그녀였지만 어째서인지 알고 지내는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더 귀여워지고만 있다. 나에게 기대는 마음이 점점 짙어지기 때문일까?
"흐음. 그럼 우리 아이가 로드가 될 수도 있다는 거야?"
"될 수 있다 정도가 아니라 되. 어쩌면 자기가 싫다고 해도 억지로 시킬지도 모를 정도지. 드래곤은 원래 강력한 종족이지만 그중에서도 신룡족은 특별히 강한 개체니까."
자신의 배에 손을 대며 행복한 표정을 짓는다. 자신의 아이를 느끼는 표정이지만 솔직히 늘씬한 그녀의 허리는 아무런 변화도 없다. 하긴 임신한지 얼마나 되었다고 그게 표시가 나겠는가. 사실 이렇게 행위를 하기가 무섭게 임신 사실을 아는 게 이상한 일이다.
"그럼 우리의 아이는 언제 태어나는 거야?"
"아........"
순간 행복으로 빛나던 에레스티아의 얼굴에 음영이 드리운다. 간신히 미뤄두고 있던 슬픔을 떠올린 것 같다.
"엘?"
"아, 하하하. 하긴 숨겨도 소용없겠지. 드래곤의 알이 부화되기까지는....... 수십 년에서 수백 년은 걸려. 그리고 그 알을 낳는 나 역시, 같은 기간 동안 절대 안전을 취해야 하고."
"절대 안전이라고?"
"봉쇄결계를 펼쳐야 해. 아무도 들어올 수 없게 내 레어를 외부와 격리시키는 거야.
"그런........"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문제다. 물론 드래곤들이 아이를 낳는 과정이 오래 걸릴 것이고 그 과정이 안전해야 한다는 것 정도야 이미 예상하던 바이지만 공간을 격리시키기까지 하다니.
"솔직히 말하면 정확한 기간은 모르겠어. 마지막으로 신룡이 태어났던 것도 너무나 오래 전이니까. 어쩌면....... 정말 오래 걸릴지도 몰라."
그렇게 말하고 마침내 눈물을 글썽이기 시작한다. 드래곤인 그녀에게
[정말 오래]
라 는 건 인간인 나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기간이다. 물론 네버랜드는 어디까지나 게임인데다 현실과 12배나 빨리 시간이 흐르지만 만약 100년 넘게 걸린다고 하면 현실에서도 10년이다.
'아니 이 자식들 대체 네버랜드를 얼마나 오래 운영하려고 호흡을 이렇게나 길게 잡은 거야?'
얼굴도 본 적 없는 밀리언들을 생각하며 투덜거린다. 아니 뭐 이왕 만드는 거면 당연히 그 효과가 영원하리라고 믿었을 것이 당연하긴 하다. 가상현실이라는 게 결국 현대의 과학으로는 따라잡기 어려운 종류의 기술이니 사실상 그 시장성은 아주아주 오래 유지될 테니 말이다.
"가디언들은 어떻게 되는 거야?"
"녀석들은 결계를 구성하는 주축이야. 애초에 그런 계획을 가지고 가디언으로 만든 거니까."
아닌 게 아니라 그녀들의 몸에는 이런저런 마법들이 걸려있는 상태다. 그 뿐이 아니라 그녀의 레어 주변에는 온갖 마법진이 설치되어 있어서 일단 격리가 시작되면 드래곤 열이 와도 무너트리기 어려울 것이다.
"임신을 미룰 수는 없어?"
"어려워........ 미안."
사과한다. 계속해서 미안해하고 있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모습에 나는 그녀가 마음을 굳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에게 있어 해츨링을 벤 것은
[기적 같은 일]
인 것이다. 나를 사랑하게 되면서 그걸 포기했었는데 이렇게 임신하게 되자 걷잡을 수 없이 마음이 흔들린 모양이다.
"흥. 그러니까 결국 지금까지 함께 한 나보다 막 생겨난 자식이 더 중요하단 말이지?"
"앗? 아, 아냐! 그, 그러니까 이건 로안과 나의 아이잖아? 그러니까........ 그러니까........"
"쳇. 울먹이지 마. 마음 약해지게."
투덜거리며 머리를 쓰다듬자 마치 강아지처럼 내게 몸을 기대온다. 호감도가 100이 되버린 후 완벽히 내게 마음을 열어버린 그녀는 이제 완연한 소녀가 되어있다.
"저기 엘. 너에게 문양을 새겨도 될까?"
"훌쩍. 문양?"
"응. 네가 내 거라는 증거를 새기고 싶어. 더불어 비상시에 연락을 하는 것도 가능하고."
환희마라경과 여의색황경이 초월자에 올라 습득한 보조스킬 중 하나인
<종속의 인장>
은 호감도 100에 도달한 여인들을 대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스킬로 어떤 대상을 나에게 완전히
[종속]
시키는 게 가능한 능력으로 초월지경의 다른 보조스킬들이 그러하듯 강력한 효과를 가지고 있다.
일단 어떤 대상에게 종속의 인장을 찍으면 그 대상은 어떤 방식으로도 나에게 저항하는 게 불가능하며 자신이 가진 힘을 나와 공유하게 되며 스스로의 몸에 새겨진 인장을 통해 나에게 메시지를 전하거나 공간과 차원을 넘어 나에게 오는 게 가능해진다.
"응. 너와 연결될 수 있다면 뭐든지."
당연한 말이지만 엘은 순순히 수락했다. 사실 정상적인 사고가 가능한 드래곤이라면 절대 하지 않을 짓이지만 그녀는 이미 호감도 100을 달성해 사랑에 빠진 상태이며 매혹의 마안을 통해 나에게 테이밍 된 상태니
[당장 자살해.]
라거나
[지금 뱃속의 아이를 죽여줘.]
같은 잔혹한 명령이 아닌 이상 절대 거절하지 않는다. 키잉-!
"아흣......."
한쪽 날개만 펼친 것 같은 이미지의 문장이 에레스티아의 왼쪽 허벅지 깊숙한 곳에 새겨진다. 팬티를 벗기지 않는 이상 외부에서 확인이 불가능한 위치였다.
그리고 그와 함께 텍스트가 떠오른다.
<위대한 혈통(드래곤 완전지배)업적을 달성하셨습니다! 업적점수 500점!>
<2회차 부터 드래곤으로 시작하는 게 가능해집니다!>
<3200점의 업적 점수를 획득하셨습니다! 보상을 받기를 원하시면 가까운 신전으로 가 주시길 바랍니다.>
'아, 이게 그 소문의 혈통 업적이라는 거군.'
유저들은 일반적으로 아무 권력이나 세력이 없는 평민들의 몸에 깃들게 되며 그 이상의 존재의 몸에 깃들려면 2회차 이상이어야 한다. 다만 2회차라고 무조건 그게 가능한 건 아니라서 1회차에서 이런저런 조건을 달성하여야만 귀족이나 세력가. 혹은 왕 족의 몸에 깃들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설마 용족의 혈통도 가능할 줄이야.'
"하우우우....."
인장의 느낌을 파악할 겸 허벅지에 손을 대자 몸을 비비 꼬며 색기 어린 신음을 흘리는 에레스티아. 나는 피식 웃으며 그녀를 안았다.
"임신 기념으로 한 번 더 할까?"
"........ 응."
수줍게 웃으며 품에 안겨 들어오는 에레스티아. 그러나 나는 일순간 그녀의 얼굴에 슬픔이 스쳐 지나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그녀 나름대로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것이다.
이별에 대한 마음의 준비를.
"저기 엘. 나는 몇 년이나 살 수 있을까?"
"며, 몇 년이라니. 그야 로안은 인간이니까....... 꺅?"
더듬거리는 그녀의 모습에 꽁. 하고 군밤을 때리자 대번에 멍청한 표정을 짓는다. 깜찍한 모습이다.
"바보야. 난 이제 인간이 아니라 신족이라고 했잖아."
"로안....... 너?"
"걱정하지 마. 너희 드래곤들 만큼일지는 모르겠지만.......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어. 마지막이 아니라고."
"로안....... 흑. 로안......."
"울지 말라니까."
마침내 울음을 터트리는 에레스티아를 품에 안은 채 등을 토닥인다. 그리고 생각한다.
'슬슬 떠날 때가 되었군.'
현실 시간으로 두 달. 네버랜드에서는 2년.
어느덧 혼돈의 숲에서의 나날이 끝나가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아직 레포트 등등 구체적인 수업이 진행되지는 않아서 하루에 한편 어떻게든 올리고 있습니다. 그나저나 드디어 혼돈의 숲을 나설 때가 되는군요. 길다 길어(..........) ============================ 작품 후기 ============================ 아직 레포트 등등 구체적인 수업이 진행되지는 않아서 하루에 한편 어떻게든 올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