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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로 걷는자 캔슬러-31화 (31/283)

< --3장. 수련? 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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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여태 준비 안 하고 뭐해?"

"악! 미안! 깜빡했어!"

"아 정말!"

막 옷을 갈아입고 짐을 챙기는데 어디선가 들어본 목소리가 들린다. 슬쩍 나가보니 현이 형 앞에서 바락바락 소리를 지르고 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녀는 나와 구면이다.

"보람씨?"

"에?"

보람은 난데없는 목소리에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나 전혀 알아보는 표정이 아니다. 얼굴 가득히

'뭐야 이 녀석?'

이라고 쓰여 있는 느낌이다.

"아, 역시 맞은 사람은 발 뻗고 자도 때린 사람은 맘 편히 못 잔다는 옛말은 거짓이었군요. 저는 아직도 종종 발가락이 아픈데 보람씨는 정작 얼굴도 기억을 못 하다니."

"발가락이라니 무슨 소...... 아! 아아! 미안! 와, 나 정말 바보인가 봐....... 사실 그때 너무 금방 헤어져서. 바, 발가락은 괜찮아?"

"보시다시피 잘 걸어 다닙니다."

그렇게 말하며 발을 굴러 보인다. 아닌 게 아니라 내 회복력은 상당히 좋은 편이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교통사고를 당한지 그리 오래 지나지 않은 주제에 이렇게 운동을 하고 다니지는 못했을 것이다.

"뭐야 너희. 아는 사이야?"

"같은 병원에 입원해 있던 사이죠. 그런데 형은 또 어떻게 아는 거예요? 설마하니 동생?"

내 말에 강현 형이 눈살을 찌푸린다.

"설마하니는 뭐냐 설마하니는."

"별로 안 닮아서......."

보람도 그렇고 그 언니라는 민정도 그렇고 상당히 미녀다. 물론 요즘 내가 만나는 절세미녀들에 비하면 뒤처지는 것도 사실이지만 어디까지나 가상의 세계에서 그런 것일 뿐 현실적으로 상당히 눈에 띄는 외모의 소유자로 둘 다 173~175정도 되는 훤칠한 키에 운동으로 단련된 늘씬한 몸을 가지고 있어 더욱 그렇다.

강현 형이 못생기거나 한 건 아니지만 인상 쓰면 무서울 정도로 험악한 주제에 이런 동생들이 있다는 건 그야말로 놀라운 일이라고 하겠다.

"그런데 여기 다니는 거야?"

"아 네 운동을 좀 하느라. 보람씨도 운동 하나요?"

"아래층에서 태권도. 이래봬도 사범이야."

"대단하네요."

태권도 사범이라면 최소 4단 이상이라는 말이다. 남자도 아니고 여자가 4단 이상 따려면 상당한 노력과 시간이 필요했으리라.

여담이지만 이 건물은 일종의 스포츠 센터로 1층은 헬스장. 2층은 태권도장. 3층은 권투 체육관. 4층은 검도관. 5층은 사무실이라고 할 수 있는 곳이다. 돈 많이 들여서 지은 듯 시설이 좋고 트레이너들도 실력이 좋아서 상당히 인기 있는 곳이다.

"뭐야 친한 척 하더니. 이름만 아는 거야?"

"오빠는 빨리 옷이나 갈아입고 나와! 이러다 아빠한테 죽도록 터진다!"

"아, 거 성깔 하고는. 알았어. 금방 나갈게."

강현 형은 입을 삐죽거리며 샤워실로 갔다. 어느새 남은 것은 나와 보람 둘 뿐. 딱히 할 말은 없었기에 꾸벅 고개를 숙인다.

"뭐 어쨌든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다시 만나면 인사라도 하죠."

"어 가게?"

"운동 다 했으니까요. 그럼."

손을 흔들어 인사하고 1층으로 내려온다. 어느새 마음이 급해진다. 어서 집에 가야겠다. 어쩌면 벌써부터 자고 있는 내 옆을 레나나 알리시아가 지키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음?"

그리고 그러다가 또 구면을 발견한다. 강현 형의 동생이자 보람의 언니인 민정이다. 아, 참고로 말하자면 강현 형은 성이 강. 이름이 형이다. 그리고 그 동생들은 강민정. 강보람이고.

'괜히 아는 척 하지 말고 가자.'

민정이 나를 알아보기 전에 몸을 돌려 집으로 향한다. 어서 집에 가서 레나와 알리시아를 만나야 한다. 귀염둥이들. 오늘도 막 울부짖게 해 줘야지.

끼이이익---!

"엉?"

하지만 그 순간 타이어 바퀴가 미끄러지는 소리가 들린다. 깜짝 놀라 돌아보니 승용 차 한 대가 인도를 넘어 길가에 서 있던 민정에게 돌진하고 있었다.

"민정아!!!"

"꺄악 언니!!"

막 건물을 나서고 있던 강현 형과 보람이 비명을 지르는 게 들린다. 그러나 그들과 민정과의 거리는 10미터에 가깝다. 이미 집으로 향하고 있던 나는 20미터 이상 거리가 벌어져 있어서 도저히 막을 틈이 없었다.

퍼억!

차에 치이는 순간 마치 마네킹처럼 민정의 몸이 떠오르는 게 보인다.

"........ 젠장. 또 한동안 운동 못 하겠군."

이를 갈며 손가락을 튕긴다.

따악!

시간이 거꾸로 돌아가기 시작한다.

[차르르륵-----]

나는 가만히 있지만 저절로 내 몸이 뒤로 걸어가 3층까지 올라간다. 그리고 거기에서 정지. 다시 정상적으로 시간이 흐르기 시작한다.

"서두르자."

재빨리 아래층으로 뛰어 내려간다. 조금 전에 봤던 대로 민정이 길가에서 기다리는 게 보인다.

"어? 민정씨군요. 오랜만입니다."

"아 지훈씨. 여기는 무슨 일이세요?"

역시 그녀는 날 기억하고 있다. 다행히 뻘쭘한 상황에 처하지 않고 접근할 수 있는 것이다.

"여기 체육관에 다니거든요. 강현 형하고 보람씨라면 지금 내려오고 있어요. 지금 무슨 약속 있나요?"

"하하. 할아버지께서 일가친척을 다 불러 모으셔서요."

그녀의 말에 쓴웃음을 짓는다. 자기가 불러서 손녀가 죽는 상황인건가.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그 할아버지 나한테 참 감사해야 한다.

끼이이익---!

그리고 당연하게도 승용차가 민정과 나를 향해 달려든다. 건물 쪽에서 비명 소리가 들린다.

"민정아!!!"

"꺄악 언니!!"

"어?"

비명을 지르는 강현 형과 보람. 그러나 승용차가 정면으로 덮쳐드는데도 민정은 그 모습을 멍하니 보고 있을 뿐이다. 어떤 사람이든 돌발 상황에 반응하는 데에는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하기 마련이니까. 그러나 처음부터 이 상황을 기다리고 있던 나는 준비하고 있던 대로 민정의 몸을 안은 후 단번에 근처에 있던 전봇대 뒤로 몸을 날렸다. 그러는 와중 승용차의 운전자 상태를 볼 수 있었다.

'아니 졸음운전? 저 자식은 대낮부터 왜 쳐 자고 있는 거야?'

쾅!

민정이 자리를 피한 덕에 승용차는 혼자 인도를 달리다가 근처에 있던 가로수를 들이받고 멈췄다. 제법 격하게 구른 덕에 나는 민정의 몸을 안은 채로 땅에 쓰러져 있었다.

============================ 작품 후기 ============================ 다음편에서 중요한 깨달음? 이 오겠네요. 아 물론 강해지는 그런 깨달음은 아니고요. 모르던 사실을 깨닫게 되는거요 ㅇㅅㅇ '오, 몸매가 생각보다 좋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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