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뒤로 걷는자 캔슬러-19화 (19/283)

< --2장. 웨어타이거 영웅. 레나.

-- >

"아니 뭘 패배했다는....... 아 설마 성행위 말하는 건가?"

황당해한다. 서로 즐기는 성행위에 지고 이기고가 어디 있단 말인가? 물론 굳이 따지자면 내가 패배 한 게 맞을 것이다. 그녀는 이제야 한번 제대로 오르가즘에 도달했고 중간중간 몇 번이나 날 봐줬(다기에는 너무 가혹했지만)으니까. 심지어 부상을 치료해주기까지 했으니 비겼다고 하기에도 민망한 수준일 것이다.

"흐응~"

그때 누워있던 레나가 내 팔을 끌어당기더니 그대로 내 몸을 껴안는다. 그녀의 부드러운 피부가 내 몸에 스치는 게 느껴진다. 그녀의 눈에는 애정이 가득 차 있다.

"제대로 만족 시켜야 그때부터 상대로 인정해 준다는 건가."

기가 막혔지만 그리 나쁜 기분은 아니다. 아리따운 미소녀가 애정가득 담은 시선으로 바라보는데 싫을 이가 있을 리 없지 않은가? 물론 이게 현실이라면 내 목숨을 위협한 것만으로 그녀에게 오만정이 떨어지겠지만 이곳은 현실이 아니며 죽는다 해도 내가 보는 손해는 금전적인 것과 시간적인 것 밖에 없다. 물론 그것도 크나크긴 하지만 어찌 목숨에 비할쏜가?

'게다가 이런 폭군한테 인정받았다는 기분도 있고.'

슬쩍 그녀를 바라본다. 이제는 자연스럽게 말풍선이 떠오른다.

[이성간파]

레나애정도: 65(애정)흥분도: 15(절정의 여운) 욕구: 욕구가 35(보통)선호 애무 : 가슴애무. 키스.

선호 체위 : 후배위.

생각: 후와아 너무 좋다........ 대단한 걸 주웠어. 많이 많이 즐긴 다음에 친구들한테 자랑해야지.

'어라 생각이 보이네.'

애정도가 높아져서 그런지 단편적인 생각이 텍스트로 표시된다.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는 걸 보니 역시 지능은 인간과 동급이긴 한 것 같다. 실제로 아까 절정에는 말을 하기도 했었고. 지금 말을 않는 건 뭔가 다른 이유가........ 웅.

그때 레나의 모습이 묘하게 변하기 시작한다. 머리 위로 쫑긋 솟아있던 귀가 사라지고 몸 여기저기에 나 있던 털이 모조리 사라지기 시작한다. 심지어 꼬리까지 사라져 버려서 어느새 내 앞에 있는 건 새하얀 피부가 인상적인 노란색 머리의 소녀였다.

"흠흠. 아아. 이걸 깜빡 하고 있었네."

"어? 말 할 수 있는 거야?"

"뭐? 당연하지. 그냥 반수(半獸)상태에서 말을 잘 못할 뿐이야. 인간형으로 돌린다는 게 흥분해서 깜빡 잊고 있었던 거지. 아 그나저나."

단단한 암벽 위에 누워 있는 가슴 위에 자신의 봉긋한 가슴을 겹친 레나가 배시시 웃으며 내 머리칼을 손으로 쓸어낸다.

"너, 정말 좋았어. 체력도 상당하고. 사실 지금까지 나랑 해서 살아남은 녀석은 네가 처음일걸? 내가 발정기 상태에서는 좀 머리에 피가 몰리는 타입이라."

'아니 그럼 지금껏 다 죽여 왔단 말이야?'

순간 기가 막히는 걸 느꼈지만 잠자코 있었다. 많이 죽였다고 해 봤자 다른 몬스터나 NPC일 뿐이다. 물론 그 피해가 나에게까지 미친다면 곤란하겠지만 당장 별 문제는 없(다고하기에는 이미 한번 죽었지만.)지 않겠는가? 이 게임을 얼마 안 해 봤지만 분위기를 볼 때 앞으로 이놈저놈 죽는 거 참 많이 보게 될 것 같은 느낌이니 익숙해지는 게 좋으리라.

"뭐, 나도 나쁘지 않았어. 조금 강제라는 느낌이 들기는 하지만 너 같이 귀여운 애랑  하게 될 줄은 몰랐지."

"뭐? 내가 귀여워?"

레나는 전혀 뜻밖의 소리를 들었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한순간 넋을 놓고 바라볼 뻔했을 정도로 깜찍한 모습이다.

'와 정말 예쁘긴 예쁘군. 만든 녀석의 정성이 느껴진다. 정성이.'

현실에 존재하는 얼굴이라기보다는 마치 애니메이션이나 일러스트 등으로까지 보이는. 잡티하나 없이 깨끗한 얼굴을 가지고 있는 주제에 생기발랄한 기운이 깃들어 있는 레나의 모습은 어지간한 아이돌 가수보다 인상적이다.

쫙 빠져 군살 하나 없는 몸매에 피부는 백옥같이 하얀데다 오밀조밀 자리 잡은 눈코입은 어디 한 군데 흠 잡을 수 없을 정도. 그러면서도 눈이 꽤 크고 표정에 생기가 있어서 보는 것만으로도 눈이 즐거운 미소녀가 바로 그녀였다.

"뭐야. 남자들한테 그런 소리 못 들어봤어?"

"응? 아, 그 녀석들은 날 좀 무서워하는 편이라서."

"........"

하긴. 하고 고개를 끄덕인다. 행위 중에 상대가 자신을 만족시키지 못한다고 목을 잘라 버릴 정도의 폭군을 어느 누가 무서워하지 않겠는가? 어차피 나야 죽으면 시간을 돌리면 된다는 생각에다가 여기서의 죽음이 진짜가 아니라는 것을 아는 유저 특유의 마인드가 더해져 태평한 거지 보통 겁에 질리는 게 정상이리라.

"뭐야. 이해한다는 그 표정은. 기분 나빠."

"후후후. 뭐 찔리는 게 있어서 그런가보지."

"흥. 겁도 없긴. 우리 일족의 장로도 날 그런 시선으로 보지는 못한다고."

하지만 그렇게 말하면서도 화난 기색은 없다. 처음부터 끝까지 보내준 것만으로 호감도가 상당히 오른 느낌이다.

"어쨌든 난 좀 쉴게. 피곤하기도 하고."

"아 잠깐만. 잠은 좋은 데에서 자."

그렇게 말하며 내 팔을 잡더니 그대로 지상까지 달려 올라간다. 푸확!

"윽! 좀 천천히......."

"나도 피곤해서 빨리 가서 잘거야!"

한 손으로 내 팔을 잡고 순식간에 달려 올라간다. 내 키가 그녀보다 큰 만큼 바닥에 다리가 끌려야 할 자세이지만 속도가 빨라 다리가 땅에 닿지 않을 지경. 그리고 그 무지막지한 속도에 구멍을 지키고 있던 커다란 뱀은 깜짝 놀라 옆으로 자리를 피했다.

"어디보자 분명....... 아 여기다."

순식간에 지상으로 올라간 레나는 웬 커다란 나무 하나에 도착해 노크를 하듯 똑똑 두드렸다. 그리고 그러자 나무의 한쪽 면이 일그러지더니 문으로 변하는 게 아닌가?

"내 집 중 하나야. 한동안 여기에서 살자."

"헤에 집 중 하나가 이렇게 넓다니 부자....... 아니 잠깐 뭐라고?"

뭔가 묘한 소리를 들은 것 같아 다시 물어보자 레나가 묘한 표정을 짓는다.

"뭐가?"

"아니. 그, 한동안은 여기서 살자는 말 때문에. 그럼 난 언제 떠나?"

의아해한다. 한동안'은'여기에서 살자는 건 나중에는 다른 곳에서 살자는 이야기니까. 물론 그녀와 있는 게 싫다는 건 아니지만 나 역시 유저인 이상 레벨업이라든지 사냥이라든지 수련 같은 걸 해야 해서 바쁜 몸이다. 기껏 이렇게나 좋은 몸으로 가상현실을 하게 되었으면 몬스터 정도는 쓸고 다녀봐야 하지 않겠는가?

"에? 가긴 어딜 가?"

그러나 레나는 말했다.

"여기서 살아."

"........"

============================ 작품 후기 ============================ 코 꿰이셨습니다. 추천&리플해 주시면 연참 의욕이 늘어납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