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뒤로 걷는자 캔슬러-5화 (5/283)

< --1장. 네버랜드(Never Land).

-- >

"와. 이걸 일시불로 사신 건가요? 엄청 비싸다고 하던데."

네버랜드의 개발사. 언리미티드(Unlimited)에서 파견 나온 직원은 재잘재잘 떠들면서 접속기를 설치했다. 접속기가 꽤 큰 사이즈를 가지고 있기는 했지만 우리 집도 그리 작은 편은 아니어서 공간이 모자라거나 하지는 않았다.

"설명서랑 공략집은 여기 있고요. 최초 플레이시라면 계정이 무료로 주어지지만 두 번째 부터는 따로 구입하셔야 합니다. 그러면 즐거운 게임 되세요!"

직원이 떠나간 후 망설임 없이 접속기에 눕는다. 어차피 현존하는 가상현실 게임이라고는 네버랜드 밖에 없기 때문에 뭔가 따로 설치할 필요는 없다. 접속기를 가동하면 바로 시작할 수 있는 것이다.

"오. 인체공학인가. 이 의자 완전 편하네."

접속기에 누워 설명서를 읽는다. 설치법도 있지만 어차피 직원이 다 설치했기 때문에 접속만 할 줄 알면 된다.

"유의사항으로는....... 네버랜드에 접속하기 전 화장실에 갔다 와 주시고 탈수방지를 위해 수분을 충분히 섭취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과도한 게임은 건강을 해칠 수 있으니......."

팔락팔락 소리를 내며 페이지를 넘긴다. 설명서에는 이런저런 내용이 실려 있다. 굳이 설명서를 안 읽어도 알 수 있는 이야기들에서부터 시스템 고유에 대한 것 까지. 그리고 그런 내용들을 별 생각 없이 읽고 있다 멈칫한다.

"게임 속 시간과 현실의 시간비율은 12대 1입니...... 뭐? 12대 1이라고!?"

경악한다. 12대 일이라면 가상현실에서 24시간을 보내도 현실에서는 고작 2시간 밖에 안 지난다는 소리잖아? 게임 속 시간이 현실보다 빠르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 효율일 줄이야?

"뭐야 그럼 게임을 이미 1년 내내 한 놈은 최소 10년 이상의 인생을 벌었다는 소리잖아?"

시간이 금이라는 현대사회에서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의 이득이다. 이렇게나 비싼데도 못 해서 안달인 이유가 있는 것이다.

"10년 하면 100년 버네. 헐......."

기막혀 하면서도 동조 헬멧을 쓰고 의자에 눕는다. 3천만 원이라는 가격 값을 하는 것인지 결리는 곳 없이 편안하다.

기이잉---접속기를 가동시키자 PC의 부팅음 비슷한 소리가 나더니 점점 졸려오기 시작한다. 온 몸이 나른해지고.......

"어?"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새 신전풍의 공간 안에 도달해 있다. 그야말로 눈을 감았다 떴다는 느낌밖에 없었는데 장소가 변경된 것이다.

"감쪽같네. 접속도 순식간이야."

신기해하며 몇 발자국 걸어본다. 육체의 느낌은 생생하다. 내가 있는 곳이 가상의 세계라는 것을 믿기 힘들 정도였다.

삑~!

그때 묘한 소리와 함께 허공에 푸른색 영상이 떠오른다. 그것은 너무나 익숙한 모습. 주민등록증이다.

[사용자 인식 중........... 확인.

환영합니다 지훈님! 꿈속에서 만나는 환상의 세계. 네버랜드입니다.]

"응 나도 반가워. 근데 여기서 뭘 해야 하지?"

딱히 뭔가 할 만한 물품들이 없어 질문하자 나긋나긋한 목소리가 대답한다.

[다이스 시스템으로 스테이터스를 결정합니다.]

"다이스 시스템?"

의아해 하는 동시에 눈앞에 고풍스러운 디자인의 책상이 내려서고 허공에 푸른색의  판이 떠오른다. 거기에는 능력치가 주르륵 늘어져 있었는데

'생명력 : ??'

라는 식으로 아직 결정되지 않은 상태였다.

또르르.

그리고 그 책상 위로 다섯 개의 주사위가 나타난다. 조금은 큰. 주먹만 한 크기다.

[책상 위에 있는 마법진에 손을 올리시면 주사위가 돌아가 능력치가 결정됩니다. 주사위는 5개가 사용되며 주사위 하나의 숫자는 0에서 9까지입니다.]

즉 주사위가 표시할 수 있는 최고 숫자는 45라는 말이다. 이거 능력치가 완전히 운이잖아? 누군 대박이고 누군 쪽박이냐?

"이럴 거면 계정을 삭제하고 계속 다시 만들어서 능력치 높을 때까지 반복하면 되잖아?"

[현재 시간 1계정의 가격은 151만 4530원입니다.]

"아........"

전혀 생각지 못한 문제에 당황한다. 만약 계정을 삭제하면 그야말로 게임사만 신나는  일이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또그르.

마법진에 살짝 손을 올리자 주사위들이 허공에 떠올랐다 떨어진다. 7. 2. 3. 3. 1이 나왔다. 합은 16이다. 나올 수 있는 능력치가 1에서 45까지니 운이 나쁘다고 하겠다.

딩동~종소리와 함께 스테이터스에 능력치가 기록된다.

[생명력 : 16(노약자의 생명력. 병에 걸리기 쉽다.)]

"아 뭐야 시작부터......."

아니 아무리 그래도 노약자의 생명력이라니!! 가뜩이나 현실에서 많이 다쳐서 병자인데 짜증나는 일이다.

또그르. 그러나 별 수 없던 만큼 주사위를 굴린다. 8. 9. 7. 9. 8이었다. 합 41이다. 아싸 이번에는 높다! 스테이터스를 확인하자 이번에도 딩동~하는 소리와 함께 능력치가 표시된다.

[근력 : 41(역사力士의 근력. 바위를 들어 올릴 수 있다.)]

"다음 것도 40대로 나와라......."

기도하며 주사위를 굴린다. 나온 숫자는 6. 6. 6. 6. 6이다. 놀랍게도 똑같은 숫자가 다섯 개. 합은 당연히도 30이다. 능력치를 확인한다.

[체력 : 30(성인 남성의 체력. 제법 튼튼하다.)]

"헤에 30이 성인 남성의 능력치구나. 20이 성인 여성이나 약한 남자. 그리고 10대가 노약자의 능력치인가?"

하지만 그렇다면 한자리수 대 능력치는 뭘까? 생명력이 0이면 그냥 숨만 헐떡이다 죽기라도 하나? 의아하며 주사위를 굴린다. 놀랍게도 나온 숫자는 0. 0. 0. 0. 0이다. 합은 0. 영. 제로! 빵!

"어, 어억!? 조금 궁금하긴 했지만 보여줄 필요 없어!!!!"

경악하는 순간 허공에 텍스트가 떠오른다.

[잭팟(Jackpot)!! 축하드립니다! 최대 능력치가 주어집니다!]

놀랍게도 0이 다섯 개 들어서자 능력치가 99가 되었다. 같은 수가 5개 연속 나올 확률은 10*10*10*10*10이니 무려 10만분의 1이다. 그런데 그게 딱 터진 것이다.

"생명력은 별로지만 이건 좋은데? 45가 최고인줄 알았는데 이런 시스템이 있었구나."

후후후 하고 웃으며 능력치를 확인한다.

[재생력 : 99(영웅의 회복력. 심장에 구멍이 나도 회복할 수 있다.)]

"오오...... 영웅의 생명력...... 오오"

왠지 있어 보이는 설명이다. 게다가 심장에 구멍이 나도 회복할 수 있다니! 물론 재생력이 99라도 생명력이 17이어버리면 쇼크사로 죽어버린다는 게 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일단 능력치가 높아 나쁠 건 없다.

또그르.

다음은 순발력이다. 합은 31. 역시나 건장한 남성의 순발력. 이라는 설명이 나왔다. 그리고 다음은 지능.

또그르.

주사위가 굴러간다. 첫 번째 숫자는 0. 두 번째 숫자도 0. 세 번째 숫자도 0. 네 번째 숫자도 0이다....... 여기까지 오면 모아니면 도다. 극한의 능력치냐 쫄딱 망하는 능력치이냐? 0이 나오면 99능력치가 돼서 마법사로 달리는 거고 다를 능력치면 정박아가 되는 상황에 조마조마한 심장으로 마지막 주사위를 본다. 그리고 나온 숫자는........ 1이었다.

"으...... 억?"

신음한다. 떠오른 능력치 설명을 본다.

[지능 : 1(벌레 같은 지능. 자살을 추천한다.)]

"......."

그야말로 충격적인 능력치에 망연자실해한다. 무심코 손을 들었다.

따악!

시간이 뒤로 돌아간다. 늘어서있던 주사위들이 주르륵 위로 날아올라가더니 주사위를 던지기 전 상태가 된다.

"헉! 내가 무슨 지...... 아냐. 그러고 보니 계정 값이 150만이라고 했지. 딱 한번만 참자."

한숨 쉰다. 당연하지만 아픈 게 좋은 사람 따위는 없다. 아무리 많이 다쳐봤다 해도 다시 다치면 또 아플 뿐이다. 게다가 난 전의 교통사고도 완치되었다고 볼 수 없다. 아직도 기브스를 잔뜩 하고 다닐 정도니까. 하지만 그때 전혀 예상치 못한 텍스트가 떠오른다.

[알 수 없는 공격으로 경상을 입으셨습니다!]

그리고 금방 새로운 텍스트가 떠올랐다.

[세이프티 존(Safety zone)에 들어와 있기에 상처가 즉시 회복됩니다!]

"어...... 어?"

순간 멈칫한다. 나로서는 당황할 수밖에 없는 사태다.

"어? 어라? 이거 설마.......?"

순간 묘한 가설이 떠올랐기 때문에 지체 없이 소리친다.

"로그아웃!"

순간적으로 띵-하는 느낌과 함께 세상이 어두워진다. 그리고 난 내가 현실에 돌아왔다는 것을 알았다.

"상처는?"

접속기에서 일어나 몸 상태를 살펴보았지만 완전히 멀쩡하다. 어디가 부러지기는커녕 핏방울 하나 떨어지지 않았다.

"징벌이...... 없어?"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징벌이 현실의 내가 아닌 게임 속 캐릭터에게 떨어졌다. 일반적인 온라인 게임 같은 걸 할 때에는 없던 일이다.

"그렇군. 컴퓨터로 게임을 할 때에는 게임캐릭터는 게임캐릭터일 뿐 능력의 주체는 나라는 걸 파악했어. 하지만 가상현실에서는...... 게임 속 아바타를

[나]

라고 인식했구나."

물론 그런 오류를 일으킨 것이 누구인지는 모르겠다. 신 같은 존재일 수도 있고 어떤 시스템일 수도 있다. 혹은 이 세상 자체일 수도 있겠지. 어쨌든 중요한 것은 가상의 세계 속에서는 능력을 부담 없이 쓸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 상당히 많은 것들을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가장 먼저 할 일은........"

중얼거리다 피식. 하고 웃는다.

"뻔하지."

============================ 작품 후기 ============================아직 초반이니 연참 가겠습니다. 뭐 얼마나 가겠냐많은(...........)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