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23화. 참 평화로운 결혼식(?) 下 (외전 完)
낯익은 얼굴에 일리야는 충격에 빠진 것 같았다.
'이, 이게 어떻게 된 거지.'
갈리나가 이런 곳에 있을 리가 없었다.
'갈리나는 예나 지금이나 똑같이 죽었어.'
비록 주헌이 개입했던 회귀 전과는 약간의 차이가 있었지만 말이다.
그래 봐야 괴물이 되기 전에 총으로 쏴 죽였느냐와 결국 괴물이 된 갈리나를 악마 유물로 찢어죽였느냐의 차이일 뿐.
그렇다면 결론은 하나.
일리야는 바로 갈리나를 죽이려고 했다.
"유물 새끼가 수작 부리지 말고 당장 꺼... 커헉!"
그러나 일리야는 바로 단에게 등짝을 얻어맞고 말았다.
"야! 이게 뭐하는 짓이야!"
하지만 단은 일리야를 무시하고 다급히 갈리나를 붙 잡았다. 마치 그녀의 존재를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이.
"갈리나 씨, 단장님의 신부는요? 그쪽은 제가 데려가야."
"아뇨, 제가 그 신부예요, 오늘 식장에 들어가야하는."
"?!"
그 말엔 단도 깜짝 놀랐다. 그도 그럴 법한 게, 갈리나가 이렇게 말했기 때문이다.
"예비 신부들께서는 결국 재보를 다루는데 실패하셔서요! 그래서 제가 대신..."
일리야의 멘탈은 깨지다 못해 이제 회복 불능이 되어가고 있었다.
'단장 이 새끼는 또 무슨 짓을 저지른 거야!'
하지만 그때였다.
쾅!
"저 여자가 서주헌의 신부다!"
"신부를 없애라, 신부를 없애!"
"!"
갑자기 나타난 건 마제스티를 반대하는 테러리스트들이었다. 거기엔 억울하게 반지 유물을 빼앗긴 놈들도 있었다.
"서주헌의 신부부터 제거해라! 마제스티의 결혼을 막아야 한다!"
동시에 갈리나는 좁은 골목길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서 가요! 이러다가 늦겠어요!'
그녀가 바라보는 곳엔 낯익은 얼굴이 있었다.
'아이린하고 설아!'
곧 그녀들을 발견한 단은 갈리나의 의도를 눈치챘다.
'진짜 신부 대신 미끼가 되려고 한 거구나!'
그랬다.
오늘 주헌의 결혼식은 여러모로 많이 방해를 받을 운명이었다.
몇몇 독재국가에서는 마제스티의 존재를 눈엣가시처럼 여기고 있었으니까.
그나마 날짜와 장소, 신부의 정체까지 숨기며 공작을 펼쳐서 이정도로 적이 줄어든 것이리라.
그리고 이대로면 결혼식이 지연될 것은 뻔한 일. 그래서 함께 있던 갈리나가 미끼를 자처한 것일 터.
"아! 신부가 도망간다!"
"쫓아라!"
마침내 갈리나에게 적들의 폭격이 쏟아졌다.
* * *
"나참, 한 시간도 안 남았는데, 신부는 왜 이리 늦어!"
한편, 피로연장에 있던 율리안은 시계를 보며 똥줄을 태우고 있었다.
"얘네들 제 시간에 올 수 있는 거 맞아? 무슨 일 생긴 거 아냐?"
그러나 율리안과 다르게 유재하는 느긋했다.
"야야. 단이 데리러 갔잖아. 설마 무슨 일 있겠냐."
"그럼 일리야하고 갈리나는!"
"그쪽은 뭐... 서로 얼싸안고 우는 중이겠지. 죽었다 살아난 애인을 다시 만나는 걸텐데 늦으면 뭐 어떠냐?"
그랬다.
갈리나는 주헌이 일리야에게 보내는 선물. 얼마 전, 유재하가 쪼르르 달려와 꺼낸 이야기가 그 계기였다.
'갈리나요, 단장님 힘으로도 다시 못 살려내요?'
'뭐? 갈리나를 네가 어떻게 알아? 설마 너...'
'아, 아뇨! 뒷조사 같은 거 안 했어요! 그냥 삐약이가 술자리에서 말해 준 것 뿐인데!'
그러자 주헌은 굉장히 놀란 듯했다.
'진짜? 걔가 스스로 말했어? 너희들한테?'
주헌은 꽤 흐뭇하게 웃었다.
'이제 어느정도 털어냈나 보네.'
곧 주헌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고 훌쩍 사라졌었다.
그렇게 찾아온 것이 갈리나였던 것이다. 그리고 주헌은 자기 대신 일리야 커플을 결혼식장에 들여보내려고 했었고.
왜?
아이린과 설아가 결혼식 전까지 재보를 못 다룰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보니까 그 유물은 아무리 나라도 발동하기 힘들 정도야. 최소 1,2년은 천천히 시간을 들여야 해.'
'그러면...!'
'아마 결혼식 날짜는 못 맞추겠지. 취소하기엔 날짜가 좋아서 좀 아깝고...'
'에이, 그러면 유물들이랑 결혼식장 들어가는 거지 뭐... 커헉!'
어쨌거나 주헌은 쿨하게 올해는 부하에게 선물을 주고, 자신은 다른 해를 노리려 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게 웬걸.
[성공했어요!]
[재보를 다룰 수 있게 되었어요!]
'?!'
뜻밖의 소식에 주헌조차도 드물게 놀랐었다.
'...그 거지같은 것들을 정말 다루었단 말이야?'
아니, 뭐 솔직히 자신이 택한 녀석들다웠지만...
어쨌거나 주헌의 결혼식은 예정대로 진행. 이왕 이렇게 된 거 2부 타임을 잡아 겸사겸사 함께 결혼식을 치르자 싶었다.
결혼기념일이 같은 것도 꽤 재미있을 거 같았으니까.
그러니까 이들이 도착만 하면 됐는데...
"얘들은 왜 이렇게 늦는 거야! 제일 중요한 신부는 언제 오는 거고!"
* * *
왜 늦기는.
"아이린 홀튼이랑 이설아가 저기에 있다!"
아이린과 설아는 이를 갈고 있었다. 단과 갈리나의 미끼 작전 덕분에 겨우 결혼식장 근처까지 오게 되었건만.
"저것들이...!"
물론 파산의 힘을 쓰면 저딴 놈들, 한꺼번에 날려 버릴 수 있었다.
하지만.
"아서요! 오늘은 절대로 쓰면 안돼!"
"윽."
파산은 파멸을 부르는 힘. 보통 때야 아이린이 조절할 수 있다지만, 경조사 때는 또 달라졌다.
흡사 불이 기름을 만난다고 해야 하나.
파산의 힘은 가장 행복하거나 불행한 때와 장소에서 미친듯이 폭주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여기는 내가 처리를..."
설아가 자신의 귀신 유물을 쓰려하자 아이린이 비명을 질렀다.
"그것도 안돼요! 장례식장으로 변한다구요!"
"윽! 그럼 다른 유물을...!"
그럴 때 눈앞에서 적들이 거품을 물며 날아갔다.
빠각!
"!"
[#$*&*#!]
자꾸 방해할래? 할래?
갑자기 날아온 동아줄이 적들에게 몸통박치기를 날렸다. 빨간 리본을 멘 동아줄은 매우 빡친 듯, 놈들을 철썩철썩 후려갈겼다.
"아악! 이 밧줄 놈이!"
"크악!"
그동안 파워업한 동아줄은 묵직해서 맞는 것만으로도 뼈가 부서질 지경이었다.
"커헉, 커허억!"
그리고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서둘러요! 결혼식까지 15분 남았어요!"
"준!"
신부들을 데리러 온 준은 바로 뭔가를 소환했다.
쿠구궁!
그건 바로 유물들이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독보적인 건 거대한 황금 지렁이.
[들어가고 싶으면 축의금 내놔, 새끼들아!]
"아아악! 저놈은 뭐야!"
[밥만 축내고 갈 생각이냐! 앙?]
"크아아악!"
놈은 신나게 적들의 삥을 뜯어냈다.
"빨리 들어가요, 어서!"
그들은 급하게 결혼식장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다급하게 달려온 건 바로 율리안이었다.
"너희 왜 이렇게 늦었어! 단장까지 너희를 찾으러 갈 뻔 했잖아. 곤란하면 진작 우리를 부르지!"
"죄송해요, 금방 올 수 있을거라 생각했는데...!"
"여러 사고가 겹쳐서..."
"됐어. 왔으니까."
"!"
주헌은 웃으면서 다가왔다. 그는 선녀의 날개옷으로 만든 아름다운 드레스를 들고 있었다.
"자, 이거 입으러 가야지? 시간도 없으니 내가 입혀줄게."
"네? 아, 아니 저기...!"
아이린이 어째서인지 설아의 눈치를 보자 그녀가 찰싹 아이린을 쳤다.
"뭘 이제 와서 빼요. 싫으면 콱 내가 입어버린다?"
"......!"
결국 아이린은 부끄러워하며 주헌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설아가 자리로 가자며 돌아서자 율리안이 물었다.
"설아 너 정말 괜찮은 거야?"
"네, 괜찮아요."
'어차피 단장님이랑 결혼을 못 하게 되는 것도 아니고.'
단지 주헌과 가장 먼저 결혼하는 게 자신이 아니라는 사실이 분했을 뿐!
'으, 아까워! 간발의 차였는데!'
둘 다 재보를 발동하게 되었지만, 아이린이 조금 더 빨리 발동하고 말았다.
그래서 아이린이 먼저 결혼식장에 들어가게 된 것이었다.
내기는 내기니까.
게다가 자신은 아직 종종 실패하기도 하니까 좀 더 단련도 할 겸.
'두고 봐, 1년 2년... 아니 몇 달 내로 나도 결혼할 거니까.'
그렇게 세기의 결혼식이 시작되었다.
* * *
"행복하세요!"
"아이린, 정말 예쁘다!"
"멋진 사위를 두셨네요! 홀튼 씨!"
둘의 결혼식은 아주 폭발적이었다.
물론 가장 폭발적일 때는 반지 교환 후, 주헌이 아이린에게 키스할 때였지만.
그리고 조지는 그때 주헌에게 칼을 던지려고 했다.
"젠장, 그래도 아이린이랑 첫 번째로 했으니까 봐준다!"
그리고 결혼 전에 찍지 못한 사진을 한참 찍고 있을 무렵이었다.
"일리야랑 갈리나 못 봤어?"
주헌이 둘을 찾았다.
"저녁 파티하기 전에 2부엔 걔네 세워보려고 했는데, 안 보이네. 결혼식장에 온 건 맞아?"
그러자 당황한 단이 주변을 살폈다.
"네, 분명 결혼식장에서 봤는데..."
"아, 걔네 저쪽에 있어요."
와인을 비우던 유재하가 뒤쪽을 가리켰다.
"하지만 찾아봐야 걔네 오늘 결혼 못할 걸요? 아니 어쩌면 평생 무리일수도..."
"뭐? 왜?"
왜긴 왜야.
유재하가 대답하려는 순간, 멀지않은 곳에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일리야아아!"
"!"
이에 놀란 단원들이 우르르 소리가 들린 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거기엔 갈리나와 쓰러져 있는 일리야가 있었던 것이다.
"일리야아아! 정신차려, 일리야아아!"
갈리나는 거의 죽어버린(?)듯한 일리야를 눈앞에 두고 엉엉 울고 있었다.
주헌은 급히 둘에게 다가갔다.
"뭐야, 무슨 일이야?"
"그, 그게...!"
갈리나는 주헌을 붙잡고 울부짖었다.
"주헌 씨이이! 어쩌죠? 일리야가 절 전혀 만질 수가 없어요!"
"?!"
그랬다.
기껏 감동의 재회를 하면 뭘 하나!
마치 칠석날 견우와 직녀처럼 다시 만날 수 있게 되면 뭘 하나!
갈리나는 성모 마리아 유물로 변한 성(聖)계열 유물. 그리고 일리야는 악마 유물 사용자.
만지려고 해도 거부반응 때문에 만질 수가 없는 것이다!
물론 그는 꿋꿋했다.
"아, 아냐. 기껏 단장이 만나게 해 줬는데 만질 수 있어... 아니 시팔 만질 거야!... 크아악!"
갈리나의 가슴을 만지려했던 일리야는 비명을 지르며 기절했다. 번개에 불타는 듯한 고통은 상상을 초월했다.
이에 경악한 율리안이 주헌을 보았다.
"잠깐만! 갈리나 인간으로 되살린 거 아니었어?"
"아, 아니. 그게..."
주헌은 땀을 삐질 흘렸다.
자신이 한 건 부서진 성모 마리아 유물을 복원시키고, 갈리나의 인격을 부활시킨 것뿐이다.
아카식레코드를 써서 유물에게 자아가 삼켜진다는 리스크만 수정하면 됐으니까.
어쨌든 현재 갈리나의 종족은 유물인 셈.
뭐, 원래는 아코식레코드로 아예 인간의 상태로 만들어주려고 했지만...
[주의. 인과를 해치는 수준의 범위입니다.]
[지구의 과거와 미래가 바뀔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그냥 까마귀의 눈물만 써주었다.
그쯤 되자 단원들은 안타까워했다.
"저거 저거 악마 유물이랑 계약 파기해야 하는 거 아냐?"
"아니 업보가 많아서 계약파기도 힘들걸."
"아, 불쌍한 삐약이. 그럼 이거 완전 희망고문이잖아."
그 말에 주헌은 크흠 기침을 했다.
아니 뭐. 저 정도일 줄은 몰랐지.
"걱정 마. 우리 똥돼지라면 성스러운 유물도 만질 수 있는 물건을 만들 수 있을 거야."
아마도 말이다.
"그럼 오늘 둘의 결혼식은 무리네요. 취소시킬까요?"
클로에의 말에 주헌이 굳이 그럴 것이 있느냐고 했다.
"이왕 이리 된 거 호구 놈이랑 니나 보내지? 둘 다 빨리 하는 게 좋지 않아?"
"?!"
이에 유재하와 율리안 사이에 희비가 갈렸다. 특히 율리안은 기겁을 해서 주헌을 붙잡았다.
"야, 너 이러기야? 지금 이렇게 날치기 결혼을 시키려고?!"
주헌은 대답 대신 히죽거렸다.
"이렇게라도 안 하면 넌 모든 계획을 파투 낼 거잖아."
"아악! 안 돼! 이 결혼 못 해! 누구 허락을 받고!"
"에이, 어쩔 수 없잖아. 조카가 기다리고 있다고."
"아아아악!"
율리안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속만 부글부글 끓었다.
하지만 그때였다.
"글쎄요, 재하랑 니나라면 상황을 보면서 천천히 몇 년 뒤에 해도..."
"뭐? 하지만 니나가..."
"아뇨. 니나 임신 아닌데요."
"?!"
* * *
의사의 확인사살. 이번엔 다른 의미로 희비가 갈렸다.
"애초에 니나의 말을 들어보면 둘이 사고를 쳤을지도 의문이라..."
클로에의 말에 조이도 옆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니나가 빡쳐서 유재하를 걷어찬 건, 그렇게 유혹해도 손을 못 대서인 걸까.
이에 율리안은 환호를 질렀고, 유재하는 부들부들 떨었다.
"그럼 그 임신테스트기는 뭔데!"
그러자 시선을 받은 유물의 총수는 시치미를 뚝 떼며 웃었다.
"글쎄요, 저도 나이를 먹었다보니 니나 방에서 봤다고 착각했나보죠 뭐."
"야!"
유재하는 좌절했고, 율리안은 신께 감사하며 만세를 불렀다.
"태몽은 무슨 개꿈이었어! 좋아, 니들 당장 헤어져! 헤어지라고!"
"씨이?!"
"네가 했다는 것도 개꿈이야! 그러니 당장 헤어져!"
"아냐! 꿈 아니라고!"
유재하는 억울했다.
비록 니나가 덮쳐온 것이었지만 확실했다.
때는 니나의 마음을 확인했던 날.
스토커 살인범인 줄 알았던 니나가 자신을 대신해서 죽을 뻔한 때였다.
'니나야? 알겠는데 너 다쳤어. 퇴원했지만 아직 움직이면 안 돼... 커헉!'
그날 니나는 닥치라는 듯 자신을 기절(?)시켰지. 그리고 그땐 기억이 좀 있다한들, 상식적으로 다친 아이와 했을 것 같진 않아서 꿈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꿈 아니거든!"
뭐, 그 뒤로는 망할 유물 놈들이 침을 흘리며 관음을 해대서 못 하긴 했지만.
[#$**!]
인간, 그동안 복원해준 보답으로 우리가 도와줄게! 어서 해봐!
[#$&*!]
잠깐, 거기가 아니라구! 더 안! 깊숙이! 아니야, 각도가 틀렸어!
[$#*&$*!]
마제스티보다 작다고 신경 쓰지 마! 중요한 건 기술이니까!
"야이#*$#&*!"
이 개 같은 유물들이!
'젠장, 이건 뭐 상궁들 앞에서 거사 치르던 조선시대 왕도 아니고!"
아무튼 이 소식에 눈을 반짝이는 사람이 또 한 명.
'뭐? 재하 선배네가 임신이 아니라고?'
그건 바로 결혼식에 왔던 유재하의 대학 후배 윤민희였다.
카피캣 시절부터 주헌이 나타나기 전까지 유재하에게 붙어 있던 그녀.
그리고 매일 밤 니나와 유재하가 헤어지게 해달라고 빌고 있는 후배가 아니었나.
'좋았어. 이건 아직 나한테도 기회가 있다는 거야!'
어쩌면 율리안과 찰떡궁합이 될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때였다.
단이 한 가지 지적을 했다.
"그런데요. 니나가 임신이 아니라는 거지, 그 임신테스트기가 가짜라는 건 아니잖아요?"
"!"
이에 모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러고 보니...!
'그럼 그건 누구 애란 얘기지?'
그럴 때였다.
"읍!"
"!"
그 소리에 단원들은 놀라 주변을 살폈다. 피로연장에는 냄새 가득한 즉석 바비큐가 들어오고 있었다.
그리고.
"읍!"
모두가 당황한 듯 소리가 난 방향을 보았다.
그건 다름 아닌 아이린!
'서, 설마...!'
결국 아이린은 난처하게 웃었다.
"아 저기... 서랍에 있던 게 없어져서 말 못했는데 그 테스트기 제것..."
단원들은 경악했다. 특히 주헌은 땀을 삐질삐질 흘리고 있었다.
"저기 단장님...?"
"크흠 미안. 나였나 보네."
"단장님!"
"아, 아니 뭐, 잘 됐지. 태몽이 딸 같다며. 딸아이 선물은 고맙게 받으마."
"야!"
단원들은 뒷목을 잡았다. 아니 뭐 주헌과 아이린의 딸이라면 어떻게 태어나도 세기의 미녀가 태어나겠지만...
'잠깐, 그게 문제가 아니야.'
저 딸바보 1순위가 될 주헌에게 딸이 생겨?
"잠...야! 안 돼! 태몽 잘못된 거야. 그거 개꿈이라고!"
"아이린, 안 돼요, 세계평화를 위해서라도 딸만큼은 안 돼!"
하지만 그럴 때였다.
"글쎄요, 과연 딸이 하나뿐일까요?"
준이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태몽에선 잉어가 수두룩했다고 했으면서."
"......?!"
아니나 다를까, 그 순간이었다. 돌연 설아가 입을 틀어막았다.
"읍!"
'!'
이에 단원들의 표정이 변했다. 주헌조차도 드물게 좀 당황한 듯했다.
"서, 설아야?"
그러자 설아는 당황하며 고개를 저었다.
"아, 아뇨! 그럴 리가... 그게 아니라 이건... 읍!"
"?!"
그뿐이 아니었다.
[읍!]
[으읍!]
여성형 유물들까지 반응을 보인 것이다. 이에 주헌은 멘붕에 빠졌고, 율리안은 단장의 멱살을 잡았다.
"야! 너 도대체 그 사이에 무슨 짓을...!"
"아냐, 이거 아냐. 야! 준!"
"잘 됐다. 2부는 단장님이 또 들어가셔야겠네요."
"야!"
준은 쪼르르 도망가며 동아줄을 보았다.
동아줄은 열심히 입덧을 따라했다.
이러면 주헌과 결혼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것일까.
하지만 준은 떽, 가볍게 나무라며 동아줄을 집어들었다.
"넌 안 돼."
그러나 동아줄은 주헌이 좋은지 낑낑거리며 입덧을 시도했다. 그러자 준은 쓰게 웃었다.
'역시 어쩔 수 없나.'
준은 요람의 핵을 꺼내들었다. 과거 묵시 유물들에게 파괴당했던 요람(탄생).
자신은 그저 파괴하는 능력 밖에 없지만, 이 녀석은 달랐다.
마제스티와 함께함으로써 유물을 생산할 수 있는 엄청난 녀석. 모든 마제스티들이 탐냈던 재보.
그리고 탄생은 육체를 파괴당하고 나서도 요람의 본능인지, 끌림인지, 마제스티의 주위를 졸졸 따라다녔다.
마치 귀신처럼, 투명인간처럼.
그리고 수백 년, 수천 년을.
마제스티는 녀석의 존재를 깨닫지도 못하는데 말이다.
하지만.
'버려진 아이인가?'
떠돌던 녀석의 자아는 우연히 죽은 인간에게 깃들었고, 드디어 마제스티가 눈치챌 수 있었다.
하지만 하필이면 그게 자신이 증오하며 떠난 전대 마제스티.
'저런, 불쌍하게도 말을 못하는가 보구나.'
'폐하.'
'이 아이는 내가 성에 데려가 키우겠다.'
녀석은 전대의 딸로서 키워졌다.
하지만 전대 마제스티는 죽기 직전에서야 깨달았겠지.
그 아이가 바로 자신이 원하던 요람(탄생)이었음을.
'뭐, 핵은 내가 가지고 있어서 그래 봐야 요람의 힘은 못 썼겠지만.'
그건 그냥 자아일 뿐.
그리고.
[#$*!]
왜 안 되지, 안 되지!
준은 입덧이 안 나와서 시무룩해하는 동아줄을 보며 웃었다. 뭐 입도 없는 밧줄 주제에 뭔 입덧을 할 수 있겠느냐마는.
아니 애초에 그 의미를 알긴 알까?
'할 수 없지.'
솔직한 심정으론, 이 아이가 마제스티와 가까워지지 않길 바라지만.
준은 탄생의 핵을 동아줄에게 몰래 심어주었다.
'네 힘이니 이제 다시 돌려주마.'
준이 동아줄을 톡 건드리자 작은 빛이 스며들어갔다.
과거엔 천한 신분으로 유물들의 손에 비참하게 처형당했지만, 이번 생에는 부디 주인을 지키며 끝까지 함께하기를.
'하여간 밧줄이 뭐야, 밧줄이.'
그러나 동아줄은 핵의 힘을 눈치채지 못한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럴 때 주헌의 흉흉한 지배력이 뿜어져 나왔다.
"이것들이 적당히 안 해?!"
[꺄악!]
[꺄아악!]
여성형 유물들은 비명을 지르면서 날아갔다.
[왕이시여! 안됩니다! 뱃속에 왕의 아이가...!]
[소녀에게 이러시면 커헉!]
그리고.
"저... 대표님? 2부 준비 끝났다는데 이 상황은 도대체..."
직원과 함께 온 에드워드는 필사적으로 입덧을 하는 인간형 유물들을 보며 난처해했다.
유물들은 인간들의 문화를 완벽히(?) 숙지한 건지, 입에서 불을 뿜었다.
[캬아아악! 태어나! 태어난다고!]
[왕이시여! 왕의 아이가아아아! 커허어억!]
[입덧, 입덧이야아아! 당장 결혼해야만 해!]
[무슨 소리야, 내가아아아! 내가 마제스티의 반려가아아아!]
물론 저게 입덧인지, 사약을 먹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저기, 저 중에서 신부는 어느 분으로 모시면 될지..."
"모시긴 뭘 모셔! 죄다 불에 안 쳐넣어?!"
주헌이 목에 핏대를 세웠다.
화창한 하늘만큼 참 평화로운 결혼식 날이었다.
-외전 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