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굴왕-408화 (408/409)

외전 22화. 참 평화로운 결혼식(?) 上

"이상하다."

율리안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 그의 표정이 이상하다고 느낀 건지, 단이 물었다.

"왜 그래요? 무슨 일인데?"

손님들에게 직접 음식을 서빙하던 단은 율리안에게 다가왔다.

"오늘 메뉴는 입맛에 안 맞아?"

이곳은 단이 운영하고 있는 스테이크 레스토랑이었다. 정육점을 확장해서 차린 레스토랑으로, 호텔 쉐프 뺨치는 요리 실력과 좋은 가격, 독특하고 예쁜 인테리어까지.

물론 스테이크뿐만 아니라 가정식도 맛볼 수 있어 율리안이 퇴근하고 종종 찾는 곳이었다.

뭐, 연인하고 와야 할 것 같은 분위기의 장소에서 늘 혼밥을 하는 그였지만...

"부단장님?"

"아, 아니. 음식이야 언제나 훌륭하지. 그게 아니라 꿈자리가 영 이상해서."

"왜, 악몽이라도 꿨어요?"

아니 차라리 악몽이면 나았을지도 모른다.

"좀 이상한 꿈이었어. 무지갯빛 형형색색의 큰 잉어들이 어디론가 가는 꿈이었는데..."

곧 율리안은 자신이 꿈에서 본 내용을 말해주었다. 평소라면 꿈 같은 거에 관심을 둘 그가 아니었지만...

'유물 중엔 꿈하고 연관된 유물도 있으니까.'

혹시 이 근방에서 정체불명의 유물이 나오는 건 아닐까, 우려가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율리안의 이야기를 전부 들은 단은 뜻밖에도 껄껄 웃는 것이었다.

"그거 태몽인데?"

"뭐?"

"완전히 태몽이라고요. 우리 수아 때도 비슷한 꿈을 꿨었는데."

동시에 율리안의 얼굴이 굳었다.

* * *

태몽.

잘은 모르지만 동양권에 있는 잉태와 관련된 꿈이라고 한다.

하지만 왜?

왜 자신이 이런 꿈을 꾼 거지?

그렇게 황당해하는 율리안에게 단은 이렇게 물었다.

"부단장님, 혹시 예비 신부님의 꿈을 꿔준 거 아닌가?"

틀림없이 몰리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리라. 주헌이 자신의 옛 약혼녀, 몰리와 만남을 주선해주고자 했으니까.

하지만 자신들의 태몽일리는 없었다.

왜?

'몰리하고는 이제 딱 한 번 만났다고!'

주헌이 주선해준 덕분이었다. 주헌은 원한다면 남은 까마귀의 눈물을 써주겠다고 했지만 율리안이 됐다고 했다.

몰리를 잃은 건 알고 보니 사기왕 탓...이었지만, 결국 그것도 자신 탓이라고 생각하는 그는 절대 유물에 의지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으니까.

뭐, 망할 단장 놈이 큐피트가 되어 주겠다고 해서 멱살을 잡아 말렸지만...

'그래도 첫만남 치곤 괜찮았지.'

전생을 기억할 리 없지만, 그녀는 율리안에게 묘한 끌림을 느끼는 것 같았고.

아무튼 자신들의 태몽은 아니라는 의미였다. 그리고 그쯤 되자 당황한 단은 또르륵 눈알을 굴렸다.

그건 당연했다.

"저기, 그럼 혹시 그거..."

"응?"

"니나하고 재하인 건..."

"뭐? 그게 무슨 소리야?"

아니 율리안이 꿔줄 사람이 그 녀석들밖에 더 있나. 뭐 꼭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둘다 혈기왕성한 나이니까.

"그러니까 혹시 그 사이에 둘이 사고를 쳤다거나..."

율리안의 표정이 볼만했다.

* * *

"유재하, 어딨어! 당장 나와!"

자고 있던 유재하는 갑작스러운 고함에 몸을 뒤척였다. 하지만 고함소리는 계속됐다.

"안에 있는 거 다 알아! 물어볼 게 있으니까 잠깐 나와보라고!"

곧 유재하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역시 이 목소리는 공명이었다.

'뭐야, 저 자식은 왜 여기에 왔대!'

동시에 그는 다급하게 방문을 잠그려고 했다.

그도 그럴 법한 게, 지금 자신의 옆에는 곤히 자고 있는 니나가...!

하지만.

콰지지지직!

"으아아악!"

문은 번개에 사정없이 동강 나버렸다. 그리고 잿더미가 된 방문으로 걸어 들어온 것은 역시나 율리안.

당황한 유재하는 재빨리 이불로 니나를 덮으며 비명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이씨, 야! 이게 뭐하는 짓이야, 이 망할 자식아!"

그러나 율리안은 방안의 광경에 눈을 부릅떴다.

"뭐하는 짓?"

그건 오히려 율리안이 묻고 싶은 말이었다.

"일단 그 이불, 그거부터 치워보시지."

"?!"

율리안의 말에 유재하는 덜덜 떨었다. 이불을 치우는 건 상관없었지만, 저건 자신을 못 잡아먹어 안달 난 시스콤이었다.

'니나랑 같이 있었다는 것만으로 날 죽이려고 할 텐데.'

뭐, 사실 시스콤이라는 이유보다는 자신과 원수라는 이유가 더 크긴 하지만.

"여, 여기에 있는 건 그냥 유물이에요, 아무것도 없어요."

하지만 말을 둘러대기가 무섭게 이불 안에서 뭔가가 꼬물거리며 나왔다.

심지어 거의 알몸으로 보이는 니나가!

"?!"

이에 창백해진 유재하는 비명을 질렀고, 율리안의 눈에서 불꽃이 튀겼다.

"이 자식이 감히 결혼도 안한 처자한테 손을 대?!"

"아악! 아냐! 오해야! 오해라고! 이건 그냥 니나 잠버릇이야!"

잠버릇은 얼어 죽을!

"사기꾼이라는 새끼가 그딴 초딩도 안 믿을 거짓말을 하냐!"

"캬으아악!"

콰과광!

유재하는 날아오는 번개 폭격에 비명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방이 엉망이 되는 건 둘째치더라도, 진짜 율리안한테 살해당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공명아, 진짜 아니야! 아니라고!"

"아니긴 뭐가 아니야!"

율리안은 눈을 부릅떴다. 물론 그도 둘의 일에 깊게 관여하지 않으려고 했다.

주헌도 뭐라고 하고, 어차피 니나도 성인이니 자신이 관여할 바가 아니라고 여겼으니까.

그냥 빨리 헤어지라고 매일 밤 저주 유물에 못을 박아대고 있을 뿐.

하지만 만약 이들이 정말 사고를 쳤다면 이야기는 다른 법이다!

"솔직히 말해! 너희 피임 했어, 안 했어?!"

"콜, 콜록! 뭐, 뭐?!"

유재하는 정말 당황스러워했다. 도대체 이 자식이 뭘 묻는 건지!

하지만 율리안이 이러는 이유는 분명 있었다.

'요즘 니나가 피곤해 보이던데 괜찮나?'

'구토까지 하던데. 어디 안 좋은 거 아니야?'

'니나, 정 그러면 한번 약국에서 키트를 사서 테스트해봐. 쉽게 구할 수 있을 거야.'

그랬다. 태몽 이야기 직후, 율리안은 평소보다 더 깊게 니나를 살폈다. 그리고 그간 그가 들었던 모든 말들은 임신 초기증상!

신경이 안 쓰일 수가 있겠는가!

그래서 율리안은 이 새끼를 찾아온 것이었다.

이럴 땐 직접 묻는 게 제일 빠르니까!

하지만 유재하는 울부짖었다.

"야씨, 야! 나 진짜 억울해!"

"뭐?! 이게 억울하긴 뭐가 억울해!"

"당연히 억울하지! 하지도 못했는데!"

"?!"

율리안은 충격을 받은 듯했다.

"뭐, 뭐? 하지만 니들 만난 지 꽤... 반년은 됐잖아? 너라면 분명..."

"닥쳐! 뽀뽀한 게 전부야! 못... 아니 안 했다고! 새끼야!"

어째서인지 서러워하는 유재하의 모습에 율리안은 크흠 기침을 했다.

뭐, 무슨 사정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화, 확실한 거지?"

"그래! 난 결백해. 손끝 하나 안 댔다고! 무죄예요!"

하지만.

퍽!

"큭!"

유재하는 졸지에 날아온 니나에게 걷어차였다. 그리고 돌아서는 니나는 좀 화가 난 것 같았다.

덕분에 유재하가 어리둥절해 할 때,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바보."

"?!"

자신을 향해 혀를 차는 건 다름 아닌 준.

그리고 준은 뭔가를 흔들어보였다.

그건 핑크색의 낯선 기기였다.

"니나가 이거 가지고 있던데요?"

그걸 본 유재하는 멘붕에 빠졌다.

왜냐하면 그건 분명 세상이 임신테스트기라고 부르는 그것이었기 때문이다.

"아니 잠깐, 그걸 왜 니가 가지고 있는데?!"

"왜긴요. 제가 성의 청소당번인 거 잊었어요? 쓰레기통 비우다가 봤죠."

"......?!"

하지만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그 테스트기에 선명하게 그려져 있는 두 줄... 잠깐? 두 줄?!

"임신?!"

유재하는 새하얗게 질려서 입을 뻐금거렸다. 율리안은 눈을 부릅뜨고 유재하를 바라보았다.

방금 전, 니나의 반응도 그렇고.

"어찌된 거야, 너. 못 했다며!"

"서, 설마 그럼 그거 꿈이 아니었..."

율리안의 눈에서 살인 빔이 뿜어진 건 순식간이었다.

* * *

"뭐? 호구가 사고를 쳤다고?"

예식장으로 갈 준비를 하는 주헌은 굉장히 흥미로워했다.

오늘은 드디어 모두가 고대하고 고대하던 주헌의 결혼식 날이었다.

결혼식이 열리는 건 오후 2시. 주헌의 결혼식은 그 어떤 셀러브리티보다도 주목을 받고 있었다.

그리고 아침부터 부지런히 준비하고 있는 주헌은 턱시도를 입고 머리손질을 하는 중이었다.

그런데 이 와중에 들려온 유재하의 소식이라니.

"이거 결혼식장에 우리가 아니라 걔네를 먼저 들여보내야겠는데? 괜찮냐? 몇 개월이래? 결혼하기 전에 태어나는 거 아니야?"

"야! 지금 농담할 상황 아니거든!"

율리안은 그저 가슴을 퍽퍽 쳤다.

하지만 그럴 때였다.

"형님! 걱정하지 마세요!"

"?!"

역시나 예복을 입고 멋을 부린 유재하가 넙죽 엎드렸다.

"제, 제가 니나는 책임지겠습니다! 그러니 혀, 형님은 걱정 마시고...!"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율리안의 눈에서 불꽃이 튀겼다.

"누가 니 형님이야! 당장 안 꺼져?!"

"캬으악!"

"잘 들어, 네가 오늘 단장 결혼식 사회자니까 참는 거거든?! 그러니까 지금 당장 꺼져. 죽여버리기 전에!"

그래서 차마 통구이로는 못 만들겠는지, 해태를 불러냈다.

"아아아악! 살려줘!"

결국 해태에게 물려간 유재하는 발코니 밖으로 내던져지고 말았다.

"캬아악!"

이어서 시원하게 울려퍼지는 물소리. 틀림없이 밖의 호수에 빠진 것이리라.

그러나 율리안은 씩씩거렸다.

"하여간 저놈은 나하고 도대체 무슨 원수를 져서!"

그러자 주헌은 박장대소를 터트렸다.

"뭘 그래. 이왕 이렇게 된 거 호구한테 바톤 터치할까? 내가 사회자할게."

"안 닥쳐?!"

이 자식이라면 진짜로 지금 자신의 웨딩 플랜을 고스란히 유재하에게 넘겨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 정도야 본인의 재미를 위해서라면 개의치 않아하는 그였으니까.

"아무튼 걔 도와줄 생각 하지 마. 반칙이니까."

"왜 그렇게 싫어해? 모르는 놈도 아닌데."

"모르는 놈이 아니니까 문제지!"

알아도 너무 잘 아는 게 흠이었다.

'그러고 보니 처음 입단할 때부터 원수였지.'

도굴단에 세 번째로 들어온 놈. 하지만 유재하는 원래 도굴단에 들어올 생각이 없었다.

'아 구질구질하다고 전해. 나 같은 초 엘리트가 왜 그딴 곳에 들어가야 하나 몰라.'

그렇게 놈은 주헌 일행을 쌩까고 해외로 도주했다. 그를 다시 잡아들인 것은 율리안의 공이 컸지만.

어떻게?

'뭐? 중고품 사기를 당했다고?'

'그래. 인터넷 옥션에서.'

'어, 얼마나 사기를 당하셨는데요?'

그 질문에 율리안은 이를 갈면서 손바닥을 펼쳤었지. 그 모습에 단원들은 깜짝 놀랐다.

'세상에 30만원이나?'

'아니.'

'그럼 설마 300만원?!'

'아니. 3만원.'

'...'

'이거 소액사기로 고소해야겠어.'

'야, 그 정도면 고소하려 해도 변호사 선임비가 더 들겠다.'

'뭐, 그냥 똥 밟았다고 치고...'

그 말에 율리안은 좀 빡친 듯 웃었었지. 범인에게 정중하게 말했더니 도리어 뻐큐 무더기를 받았기 때문일까.

'지금 누구한테 그런 소리를 하는 거야? 좀 귀찮아도 상관없거든?'

결국 소액사기범 유재하는 하필 상대를 만나도 변호사를 만나, 털려도 정말 제대로 털렸다.

고작 3만원 때문에 계좌 정지당하고 차명계좌까지 몽땅 탈탈탈탈 테러당하고 나서야 싹싹 빌러 왔었던가.

그렇게 사기꾼을 잡고나니 유재하 놈이었고, 결국 합의조건으로 도굴단에 들어오게 된 것이다.

'이 독한 새끼. 두고 보자.'

아무튼 시작부터 그랬으니 서로에게 앙심이 있을 수밖에.

"솔직히 너라도 그 자식을 주원이 남편으로 삼고 싶은 건 아니잖아."

"그래서 니 새끼가 가져가라고 하는 거잖아."

이 자식이?!

"뭐, 여자애 태몽인 것 같으니 조카 녀석에게 줄 인형이나 잔뜩 사두지 뭐. 하하하."

"야!"

그런데 그럴 때였다.

"이상하다. 니나하고 재하 오빠는 아닌 것 같은데."

"뭐?"

그들에게 온 것은 주헌의 쌍둥이 동생 조이였다. 굉장히 예쁘게 꾸민 그녀는 눈이 부실 정도였다.

"그 태몽 정말 니나게 맞아요?"

뭔가 알고 있는 걸까. 그리고 그녀의 말에 다들 헛웃음을 흘렸다.

"그럼 달리 율리안이 꿔줄 상대가 누가 있겠어."

"흐음."

조이는 대답 대신 주헌을 보았다.

"뭐야, 뭘 그리 빤히 바라봐?"

"아니. 아무것도 아냐. 그러고 보니 오빠. 신부는?"

"글쎄, 일리야가 데리러 갔는데. 좀 늦네."

주헌은 시계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비슷한 시간.

"젠장, 늦었어!"

일리야는 다급하게 단과 악마를 타고 신부를 데리러 가고 있었다.

오늘은 전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고 있는 마제스티의 결혼식.

마제스티를 지킬 반려가 나타날 결혼식이기도 하기 때문에 평소보다 경비가 삼엄했다.

굳이 신부를 일리야와 단이 데리러 가는 것도 혹시 모를 적 세력의 공격을 대비한 것이고.

원래는 주헌이 직접 데리러 가려고 했지만, 단원들이 맡겨달라고 했다.

그리고 이때였다.

"아, 저기 있다!"

그들은 드레스를 입은 아름다운 신부를 발견하고 급하게 내려갔다.

그런데 그때였다.

"엥?"

그들은 신부의 얼굴을 확인하고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특히 일리야가.

"갈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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