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굴왕-407화 (407/409)

외전 21화. 취중뒷담 (악마가 내려왔다) 結

"젠장...! 이것들이!"

주헌은 이를 갈고 있었다.

아니, 기껏 병원을 탈탈탈 털며 치유 유물을 구해온 건 좋은데...!

"왜 치료해야 할 놈이 하나 더 늘어버린 거야!"

주헌은 갈리나와 일리야에게 번갈아가며 치유 유물을 사용하고 있었다.

'젠장, B급이라 용량이 모자를 텐데.'

그랬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돌아와 보니 갈리나까지 피를 흘리고 있었던 것이다.

정확히는 배가 뚫려 있었다. 아마 근원지는 자궁이겠지.

그리고 그 안에서 뭔가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뭐, 생각대로라면 이게 그 메시아 유물이겠지만...

'뭐야, 이건...!'

빌어먹게도 이건 정상적인 사람의 형태가 아니었다.

유물이라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메시아가 아닌 다른 괴물이기 때문일까.

하지만 이건 확실했다.

'이건 세상을 바꿔버릴 유물이야.'

몹시 강력한 유물이었다. 보통의 신급 유물이 아니었다.

믿음, 인지도의 정도에 따라 유물의 힘도 추가로 증가한다고 하나.

괜히 최대의 종교 계열 유물이 아니었다.

비록 유럽에서 시작했지만, 메시아의 탄생을 기원 전·후를 나눌 정도로 인간사에 큰 획을 그었으니까.

'이건 인간 전체를 집어 삼킬 놈이다.'

하지만 메시아 같은 게 아니었다.

"이 벌레 놈...!"

그래서 주헌은 놈을 없애야 한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크윽!"

[손 치워라, 건방진 인간!]

"이 자식이...!"

팔을 물린 주헌은 이를 갈면서 지배력을 쏟아부었다.

하지만.

[그깟 실력으로는 날 자폭시킬 수 없다!]

놈은 도리어 주헌의 팔을 잘라냈다.

"크윽!"

주헌은 끔찍한 고통에 신음을 삼켰다.

엄청난 피가 뿜어져 나왔다. 그럼에도 치유 유물의 발동은 멈추지 않았다.

자신이 발동을 멈추는 순간, 이 둘은 바로 숨이 끊어질 테니까.

[자, 다음은 네놈의 머리통...!]

그 순간이었다.

번쩍!

주헌의 눈이 사납게 빨갛게 번들거리면서 유물이 비명을 질렀다.

[이놈이... 잠깐... 커헉!]

주헌의 지배력이 그제야 말을 들은 것이다. 유물은 파괴당하며 괴로워했다.

[아아악! 이 인간 놈이!]

"이 개 같은 새끼가!"

콰지지직! 주헌은 마침내 흉흉한 표정으로 유물을 박살 내버렸다.

그와 함께 사제들이 들이닥쳤다.

"이 자식이!"

그들은 들어오자마자 주헌을 쓰러트렸다. 하지만 곧 그가 박살 낸 유물을 보고 기겁 했다.

"젠장, 메시아 유물이 파괴되다니!"

다 자라지 못한 상태에서 태어났기 때문일까. 아니면 훗날 개화할 마제스티의 잠재능력 탓일까.

완전히 죽은 건 아니었지만, 파괴의 정도가 굉장히 심했다.

"젠장, 복원사 불러!"

"네?! 이런 걸 복원시킬 수 있는 복원사는 세상에 없습니다...!"

세상에는 아직 천재 복원사 유재하가 나타나기 전.

그러자 주교가 급하게 외쳤다.

"그럼 갈리나, 갈리나는!"

"아직 숨이 붙어 있습니다!"

"좋아, 그럼 갈리나도 데리고 간다. 한번 더 메시아를 잉태하지 못하라는 법 있어?!"

"대충 배 닫고 데려가!"

"그게 아니더라도 성모 유물이면 SS급 유물이다!"

"저 두 놈은 여기서 사살해라!"

그들은 재빨리 피투성이 갈리나를 끌고 가려고 했다.

머리에 총이 겨누어진 주헌은 급하게 몸부림을 쳤지만 힘들었다.

'젠장, 이제 남은 유물도 없는데...!'

그런데 이때였다.

"그 손... 안 떼?"

"!"

쓰러져 있던 일리야가 놈들의 발을 콱 붙잡았다.

"젠장. 다 죽어가는 놈이!"

그들은 일리야의 몸과 머리에 총을 쏘았다.

탕탕!

"크윽!"

그러나 일리야는 죽지 않고 도리어 놈들의 발을 부러트렸다.

우드득!

"아아악!"

이에 주헌은 깜짝 놀랐다. 저 괴력과 생명력은 분명 유물의 힘.

하지만 곧 뭔가를 눈치챈 주헌은 욕설을 뱉었다.

"야! 너 미쳤어? 건드릴 게 없어서 악마형 유물에 손을 대?!"

"!"

그랬다.

지금 일리야를 움직이고 있는 건 바로 악마 유물이었던 것이다. 바로 갈리나에게 붙어 있던 그 악마 유물.

[인간이여, 네 부름에 특별히 응해 주마.]

일리야가 제 목숨이라도 판 것일까. 악마 유물이 흥미를 느끼고 그에게 손을 뻗은 것이었다.

하지만 지배하고 있는 건 아니었다. 악마형 유물은 아직까지 세상에 사용조건이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

그러니 단순히 지배당하는 것뿐이다.

'이 일이 끝나면 악마 유물에게 바로 잡아먹히겠지.'

하지만 상관없었다.

"저 새끼들만 쓸어버리면 되니까...!"

저 미친 놈!

곧 일리야의 온 몸에서 핏대가 솟아올랐다.

그리고 마침내 동맥이 파열되고 피가 역류하듯, 안에서부터 악마한테 파 먹히듯, 눈과 코, 귀에서 피가 터져나왔다.

동시에 사제들의 비명소리가 울려퍼졌다.

폭주하는 악마가 사제들을 모조리 집어삼키기 시작했던 것이다.

* * *

"아아악!"

"잠깐, 그만둬! 아악!"

푸욱!

푸우욱!

악마 유물은 순식간에 S급, 심지어 신급을 다루는 SS급 사제도 죽였다.

그야말로 압도적인 힘이었다.

"살려줘! 아아악!"

"그마안!"

다만 흉악하게 날이 선 칼날은 갈리나와 주헌에게까지 향했다. 마치 주변의 인간 놈들을 전부 잡아먹으려는 듯이.

그리고 그 순간이었다.

"이게 진짜 미쳤어!"

'!'

주헌이 그런 일리야를 막았다. 물론 주헌에게 남은 유물 따위는 없었다.

가지고 있던 유물은 다 파괴되고, 사제들의 유물까지 악마새끼가 죄다 파괴했으니까.

하지만.

"갈리나...?"

이 자리에 딱 하나 남아 있었다.

갈리나라는 유물이. 주헌은 그녀라는 성계열 유물을 다루고 있었던 것이다.

심지어 그 기적의 힘은 잘린 주헌의 팔까지 회복시킬 정도.

하지만 정신이 일순 돌아온 일리야는 당황한 듯 했다.

"갈리나가 왜...!"

"바보야. 유물화가 진행되고 있는 거야. 성모 유물로!"

"......!"

"아마도 메시아를 출산한 걸로 치고 변하는 거겠지. 마리아 유물은 그런 유물인 거야."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주헌은 SS급 성모의 유물로 악마를 짓눌렀다.

번쩍!

"크윽!"

상성이 정반대이니, 누르는 건 어렵지 않았다.

'뭐 이걸로 악마를 빼내면 이 새끼도 죽겠지만.'

그게 악마 유물에게 지배당한 리스크.

다만.

"일리야, 제발 울지 마.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우는 건 싫어..."

갈리나는 울면서 일리야를 끌어안았다.

"일리야, 나 괜찮으니까 사람인 상태로 보내줘."

"!"

갈리나는 바닥에서 주운 총을 그의 손에 들려주었다. 일리야는 당황했다.

"잠깐, 갈리나...! 뭐하는!"

"아. 딱 한 번이라도 너한테 안겨보고 죽고 싶었는데."

"갈리나!"

일리야는 총을 버리려고 했다. 하지만 그걸 주헌이 콱 붙잡았다.

"쏴."

"...!"

"보면 알잖아. 어떤 상태인지. 마지막만큼은 원하는 대로 해줘."

일리야는 눈을 질끈 감았다. 갈리나의 몸은 다리부터 점점 유물로, 괴물로 변해갔다.

아마 수 초 후에 갈리나는 인격도 잃고 괴물이 되겠지.

방법은 없었다.

그래서 그는 소리 없이 울었다. 그녀는 일리야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일리야. 이걸로 악마에게 먹히지도 말고, 하고 싶어 했던 선생님도 꼭 되고. 꼭 오래 오래 살아야해."

"......!"

갈리나의 행복한 미소와 함께 일리야가 입술을 꽉 깨물었다.

탕.

총소리가 울려 퍼졌다.

* * *

"어차피 유물을 잉태한 시점에서 죽을 운명이었어."

주헌은 일리야에게 그렇게 말했다.

마치 그의 짐을 덜어주려고 하려는 듯이.

"그리고 늦든 빠르든 바티칸은 갈리나를 찾아냈을 거야. 딱히 너 때문에 갈리나가 피해자가 된 건 아니니까."

그러나 일리야는 대답하지 못했다.

시신이 된 갈리나를 끌어안은 채 그저 소리없이 울 뿐.

악마 쪽은 상관없었다.

일리야를 잡아먹으려던 악마는 갈리나가 죽는 순간, 일리야의 지배력에 휘어 잡혔으니까.

아마도 사랑하는 사람을 죽이는 것. 그게 악마 유물을 지배할 수 있는 조건이라는 걸 갈리나는 알았던 것이리라.

악마에게 오랜 시간 빙의되어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 순간이었다.

번쩍!

갈리나의 시신에서 빛이 나면서 유물로 변했다.

그리고 핵이 파괴되어 더 이상 사용할 수 없는 성모 마리아의 유물이 있었다.

일리야는 그걸 집어 들어 주헌에게 내밀었다.

"가져가. 왕급이 되어야 한다고 했잖아."

"......!"

"...확실하진 않지만 소문이 있어. 뭐든 고쳐내는 천재 복원사가 있다고. 그걸 복원해서 써라. 갈리나도 너라면 좋게 받아들일 거야."

그러나 주헌은 그의 손을 뿌리쳤다.

"됐어. 그딴 거 필요 없어."

"뭐? ...하지만 너 꼭 왕급이 되어야 한다며. 이게 아니면 SS급은 못 구할 텐데?"

"됐다고."

그걸 쓰면서까지 왕급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난 더 좋은 유물을 찾아낼 거니까."

그리고 유물이 뭔가 꺼림칙했다.

이때는 몰랐지만 아마도 그게 언노운과 연관된 유물이라는 걸 주헌은 본능적으로 느꼈으리라.

"괜찮아. 아직 노릴만한 SS급은 남았어."

"허, 돌았냐? 그건 7대 무덤의 유물인데..."

동시에 멀지 않은 곳에서 사이렌 소리가 들리자 일리야가 돌아섰다.

"곧 판도라가 올 거야. 빨리 도망가."

"넌 안 도망가고?"

"난 도망쳐도 계속 쫓기겠지. 동료들을 죽였으니. 그리고 종교재판이랑 유물재판까지 받고 아마 사형당할 거야."

"......!"

일리야는 갈리나를 쏠 때 자신도 금방 따라가리라 마음먹은 것이리라.

"그러니 내기에서는 졌지만 네 따까리는 못 되겠다."

그말에 주헌이 뭐라고 하려고 하자, 일리야가 악마 유물을 발동했다.

"잘가라. 서주헌. 꼭 왕이 되고."

주헌이 일리야를 본 건 그게 마지막이었다.

* * *

"허, 그럼 어떤 의미론 네가 가장 먼저 단장님이랑 만난 거네?"

"그런 셈인거지."

일리야는 술을 마시며 구시렁거렸다. 하여간 그게 주헌을 보는 마지막인 줄 알았건만.

"몇 년 뒤에 그 새끼를 또 보게 될 줄 누가 알았겠어."

그랬다.

그 사건이 있고 몇 년 후. 그들은 또다시 마주하게 된다.

바로 TKBM과 권혁수의 협력 임무에서.

'이번 일은 내 동생이 관리하고 있는 사후처리반이 함께 할 거다. 잘 지내도록.'

권 회장의 명령에 주헌은 불어난 단원 놈들을 데리고 미팅 장소로 향했었다.

그리고 거기서 보았지.

사후처리반이라며 온 사람들 가운데 낯익은 얼굴을.

주헌은 스쳐지나가는 은발. 악마를 다루는 스트레스 때문에 거의 백발로 변한 남자를 붙잡았다.

'기다려. 너 일리야 볼고프 맞지!'

'다, 단장님? 아는 사이세요?'

'머리색은 달라졌지만... 너 그 바티칸에서 봤던...!'

그 말에 일리야는 아차 싶었는지 눈살을 찌푸리곤 주헌을 뿌리쳤다.

'안 꺼져? 사람 잘못 봤어.'

'새끼가 잘못 보긴 뭘 잘못 봐. 그보다 왜 네가 권혁수 영감 밑에? 죽은 거 아니었어?'

일리야는 그때의 일을 떠올리며 탄식했다.

"판도라에선 첫 악마 유물 사용자라며 살려두자고, 악마새끼는 자살을 막아대지. 시팔. 그리고 한때 기억 유물에도 손댔거든. 그래서 프로이트 유물을 쓸 수 있게 된 건 좋은데 본인 기억은 안지워지더라고. 뻘짓했지. 덕분에 권혁수 눈에만 띄고. 한순간이나마 갈리나를 잊으려고 해서 천벌 받았나."

동시에 그는 치를 떨었다.

그도 그럴 법한 게, 몇 년 만에 만난 주헌은 전과는 다르게 굉장히 강해져 있었다.

정말 7대 유물을 얻어 왕급에 버금가는 힘을 얻고. TKBM에 스카웃까지 되어 부하들을 꾸리고 있다니.

'나랑 만났을 땐 쭈구리였던 주제에!'

하지만 주헌은 코웃음을 치면서 이렇게 말했지.

'됐고, 너 내기 약속 지켜.'

'뭐?'

'살아있으니까 이제 내 따까리 되라고. 죽긴 뭘 죽어. 이 똥개야.'

'?!'

이 개 같은 새끼가?

"뭐 그래도 단장한테는 고마워하고 있어."

자신이 재판 받는 도중 경매에 팔려나갔던 성모 마리아의 유물.

갈리나이기도 했던 그 유물을 주헌이 되찾아준 것이다.

구걸왕이 권혁수에게 판 유물을 주헌이 빼돌려 주었다. 그리고 친히 그녀의 무덤까지 만들어주었다.

일리야는 그 유물을 무덤에 묻었지만.

동시에 클로에가 물었다.

"그럼 그거 이 사기꾼한테 맡기면 복원 되지 않을까? 그럼 갈리나를 다시 만날 수 있을지도..."

"오, 그래! 내가 삐약이한테는 특별가로 복원해줄게!"

"아냐, 아마 복원해도 갈리나는 못 돌아올 거야."

갈리나는 그때 이미 죽었으니까.

그 죽은 육신만 유물이 된 것이니까.

"아무튼 다들 단장 놈한테 하나씩 코가 꿰인 거구나."

"그래. 그래도 누가 알았겠어. 그 사람이 진짜 유물의 왕이 될 거라고."

"그래도 그건 망할 새끼라서..."

그때였다.

"얼씨구, 이것들이 나 없다고 뒷담을 까고 있네?"

"?!"

단원들은 모두 기겁했다.

"다, 단장님!"

어느 사이 술집을 찾아온 주헌이 살벌하게 웃고 있었다.

"지금 뒷담을 깔 시간이 있다는 거지?"

"아, 아니 그게 아니라!"

곧 단원들의 비명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리고 그로부터 얼마 뒤.

주헌의 화려한 결혼식이 거행되었다.

수상한 태몽(?)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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