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20화. 취중뒷담 (악마가 내려왔다) 下
주헌은 이를 갈았다.
이 유물에게 손을 댄 순간, 눈치챘기 때문이다.
'이건 이미 발동 중인 유물이잖아.'
주인이 있다고 해야 하나. 숙주가 있다고 해야 했다.
즉 이 유물은 기생형.
지금 이곳에 있는 건 일종의 껍데기라고 보면 좋았다. 유체이탈을 해서 내용물 쪽은 인간에게 기생하고 있다고 해야 하나.
실제로 유물을 만지자, 이탈한 내용물이 누구한테 기생했는지 바로 느껴졌다.
'하지만 저 방향은...!'
주헌은 눈살을 찌푸렸다.
주헌은 급히 땅을 박차듯 달렸다.
쿵!
사제들은 주헌이 도망가자 다급해졌다.
"저놈을 붙잡아라!"
"도둑놈이 도망간다!"
특히 주교들이 당황한 기색이었다.
주헌이 향하는 방향 때문이었다.
"저놈이 설마 눈치를 챘나?"
"설마요...! 잠깐 만진 것 정도입니다."
아무래야 좋았다.
"저놈을 놓치면 안 된다! 비밀을 알아차렸을 가능성이 있어!"
"사살할 각오로 움직여라!"
"예!"
* * *
그 무렵이었다.
"아아아악!"
주헌은 부채 유물을 쓰며 사제들을 따돌렸다.
[코를 늘리는 빨간 부채, 파란 부채 (B급-희귀급)]
전래동화 속의 유물로 코 뿐이 아니라 건물들과 사물들을 늘리며 갈리나의 맨션에 들이닥쳤다.
'다왔다.'
그러나 갈리나의 집에 들어가기도 전, 주헌은 깜짝 놀랐다.
"갈리나!"
갈리나는 현관문 앞에 쓰러져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배를 잡으며 굉장히 괴로워하고 있었다.
"...주헌 씨, 그 유물은?"
"이거 말이야?"
주헌이 가방에서 성모마리아 상을 꺼내자 갈리나는 안도했다.
"역시 주헌 씨야...! 잘했어요, 어서 그거랑 계약해요!"
그러자 주헌이 돌았냐는 듯 눈살을 찌푸렸다.
"이거랑 계약하면 네가 죽잖아. 아니야?"
"...!"
"이거 기생형 맞지. 너한테 기생하고 있는 거잖아."
상황마다 다르지만, 기생형 유물은 주인이 바뀌면 붙어 있던 숙주가 죽기 마련이다. 숙주를 죽이고 나오기 때문이었다.
주헌이 아는 지식으로도 그랬다.
그런데 이거랑 계약을 하라니...!
"너 죽을 생각이야?"
그러자 갈리나가 주헌을 필사적으로 붙잡았다.
"그건 성모마리아의 유물이에요. 그게 무슨 의미인지 알죠?"
"!"
곧 주헌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건 당연했다. 천사의 계시로 처녀의 몸에 예수를 잉태한 성모마리아.
기독교에서는 더없이 성스러운 존재지만, 그게 유물이라면 이야기는 완전히 다르다.
'설마.'
아니나 다를까, 갈리나는 울 것 같은 얼굴로 배를 움켜쥐었다.
"바티칸에서... 악마를 없애주겠다면서 그 유물을 나한테 썼어요. 그리고 눈치챘을 땐 뱃속에서 이미...!"
"...!"
즉 갈리나는 메시아 유물을 잉태하고 있다는 의미였다.
'갈리나를 숙주로 삼은 거냐.'
아무래도 그게 메시아 유물의 발동 조건일지도 몰랐다. 특정 조건을 가진 여자의 몸에 마리아의 유물을 쓰면 유물이 들어서는.
하지만 평범한 출산은 절대 아니겠지.
'유물이니까.'
틀림없이 갈리나의 온갖 내장을 파헤치고 배를 뚫으며 나올 것이었다.
그리 되면 갈리나는 죽겠지. 아니 유물을 잉태한 도중에도 몸이 멀쩡할 리가 없었다.
실제로 그녀는 괴로운 듯 고통에 눈물을 뚝뚝 흘렸다.
"내 배에 있는 건 메시아 같은 게 아니야. 괴물이지."
인간을 구원해줄 유물은 절대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을 죽이고 싶어하는 게 유물의 본성.
이건 틀림없이 메시아의 탈을 뒤집어쓴 악마일 것이었다.
"이제 점점 배도 불러와서 이제 숨기기도 힘들어요. 그러니 일리야가 눈치채기 전에 빨리...!"
"...!"
갈리나는 이 사실을 일리야에게만큼은 숨기고 싶은 모양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바티칸에 가자. 삼촌 연줄이 있거든. 분명 널 구해줄 거야.'
자신을 바티칸에 데리고 갔고, 주교를 소개해준 건 일리야 본인이었기 때문이다.
"분명 자기 때문이라고 자책할 거야."
갈리나는 유물을 떼어낼 방법이 없다는 걸 알고 고통에 자살까지 생각했었다.
하지만.
[감히 죽게 내버려둘 것 같으냐, 인간.]
뱃속 유물의 생존본능인가, 유물은 갈리나의 자살조차도 막았다.
"그러니 제발, 그것과 계약해서 나를 죽여줘...! 유서도 써놨으니 주헌 씨가 도와주면 일리야는 모를 거야."
갈리나는 이런 부탁을 하는 걸 굉장히 미안해했다.
하지만 사실 주헌에게 크게 문제가 될 이야기도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이득이 될 이야기.
어차피 주헌은 이 SS급 유물과 계약해 왕급이 되려고 했었으니까.
그러니 이건 서로가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는 좋은 기회.
"그 유물과 강제로 계약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어. 하지만 주헌 씨는 그게 가능하잖아...!"
그만한 힘이 주헌에게는 있었다. 그래서 주헌을 도와준 것이다. 그리고 주헌이 그 유물과 계약하는 순간, 자신은 그 타이밍에 맞춰 건물에서 뛰어내리려고 했다.
유서도 준비했겠다, 그러면 완벽한 자살로 보였겠지.
뭐, 설마 주헌이 그 자리에서 계약을 안 하고 여기까지 올 줄은 몰랐지만.
갈리나는 손을 떨었다.
"주헌 씨, 이 유물 아니면 이제 신급 유물을 얻을 장소도 없잖아요."
그 말대로였다.
귀한 유물들은 판도라에 이름을 올린 왕급들이 발굴을 독식하는 마당.
그러나 이거면 판도라에 왕급으로 이름을 등록하고 당당하게 지원 받으면서 무덤 발굴을 할 수 있겠지.
곧 뭘 생각한 건지 주헌이 유물을 들었다.
"좋아, 알았어."
이에 갈리나는 표정이 밝아졌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뭐하는 짓이야, 새끼야!"
* * *
뻐억!
갑자기 날아온 그림자가 주헌을 때려눕혔다. 주헌은 그대로 나가 떨어졌다.
동시에 일리야가 씩씩거리면서 주헌을 쏘아 보았다.
"너 돌았어? 갈리나를 죽이려고 해?"
그 말에 갈리나는 깜짝 놀랐고, 일리야가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는 파르르 떠는 얼굴로 갈리나를 보았다.
"갈리나, 다시 말해봐. 방금 한 말들 진짜야?"
"......!"
아무래도 일리야는 이곳에 오면서 갈리나의 이야기를 들은 것 같았다.
"진짜냐고 묻잖아!"
그 히스테릭한 외침에 갈리나의 갈 곳 잃은 시선이 떨어졌다.
"...미안해. 일리야. 미안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일리야의 표정이 완전히 무너졌다.
바티칸의 주교가 한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건 갈리나를 살릴 유물이란다. 잘 지켜야 해.'
분명 그렇게 알고 있었다.
그런데 왜!
그럴 때였다. 주헌이 돌연 일리야가 가져간 마리아 유물을 노렸다.
'!'
SS급 유물과 계약하려는 것일까.
"내놔, 자식아!"
뻐억!
주헌은 일리야를 걷어차며 유물을 빼앗아갔다. 이에 눈을 부릅 뜬 일리야가 주헌의 머리를 거칠게 걷어찼다.
빠각!
"크윽!"
발로 뒤통수를 걷어차인 주헌은 괴로워하며 일리야를 보았다.
'이 자식이, 진짜로 깠어!'
"너 죽을래?!"
"죽는 건 너야. 이 와중에 계약을 해서 갈리나를 죽이려고 해?! 넌 인간도 아니냐?"
"무슨 소리야! 난 유물을 파괴하려는 거라고! 갈리나를 구하려고!"
"!"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주헌이 지배력을 실었다.
'자폭해라, 유물!'
유물을 파괴하면 갈리나의 뱃속에 있는 유물 놈도 파괴될지 모른다. 연결되어 있을 테니까.
하지만 그때였다.
번쩍!
"아악!"
주헌은 손과 몸에 극심한 화상을 입으며 나가떨어졌다. 갈리나와 일리야는 당황해서 그를 살폈다.
"이봐!"
"주헌 씨! 괜찮아요?!"
"역시 이 방법으론 안 되나...!"
실제로 더 손을 대면 죽을 것이었다.
기본적으로 유물은 인간의 힘으로 부술 수 없었다. 비슷한 등급의 공격형이나 상성, 특수 유물을 이용해야만 하니까.
훗날이야 같은 방법으로 뻥뻥 유물들을 터트리고 협박해도, 별 지랄쇼를 다 하고 다니지만, 지금 시절의 주헌은 요령이 없었으니까.
그 경지에 이르는 건 30대가 넘은 후였다.
'그래도 다시 한번...!'
그러나 그 순간이었다.
"유물을 파괴해봤자 이미 잉태된 유물은 없애지 못한다."
"!"
돌연 들려온 의기양양한 목소리. 약속이나 한 듯이 갈리나의 집으로 몰려온 건 바티칸의 사제들이었다.
그리고 낯익은 그들의 등장에 가장 먼저 치를 떠는 건 일리야였다.
"잉태라니... 역시 니들은 다 알고!"
"이제야 알았구나, 멍청한 일리야."
"!"
주교와 일리야의 동료들은 안쓰러운 듯 그를 보았다.
"그래, 우리가 성모마리아의 유물로 갈리나를 임신시켰다. 메시아 유물을 잉태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춘 보기 드문 인재였거든."
"가능하면 끝까지 모르길 바랐는데."
저 개새끼들이!
"니들이 나한테 사기를 쳤어?! 갈리나한테 씌운 악마를 퇴치해준다고 했잖아!"
"사기라니, 그런 심한 말을. 우리는 거짓말을 한 적이 없어."
"뭐라고?"
"갈리나에게 씌어있는 악마는 바로 유물이다. 악마형이지. 기생한 거야."
"갈리나는 애초에 선천적으로 몸에 유물을 받아들이기 좋은 육체였던 거야. 그래서 메시아 유물도 잉태하기 좋은 조건이라고 생각했다."
"...!"
그들은 가늘게 웃었다.
"하지만 메시아를 탄생시키면 갈리나 역시 성모마리아 유물로 변해. 성계열 유물이 되면 악마형 유물은 당연히 자연 퇴치 될 수밖에 없지 않겠나?"
"......?!"
"이러면 거짓말을 한 거 아니지? 뭐, 유물화가 진행되면 더 인격이라 부를 만한 것도 사라지겠지만."
"어쨌든 약속했던 악마를 구제하는 건 지킨 거지?"
"......이 자식들이 진짜!"
일리야는 눈에 핏대가 서 올랐다.
그는 바티칸에 갈리나를 데려간 걸 뼈저리게 후회했다. 가기 싫어하는 그녀의 등을 떠민 것도 자신.
'등신아, 무서워하지 마. 다 널 치료해주는 거니까.'
젠장!
일리야는 입술을 짓이겼다. 자신이 갈리나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것이었다.
하지만 동료라는 것들은 태연하게 웃었다.
"자, 알았으면 빨리 갈리나를 데려 와라. 그딴 외부인에게 SS급 유물을 빼앗길 생각이냐."
"일리야, 바티칸의 일원으로서..."
"개새끼들, 안 꺼져?!"
그 울화와 함께 일리야가 가진 유물이 폭주했다.
건물에서 폭발이 일어난 건, 그 뒤였다.
* * *
"찾아라! 그 상처로 멀리는 도망가지 못했을 거다!"
"분명 이 근방에 있을 거다!"
바티칸은 발칵 뒤집혔다. 일리야가 귀중한 유물을 들고 도주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무도 없는 창고에서 일리야는 죽으려고 했다.
"크윽...! 살살 좀 해!"
"닥쳐, 혀 뽑아버린다! 들키기 싫으면 입 다물어!"
주헌은 일리야의 몸에 적당히 내장을 쑤셔 넣고 있었다.
갈리나는 안절부절 못하며 피투성이 일리야를 꽉 붙잡고 있었고.
"일리야, 괜찮아, 괜찮아. 조금만 참아...!"
"아악!"
"칫, 이 새끼, 혀 안 깨물게 뭐라도 물려!"
"으윽!"
마취도 안 하고 뱃속을 휘적거리는 느낌은 상상을 초월했다.
유물을 발동해서 갈리나를 데리고 도망을 친 건 좋은데, 역시 쪽수를 이기긴 어렵다고 해야 하나.
바티칸의 사제들의 일격에 도리어 당해버린 것이다.
그리고 아무리 그래도 빠져나온 내장을 주렁주렁 단 채 도망칠 수는 없는 법이었다. 병원에 갈 수도 없고.
결국 주헌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이대로면 바티칸을 빠져나가기 전에 일리야가 죽을 것이었다.
"일단 치유 유물이든, 의사든, 뭐든 납치해올 테니까. 둘은 여기에 숨어있어."
갈리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기다려."
"!"
"의사는 됐어. 그딴 거 찾을 시간있으면 갈리나나 데리고 나가줘...!"
"뭐?"
"의료왕이면 갈리나한테 붙은 유물도 제거할 수 있을지 몰라...! 구시가지 헤븐이란 술집에 내가 아는 주인이 있어. 갈리나를 빼돌려줄 거야."
"...15분 내로 올게."
주헌이 급히 사라졌다. 일리야는 괴로운 듯이 우는 갈리나를 토닥였다.
"미안해. 내가 괜한 짓을 해서 너한테 몹쓸 짓을 했어."
"일리야!"
"그 기생 유물도 빼줄게, 너한테 붙은 악마 유물도 떼어줄게. 그러니까 제발 이상한 생각 품지 마."
갈리나는 결국 굵은 눈물을 뚝뚝 떨어트렸다.
그리고 그 무렵이었다.
"젠장, 아직도 못 찾았나?"
"네, 아무래도 깊숙이 숨은 것 같습니다."
사제들은 갈리나의 행방을 두고 이를 갈고 있었다.
갈리나는 자신들의 권위를 상승시킬 메시아 유물을 품은 여자.
사실 그들은 일리야가 갈리나를 데려오기 전부터 그녀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이 여자는 저희 실험 대상이었어요..'
판도라의 원탁의 기사들이 그렇게 말했으니까. 그들은 유물이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전, 언노운 실험을 하고 있었으니까.
그 중에 하나가 인간을 통한 유물의 탄생 실험이다.
'우연이긴 한데 저희가 악신 유물을 퍼트린 적이 있어요. 강한 항체를 가진 육체를 찾고 있었거든요.'
'그리고 같은 구역에 있던 실험체들은 다 죽었는데, 갈리나만 살아남았죠.'
'악신도 체내에 머물게 할 정도의 강한 육체를 가졌어요. 분명 메시아도 품을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그 아이 주변에 있는 일리야라는 아이. 신성 유물 적합력이 상당한 것 같은데, 바티칸에서도 쓸만하지 않을까요?
'그러네요! 거기에 갈리나와 가까운 사이이니 갈리나가 유물이 되었을 때 적합자가 될 수도 있을 테고!'
'이런 우연의 일치라니, 분명 신이 인도하신 결과일 겁니다.'
그렇게 갈리나와 일리야는 착착 바티칸으로 향하고 있었다.
'일리야, 바티칸에 맡겨보는 건 어떻겠니?'
일리야의 친지를 이용했던 것이다.
뭐, 이렇게까지 착착 잘 흘러갈 줄은 몰랐지만.
어쨌거나 지금 상황은 위험했다.
"서주헌, 이상한 놈이 나타나서...!"
"괜히 그 둘이 갈리나를 나라 밖으로 빼돌리면 뱃속에 있는 유물이...!"
"기껏 이 나라에서 최상의 환경을 조성하고 있었는데...!"
바티칸 시국은 성스러운 유물로 보호받고 있었다. 이 환경이 아니면 태아 유물도 분명 제대로 자라지 못할 것이었다.
그럴 때였다.
"그럼 도망치기 전에 일찌감치 꺼내버리죠?"
"!"
그들의 앞에 낯익은 사제가 나타났다. 그건 다름 아닌 요한.
미래에 주헌의 동료가 되는 원탁의 기사 겸, 바티칸의 사제다.
"지금 태아를 꺼내도 사실 큰 상관은 없을 겁니다. 나머지는 이 바티칸의 환경에서 인공적으로 자라게 해도 될 거예요."
"요한!"
"시간이 없습니다. 메시아 유물은 바티칸에게도, 판도라에게도 상당한 가치를 가진 유물이에요. 어찌 보면 세상의 판도를 바꿀 SSS급 유물이죠."
현재 세상의 판도는 미래를 읽는 운명왕에게 향해 있었다. 하지만 그 흐름을 단번에 바꿀 강력한 유물.
'그 유물이면 우리 종파의 목소리를 높일 수 있어.'
더 나아가 종교가 이룰 수 있는 최고의 목표도!
그들은 결심한 듯 외쳤다.
"윗분들을 불러! 작전을 수행한다!"
아마 그때였을 것이다.
일리야의 눈앞이 핏빛으로 물든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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