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17화. 이 구역의 미친 삼촌 下
당황한 최 비서는 주헌을 설득하려고 했다.
"저기, 서주헌 씨. 나쁠 건 없을 겁니다. 그러지 말고..."
"네네. 김 비서님 돌아가주세요."
결국 당황한 비서는 고모 쪽에게 연락을 취했다. 덕분에 연락을 받은 쪽은 미치고 환장하려고 했지만.
[그러지 말고 어떻게든 잘 설득해 보란 말이에요! 뭘 그냥 돌아오려고 그래요! 돌았어요?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데...!]
"하지만 사모님...!"
그럴 때였다.
'!'
주헌은 최 비서의 핸드폰을 빼앗아갔다. 하지만 그 사실을 알 리가 없는 고모는 급하게 말을 잇고 있었다.
[알았어요? 그 인간을 설득할 때까지 돌아올 생각 하지도 말아요! 해고야!]
"뭐라는 거야, 이 아줌마가."
[!]
"그러니까 왜 나한테 사과를 하겠다는 건데? 애초에 대상이 완전히 잘못되었다니까?"
[서, 서주헌?]
"그리고 당신들이 뭔데 나한테 오라가라야? 내가 거기까지 왜 밥을 먹으러 가야 하는데. 정 밥이 먹고 싶으면 니들이 걸어오고. 혼자서 많이많이 드세요."
[잠깐, 이봐요!]
"아, 몰라, 나 바빠. 사진 찍어야 해."
뚝.
가차없이 핸드폰을 끊은 주헌은 빠돌이처럼 DSLR 카메라를 꺼내들었다. 예쁘고 귀여운 수아가 무대 위로 올라갔기 때문이었다.
[마릴린먼로의 인생샷을 찍어낸 포토그래퍼의 카메라- A급]
"표정 하나하나까지 다 찍어. 놓치면 죽여버린다. 천만 장 찍어서 천만 장 다 인생샷으로 만들라고."
유물은 어이가 없었다.
[아니, 아무리 마제스티라도 그런 주문을...!]
"닥쳐, 유물 주제에 그딴 것도 못해? 그게 안 되면 포토그래퍼를 쓰지, 뭣하러 니 새끼들을 써. 알았어? 어디 한 장이라도 평타, 엽사, 안 이쁜 사진 나오기만 해봐. 그 순간 니 유생을 조져버린다."
[#$*&*!]
결국 카메라 유물은 훌쩍거리면서 열심히 수아를 찍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럴 때였다.
"아주 빠돌이가 따로 없구나."
법무팀에서 일하다가 끌려온 율리안은 오자마자 비웃음을 터트렸다.
"그래서 오늘은 또 얼마나 해 드셨어?"
주헌은 뭐 어떠냐면서 심드렁했다.
"그러게 누가 수아 울리래? 우리 수아 괴롭히는 사람 있으면 이 삼촌이 어디든지 갈 거라고."
역시 이 새끼는 딸자식을 낳으면 안 돼.
율리안이 피곤한 듯 미간을 짚었다.
단언컨대 딸이 생기면 이 미친 삼촌은 미친 아빠로 진화하겠지.
'세계평화를 위해서라도 아들내미를 낳게 해야 하는데.'
그는 이러다가 진짜 남아선호사상 유물까지 찾아야 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분명 유교 문화계 유물 중에서 B급짜리로 있었던 것 같았는데.'
그렇게 공명이가 진지하게 쓸데없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주헌 오빠!"
수아가 주헌에게 안기며 볼을 비볐다.
"오빠 덕분에 상품을 받았어요! 정말 고맙습니다!"
주헌은 그런 수아를 안아주면서 웃었다.
"아냐, 오빠는 거들어준 것뿐이지, 너희가 만든 게 좋은 평가를 받은 거야."
실제로 수아와 친구들이 만든 작품들은 독특함 탓인지 상당히 인기가 좋았다.
이때 유재하는 수아가 주헌에게 안긴 것이 부러웠는지 은근슬쩍 끼어들었다.
"수아야, 이 오빠도 거들었어. 이 오빠한테도..."
"네! 정말 고맙습니다! 아저씨!"
"?!"
뭐라고 아저씨?
"잠깐! 단장님은 왜 오빠고, 난 왜 아저씨인데!"
"네?"
"내가 단장님보다 나이야 3살 더 많아도, 생긴 건 내가 훨씬 동안이라고! 안 꿀린다고! 왜 아저씨인데?"
그러자 수아가 당연하지 않느냐며 주헌에게 얼굴을 비볐다.
"난 미래에 주헌 오빠의 신부가 될 거니까!"
"?!"
이번엔 천하의 단도 움찔한 듯했다. 그럼에도 전혀 듣지 못한 척하는 표정.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수아가 해맑게 외쳤다.
"10년만 기다려주세요, 오빠!"
덕분에 아빠만 쩔쩔맸다.
"아, 아니 저기 수아야...? 단장...아니 주헌 오빠는 곧 결혼을 한단다...!"
"괜찮아! 난 세 번째라도 괜찮아!"
단은 아예 멘붕에 빠졌다.
하물며 왜 하필 골라도 주헌 따위(?)냐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래서 주헌이 슬그머니 째려보았다.
"뭐야, 그 표정은. 설마 내가 사위인 게 싫어?"
"아, 아뇨. 아니 저기 그게..."
단은 삐질삐질 땀을 흘렸다.
젠장, 마음의 소리가 얼굴에 나타났나.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수아가 주헌에게 상품을 내밀었다.
"그리고 이거, 주헌 오빠 결혼 선물!"
"음?"
주헌은 수아가 내민 뜻밖의 유물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 * *
"설마하니 이게 학교 상품으로 나올 줄은 몰랐네요."
클로에는 신기하다는 듯 수아의 선물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도 그럴 법한 게...
[선녀의 날개옷을 만드는 하늘의 비단(A급-보물급)]
그건 바로 유물이었다.
이걸로 날개옷을 만들면 보통 S급 유물이 되겠지.
뭐 학교의 이사장은 그냥 평범한 C급 유물인 줄 알고 상품으로 내건 것 같지만.
"아무튼 수아가 이걸로 턱시도랑 드레스를 만들라고 하네요."
이에 단원들은 흥분했고, 주헌 역시 꽤나 좋아했다. 선녀의 옷감으로 드레스라니, 세계 제일로 예쁠 것이 분명했다.
'안 그래도 드레스는 뭘로 할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평범하게 맞춤 드레스를 맞춰도 됐지만, 그래도 신부에게는 특별한 걸 해주고 싶은 마음이 있었으니까.
그런데 선녀의 날개옷이라니. 흔하지 않은 유물이라 더욱 값졌다.
'남들은 눈치 못 챈 A급을 눈치챈 것도 그렇고.'
"아무튼 오늘 수아한테 보답 겸 선물이라도 고르러 가야겠다."
그렇게 말하며 주헌은 눈앞에 있는 사람들을 보았다.
자신의 앞에는 수아의 축제를 방해했던 거지깽깽이들이 있었다. 거기에 교감 선생님까지.
그리고 주헌의 살벌한 시선이 떨어지자 수아에게 싹싹 빌고 있던 그들은 덜덜 떨었다.
"저, 저기..."
그들이 주헌의 눈치를 살피자, 주헌은 수아를 안으며 물었다.
"수아, 이제 기분 다 풀렸어?"
"이제 괜찮아요. 그래도 주헌 오빠하고 더 많이많이 있을 수 있었으니까."
그러자 주헌은 언제 독기를 품었냐는 듯, 쿨하게 넘어갔다.
"좋아, 수아가 봐준다니 이쯤으로 하지 뭐."
뭐 처음부터 일을 크게 벌일 생각도 없었지만 말이다.
반면 세라의 고모는 정말 죽을 뻔했다며 50년치 한숨을 몰아쉬었다.
'하필이면 건드려도 마제스티를 건드려서...!'
진짜 회사가 날아갈 뻔했다.
"그, 그럼 이제 오늘 일은 없던 걸로..."
"아, 그런데 가판대 부순 거랑 그림 망가트린 건 엄연히 재물손괴죄야. 5억 달러 보상비는 별개니까, 우리 변호사 통해서 알아서 해결하시고."
고모는 울었다.
그렇게 축제가 끝나고, 주헌은 선녀의 비단을 슬레이프니르 차에 실었다.
"이 옷감, 디자이너에게 오늘 중에 맡겨."
그 말에 모두가 놀란 시선으로 그를 보았다.
"잠깐, 누구의 드레스로 만들려고요?"
지금 신부 후보들은 재보 다루기에 낑낑거리고 있지 않나.
곧 주헌이 고민하며 입을 열 때였다.
"그거 내 드레스하면 안 돼?"
"!"
뜻 밖의 복병이 나타났다!
* * *
"세상에, 저 여자가 여긴 왜 나타난 거야!"
맞은편 가게에 숨어있던 단원들은 멘붕에 빠져 있었다. 주헌의 앞에 나타난 것은 다름 아닌 진채원이었기 때문이다.
"설마 그 사이에 진짜 점수 적립해서 온 거야?"
"진짜 독하네, 저 여자."
그리고 그들은 이 사실은 아이린과 설아에게 말을 해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에 빠져 있었다.
뭐, 정작 그녀와 마주한 주헌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드레스는 개뿔. 기껏 자판기 커피 한 잔 마실 점수밖에 못 모았잖아."
"......"
진채원은 절망했다.
그랬다.
감옥에서 간수 생활을 하며 점수를 모으면 뭘 하나.
[주헌아, 지금 뭐해?]
[바빠?]
시도 때도 없이 귀찮게 굴어서 주헌은 문자 한 통 당 점수 차감에 들어갔다.
어디 그뿐인가.
[주헌아, 이거 내 마음의 선물이야.]
주헌을 귀찮게 해서 계속해서 깎아먹은 점수가 상당했던 것이다. 그외에도 사고를 치면 깎는 식이라, 결론을 말하면 점수를 모아도 스스로 깎아먹는다고 해야 하나.
그런데 웨딩드레스는 무슨.
"뭐 그래, 한 300년 뒤면 가능하겠다."
진채원은 엄청난 팩트폭력에 좌절했다.
뭐, 애초에 주헌이 생각한 신부는 처음부터 아이린과 설아 둘 뿐이었지만.
곧 시간을 보던 주헌이 일어났다.
"좋아, 10분 지났네. 이야기 잘 나눴어, 그럼 난 간다."
"$#*&*!"
결국 진채원은 울었고(?), 거울 유물로 상황을 훔쳐보던 단원들은 안도했다.
아무리 그래도 저 미친 여자를 형수로 받아들일 순 없다는 것이었다.
"하여간, 단장 새끼, 나랑 처음 만났을 때도 바티칸에서 수녀들을 꾀어내더니, 어떻게 저렇게 여자가 꼬이냐."
"그러게. 그나마 마몬 덕분에 단장님이 정조를 지킬 수 있었던 거 아닌가?"
"아, 맞아. 그 모나리자 사건! 아 진짜 고자새끼! 하하하!"
그들은 주헌이 오는 건 생각도 못하는 건지, 신랄하게 뒷담 타임에 들어갔다.
맥주를 마시는 유물의 총수, 준도 눈을 이글거렸다.
"아무튼 왕이 하시는 말은 다 따르겠지만, 진채원은 안 돼요. 그 여자를 신부로 세우느니, 차라리 제가 왕께 직접 대시를 하겠습니다."
"뭐? 준 너는 진채원하고 직접적으로 얽힌 건 없지 않아?"
"아뇨, 입단하기 전에 좀..."
주헌 뒷담(?)에 열을 올리던 그들은 좀 옛날의 일을 떠올렸다.
* * *
"잠깐, 카오스! 도대체 왜 이러는 것이냐!"
기원 전.
페르시아의 어느 왕국. 당시 준은 전대 마제스티에게서 떠나려고 하고 있었다.
마제스티의 탄생. 그리고 마제스티의 재보인 준은 당연히 왕을 섬겼지만 글쎄.
"그것도 오늘로 끝이다."
"카오스, 도대체 내가 뭘 어쨌는데 그러지?"
"정말 몰라서 그러나? 당신은 왕의 자격이 없다."
그 차가운 말에 전대 마제스티는 당황한 듯했다.
준은 마제스티에게 있어 반드시 필요한 유물. 요람이 있어야 유물을 만들고, 잘못된 유물들을 소멸시킬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준은 차가운 눈으로 돌아섰다.
왜?
"당신은 나와의 약속을 어겼다."
"!"
준은 딱 하나만 지켜달라고 했었다. 팔은 안으로 굽기 마련이지만, 부디 바깥도 살펴달라고.
그 말의 의미를 모르지도 않을 터.
하지만 큰 전쟁이 났을 때, 전대 마제스티는 제 주변을 지키기 위해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람들과 유물을 버려버렸다.
분명 방법이 있었는데, 너무 쉽게 포기해버렸던 것이다.
이유는 간단했다.
'요람이 있으면 어차피 다시 만들 수 있어. 뭐든 만들 수 있다고.'
인간도, 유물도 모두.
"당신은 내 쌍둥이를 사용할 자격이 없어. 당신이 그렇게 아끼는 이 왕국 채로 멸망해라."
어쨌거나 준은 그렇게 마제스티를 떠난 것이다. 핵으로 변한 쌍둥이(탄생)를 데리고. 그리고 자신들을 찾을 수 없도록 다른 시간선에 숨어버렸다.
자신이 있는 이상 아무렇지 않게 쉬운 선택을 해버릴 테니까. 아무렇지 않게 포기해버릴 테니까.
인간에 대한 불신.
그리고 수천 년 후. 현대에 이르러, 준은 또 다시 마제스티 후보를 찾아왔다.
바로 TKBM에 있는 도굴단 단장 서주헌을.
물론 또다시 인간왕을 선택하게 될 일은 없겠지만, 자신은 과거의 총수.
'얼굴 정도는 확인해도 상관없겠지.'
그리고 때마침 도굴단에서 인원충원 공고를 내렸기에 준은 그걸 노렸다.
뭐, 유혹하고 농락해보겠다는 생각도 아주 없진 않았다.
준은 처음엔 여자의 모습을 하고 있었으니까. 원래는 그 모습이었다. 요람은 마제스티의 성별에 따라 모습을 달리했기 때문이었다.
'어차피 인간은 다 똑같다. 옆에서 마제스티의 재능을 꺾어주지.'
준의 눈빛이 번득였다. 도굴단에 들어가는 건 자신 있었다.
하지만.
"지, 지금 뭐라고요? 합격 취소?!"
아니, 그 어려운 서류통과, 실기, 필기, 적성시험, 1차, 2차, 3차 면접까지.
거의 반년에 걸쳐 겨우겨우 다 통과해 합격발표까지 난 마당에 뭐?
"합격 취소라고요? 도대체 왜!"
[그게 미안하게 됐어. 합격은 했는데 정작 그 도굴단의 단장이 여자는 꺼지라고 해서. 그래서 TKBM 입사는 없던 일이 될 것 같아.]
"#$*&$*!"
뭐가 어쩌고 저째!
유물 주제에 취준생이랍시고 생고생을 하면서 인간의 비위를 다 맞춰가며 입사했더니!
인간 놈이 감히?!
천하의 유물의 총수도 멘붕에 빠졌다.
[미안하네. 그 대신 내가 다른 발굴단에 소개를...]
"아, 아니, 다시 도전합니다."
투지에 불타오른 준은 눈을 이글거렸다.
뭐, 그때 짤린 이유를 알게 된 건 좀 뒤였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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