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15화. 이 구역의 미친 삼촌 上
"그러니까... 우리 형수가..."
"이 밧줄이라고?"
단원들은 멘붕에 빠진 듯했다. 눈앞에는 신이 나서 팔짝팔짝 뛰는 밧줄이 있었다.
[#$*$&*!]
이걸로 결혼식장에 들어갈 수 있어! 있어!
아니, 도대체 우리들한테 왜 이러는 건지.
"단장, 진심이야?"
일리야는 입을 떡 벌리며 동아줄을 보았다. 거짓말이라고 하기엔 유재하의 반응이...
"하하하하, 우리 형수님 이제 밧줄이야. 응 그런 거라고."
"?!"
진짜 동아줄이 형수가 되는 거야?
이 사기꾼 새끼가 또 사기를 치는 건가 싶었지만 그건 아니었다.
유재하가 뛰어난 언변의 마술사긴 하지만, 단원들이 어디 한두 번 속아봤나.
저 해탈한 얼굴은 최소한 거짓을 고하는 표정이 아니었다.
실제로 컴퓨터 앞에서 손수 청첩장 디자인을 하던 유재하는 이름을 갈아넣고 있었다.
[신랑 서주헌, 신부 동아줄...]
어디 그뿐인가.
"안 돼! 이럴 순 없어...!"
"이건 아니야아아!"
정작 신부 후보인 아이린과 설아가 울부짖고 있었다. 그녀들은 충격적인 결과에 잠도 안 자고 재보를 또 발동하고 또 발동한 모양이었다.
그러나 이 무심한 재보는 그녀들이 애를 써도 꿈쩍도 안 했다.
그런 마당이니 졸지에 둘은 결혼식장에도 못 들어가게 생긴 것이다.
"안 돼, 이건 아냐. 이건 아니라고!"
며칠 밤을 새운 둘은 탈진하며 쓰러졌다.
그 광경에 모처럼 한자리에 모인 단원들은 전부 충격을 받았다.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거야?"
동시에 그들의 시선은 준을 향했다.
"유물 놈들, 인간 신부는 용납할 수 없다더니 지금 일부러 저러는 거야?"
설아와 아이린이 발동하고자 하는 것도 어쨌거나 유물. 유물과 한패일 테니 일부러 발동하지 않느냐는 말이었다.
특히 유재하는 다 안다는 듯 말했다.
"네가 유물의 총수니, 일부러 작동되지 말라고 시킨 거지?"
"너무하네요, 전 그렇게까지 직권남용은 안 해요."
'뭐래, 남용해서 호구까지 납치한 놈이.'
"애초에 니가 직권 남용을 안 했으면 동아줄은 어떻게 발동했겠냐?"
그러자 준은 하하 웃었다.
"저 밧줄이라면 불가능할 것도 없죠. 어떤 의미론 저보다 강할 테니까."
"뭐?"
유물의 총수는 대답 대신 킥킥 웃을 뿐이었다.
아무튼 준의 말은 사실인 것 같았다.
"설아하고 아이린의 능력이 딸리는 건 아니에요. 인간들 중에서도 보기 드문 인재니."
단지...
"제발 움직여줘! 애들아!"
"부탁이야아아아! 최소한 결혼식장에는 들어가야 해!"
최고의 인재들이면 뭘하나, 망할 놈의 재보들이 잠 좀 자자며 콧방귀만 뀌었다.
물론 긴 씨름을 한 보람이 있는지, 미세하게 움직이긴 했지만...
[저리 가라, 요 어린 계집들아.]
[엄마 젖이나 더 먹고 오너라.]
"꺄악! 또 꺼졌어!"
이놈들은 콧방귀를 뀌면서 또 잠들어버렸다. 그 와중에 동아줄은 둘의 사이를 맴맴 돌며 이래저래 방법을 자세히 알려주었다.
그럴 때였다.
"아직 잘 안 돼?"
"다, 단장님!"
그들이 있는 곳에 주헌이 들이닥쳤다.
둘은 주헌을 보자 황급히 자신들이 다루던 유물을 뒤로 감췄다.
그리고 내색하진 않아도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둘의 표정에 주헌은 웃었다.
도대체 몇 날이나 밤을 새며 집중한 건지. 거칠어진 피부에 피곤해보이는 얼굴. 제대로 먹지도, 씻지도 못 한 게 틀림없었다.
주헌은 그게 기특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했지만, 처음부터 이럴 걸 예상했다는 얼굴이었다.
'뭐, 이 정도로 재보가 꿈쩍도 안 할 줄은 몰랐지만.'
"아무튼 그렇게까지 안 해도 그냥 결혼해도 상관없..."
"아뇨!"
"!"
"이걸 못 다루면 의미가 없어요! 다루기 전까지는 우리도 결혼 못해!"
"?!"
그 말에 유재하가 킥킥 웃어댔다.
"이야, 이거 결혼 날짜는 10년 뒤로 잡으면 되는 거죠? 커헉!"
유재하를 발로 깐 주헌이 진짜 그럴 필요 없다고 했다.
"아니아니 딱히 그걸 못 다룬다고 해서..."
그러나 설아와 아이린은 필사적으로 주헌을 붙잡았다.
세상엔 남아일언중천금만 있는 게 아니었다. 자신들도 꺼낸 말이 있는데, 이대로 없던 걸로 하고 날름 결혼하는 건 스스로 너무 부끄러웠다.
단순히 창피하다기보다는 이 정도도 안 되면서 무슨 주헌과 결혼하겠느냐는 것이다.
그리고.
'먼저 결혼하는 건 나야!'
두 여자들이 타오르는 눈빛으로 서로를 쏘아보았다.
그쯤 되자 주헌은 탄식했다.
"그렇게까지 말하면 뭐."
그는 둘을 존중하기로 했다. 그럴 때 단이 물었다.
"그럼 결혼식은 무기한 연장인가요?"
아무래도 단의 딸, 수아가 주헌의 결혼을 기대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지금도 열심히 선물을 만들고 있는 모양이었으니
그러자 주헌이 고개를 저었다.
"식은 예정대로 할 거야."
"네?"
"기한은 딱 일주일 줄게. 그때까지 둘 다 안 되면 포기하는 걸로."
"에이, 그럼 신부가 없잖아요."
"없긴 왜 없어."
"네?"
"이 녀석이랑 식장에 들어가지 뭐."
주헌은 동아줄을 머리에 얹었다.
그리고 그가 유유히 뒤돌아섰다.
"아줄아. 우리 드레스나 보러 갈까? 이쁜 걸로 사줄게."
"?!"
"진채원도 슬슬 점수를 적립하고 올 때가 됐는데..."
"#$*$*!"
* * *
"단장님, 도대체 무슨 생각이지?"
유재하는 구시렁거리면서 연필을 굴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말에 옆에 있던 일리야가 한마디 했다.
"무슨 생각은 무슨 생각이야. 그냥 다른 여자들이랑 결혼할 생각인 거지."
"뭐?!"
그러자 쿨하게 패션잡지를 보고 있던 클로에가 한마디 했다.
"스톱, 단장도 그 정도로 쓰레기는 아니야."
"그, 그렇지?"
"그냥 기간을 안주면 그 둘이 될 때까지 무리할 게 뻔하잖아."
아이린과 설아는 몇 주일, 한 달, 심지어 몇 년 내내 그걸 붙잡고 있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 정도로 그 유물은 다루기 힘든 것이리라.
"아, 미치겠네. 나 결혼선물로 초상화 그려서 주려고 했는데."
현재 유재하의 그림은 꽤 고가에 거래되는 중. 물론 그런 사실을 빼고서라도 누구나 좋아할 선물이긴 하겠지만...
"진짜 나 아줄이랑 진채원까지 그려야 해?"
아니 동아줄은 그렇다 쳤다. 귀여우니까! 그리고 내색 안 해도 단장님이 아끼는 유물이니까! 하지만 그 무서운 여자까지...?
연필을 든 유재하의 손이 파르르 떨렸다.
그러자 클로에가 고개를 저었다.
"그쪽은 전혀 신경 안 써도 돼. 단장이 염두한 건 둘 뿐이니까."
"아, 그럼 진짜 다행."
진채원과 얽힌 게 많았던 유재하는 진심으로 안도하며 지우개를 들었다.
"근데 왜 여기에 수아네 가게가 없는 거야?"
"!"
그랬다.
오늘 주헌을 따라 이들이 온 곳은 다름 아닌 초등학교였다.
그리고 눈앞에 펼쳐져 있는 건 초등학교의 장터...처럼 보였다.
하지만.
"웬 초등학교 장터에 돈 냄새가 풀풀 풍기는 거지."
실제로 학교 운동장에 웬 돈을 처바른 야외 공연장과 으리으리한 야외카페가 세워져 있었던 것이다.
그뿐인가.
"저 사람들 국내 톱스타 연예인 아냐?"
그들은 분명 수아의 초등학교 행사에 찾아온 것이었다. 학교에서 장터를 여니까 보러 오라나 뭐라나.
쉽게 말해 아이들이 각자 가게를 기획하고, 장사를 하는 것이었는데...
"뭐야, 여기가 수아네 가게 위치 아니었어?"
"그러게. 왜 없어졌지?"
초대를 받고 온 그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 수아와 그 친구들 대신에 있는 건...
"야, 빨리 이 잡동사니들 치워! 무대 설치를 못 하겠잖아!"
"아, 안 돼요!"
인부들은 가차 없이 아이들이 만든 간판과 가판대를 밀어냈다.
그럴 때였다.
"도대체 이게 무슨 상황이야?"
"단장님!"
눈에 띄기 싫은지, 모자와 선글라스를 쓴 주헌이 나타났다. 주헌은 상당히 불쾌해보였다.
아니, 아끼는 수아가 기껏 고사리 같은 손으로 '오빠, 언니들, 오늘 꼭 와주시면 정말 감사합니다.' 하고 직접 초대장까지 그려보냈길래 하던 일도 다 때려 치고 날아왔건만.
"뭐야, 수아네 가게는 어디에 있고, 왜 이딴 천박한 무대장치들만 나뒹굴고 있어? 우리 수아는?"
주헌은 눈썹을 치켜떴다.
그러자 어디에선가 헐레벌떡 단이 달려왔다.
"단장님! 죄송합니다!"
"단!"
단은 수아의 초대를 받고 온 단원들에게 사과했다.
"기껏 여기까지 와주셨는데...!"
"왜. 뭐야. 무슨 일이야?"
"그게..."
단은 난처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니까, 상황은 이렇게 된 것이었다.
"한마디로 축약하면 학교에 재벌 손녀가 있는데, 그 손녀 놈이 만만한 가게들 밀어내고 지네 가게를 확장하고 있단 거지?"
"네, 요즘 초등학교는 이런 행사기획도 활동경험으로 대학입시에 도움이 된다며... 꼭 1등을 해야 한대서요."
"교장이나 선생들은 그런 거 관리 안 해?"
"그... 아이들에게 시장의 자율경쟁에 대해서 가르친다며, 내버려두는 모양이에요. 경쟁력이 없어서 삼켜지는 건 당연한 거라고."
"얼씨구, 뭐래."
척 봐도 재벌 손녀가에게 사바사바를 하고 있는 것이구만.
* * *
"빨리 우리 자리 돌려주세요!"
"물건도 돌려주세요!"
수아는 자리를 빼앗아간 장본인, 유명 재벌의 소녀에게 항의하고 있었다.
뭐 정작 장본인에게 항의하려 해도, 비서와 경호원들에게 막히고 있었지만.
"저리 안 가? 이 더러운 꼬마들이."
"세라! 우리 자리 돌려줘!"
그러자 사건의 범인인 세라의 고모가 말했다.
"어머 얘들 왜 이래. 왜 우리 세라가 그 자리를 비켜야 하는데? 거긴 우리 세라 자리야. 거기가 사람들이 제일 많이 올 명당이라고. 나참, 선생이란 것들이 일처리를 이상하게해서 원."
그러자 수아와 함께 온 친구들이 항의했다.
"거긴 수아가 뽑은 자리란 말이에요!"
"얘들아, 너희는 그런 제일 좋은 자리에서 그런 지저분한 물건을 파는 게 맞다고 생각하니? 거긴 학교의 얼굴이야. 인테리어도 구리고, 전부 구려. 일단 너희 부모님 좀 모셔오거라, 할 말이 있으니."
그 말을 하고 세라의 고모가 교무실 쪽으로 향했다.
"1등으로 나온다는 상품도 잘 체크해. 그분께서 좋아하시는 유물이란 소문이 있어."
"네!"
"하여간, 격이 안 맞아서."
고모는 수아의 가게에서 가져온 그림을 찢어버렸다. 그리고 그걸 본 세라의 패거리는 신이 나서 그림을 차고 놀았다.
그러자 때 마침 수아를 찾으러 왔던 유재하가 거품을 물었다.
"야! 너희 뭐하는 거야!"
유재하는 황급히 그림을 안아들었다.
"와, 내가 그려준 그림을!"
"뭐야, 이거 아저씨가 그린 거야?"
"어 왜!"
"와, 센스 구리기는."
"뭐? 야! 이게 어디가 어때서!"
"진짜 몰라서 물어? 색도 구리고, 이 여자 구도도 별로잖아."
"?!"
"아저씨 여자 안 사귀어봤지? 여자도 완전 지 상상대로 그렸어."
"뭐라고?!"
"아저씨 거기는 서? 딱 구린 인테리어에 촌스러운 망상 그림, 잘 어울리네."
"#$*&$#*!"
졸지에 1학년짜리 초딩에게 까이고 있는 유재하였다.
세라는 자신이 뽑았던 구석진 창고 자리를 가리키며 웃었다.
"아무튼, 너희 자리는 저기야. 저기서 뭘 팔든 말든 마음대로 하라구."
"세라!"
그리고 그들이 사라지자, 유재하는 수아를 달래며 뒷목을 잡았다.
"와, 지금 애들 축제에 이게 뭔 일 이야!"
"세 달 동안 열심히 준비했는데...!"
그럴 때였다.
"저것들이야? 우리 수아 괴롭힌 게?"
"!"
수아는 주헌의 목소리에 예쁜 얼굴로 훌쩍이며 안겨들었다.
"주헌 오빠아아!"
"그래그래, 우리 수아. 수아가 만든 물건이랑 공연 보러 왔는데 다 망가져서 볼 수가 없네."
"죄송해요. 꼭 1등해서 그 상품을 받고 싶었는데... 그걸 주헌 오빠 결혼 선물로 주려고 했는데!"
그러자 눈을 동그랗게 뜨던 주헌이 웃었다.
그렇게 된 거였나.
곧 주헌이 지시했다.
"유재하, 너 할 짓 없으면 깨진 물건들이랑 가판대 죄다 복원해."
"뭐, 뭐라고요?"
"클로에는 다친 애들 치료해주고, 단은 거지같은 저 천박한 무대 장치 다 부숴버리고."
"네, 네?"
"아, 공명아. 난데. 재물파손으로 죄다 고소장 접수해라. 호구 그림 요즘 꽤 비싸니까 돈 좀 나오겠네. 상대가 누구냐고? 몰라, 상대가 누구든 죽일 준비해."
"?!"
곧 전화를 끊은 주헌은 입꼬리를 올렸다.
"애새끼들이 말이야. 못된 것만 쳐배워가지고."
물론 애들은 그럴 수 있다 쳤다.
"하지만 어른들은 그러면 안 되지."
주헌은 이죽거리면서 어딘가에 전화를 걸었다.
"아, 난데. 지금부터 내가 말하는 거 준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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