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13화. 좋은 소식
주헌의 말에 아이린과 설아가 입을 떡 벌렸다. 아니, 정확히는 그 자리에 있던 단원들까지도.
단지 깜짝 프러포즈를 해서 놀란 건 아니었다. 바로 주헌이 한 말 때문이다.
'아니 지금 뭐라고?'
'지금 내가 제대로 들은 거 맞아?'
아니나 다를까.
"야! 너 지금 뭐, 뭐, 뭐라고? 결혼들?"
가장 먼저 목소리를 낸 건 역시나 율리안.
"미쳤어? 너 지금 두 명한테 청혼을 하는 거... 읍읍!"
"쉿! 청혼 중이잖아!"
"흐으으아-읍!"
단원들도 율리안을 잡아끌었지만, 정작 그들도 놀라고 있었다.
어지간하면 주헌의 행동에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단원들이었지만...
"대박, 누구하나 버릴 것 같진 않았지만, 설마 진짜 둘 다 고를 줄이야!"
"진짜 이럴 줄은 몰랐다...!"
"야야 공명아, 이거 법적으로 문제없는 거냐? 저기 저 이집트로 가야하는 거 아냐?"
"아니... 외국 결혼이면 영국과 호주도 상관은 없어."
그리고 애초에...
'마제스티는 대부분의 현대법에서 제외되는데 뭘.'
단순한 특권 문제는 아니었다. 유물과 관련된 일은 일반적인 법으로 다루지 않고 유물법을 따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유물을 다루는 마제스티는 현대법이 아니라 대부분 유물법을 따랐다.
'아아, 확실히 유물법에 결혼에 대한 조항도 있었던 것 같은데...!'
상세조항이 있지만 대충 조건을 충족하면 일부다처제든 일처다부제는 가능한 것이었다.
특히 주헌이라면 아예 주헌다처제 항목이 생겨도 이상하지 않으리라.
그러나 올곧은 율리안은 멘붕에 빠진 듯했다.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 당당하고 뻔뻔하게!'
하지만 유일하게 한 명. 클로에는 이미 이 상황을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녀는 처음부터 주헌이 생각하는 결혼상대를 알고 있었으니까.
왜?
주헌에게 직접 들었으니까. 그렇게 여자가 좋아할 만한 선물이며 멘트며, 여러 가지를 조언 받아갔으니까.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주헌의 깜짝 청혼에 아이린과 설아는 입을 떡 벌리고 있었다.
주헌에게 청혼을 받은 건 당연히 기뻤다. 울고 싶을 정도로 기쁘고 날뛸 듯이 감격스러운 일이었으니까. 이 순간을 가장 꿈꾸고 바랐던 것은 자신들이었으니까.
마음 같아서는 바로 주헌에게 달려들고도 남았겠지만...
'겨, 결혼들?'
방금 자신들이 들은 게 진짜냐.
"그, 그러니까 저희 둘 모두에게 청혼을 하신...?"
"응. 둘한테 한 건데."
"...?!"
주헌의 태연한 말에 둘은 동공지진을 일으켰다. 하지만 곧 둘은 뭔가를 퍼뜩 깨달은 듯했다.
"아...! 저희 둘 중 살아남는 쪽과 결혼을 하시겠다는 거죠?"
"잘 알겠어요!"
졸지에 배틀로얄을 찍을 생각을 하는 그녀들이었다.
둘은 눈을 번득이며 자신들의 유물을 불러내려 했다. 그리고 유물이 부딪치려는 그 무시무시한 광경에 단원들이 거품을 물었다.
특히 유재하가.
"아악! 성 무너져! 또 무너져! 그마아아안!"
그리고 그때였다.
"에이, 지금 누가 배틀로얄 찍으래?"
주헌은 가볍게 둘의 팔을 가볍게 붙잡았다. 그리고 마제스티의 힘 탓인지, 그녀들이 사용하려면 유물의 기운이 확 죽었다.
그리고 성이 잠잠해지고, 주헌은 둘을 보며 말했다.
"말 그대로 둘 다 나랑 결혼 해달라는 건데."
"?!"
설마 지금 일부다처제를 말하는 건가!
"자, 잠깐 주헌 씨!"
"단장님! 그, 그건...!"
서로를 보던 둘은 주헌을 보았다.
둘은 주헌과 함께 할 수 있다면 뭐든 할 자신은 있었지만...!
"안 돼요!"
"한 명만 골라주세요!"
이건 자신들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였다.
"한 명이 아니면 그 청혼 받아들일 수 어, 없어요!"
"맞아요!"
둘의 의지는 확고했다.
그러자 주헌이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싫음 말고."
"?!"
그는 쿨하게 둘의 반지를 빼가려고 했다. 동시에 아이린과 설아는 멘붕에 빠졌다.
확실했다.
주헌은 정말로 청혼을 철회할 기세였다. 그리고 마침내 정말로 반지가 쑤욱 약지에서 빠져나가려고 하자 둘이 비명을 질렀다.
"누, 누가 싫대요!"
"아니 안 싫어요! 안 싫어!"
"왜? 싫은 거 아니야? 이리 줘."
동시에 주헌의 뒤에서 분노한 동아줄이 씰룩거렸다.
[#$*$#&*!]
결혼 안 할 거면 나 줘! 나 줘!
청혼을 철회하려는 주헌, 그리고 그 반지를 빼앗으려는 유물!
"아, 안 돼!"
"이, 이것만큼은! 절대로!"
아이린과 설아는 반지를 감싸고 필사적으로 도망갔다.
***
[속보입니다. 마제스티의 정신 결혼 상대가 밝혀졌습니다.]
[마제스티의 청혼을 받은 신부는 파산왕 아이린 홀튼, 그리고 사령왕 이설아입니다.]
[마제스티는 두 명의 왕급에게 청혼을 했으며...]
[이에 마제스티가 개종을 하려는 것이냐, 유물의 리스크냐 하는 문제로 번지고 있어...]
삑.
홀튼가.
아이린의 오빠 조지 홀튼은 말없이 TV를 뚝 껐다. 그러자 집사와 메이드들이 그의 눈치를 살폈다.
"저, 조지 도련님?"
"저... 저기."
사용인들은 조지의 얼굴 표정을 보며 눈치를 보고 있었다.
화났다, 빡쳤다, 운다.
차라리 그런 얼굴이면 차라리 나을 지도 몰랐다. 지금 조지의 얼굴은 그런 말로 형용할 수 있는 종류가 아니었다.
'저건 귀신상.'
그랬다.
입을 꾹 다물고 눈을 부릅뜨고, 이마의 힘줄은 터질 것 같고, 심지어 분노의 힘만으로 머리카락을 산발로 휘날릴 수 있을 것 같은 모습.
동양의 불교미술에 나오는 귀신 잡는 귀신의 얼굴이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인간의 얼굴이 아니었다.
"저기, 조지 도련..."
"진짜 아이린이냐."
"네, 네?"
"진짜 결혼 상대가 아이린이냐고!"
"네, 네!"
"그리고 부인이 될 예정이라고?"
"네, 네네..."
결국 조지가 가진 고문의 유물이 폭주했다. 그는 주헌에게 비보를 받아 고문왕으로 각성한 몸.
그리고 지금은 천공의 눈 시스템의 관리자로 판사팀에서 일했다. 유물법을 어긴 놈에게 징역을 먹이고 처벌하는 형벌의 위치라고 해야 하나.
그래서일까.
"마제스티를 당장 체포해에에에에! 나 이 결혼 반대야아아!"
"도, 도련님!"
"죄명은 절도죄다! 그렇게 방해했는데 기어이 내 동생을 가져가? 그것으로도 모자라서 뭐가 어째? 부인이 한 명 더 있어? 젠장, 아이린을 몇 번째 부인으로 삼으려는 거냐!"
조지가 입에서 불을 뿜자 버럭 화를 내는 소리가 들려왔다.
"조지! 시끄럽다!"
"네 돼지 멱따는 소리 때문에 밥을 먹을 수가 없지 않느냐!"
그들은 바로 아이린의 부모였다.
부모들은 조지 때문에 제대로 식사를 할 수 없다며 되려 장남을 나무랐다.
물론 구박 받는 장남은 억울해 미칠 지경이었지만.
"아니 아버지, 어머니! 어떻게 이 소식을 접하고 이렇게 태연하실 수 있어요!"
"왜. 뭐?"
"아니 아이린이 결혼한다잖아요!"
"뭘 새삼. 이미 보름 전에 마제스티가 인사를 하러 오지 않았었니. 너도 그 자리에 있었으면서 벌써 잊었니?"
"아, 아니 그때 그건...!"
"그렇게 뻔히 왔었는데 무슨 영국 공주와 결혼을 한다는 둥, 이상한 소문이나 퍼트리고."
"아, 아니!"
"현실을 부정하는 거니, 그것도 아니면 그 나이에 벌써 치매니?"
"아버지, 어머니! 아니 그래요! 결혼은 천만 번 양보해서 그렇다 쳐요! 하지만 아이린 말고 다른 부인이 또 있다잖아요! 말이 돼요?"
"뭐, 할 말이 없다면 거짓말이지만 어쩌겠니."
"네?!"
"마제스티의 리스크라잖아."
"...!"
그랬다.
주헌의 결혼을 두고 일부다처제, 아니 주헌다처제라고 불릴 만한 이유는 바로 그 탓이었다.
주헌이 신부를 여러 명 고르는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마제스티의 수호자라고 했나.'
전대 마제스티 역시 여러 명의 부인을 뒀다고 한다. 시대가 시대이기도 했지만, 부인들만 다룰 수 있는 특별한 유물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부인들은 마제스티의 수호자로서 각자에게 주어진 특별한 유물을 사용할 수 있었다.
그 형태는 평범한 도구부터 방, 건물, 생물 등 각자 성향이 다른 물건. 주헌이 사용하는 황제의 재보와는 성격이 좀 달랐다.
아무튼 그 유물로 주헌을 수호하지 않으면 마제스티가 힘들어진다나 뭐라나.
그리고 주헌은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마제스티(유물 조율사). 그가 없었으면 진작 이 세계에는 종말이 오고도 남았다.
그런 마당이니 주헌은 거의 전 세계의 보물급으로 귀중하게 모시는 중이었다.
그런데 마제스티가 힘들어져? 쇠약해져? 문제가 생긴다고?
전 세계가 팔짝 뒤집히고도 남을 일이었다. 그러니 주헌다처제라고 해서 당장 신부들을 맞이하라나 뭐라나.
"은인이면 믿을 만한 남자고, 이미 아이린하고 많이 가깝다고 하고, 이 아비는 아이린이 첫 번째 부인이면 만족이란다."
"은인... 아니, 우리 사위한테 좋은 음식 해줘야 할 것 같은데. 뭘로 준비할까요?"
"선물도 준비해야지!"
"아이고 아버지이이! 어머니이이이!"
조지는 울부짖었다.
주헌다처제는 개뿔이!
'이 자식 사기 치는 거 아니야?!'
물론 사기를 치는 건 아니었다. 마제스티의 부인들이 쓸 수 있는 일명 안주인의 재보가 있었으니까.
***
실제로 준은 카페에서 이렇게 말했다.
"만약 그때 폐하께서 묵시 유물에게 당하시고, 동생분이 마제스티로 등극하셨다면 상황은 딱 반대 상황이었겠죠."
"그럼 주원이한테 남편들이 우글우글?"
"네. 재보를 쓰기 위해서라도 마제스티에게 반려자들은 필수니까요. 뭐, 단장님은 그 특별한 재보 사용을 떠나서 그냥 두 분을 반려로 삼고 싶어 하시는 것 같지만."
그 말에 유재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뭐 아이린도 설아도 단장님한테는 특별할 테니까...는 왜 넌 그런 모습이냐?"
유재하는 준을 보면서 헛웃음을 흘렸다.
그도 그럴 법한 게, 준은 소녀의 모습이었던 것이다.
준은 슬퍼했다.
"인간여자를 몰살시키려 했다고, 왕께서 진짜로 접근금지를 내리셔서...!"
틀림없이 동아줄의 조언대로 해보는 것이리라.
탄식하던 유재하는 옆에 있던 설아를 보았다.
그녀는 주헌이 준 결혼반지를 보면서 1초 간격으로 표정이 변하고 있었다.
주헌에게 반지를 받았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해 죽으려는 표정. 하지만 그러다가도 아이린과 단장님을 공유해야 한다는 생각에 울컥.
그것의 무한 반복.
"하나만 해라 좀. 그래서 단장님 청혼 받아들이는 거야 마는 거야?"
"그, 그건...!"
설아는 우물쭈물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난 단장님과 평생 이어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어.'
단장님을 지켜야하는 단원이니까.
예전에 주헌이 기회를 줬을 때, 자신은 주헌의 애인이 아니라 단원의 길을 택했으니까.
그냥 옆에서 지켜보는 걸로 충분하다고 여겼다.
뭐, 사소한 욕심을 품었다면 첩이라도 좋으니 단장님의 아이는 가지고 싶다는 것 정도(?).
그러나 이 기회는 두 번 다시 없을 기회.
"좋아 정했어."
"오오! 드디어!"
그런데 이때였다.
"야, 얼굴 표정 좋아 보인다?"
"!"
설아를 찾아온 낯선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고 유재하는 그들을 보고 깜짝 놀랐다.
"어, 어어?"
그들은 유재하에게 낯설지만 낯익은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이 사람들은...!'
"너 결혼한다며?"
"오, 오빠!"
"마제스티랑 한다며? 처갓집에 예단 필수 아니냐?"
"언니!"
"마제스티네 집으로 처들어가기 전에 빨리 돈 내놔라."
"삼촌...!"
그랬다. 설아가 중국에 인질로 잡혀 있던 장본인들, 바로 그녀의 가족들이었다.
그것도 개 발암덩어리.
그러니 유재하는 입을 떡 벌릴 수밖에.
'분명 단장님이 처리했을 텐데...!'
어떻게 살아나온 건지, 주헌과의 결혼 소식에 귀신 같이 냄새를 맡고 달려든 것이었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아무리 마제스티라도 이러면 안 되지 않아? 인륜지대사인 혼인인데."
"이렇게 경우가 없을 수가 있니?"
"적어도 우리 쪽에 황금 팔찌를 준다던지! 뭐라도 챙겨줘야지!"
"맞아. 돈도 많은 사람이 말이야, 경우가 없어!"
결국 설아는 한숨을 쉬었다. 아무래도 자신 때문에 아이린이 불편해할 것이 신경이 쓰였다.
그리고 주헌에게 폐를 끼치기도 싫고.
'역시 아이린의 행복을 빌어줄까.'
그래서일까.
"!"
설아는 반지를 벗어내려고 했다.
"뭘 잘못 알고 있는 것 같은데, 나 결혼 안..."
그런데 그럴 때였다.
톡톡.
"저기요. 잠깐 저 좀 보시죠?"
그들을 부른 건 다름 아닌 아이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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