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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굴왕-397화 (397/409)

외전 11화. 결혼이 제일 쉬웠어요 上

주헌은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눈썹을 꿈틀거렸다.

홀로그램처럼 떠오른 전광판에는 세계지도와 함께 징글징글한 점이 한가득. 그건 반지가 있는 곳을 알려주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빛의 점들은 바퀴벌레들처럼 우글우글.

주헌은 그걸 보면서 재차 확인했다.

"그러니까 다시 말해봐. 저게 다 뭐라고?"

[찾으시는 반지입니다.]

"그래서 저게 몇 개라고?"

[34,126,311,486,756,744개입니다.]

"몇 개라고?"

[40,376,112,678,876,489개입니다.]

"야이씨. 그 사이에 또 왜 늘어!"

주헌은 천공의 눈을 향해 핸드폰을 집어 던졌다.

경 단위라니, 이건 많아도 너무 많았다.

"왜 그게 하루도 안 돼서 저렇게 증식한 건데! 도대체 새끼를 몇 마리나 치고 있는 거야!"

결국 주헌은 눈을 부릅 떴다.

"너 사기 치는 거 아니지?"

주헌의 말에 천공의 눈은 몸을 떨었다.

[감히 마제스티께 거짓말을 아뢸 리가 없습니다.]

"진짜?"

[지, 진짜입니다!]

뭐, 그럴 것이긴 했다.

천공의 눈 역시 유물인 만큼, 유물 특유의 반항심(?)이 있을 수는 있었다.

하지만 놈은 친히 자신이 유물을 갈아 만든 것.

로봇 3원칙처럼, 놈에게도 안전장치를 해두었었다. 물론 그게 아니더라도 또 다시 갈리기는 싫겠지.

그러니 천공의 눈이 거짓말을 할리는 없었다. 실제로 천공의 눈은 진실을 말하고 있었고.

그 증거로 율리안이 탄식했다. 그는 여기 오면서도 몇 개 발견했다며 반지를 흔들어보였다. 그나마 사막의 모래알 개수로 증식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그나저나 저 중에서 진짜를 어떻게 찾아낼 건데? 아니 저것들 전부 진짜 아니야?"

그가 그렇게 말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이거 드라우프니르잖아."

변하지 않는 왕의 황금 반지(팔찌), 드라우프니르. 오딘의 팔찌이자 왕과 재보의 상징이었다. 반지라고도 하고 팔찌라고도 하지만, 아무튼 이 유물의 능력은 증식.

단순한 복제가 아닌, 정말로 증식이었다.

주신급 유물치고는 큰 능력이 아니었지만, 중요한 유물이긴 했다.

북부신화의 모든 전사들은 자신들에게 황금을 주는 왕에게만 충성을 했다는데, 왕들은 황금을 주는데 인색하면 안 됐다.

그리고 무한한 증식의 능력을 가진 황금 팔찌는 오딘을 절대적인 왕 중 왕으로 만들어주었고.

아무튼 절대권력의 상징이기도 한 만큼, 마제스티에겐 더없이 좋은 반지겠지만...

"왜 하필 결혼반지로 이런 걸 삼은 거야? 좀 더 평범하고 예쁜 게..."

예쁜 게 있지 않느냐고 하려다가 율리안은 입을 다물었다.

저 새끼라면 진짜 이쁘다는 이유로 저주받은 반지, 호프다이아를 가져올 게 뻔했기 때문이다.

'저주반지를 안 가져온 게 어디냐.'

"아무튼 지금이라도 다른 반지를 알아보는 쪽이..."

그러나 율리안의 말에 주헌은 융통성이 없다며 혀를 찼다.

"내가 왜 그걸 가져왔겠어."

"뭐?"

"내 사람들 모두에게 똑같은 반지를 끼워주고 싶었던 거라고. 아내하고 자식한테 공평하게."

"아, 그럼 패밀리 반지 같은 거구나?"

"그런 거지."

확실히 그런 거라면 유일무이한 반지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디 그뿐이랴.

"그건 왕권을 상징하는 반지야. 그걸 끼고 있으면 내가 부재중일 때도 내 신하들을 부릴 수 있어."

"허, 네가 그런 생각도 다 할 줄 알았구나."

"뭐가 어째?"

지금 유물들의 수장은 주헌이었다.

하지만 반지를 끼고 있으면 여차 위험할 때 유물들이 반지를 낀 사람을 지켜줄 수도 있다는 의미였다.

더 잘 활용하면 떡밥을 주듯이 부려먹을 수 있을 것이고.

"아무튼 좋은 반지라는 것에 대해선 이견이 없는데, 저건 늘어도 너무 늘지 않았냐? 어디 몇 개야 40,376,112,678..."

[방금 51,873,033,873,000,089개가 되었습니다.]

"..."

확실했다.

'아무리 증식의 반지라고 해도 평범한 속도가 아니야.'

* * *

그리고 그 추측은 맞았다.

바로 반나절 전.

유재하는 자신을 찾아온 손님의 모습에 황당해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지, 지금 뭐라고?"

아니 오랜만에 미국에 있는 자신의 공방을 찾아온 건 좋았다.

그러니까 회귀후 주헌과 처음 만날 무렵, 라푼젤처럼 숨어있던 바로 그 옛 공방에 말이다.

물론 그 공방에는 사람이 있었지만.

"뭐야, 너 아직도 여기에 있었냐?"

"세상에, 재하 선배!"

바로 공방에서 일하고 있던 여직원, 윤민희였다. 그녀는 유재하의 깜짝 방문에 놀라고 있었다.

"선배가 여긴 어쩐 일이에요?"

"내 집에 내가 온 건데 뭐가 이상해?"

"하지만 선배, 그 깡패 양아치... 아, 아니 아니 마제스티의 복원사가 되고 나서는 한 번도 여기에 안 왔..."

"아, 옛날 물건 좀 챙겨가려고. 그런데 넌 왜 아직도 여기에서 지내냐? 여긴 폐업한다고 다른 자리도 소개해줬잖아."

"그, 그건...!"

윤민희는 대학 후배. 카피캣으로 매장당했던 유재하의 조수 노릇을 했었다.

"선배를 기다리고 있었죠."

"엥? 날 왜?"

그리고 유재하의 질문에 당황하던 윤민희가 재빨리 말했다.

"그 그... 선배, 저한테 돈 빌려간 거 아직도 안 돌려주셨잖아요! 적은 돈도 아니니까 여차하면 이 공방이라도 팔아서 빼가려고 했지 뭐!"

그러자 황당해하던 유재하가 핸드폰을 꺼냈다.

"이씨, 알았어! 주면 되잖아 주면...! 분명 200만 원이었나... 처음부터 부쳐달라고 하면 될걸 왜... 야, 계좌 불러."

동시에 당황한 윤민희가 벌떡 일어섰다.

"아, 아뇨! 나중에요! 저기, 선배를 기다리는 손님이 있어서요!"

"엥? 손님? 누가?"

"어... 음... 그게 그러니까 바디가 아주 매끈한 S라인의..."

"매끈한 S라인? 여성분?!"

"아니 여자라곤 말 안 했..."

그러나 유재하는 듣지도 않고 방에 들이닥쳤다.

"히히, 어느 예쁜 분이 찾아 오셨나~"

그는 옷매무새도 정리하고 나름 화병에 꽂혀있던 꽃도 뽑아갔다.

하지만.

[$#*&$*!]

이거 복제해줘! 해줘!

S라인의 미녀는 개뿔.

거기엔 뭔 크림이라도 처바른 건지 반짝 반짝 윤광을 자랑하는 S라인의 밧줄이 있었다.

그러니 황당할 수밖에!

"야! 뭐야! 네가 왜 여기에 있어!"

유재하는 꽃을 집어던졌다.

동아줄은 나름대로 주헌을 꼬셔보려는 건지, S라인의 자세를 유지하면서 반지를 내밀었다.

유재하는 깜짝 놀랐다.

"뭐야! 이게 왜 여기에 있는데?!"

이건 틀림없이 단장님이 없어졌다고 한 결혼반지.

"이거 니가 갖고 있었어?!"

그러자 동아줄은 고개를 끄덕였다.

[#*$&*!]

이거 복제해줘! 해줘! 숨길 거야! 숨길 거야!

동아줄이 내미는 쪽지에 유재하는 헛웃음을 흘렸다. 동아줄이 이러는 의도를 모를 리가 없기 때문이다.

'나뭇잎을 숨기려면 숲속에 숨기라는 건가.'

"야, 안 돼. 니 맘은 알겠는데 맘대로 그런 짓했다간 나 또 단장님한테 쳐맞아."

유재하가 거절하자 동아줄이 뭔가를 벌컥 열었다.

"!"

그건 다름 아닌 돈다발!

"뭐, 뭐야. 이, 이거!"

그뿐이 아니었다.

벌컥! 벌컥!

여기저기서 쏟아지는 귀한 물건들!

"으악! 이거 X게임 초한정판 아이템 룩 패키지 쿠폰이잖아! 거기에 브룩스 콘서트 VIP 좌석 티켓! 대박, 저거 구하기 엄청 힘든 건데! 우와아아아!"

유재하는 신이 나서 그걸 집어들려고 했지만 동아줄이 재빨리 도로 가져갔다.

[#&$^&!]

복제해줘! 해줘!

"이, 이자식이!"

유재하는 당황스러웠다.

그러나 동아줄은 마치 낚시를 하듯이 미끼들을 계속 투척했다.

이번에 던진 건 유재하가 그렇게 찾아 헤매던 절판 게임 CD!

"뭐야! 저 희귀 게임이 왜 여기에! 아악! 심지어 저건 존 형님의 싸인!"

[#*$&*!]

이것들 가지고 싶지? 가지고 싶지?

"이, 이씨?!"

[#$*&*!]

복제해줘! 해줘!

순간 넘어갈 뻔했지만, 유재하는 곧 비웃음을 흘렸다.

왜?

"날 뭘로 보고! 그거 죄다 짜가잖아!"

그러자 어딘가에 숨어 있던 다빈치의 유물이 삐질 땀을 흘렸다.

'드, 들켰나.'

유재하는 빼꼼 얼굴을 내미는 제 유물에 어처구니가 없었다.

"으이구, 니가 만든 걸 내가 못 알아볼 것 같냐! 인간 손을 거쳐야 100% 짜리 짝퉁이 나오지. 아무튼 반지 이리 줘. 그거 내가 단장님한테 돌려줄 테니까..."

동아줄은 유재하가 다가오자 당황하며 뒷걸음질을 쳤고, 다빈치의 수첩이 다급하게 보고했다.

[호, 호구놈 꼬시기 실패다! 지원을 바란다!]

그 순간이었다.

쨍그랑!

[붙잡아라! 붙잡아!]

"뭐, 뭐야?!]

창문이 깨지고, 뒤통수를 얻어맞은 유재하는 꽥 정신을 잃었다.

* * *

"그러니까 지, 지금 나더러 반지 복제를 하라고?"

그후 어디로 납치당한 건지는 모르겠는데, 깨어난 곳은 고급스러운 호텔이었다.

그리고.

"맞아요. 재하 형. 떼돈을 벌 수 있는 기회라구요."

준 녀석이 눈 앞에 있었다. 아니 어디 준 뿐이랴.

유재하의 앞에는 유물들이 우글우글 몰려와 있었다.

[#$$#&*!]

[#*#&$*!]

그리고 유물들은 호구왕을 묶어서 복제하게 하자, 별 난리를 쳤지만 글쎄.

"지금 반지원정대가 꾸려지고 있어요. 형이 만든 실력의 위조품이라면 떼돈을 벌 수 있다니까?"

준이 난폭한 유물들을 지르밟고, 유재하를 살살 꼬시고 있었다.

"형, 이거 완전 대박 기회라니까?"

"...야야! 뭔 생각인진 알겠는데 안 돼. 단장님이 화낸다고!"

"아니. 오히려 창조경제라고 칭찬 하실걸? 게다가 단장님이라면 모조품도 금방 찾아낼 거 아니야."

그러자 유재하는 솔깃하듯 슬그머니 준을 보았다.

"야, 아무리 그래도..."

동시에 준이 손짓하자 유물들이 천막을 걷어냈다.

그리고 나타난 물건들은 어마어마한 달러들과 유재하가 가지고 싶어하던 게임들과 옷 등등!

"이, 이건...!!"

하물며 아까 동아줄이 가짜고 낚으려고 했던 것들까지 이번엔 진품으로 모셔져 있었다!

"형이 하고 싶어 하던 게임 10년치 분이야. 질릴 때까지 해도 된다고."

"이, 이 귀한 것들을 어떻게...!"

어떻게 구하긴.

'재하 씨. 파이팅.'

이들과 손을 잡은 공주들이 수줍게 카드를 긁은 것이지.

동시에 유재하는 눈을 번득였다.

그리고 현재.

[전파가 닿지 않는 곳에 있어...]

"사기왕 이 새끼."

주헌은 무한 증식한 반지를 보고 이를 갈았다.

그러니까 이 사태는 유물의 증식과 복제가 시너지를 이루어 벌어진 사태였던 것이다.

왜?

반지 1개가 새끼를 치는 것과, 반지 1억 개가 동시에 새끼를 치는 것과는 증식 속도가 다를 테니까.

'그러니까 복제된 놈들까지 새끼를 치고 있는 거지.'

게다가 어찌나 똑같이 복제를 했는지.

그리고 범인을 알아챈 주헌은 부글부글 끓는 마음으로 문자를 보냈었다.

[원본 어딨어.]

그러나 돌아온 대답은 한마디.

[절 찾지 말아주세요.]

이에 주헌은 분노를 담아 궁니르부터 냅다 던졌었다.

그리고 잠시 뒤, 유재하에게 전화를 걸었었다.

"새끼야, 두 번 말 안 한다. 원본 어느 거야."

전화를 받은 유재하는 엉엉 울고 있었다. 아무래도 도망치려다가 궁니르에게 막힌 것이 틀림없었다.

그는 다리 가랑이 사이에서 씰룩이는 궁니르를 보며 떨고 있었다.

[으앙 죄송해요! 그런데 저도 어느 게 진짜인지 모르겠어요!]

"뭐? 그게 무슨 소리야? 니가 그걸 왜 몰라!"

[아니 유물들이 자꾸 칭찬을 해주니까, 저도 모르게 그만 힘이 들어가서...]

"..."

그러니까 다시 말하면, 그랜드캐니언에 갔던 당시 마몬의 무덤을 복제했던 때와 똑같은 상황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아니 갑자기 반지가 폭주를 해서...! 그리고 단장님이라면 금방 찾을 줄 알았지! 그리고 공명이도 있으니까..!]

그 말에 옆에 있던 공명이가 뒷목을 잡았다.

"야씨, 복제해도 정도껏 늘렸어야지!"

51,873,033,873,000,089개... 아니 또 늘어나버린 놈들을 언제 하나하나 다 보고 앉았냐!

솔직히 주헌도 그 쌩노가다를 하고 싶진 않았다.

뭐, 증식의 기능이 있는 줄 모르고 복제하다가 이 사단이 난 것 같긴 하다만.

'원본을 찾는 것도 문제지만 복제도 문제군.'

복제품이라곤 하나 나름 주신급 유물. 이 생명력이 끈질긴 바퀴벌레들을 도대체 어떻게 박멸해야...

물론 유물들이야 기뻐하며 주헌에게 이렇게 말했지만.

[왕이시여! 이제 52,342,103,793,031,009명의 신부와 결혼하실 수 있게 되었습니다!]

[와! 만세! 만세!]

"..."

이것들을 콱.

"이렇게 된 이상 할 수 없지."

주헌의 한숨에 율리안은 움찔했다.

"뭐야, 설마 진짜 저 숫자의 사람들하고 다 결혼하려고?!"

"돌았냐!"

벌떡 일어선 주헌은 그 해결책을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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