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9화. 파혼 프로젝트 下
"젠장, 이 자식 진짜 결혼 상대가 누구야?"
단원들은 혼란에 빠졌다.
주헌은 왜 당연한 걸 묻느냐며 일을 진행하고 있었지만, 정작 자신들은 누구인지 모르다니.
하지만 뜻밖에도 상대가 누구인지는 금방 밝혀졌다.
바로 조지 때문이었다.
"아, 그거 누구인지 들었어."
"뭐? 누군데?"
아이린의 오빠 조지 홀튼. 지금까지 주헌을 도와준 일등공신이기도 했다.
그리고 단원들의 질문에 조지는 어이가 없었던 모양이었다.
"뭐야. 니들은 그놈하고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면서 여태껏 못 들었단 말이야?"
단원들은 살짝 자존심이 상한 모양이었다.
일 때문에 천공의 눈 시스템을 감시하고 있는 조지를 찾아온 건 좋은데, 뜻밖에도 주헌의 결혼 상대를 조지의 입에서 듣게 되다니.
"그럼 넌 직접 단장님한테 들었단 말이야?"
조지는 의기양양하게 웃었다.
"당연하지. 나한테 허락까지 받으러 왔는걸."
"!"
그들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면 역시 상대는 아이린...?"
"과 친한 할리우드 배우야."
"뭐, 뭐?"
이건 또 무슨 소리래, 당황한 단원들이 외쳤다.
"허락을 받으러 왔다며!"
"맞아. 미안하다더라. 아이린이 아닌 다른 상대와 결혼할 테니까 미안하다는 건지."
단원들은 입을 떡 벌렸다.
"아무튼 정말로 헐리웃 배우랑 결혼한다고?"
그러자 조지는 뭔가를 말하려다가 쉿, 하고 입가에 손가락을 가져갔다.
그리고.
"속보야, 속보!"
"누가 상대인지 알아냈다고!"
바깥에서 우르르 사람들이 사라지는 소리가 들렸다.
이에 단원들은 황당해했다.
"기자들이 여기까지..."
그리고 기자들이 사라지자 그제야 조지가 웃으며 말했다.
"헐리웃 배우는 농담이고, 진짜는 다른 인물."
"그럼 그렇지..."
"그럼 이걸로 상대는 빼박 아이린..."
"은 아니고 영국 공주인 것 같더라."
"?!"
아니, 이건 또 무슨 소리야?
"왜 갑자기 거기서 영국 공주가 튀어나오는데?"
"물론 영국 공주 다이애나는 단장의 팬클럽 회원이지..."
"최근 그걸 계기로 단장님하고 친해진 건 알고 있는데..."
"그래도 그것만으로는..."
그래서 또 기자들을 의식한 거짓인줄 알았는데, 조지는 이번엔 정말이라고 했다.
"버킹업 궁전에 예물을 보내는 걸 내가 도와줬다고."
"저, 정말로?"
"그래, 그리고 녀석이 도굴해온 그 반지 말이야."
"그 예물반지 유물?"
"그 반지는 왕족가의 유물이야. 왕족이 쓰면 효과가 증가하는 유물이지. 왜 굳이 그런 걸 예물반지로 도굴해왔겠어?'
"...!"
이쯤 되자 묘한 신빙성이 있었다.
최근 팬클럽의 존재를 알게 된 주헌이 자주 공주들과 만남을 가졌던 것도 그렇고.
덕분에 스캔들도 떠돌아다녔고 주헌이나 공주는 아니라고 부정했지만...
'원래 모든 열애설 기사가 뜨면 아니라고 부인하지.'
그리고 그렇게 부인한 후에 꼭 몇 개월 뒤. '우리 결혼해요, 축복해주세요.' 그딴 우롱(?) 기사가 뜨지.
동시에 클로에가 한마디 덧붙였다.
"그러고 보면 최근 다이애나 공주를 보면 태기가 느껴진다고, 그런 소문도 있었죠."
"뭐, 뭐? 태기?"
남자 단원들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서, 설마...
'속도위반?!'
'설마 그래서 결혼을 갑자기 서두르는 거 아니야?'
'이, 이 자식 도대체 무슨 짓을...!'
그들은 입만 뻐끔거렸다.
주헌이라면 이상할 것도 없을 일이니 단원들은 멘붕에 빠졌다.
그러나 정작 조지는 기분이 좋은 듯했다.
"뭐 축하해줄 일이지!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난 또 아이린하고 결혼한다고 할 줄 알았거든. 하하하."
그러고 보니 잊고 있었다.
이 새끼도 시스콤이라는 것을.
"은인이긴 하지만 그래도 안 돼. 내 동생은 내가 끼고 살 거라고. 아이린도 그놈이랑 더 가까워지기 전에 헤어져서 다행이지."
이미 가까울 만큼 가까운데요.
아무래야 좋았다.
"아무리 그래도 단장이 그 정도로 간 크게 사고를 쳤을 리 없잖아요."
"속도위반이라니...!"
심지어 왕족과?
그리고 이때 단원들은 슬그머니 누군가를 보았다.
"설아야, 너 괜찮니?"
"..."
설아는 이미 새하얀 재가 되고 말았다. 건들면 그 즉시 가루로 변해 날아갈지도 몰랐다.
그리고 그때였다.
부르르.
"!"
율리안에게 전화가 왔다. 그리고 상대를 확인한 그는 핏대 솟은 목으로 소리부터 질렀다.
* * *
"야 이 자식아!"
상대는 다름 아닌 주헌이었다. 그리고 율리안은 욕을 삼켰다.
왜?
서주헌은 자신의 번호를 스팸으로 저장이나 안 했으면 다행일 놈이었다. 그런 놈이 먼저 자신에게 전화를 해?
그럼 용건은 보나마나 셋 중 하나.
'첫 번째, 뒤처리. 두 번째 뒤처리, 세 번째도 뒤처리.'
"또 뭘 처리해달라고 전화를 한 거야, 이 사고뭉치야!"
뭐, 말은 그리 해도 주헌이 뭘 덮어달라고 할지 뻔했다.
아니나 다를까.
[지금 이상한 기사가 막 나오고 있는데.]
"아, 할리우드 배우랑 결혼하신다는 기사요?"
[오, 알면 이야기는 빠르네. 그래. 뭔 배우가 내 상대야. 이거 잘못된 거라는 거 알지?]
"알지."
율리안은 아무리 그래도 주헌이 그 정도로 쓰레기라 생각하진 않았다.
'아무리 그래도 아이린이 있는데.'
"알았어. 기사는 정정해줄 테니까 너 또 이상한 사고치지 말고..."
[이런 허위기사는 태교에 안 좋다고.]
"......?!"
율리안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태, 태교?
"자, 잠깐만 뭐라고? 지금 뭐라고 했어 너?"
[애 엄마 놀란다고. 그리고 이딴 걸로 결혼도 안 한 부부의 사이가 험악해지면 책임질 거야? 파혼당하면 네 책임이야.]
"......#$*&*?!"
[아무튼 사진 다 내리고, 허위사실 유포로 기자들 죄다 고소미 먹이고.]
뚝.
주헌은 정말 제 할말만 하고 끝어버렸다. 그리고 율리안의 표정에 다들 고개를 갸웃거렸다.
"부, 부단장 왜 그래?"
넋을 잃은 율리안이 문득 물었다.
"그... 얘들아, 혹시나 해서 묻는데 아이린이나 설아나... 혹시 임신같은 거 안 했지?"
단원들은 황당해했다.
"그럴 리가 없잖아. 단장이 그런 거 얼마나 철저한데."
그걸 증명하듯, 설아가 훌쩍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들은 눈치를 보았다.
"뭐, 그래도 여자 쪽에서 작정하고 덤비면 또 어찌 될지는 모르지...?"
그 말에 율리안은 얼굴을 부여잡고 괴로운 신음을 흘렸다.
"...축하한다, 오늘부로 로얄패밀리를 형수님으로 모시게 되었다."
"?!"
"축의금은 가득 해야겠네..."
뭐, 뭐라고?!
* * *
그리고 그 무렵, 공명이와 전화를 끊은 주헌은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뭐지, 이 녀석. 반응이 왜 이래?"
뭐, 아무래야 좋았다.
주헌은 화상채팅 중인 상대에게 고개를 돌렸다.
"고지식하긴 해도 내 변호사가 굉장히 유능해. 그러니까 신경 쓰지 마, 줄리아. 제임스. 죄다 고소미 먹이게 해줄 테니까."
[저, 정말 기사 내려가는 거 맞죠?]
"그래. 괜히 이상한 기사들 때문에 예비신랑신부들 맘 썩게 했네."
그랬다. 주헌이 대화하고 있는 상대는 다름 아닌 조지가 거론한 그 헐리웃 배우였다.
그리고 여배우 줄리아는 주헌의 팬클럽 일원이었고, 주헌과 친해졌다.
게다가 지금은 비밀연애중이지만 아이를 임신했고.
[고맙습니다. 주헌 씨. 다음 달까지는 언론에 비밀로 하고 싶어서 급히 내려달라고...]
[치, 그래도 주헌 님하고 스캔들 나보는 게 쉽나. 너무 아쉬운데.]
[주, 줄리아!]
[아, 벌써 기사 내려가기 시작했어...! 안 돼, 스샷 찍어놔야 해!]
[나참, 어? 잠깐만요. 주, 주헌 씨!]
문득 예비 신랑 쪽이 다급하게 주헌을 불렀다.
"주헌 씨 결혼상대라는 게... 로얄패밀리였습니까?"
"엥??"
주헌은 그게 뭔 소리냐며 기사들을 보았다.
[<속보>서주헌 결혼 상대, "다이애나 공주"]
[영국 왕실 '굉장히 기뻐할 일.']
그리고 이어서 주헌에게 문자가 날아왔다.
[단장님, 말이라도 해주시지...ㅠㅠ]
[아이린 멘붕 중.]
[단장님, 능력자.]
계속 이어지는 단원들의 문자에 주헌은 드물게 당황하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충격적인 건...
[주헌 씨, 제 몫만큼 행복해야해요...!]
"?!"
아이린의 훌쩍이는 기습 음성 메시지였다.
아니,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뭔가 일이 이상하게 돌아가도 제대로 이상하게 돌아가는 것 같았다.
그래서일까.
'할 수 없지.'
이왕 이리 된 거 오해 없도록. 제대로 프로포즈를 하는 수밖에!
결국 주헌은 서랍에서 반지 케이스를 꺼내들었다. 무엇보다 자신이 이번에 가지고 왔던 반지는 평범한 유물이 아니었다.
무려 SS급 기능의 유물.
이걸 받으면 새신부도 분명 기뻐할 것이었다.
하지만.
"?!"
없었다.
케이스 안에 있어야 할 반지가!
주헌은 눈살을 찌푸렸다.
"야, 까마귀. 이거 어디 갔어."
하지만.
[본체와 연결이 닿지 않습니다.]
[잠시 잠수중입니다.]
"..."
아무래도 토낀 모양이었다. 뭐 반짝이는 물건이라고 물어갔다고 하기엔 케이스에 남아 있는 흔적이 상당히 다수.
'이것들이.'
결국 주헌에게서 흉흉한 지배력이 뿜어져나왔다. 그리고 한국에서 뻗어나가는 마제스티의 지배력!
이에 전 세계의 유물들이 빼애액 비명을 질렀다.
[으아아아! 마제스티가 눈치를 챘다!]
[빨리, 빨리 그 반지 유물을 빼돌려라!]
[이 결혼 반대한다! 반대한다!]
[마제스티가 인간과 결혼하면 은밀한 비서는 더 이상 나올 수 없다! 없다!]
[마제스티는 재능을 낭비해서는 안 된다! 안 된다!]
[요람과 결합해 유물 번식에 힘을 써야 한다! 한다!]
[유물 멸종 반대!]
유물들은 급하게 반지를 빼돌렸다. 어디 그뿐인가.
"서주헌이 가져온 결혼반지, SS급의 엄청난 기능의 유물이래!"
"뭐라고?"
"그걸 가진 자가 천하를 쥔대!"
"뭐가 어째?!"
"어쨌든 서주헌이 직접 도굴했을 정도면 보통 유물이 아닐 거 아냐!"
이상한 소문이 돌면서 반지를 노리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이쯤 되자 주헌은 눈살을 찌푸렸다.
"칫, 그 반지가 있어야 청혼을 하는데..."
필수적인 건 아니고, 능력도 제법 평범하긴 하지만 그래도 그만한 반지는 없었다.
'반지도 없이 청혼을 하는 건 체면을 구기는 일이지.'
주헌은 일단 반지부터 찾기로 했다. 하지만 그렇게 쉽게 찾을 순 없을 것 같았다.
왜?
"도련님. 마제스티께서 반지에 대해서 협력 요청을 해오셨습니다."
"아 알고 있어. 청혼 반지를 분실했다며? 은인이니까 모든 망을 동원해서 찾아줘. 이걸로 왕실하고 관계가 나빠지면 그렇잖아."
그러자 집사가 아이린의 오빠, 조지 홀튼의 눈치를 살폈다.
조지 홀튼은 뛰어난 수완으로 지금까지도, 또 앞으로도 주헌을 도와줄 조력자.
하지만 어째 이 도련님이 아직까지 뭔가 잘못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저, 도련님."
"뭐?"
"마제스티께서 결혼하고자 하시는 상대는 영국 로얄 패밀리가 아닙니다."
"엥?"
"저... 버킹엄에서 왕족의 부지를 빌려주는 걸로 소문이 와전 된 것 같습니다만..."
"뭐? 하지만 얼마 전에 우리집에 미안하다고 인사하러 왔잖아."
분명 주헌과 이렇게 말했는데.
'나 결혼할 거야.'
'상대는 누군데?'
'너도 잘 아는 사람이지. 언론에서도 이미 짐작해서 골치 아프지만.'
그리고 그 당시 조지가 조간신문에서 봤던 건 영국 공주와의 열애설.
'아, 아아...! 최고의 상대지. 말만 해. 내가 최대한 좋은 혼수용품을 넣어줄 테니. 아버지 어머니도 기뻐하실 거야.'
'그래도 미리 미안해.'
'왜? 뭐가?'
'너 동생 팔불출이잖아?'
주헌은 동생을 빼앗아가서 미안하다는 말을 한 것이었지만...
'어? 아아 괜찮아. 그런 것쯤이야. 이런 경사에 내가 툴툴댈 순 없지.'
조지는 동생과 연애하다가 짝을 바꿔서 사과하는 줄 알았다.
'오히려 내가 고맙지. 그런 일로 마제스티가 직접 우리집까지 찾아와주고. 우리 동생을 그렇게까지 생각해주다니. 역시 은인은 최고의 남자야.'
그리고 현재.
"네, 그때 잘못 받아들이신 것 같습니다만 마제스티께서는 아이린 아가씨를 데려가고 싶다고..."
그 말에 조지의 표정이 굳었다.
"...그, 그거 진짜야?"
"네. 아무래도 제대로 말씀드려야 할 것 같아서..."
"그, 그럼 지금 은인이 찾고 있는 반지의 주인이 아이린?!"
"네. 그러니 도련님 말씀대로 서둘러 찾겠..."
그러나 조지의 눈에서 동공 지진이 일어났다.
그리고.
"퍼트려..."
"네?"
"당장 소문 퍼트려! 그 반지를 가지면 절대정력을 가지게 된다고! 그리고 상대가 누구든지 지상최고의 속궁합을 자랑하게 된다고오오!"
"네, 네?!"
"거기에 그 반지를 얻으면 은인을 쟁취할 수 있다고 뿌리라고오오!"
"도, 도련님! 그건 좀...!"
"악! 네가 안 하겠다면 내가 할 거야!"
조지는 벌떡 일어섰다.
그 결과 반지를 노리는 사람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그 단위는 그야말로 전 세계적!
"꺄악! 주헌 님의 신부는 나야!"
"아냐, 나라고!"
"그 반지를 얻으면 천하를 얻을 수 있다! 우리 왕국 건설을 위해 반드시 얻어야 한다!"
"뭐, 뭐라고? 그 반지가 세계를 지배하는 반지라고?"
"그걸 가지면 절대 거기가 죽지 않는대!"
"아냐, 인류를 구원할 탈모 치료제라고 했어!"
"핵무기라고 했어!"
팬들, 테러리스트, 각국 수장들, 기업들, 모든 사람들이 반지에 눈이 돌아갔다.
결국 그렇게 주헌의 반지를 둘러싼 전쟁이 시작되었다.
게다가 설상가상으로...
"그 반지는 반드시 파괴해야 해요."
"맞아요. 우리가 못 가질 바에야 아무도 못 가져!"
"이 결혼 파혼이야!"
설아와 아이린이 손을 잡고 폭주하고 있었다. 그렇게 반지는 세계 규모의 일로 번지게 되고...
"조, 조지 도련님. 정말 이래도 되는 건가요?"
"하하하하하하하하, 이 결혼 반대야. 반대라고. 계획은 완벽해."
하지만 주헌을 빼고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
반지는 한 개가 아니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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