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굴왕-392화 (392/409)

외전 6화. 약혼녀 빼앗겨봤어? 下

동아줄은 주헌의 몸을 스물스물 감으면서 얼굴 가까이 다가왔다.

당황한 주헌은 반사적으로 몸을 빼려고 했지만.

"큭!"

[#$*!]

그거 무슨 소리야? 무슨 소리야?

마치 어딜 도망가느냐는 듯 눈을 반짝이며 주헌을 붙잡았다.

거칠게 다루는 건 아니었지만 뭐랄까, 쉽게 빠져나갈 수 없다고 해야 하나.

묘한 힘이 느껴졌다. 심지어 헤라클레스의 힘을 쓰고 있는데도 쉽게 벗어날 수 없었다.

결국 움직일 수 없던 주헌이 동아줄을 살살 달랬다.

"잠깐. 아줄아? 이거 놔야지? 주인님을 이리 감으면 혼나는 거지?"

분명 예전에도 이와 비슷한 상황을 겪은 적이 있었지. 분명 예전에 온천탕에서 목욕을 하고 있을 때.

그때도 폭주한 동아줄을 풀어내느라 개고생을 했었건만.

하지만 동아줄은 눈을 반짝이다 못해 번쩍이면서 뭔가를 눈앞에 가져왔다.

그건 다름 아닌 반지!

[#$*&!]

이건 뭐야? 뭐야?

뭐긴 뭐야, 예물반지지.

비보로 승급한 덕분인지, 동아줄의 말을 70% 가량 알아듣게 된 주헌이었지만, 그는 드물게 당황스러웠다.

'젠장. 눈앞에 있는 건 밧줄이야. 밧줄인데...'

왜 바람 피다가 걸린 것 같은 느낌인거지?

'아니 그전에, 밧줄 녀석이 반지의 의미를 알기는 아나?'

의미를 모를 리가 없었다. 그간 비만 멍멍이들 때문에 TV 드라마까지 강제로 섭렵한 동아줄이었다.

물론 결혼이라든가, 반지라든가, 그런 건 전부 인간들의 이해할 수 없는 문화긴 하지만 글쎄.

남자주인공이 여자주인공에게 반지를 끼워주면 결혼이라는 이름 아래 백년가약을 맺는 것쯤은 아주 잘 알았다!

그게 뭘 의미하는 지도!

그래서일까.

[#$*&$*!]

이거 뭐야? 뭐야?

반지를 든 동아줄은 탕탕, 꼬리로 바닥을 내리쳤다.

뭔가 항의라도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문제는 동아줄뿐만이 아니었다.

"단장, 그래서 왜 몰리를 만난 건데?"

율리안이 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사진을 들고 있었다.

사진에는 주헌이 아름다운 여인과 한 테이블에 앉아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그, 그래! 어차피 이번 생에선 만난 적 없는 남이니까 쪼잔하게 뭐라 할 생각은 없어! 그, 그래도 왜 만난 거야?"

"왜긴? 이쁜 여자를 만나는데 이유가 필요해?"

"#*$#&*?!"

그러자 유재하가 날름 끼어들었다.

"봐! 결혼하려는 거라니까! 여기 이 해변, 신혼여행지로 유명하다고! 게다가 이 반지 케이스! 몰리 이름도 쓰여 있다고. 봐봐!"

"?!"

율리안은 케이스의 각인에 아주 파스스 재가 될 지경이었다. 유재하는 쿄쿄쿄 얄밉게 웃었다.

"봐 공명아, 너도 단장님이랑 한 팀을 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니까?"

결국 율리안은 이성과 다르게 울부짖었다.

"서주헌 너 이 못된 자식! 그때도 그러더니, 이번 생에도 내 피앙세한테...! 그때만 생각하면 지금도 너랑은 콱 연을 끊고 싶은 심정인데!"

그러자 주헌은 헛웃음을 흘렸다.

아니, 지금은 유재하의 속 보이는 반격이 문제가 아니었다.

"뭐? 지금도 연을 끊고 싶다고? 야, 그때 몇 년 말 안했으면 됐지. 고작 약혼녀가 도망간 일로 아직도 쪼잔하게 그래? 그리고 그땐 나도 솔직히 억울했거든!"

"뭐, 뭐?! 뭐가 어쩌고 저째!"

"아무튼 너 그거 문제야! 이 속 좁은 놈아!"

"#$*#&*!"

율리안은 정말 억울했다.

아니 하루아침에 멀쩡한 사이를 파혼 낸 게 누구인데!

* * *

"몰리 로렌스입니다. 잘 부탁드려요."

몰리는 유럽계 기업의 외동딸이었다. 무엇보다 그녀는 TKBM의 중요한 거래처 상대.

즉, 권 회장의 손님이었다.

물론 홀튼가와 비교하면 작은 규모긴 하지만, 그래도 글로벌기업.

권 회장이 꼭 아군으로 두고 싶어했다.

'중요한 손님이니까, 책임지고 모셔.'

그래서 원래는 주헌이 몰리의 에스코트를 맡게 되어 있었다. 하지만 주헌은 바쁘다는 이유로 거절을 빙자한 무시.

'미쳤어? 내가 왜?'

결국 그 땜빵(?)으로 율리안이 몰리를 한 달 동안 손님으로 모시게 되었다.

"그런데 그 사이에 눈이 맞았다는 거지? 이야, 장난 아닌. 공명이 능력... 큭!"

유재하의 머리를 친 주헌이 말했다.

"아무튼 그 계기로 만나서 결국엔 결혼 약속까지 하게 됐다는 거지? 축하한다. 팀에서는 두 번째 유부남이네."

"1년 동안 왜 자진해서 해외지부 출장을 나가셨는지 알겠네요. 일이 아니라 신부보러 나가신 거였구나?"

"하, 하하."

어쨌거나 율리안은 축하를 받으며 결혼식을 준비했다.

그의 결혼식에는 주헌도 기뻐했다.

몰리는 당시 파산왕으로 유명한 아이린이나 설아나 클로에만큼 빼어난 미인은 아니었지만, 예쁜 여인. 착하고 수수하고 능력도 아주 좋았다.

"만나서 이야기 해보니 마음에 드는 여자더라."

당시 주헌이 그렇게 칭찬하는 사람은 정말 몇 안 되었기 때문에 단원들은 굉장히 놀라워했다.

아무튼 평화롭게 노총각(?) 장가보내기 프로젝트는 성공적으로 진행되는 것 같았다.

뭐, 문제는 결혼 전에 있던 짓궂은 총각 처녀 파티였지만.

"야, 야! 진짜 너희 이러기야?!"

율리안에게는 절세미녀들을 소집.

"꺄악!"

몰리에게는 꽃미남들 소집. 심지어 주역은 바로 주헌이었다.

"내가 오늘 니 약혼녀, 제대로 꼬셔본다. 각오해."

"뭐, 뭐라고? 야!"

평소의 폐인 꼴과는 다르게 제대로 멋을 부린 주헌은 낄낄 웃어댔다.

"자, 내기야. 내 꼬임에 네 약혼녀가 안 넘어오면 내가 니들 신혼집에 최신식 냉장고 하나 쏴주지."

"자, 잠깐만! 냉장고는 좋지만... 너! 너무 꾸몄잖아! 악! 답지 않게 잘해주지 마. 이 녀석아!"

뭐, 안 넘어올 여자라는 걸 아니까 선물 주는 이벤트 겸 몰리와 이야기도 할 겸, 주헌도 나섰던 것이지만.

그런데 이게 웬걸.

주헌이 힘을 줘도 너무 힘을 준 모양이었다.

[다른 남자분을 좋아하게 된 저는 율리안 님과 감히 결혼을 할 자격이 없어요.]

그렇게 약혼 날 도망가버린 피앙세. 여자 쪽에서 자신이 죄인이라며, 충분한 위자료와 사과를 해오면서 잘 마무리되었지만 그러면 뭘 하나.

주헌과 율리안, 두 친구는 충격과 공포에 빠졌다.

뭐, 그 뒤로 주헌과 율리안은 말로는 못할 원수 아닌 민망한 원수 관계가 되었다.

주헌조차도 미안해하며 율리안에게 사과하려 했지만, 당시 피앙세를 빼앗긴 율리안이 주헌을 죽이지나 않으면 다행.

덕분에 설아가 고생을 많이 했다.

그리고 현재.

"너 솔직히 말해. 그때 몰리한테 무슨 짓을 했는데, 몰리가 너한테 넘어가?"

그 말에 유재하가 또르륵 눈알을 굴렸다.

그러고 보면 그때 잠깐 뜨고 말았던 소문들이 있었지. 그중에는 주헌이 몰리를 꼬시다 못해 함께 밤을 보냈다는 이야기까지.

뭐, 주헌을 잘 아니까 다들 믿지도 않았지만.

아니나 다를까, 주헌이 말했다.

"야. 알잖아. 아무 짓도 안 했어. 그리고 몰리가 나한테 넘어온 거 아니야. 그냥 네 약혼녀가 오해한 거야."

"뭐?"

"그땐 몰랐는데, 너희 그날 호텔에서 같이 잤지?"

"어, 그랬지. 몰리가 많이 취해있었지만..."

"몰리가 착각한 거야. 나랑 같이 하룻밤을 보냈다고. 그래서 스스로 죄책감을 느낀 거지."

"뭐?! 왜?"

율리안은 경악했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왜 그런 말도 안 되는 착각을.

"몰라. 그때 몰리가 누구한테 확인을 했던 모양이야. 호텔에 들어갔던 사람이 누군지. 그리고 그 사람이 나라고 이야기한 거지."

아니, 물론 주헌이 들어가긴 했었다. 서프라이즈 파티겸 율리안을 몰래 데려다주면서.

"아니, 그럼 도대체 누가 그런 거짓말을 했다는 거야?"

"몰라. 아무튼 콱 걸리기만 하면..."

그런데 그때였다.

묘하게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유재하의 얼굴이 땀에 젖어갔다.

둘의 대화를 들으면서 깨달은 게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분명 그날 몰리가 나한테 이상한 질문을...'

그날 아침.

숙취에 절은 유재하한테 몰리가 다급하게 이렇게 물어왔었다.

'재하 씨, 다들 모른다는데 재하 씨는 알죠? 그날 제 방에 들어온 사람이요.'

'어 왜?'

'이런 게 떨어져서 있어서...'

몰리가 보여준 것은 다름 아닌 지포라이터.

유재하는 바로 알아봤다.

'아 단장 거네. 그러고 보니 단장이 몰리 씨 잘 때 잠깐 들어갔었어.'

'아, 그럼 율리안 씨랑 같이 오셨을 때 떨어트리셨나보다.'

그 말을 하는 몰리는 굉장히 부끄러워했다.

'아이참, 그럼 나도 주헌 씨 앞에서 그런 부끄러운 짓을...'

'그런 짓?'

'지금은 잘 기억은 안 나는데 제가 율리안 씨를 덮친 것 같아요. 어쩐지 주헌 씨 목소리를 들은 것 같더니.'

그리고 이에 유재하는 심술궂게 웃었다.

사기꾼 유재하.

뭐 마침 율리안도 술떡이 되어서 기절해 있겠다, 살짝 장난기가 돈 그였다.

'어? 그거 정말이야? 이상하네? 율리안은 몰리 씨 호텔에 간 적이 없는데.'

'어... 네, 네?'

'걘 우리들이랑 아침까지 줄곧 술 마시고 있었거든. 내 옆에 있었으니까 확실해.'

'네?'

그리고 혼란스러워하는 몰리를 향해 유재하가 고개를 저었다.

'아, 괜찮아, 괜찮아. 결혼 전엔 잠깐 일탈해도 된다고. 원래 잘생긴 놈이랑도 한 번 데이트 해보고 그런 거지.'

'아, 아니 그럴 리가...!'

'에이, 몰리 씨, 막 단장한테 안기고 뽀뽀도 하고 그랬는걸. 쨔잔, 이게 그 사진.'

몰리는 유재하가 보여준 핸드폰 사진에 새하얗게 질렸다.

그건 몰리가 주헌에게 입을 맞추는 장면... 아니, 실은 율리안에게 입을 맞추는 걸 즉석에서 조작한 것뿐이지만.

아무튼 그 충격적인 사진과 말들에 몰리는 멘붕에 빠진 듯했다.

곧 유재하는 화룡정점을 찍었다.

'아참, 공명이한테는 이런 거 비밀. 걔 쓸데없이 고민하기 시작한다?'

그래, 과거에 분명 그렇게 장난을 치긴 했었지. 그래 봐야 율리안이 들으면 금방 밝혀질 일이었으니까.

보여준 사진도 꽤 조잡한 수준이었고.

그, 그런데.

'서, 설마.'

곧 그때를 떠올리던 유재하가 덜덜덜 떨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걸 아는 건지 모르는 건지, 율리안과 주헌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상하네. 누가 그런 거짓말을 했지. 혹시 네가 거짓말 하는 건 아니고?"

"아니거든?"

그러나 정작 유재하는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확실했다.

자신 때문이었다.

자신 때문에 몰리가 완전히 오해를 해서 파혼을 선언한 것이었다!

뭐 반드시 그런 게, 아니더라도 영향을 안줬다고는 할 수 없겠지.

'제, 젠장!'

그래서일까. 유재하가 덜덜 떨기 시작하자 율리안과 주헌의 눈초리가 이상해졌다.

"뭐야, 너 갑자기 왜 그래?"

"그러... 잠깐."

주헌과 율리안의 눈초리가 올라갔다. 저 제 발 저리는 듯한 표정과 부자연스러운 행동!

설마.

"야. 사기왕."

"이 새끼 설마..."

아니나 다를까, 유재하가 고개를 넙죽 숙였다.

"아니 내가 그러려고 그런 게 아니고!"

"?!"

뭐야 진짜 이 자식이 범인이었어?

"아니, 내가 좀 장난기가 발동해서 니들 키스사진도 단장님으로 조작해놓긴 했는데... 아니, 그래도 그거 조잡해서 금방 알아봤을..."

"야!"

동시에 유재하는 주헌과 율리안에게 짓밟혔다.

"지금 장난해?!"

"진짜 니새끼였어?!"

유재하는 엉엉 울었다.

"아니, 당연히 장난 친 거라고 알 줄 알았지!"

"하...! 야!"

"애초에 니 수준에서 조잡이지, 일반인한테는 사실 급인 거 모르냐?!"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이제야 범인을 알겠네."

"이 새끼, 딱 걸렸어."

갈라놓으려고 했던 두 콤비가 도리어 눈을 번득이며 다시 합체했다.

곧 둘이 흉흉한 얼굴로 다가오자 유재하는 이, 이게 아닌데 하고 새하얗게 질렸다.

잠시 후, 주헌의 방에서 처절한 비명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리고 시커멓게 불탄 시체(?)를 두고 율리안이 물었다.

"그래서. 아직 질문 안 끝났잖아. 이 예물반지는 뭔데?"

[#$&*!]

맞아! 뭔데! 뭔데!

동아줄은 누구거냐고 주헌의 머리를 잘근 잘근 씹었다.

각인에 쓰인 몰리 이름이야 유재하의 사기 작품이지만...

"이 반지, 설마 유재하 것은 아니지?"

"뭐래, 내 거야."

"뭐? 그럼 너 진짜 결혼해? 설마 진짜 몰리랑 하는 건 아니지?"

"뭐? 아 몰라, 닥쳐. 꺼져. 이 둔탱이 쓰레기 머저리야. 역시 난 니새끼 싫어."

"?!"

주헌은 입을 삐죽였다. 함께 찍힌 사진은 자신도 우연히 파파라치를 털다가 걸린 사진.

구도가 애매해서 그렇지, 사실 몰리와 함께 찍은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 사진 덕분에 몰리의 존재를 알아냈고, 이번 생에는 그래도 약혼녀랑 짝짜꿍 잘 살라고 찾아다닌 거였건만.

"아 몰라 니 축의금은 없어. 호구는 빨리 성이나 고치고! 짜증나니까 넌 역시 1년간 해외출장이야! 그 사이에 니나랑 유재하랑 결혼 시켜버릴 거라고!"

"뭐, 뭐라고?! 야! 아까는 내 마음 알겠다며!"

"알게 뭐야! 그리고 난 너처럼 꼴사납게 그러진 않아. 이 시스콤아!"

율리안은 동아줄과 제 갈길 가는 주헌을 보며 황당해했다.

하지만 주헌은 알아야 했다.

"고... 공명아. 대, 대박사건."

시커멓게 탄 줄 알았던 유재하는 일리야가 보낸 그룹메시지를 확인하며 기겁하고 있었다.

[대현자님: 단장 이거 앎?]

[사진]

[하버드 대학의 선남선녀 커플?]

[대현자님: 단장 동생, 남친 생겼나 봄.]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