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굴왕-390화 (390/409)

외전 4화. 내 코가 꿰였지

"젠장, 이 자식이 어디로 튀었지."

율리안은 지금 누군가를 찾고 있었다.

누구인지는 굳이 말할 것도 없었지만.

"꺄으아악!"

"그쪽이냐!"

율리안은 비명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사정없이 번개를 날렸다.

콰지직!

동시에 방 한구석에서 들려오는 비명소리.

"꺄으아아악! 죽어! 나 죽어!"

그는 다름 아닌 유재하였다. 그리고 율리안은 바로 비명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향했다.

하지만.

"!"

그곳에 있는 건 유재하만이 아니었다.

"니나!"

니나는 유재하의 앞에서 율리안의 번개를 막아내고 있었다.

손에 들고 있는 피뢰침을 보아하니, 보나마나 주헌이 쥐어준 것이겠지. 호구가 쓰러져도 곤란한 건 주헌일 테니까.

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니나, 비켜! 난 그 자식한테 볼 일이 있는 거야!"

그러나 니나는 칼까지 뽑아들며 오빠를 막아섰다.

"오빠, 이 이상 이 사람을 건들지 마! 내 소중한 사람이야!"

"?!"

그 말에 율리안은 기절할 뻔했다.

'지금 뭐가 어쩌고 저째?'

"소중한 사람? 지금 대놓고 남편이라고 발언한 거야? 그런 거야?"

"아니, 저기요. 율리안 씨. 구체적으로 그렇게는 말 안했거든요? 맘대로 필터링 하지 마시죠?"

유재하는 질색했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율리안의 눈에서 격렬한 지진이 일어났다.

그는 맨정신을 유지하고 있을 수가 없었다.

'세상에, 니나가 어떻게.'

니나는 어린 시절, 부모님을 잃고 자신이 업어서 길러낸 그야말로 딸 같은 동생.

그런 소중한 아이를 누가 데려가겠다고 해도 열 받을 마당에 뭐? 유재하?!

'하필이면 골라도 저딴 자식을!'

율리안은 당장이라도 뒷목을 잡고 쓰러질 걸 참으며 애써 상냥하게 웃었다.

"니나야? 네가 아직 그 새... 아니 그 친구를 본 지 얼마 안 돼서 잘 모를 수도 있는데..."

애초에 자신은 10년 동안 유재하를 봐온 게 있지 않나.

그 자식은 사기꾼이었다.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고, 온갖 범죄를 저지른 범죄왕!

거기에 자신이 그놈에게 당한 것만 떠올려도...!

"내 말 잘 들어. 오빠가 그 자식을 오랫동안 봐서 아는데...!"

그러나 니나는 들을 것도 없다는 듯이 유물을 사용했다.

화르륵!

"헉!"

곧 뿜어져 나오는 불길에 율리안은 정말 당황했다. 매섭게 솟아오르는 불길이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자, 잠깐!"

그 불길은 무려 SS급 신급 유물!

'이건 헤파이스토스의 불길!'

무려 자신의 남자를 지키기 위해 오빠를 상대로 신급 유물까지 쓰는 니나였던 것이다!

심지어 묵시 유물까지 쓰려고 했다. 덕분에 천하의 공명이조차도 당황할 정도!

"자, 잠깐! 니나! 그래도 이건 아니지! 아아악!"

율리안은 뜨거운 불벽에 가로막혀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리고 가까스로 불길을 제압했을 때, 이미 니나와 유재하는 도망친 후였다.

결국 그들을 놓친 율리안은 탄식할 수밖에 없었다.

"아오! 딸자식 키워봤자 아무 소용 없다더니!"

오빠보다도 자기 남자가 먼저라는 건가!

아니 유재하도 유재하였다. 니나가 제 주변을 테러한다며 질색하던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틈만 나면 둘이 애정행각질.

'도대체 언제 어떻게 저렇게 가까워졌지?'

아무리 남녀사이라는 게 언제 어찌 될지 모르는 것이라지만, 유재하는 정말 얼마 전까지 만해도 니나를 싫어했는데 말이다.

'도대체 무슨 계기로...!'

어쨌든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빡친 율리안은 재빨리 공명의 유물을 발동해 쫓아가려 했지만...

"포기하는 게 나을걸. 니나가 괜히 잭더리퍼로 지냈는 줄 아냐."

"!?"

그런 율리안을 느긋하게 비웃는 남자가 있었다. 그건 다름 아닌 주헌.

율리안은 그 얄미운 얼굴에 속이 터졌다.

"너지. 네가 니나한테 저딴 위험한 유물을 넘겨준 거지!"

그러자 주헌은 입꼬리를 씰룩거렸다.

"당연하지. 제 남친을 지키려는 아이가 너무 갸륵하잖아."

율리안은 혈압이 올랐다.

"이 빌어먹을 마제스티가!"

율리안은 울부짖으면서 주헌의 멱살을 잡았다.

갸륵은 개뿔이!

이 자식은 그냥 이 상황을 즐기고 있는 것뿐이면서!

동시에 주헌은 너무 그러지 말라며 쯧쯧 혀를 찼다.

"성실한 네놈이니 우리 호구가 영 맘에 안차는 건 알겠지만, 꼴사납게 너무 그러지 마라."

"뭐? 꼴사나워?!"

"그래, 이 팔불출아. 자식은 원래 다 때가 되면 보내줘야 하는 법이야. 넌 맨날 별것도 아닌 일 가지고 오버라니까."

결국 율리안은 신음을 흘렸다.

그러고 보면 이 자식은 이런 자식이었다.

아무렇지 않게 사고를 치고, 또 거기에 뭐라고 하면 되려 자신을 나무랐다.

잔소리가 많네, 고지식하네, 융통성 없네, 오버하네, 꽉 막혔네 어쩌네.

아니, 자신도 그런 말을 들으면서까지 잔소리는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도대체 자기가 친 사고를 누가 다 수습한다고 생각하는 거야!'

율리안은 속이 터졌다.

참 어쩌다가 이딴 자식을 만나게 된 건지.

* * *

어떻게 만나게 되기는.

"이 사람이 제 지갑을 훔쳐갔습니다."

"모르겠는데, 그딴 쓰레기."

소매치기범과 피해자로 만났지.

아마도 주헌이 설아를 정식팀원으로 받아들이고 몇 달이 지났을 무렵일 것이다.

주헌과는 무려 지하철에서 용의자와 피해자로서 만났다.

북적거리는 퇴근시간.

TKBM에 다니고 있던 율리안은 만원 지하철에서 살짝 졸고 있었다.

'제갈공명 유물은 피로도가 너무 심해.'

유용한 능력이지만, 하루에 몇 번이나 쓰기엔 체력소비도 심했고 눈에 오는 피로감도 심했다.

뭐, 그걸 떠나서라도 TKBM 고문 변호사 일에, 무덤과 연관된 생활이 쉬울 리가 없었지만.

그런데 그때였다.

"!"

뭔가 기척이 느껴졌다. 순간적으로 자신의 가방에 뭔가가 들어오는 듯한 느낌.

남들은 눈치채지 못할 수준이었지만 율리안은 달랐다.

공명의 유물 탓에 남들보다 수 배는 민감한 그인 만큼.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

놀랍게도 제 가방에 웬 사내의 손이 쑥 들어와 있었던 것이다.

율리안은 바로 눈살을 찌푸렸다.

인파 탓에 얼굴은 볼 수 없지만, 사람들 어깨 사이로 교묘히 나와 있는 젊은 남자의 손!

'소매치기!'

시계를 찬 남자의 손은 당당하게 제 가방의 틈에서 지갑을 빼갔다.

그건 정말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이런!'

율리안은 급히 남자의 손을 낚아채려고 했지만...

[문이 열립니다.]

순간적으로 지하철이 멈추고 문이 열렸다. 게다가 하필이면 이번 역은 환승구간. 지하철에 있던 사람들이 한꺼번에 우르르 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율리안의 가방을 턴 사내 역시도!

"...잠!"

마치 자신을 비웃기라도 하듯, 유유히 인파 속으로 사라지는 초록색 자켓.

율리안은 다급하게 사내를 쫓았다.

"잠깐만요! 내려요! 내립니다!"

그는 넥타이를 휘날리며 황급히 범인을 쫓았다.

그리고.

턱!

"이봐요!"

기어이 범인을 잡아냈다. 그러나 정작 율리안에게 잡힌 도둑놈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뭡니까?"

초록색 자켓, 깊게 눌러쓴 검은 모자.

그는 바로 주헌이었다.

주헌은 뭐냐는 듯 율리안을 보았고, 아무튼 그렇게 그들은 경찰서에 동행하게 된 것이었다.

뭐, 본인이야 훔친 적 없다고 딱 잡아뗐지만.

"글쎄, 사람 잘못 짚은 거라니까."

"아니 분명히 이 사람 맞아요. 확실히 봤습니다."

"아, 진짜 어이가 없어서."

주헌은 황당하다는 듯이 율리안을 째려보았다.

"안 그래도 바빠 죽겠는데, 난데없이 도둑놈으로 몰지 않나. 뭐하자는 거야? 어?"

"팀장님... 진정!"

주헌의 옆에는 연락을 받고 온 설아가 있었다.

설아는 경찰에게 말했다.

"아마 이분이 잘못 보신 걸 거예요. 저희 팀장님이 아무리 그래도 백주대낮에 소매치기 같은 걸 하실 분이..."

"그래, 양키 놈이 사람 잘못 본거라니까. 지들 눈에 동양인들이 거기서 거기로 보일 텐데 무슨."

그러자 율리안은 같잖다는 듯 웃었다.

구분을 못하기는 뭘 못해.

"언제까지 그렇게 당당하게 발뺌하나 봅시다."

그럴 때 경찰이 나왔다.

"소지품 검사 결과 나왔습니다."

"분명 있었죠?"

그러나 경찰은 뜻밖의 말을 했다.

"아니요. 서주헌 씨의 소지품에서는 말씀하신 지갑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네?"

"몸수색도 했지만, 전혀 없었고요. CCTV 상으로도 문제 없습니다."

"?!"

주헌과 율리안의 표정에서 희비가 갈렸다.

그뿐이 아니었다.

"그런데 역사 CCTV에서 서주헌 씨랑 비슷한 차림의 사람이 발견되었다네요. 혹시 밀러 씨가 봤다는 사람, 이쪽이 아닐까요? 수상한 짓을 하고 있는 것 같고."

"네, 네?"

율리안은 당황스러워했고, 주헌은 그것보라는 듯 화를 냈다.

"똑바로 좀 볼 것이지. 시간만 버렸잖아."

"......!"

율리안은 정말 당황스러웠다. 자신이 상대를 착각했을 리가 없을 텐데.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주헌은 화를 내면서 설아와 함께 경찰서에서 나갔다.

"재수가 없으려니 원. 오히려 성희롱하려다가 지가 걸릴 것 같으니까 소동 일으킨 거 아니야?"

"뭐, 뭐라고?! 성희롱?"

경찰관들은 미안하다면서 주헌을 토닥였다. 그 대신 탄식하는 그들의 시선은 율리안을 향했다.

그러게 똑바로 볼 것이지, 하는 눈빛이었다.

"뭐, 그래도 그럴 수도 있지 뭐."

"아무튼 CCTV에 찍힌 용의자 쪽을 찾아보겠습니다. 서주헌 씨는 일단 돌아가셔도 좋아요."

"범인이 잡히면 다시 연락드릴 테니... 밀러 씨?"

율리안은 생각에 잠긴 듯 눈살을 찌푸렸다.

역시 이상했다.

자신이 잘못 볼 리가 없었다.

그도 그럴 법한 게, 주헌이 훔쳐간 지갑은 평범한 지갑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건 유물 지갑이야.'

주헌에게서 그 유물의 기운을 느낀 것이었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칭찬해줄게. 날 알아차린 건 니가 처음이다."

율리안은 제 옆에서 속삭이는 목소리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깜짝 놀라 돌아보니 주헌이 유유히 경찰서를 빠져나가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자, 잠깐!"

율리안은 급하게 주헌을 쫓아나갔다.

"역시 네가 범인인 거지!"

그 말에 주헌이 얄밉게 웃었다.

"정답."

율리안은 어이가 없었다.

"역시...! 그럼 말해! 그 유물지갑, 어디에 버렸어! 빨리 안내해!"

"안 버렸는데?"

"뭐?"

주헌은 태연하게 제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었다.

동시에 그가 꺼내든 건 지갑! 틀림없는 자신의 지갑이었다.

율리안은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뭐야, 그게 왜 거기서 나와!"

분명 경찰들이 빠짐없이 몸수색을 했을 텐데!

이에 설아마저도 경악하고 말았다.

아니 지금까지 주헌이 지갑을 훔쳤을 리 없다며, 그렇게 열심히 변호를 해댔는데!

"티, 팀장님! 진짜 팀장님이 훔친 거였어요?! 그럼 CCTV에 찍혔다는 그 다른 용의자는?"

"알 게 뭐야, 우연히 비슷한 옷을 입었나보지."

"팀장님!"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주헌은 뻔뻔하게 웃었다.

"그런고로 이건 내가 가져간다."

율리안은 어이가 없었다.

이게 가져가긴 뭘 가져가!

"내놔! 그거 내 거잖아! 그걸 네가 왜 가져가는데!"

"왜긴? 결국 경찰한테 안 들켰으니까 내거지, 뭐."

"뭐가 어쩌고 저째?!"

뭐 이딴 놈이 다 있어!

"헛소리 말고 내놔...! 넌 깜빵이야!"

"니가 뭔데? 꼬우면 경찰 불러와!"

율리안은 할 수 없다는 듯, 엎어지면 코 닿을 경찰서로 도로 향했다.

"빨리요! 저기 지갑을 저놈이 가지고 있었어요! 빨리 좀... 어?"

그러나 율리안은 비명을 질렀다.

그 사이에 택시를 잡은 건지, 주헌이 유유자적 도로로 사라진 것이다!

율리안은 경악해서 달려 나왔지만 글쎄.

"야! 야! 너 거기 안서, 야! 내놓으라고!"

그러나 주헌은 창밖으로 지갑을 흔들며 유유히 손을 흔들었다.

그래봐야 또다시 볼 일 없다는 것일까.

"당하는 쪽이 잘못한 거라고! 멍청아!"

"티, 팀장...읍!"

그렇게 주헌하고는 헤어졌다. 뭐, 그래 봐야 얼마 가지 않아 뜻밖의 형태로 다시 만나게 됐지만.

"아 서 팀장. 내가 말했지? 이 부서로 새로운 인력이 들어온다고."

"어... 그래. 말하긴 했지."

TKBM 특수 발굴팀.

그 안에 기묘한 정적이 흐르고 있었다.

"이 친구가 이번에 특수발굴부서로 새로 발령된 율리안 밀러다."

드물게 주헌의 얼굴이 꿈틀거렸다.

"그리고 밀러? 이쪽이 이 특수발굴부서를 책임지고 있는 단장, 서주헌 팀장이고."

율리안의 얼굴도 꿈틀거렸다.

"최고의 인재니까, 서로 사이좋게 지내도록. 악수부터 할까?"

아니 악수고 자시고...

"내 지갑 내놔, 이 도둑놈아!"

율리안이 다짜고짜 멱살을 잡자, 소개해주던 직원이 당황했다.

"뭐? 도둑? 그게 무슨 소리야?"

찔린 주헌은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헛소리..."

"아니긴 뭐가 아니야! 내놓으라고, 이 파렴치한 도둑놈아!"

"어차피 너 같은 놈이 써봤자 리스크 때문에 금방 죽었어! 오히려 나한테 고마워하라고!"

"뭐가 어째?!"

설아는 슬그머니 시선을 피했다.

지금 다시 생각해도 첫만남은 최악.

뭐, 더 최악이었던 건, 후에 이놈이 자신의 약혼녀를 빼앗아(?)갔을 때였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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