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굴왕-388화 (388/409)

외전 2화. 그 남자에게 반한 순간 上

"와, 이게 다 무슨 사진이야?"

설아는 바닥을 가득 채운 사진을 보며 놀라워했다.

그 숫자만 대략 수백 장.

그리고 그 사진의 홍수 한 가운데에는...

[#$^#$&^$!]

정리 중이야! 정리 중이야!

동아줄은 즐거운 듯 몸을 씰룩이며 앨범을 만들고 있었다. 그래 봐야 앨범의 사진들은 전부 주헌이었지만.

이에 유재하는 눈이 썩는다며 쌍욕을 했다.

"아니, 단장이야 남자가 봐도 멋있긴 하지만 이쯤 되면 징그럽다 징그러워. 뭐야, 아이린 사진은 없는 거야?"

[#$&*#!]

있어, 있는데...!

서걱 서걱.

동아줄의 옆에서는 흉흉한 얼굴로 사진을 자르는 마몬이 있었다.

마몬은 궁시렁거리면서 주헌의 사진 일부를 잘라내고 있었다.

[지금 누구 옆에 붙어 있어, 붙어 있기는.]

가위는 사정없이 주헌 옆의 여자들을 떼어놓고 있었다.

[옛날에는 그렇게 만들라고 해도 여자가 안 붙더니!]

마몬은 분노의 가위질을 이어갔다.

주헌이 평행세계에 떨어졌을 땐 까마귀와 동아줄에게 붙잡혀 나오지도 못한 악마였지만, 지금은 달랐다.

[뭐야, 또 있어! 게다가 이번엔 딴 여자잖아아아아! 심지어 뽀뽀?!]

어쩌면 오늘도 속이 터져 술을 거하게 들이킬 마몬일지도 몰랐다.

그리고 그 광경에 유재하는 탄식했다.

자신이야 아이린의 사진들을 수집할 수 있어 땡 잡았긴 했지만...

'단장님도 유물 때문에 참 피곤하겠다.'

그러나 그때, 짐승 까마귀가 비웃음을 날렸다.

[악마여. 넌 여전히 쓸데 없는 일에 힘을 낭비하는 구나.]

[뭐라고?]

[그 넘치는 에너지, 제발 생산적인 곳에 쓰거라. 좀 더 주인에게 도움이 되는.]

그 말에 유재하는 오, 그렇지 그렇지 하고 반가워했다. 다른 곳은 몰라도 발할라 성은 무덤으로 분류되는 건지, 유물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좋아, 그래도 도움이 되는 유물도 있긴 있네.'

하지만 도움이 되기는 개뿔.

[그깟 사진 따위 의미 없다. 원흉을 먹어치워야지.]

"?!"

동시에 뿜어져 나오는 까마귀의 재앙급 오라!

강력한 포식의 오라는 이 세상 어딘가에 있을 이름 모를 여인에게 뻗어나가려고 했다.

유재하는 거품을 물었다.

"아악! 그만, 그만! 그것도 아니거든! 전혀 생산적인 일 아니거든! 주인에게 도움이 되는 일 아니거든!"

오늘도 그렇게 고통받는 복원사는 주헌의 유물들을 말렸다.

그리고 한편, 그 광경을 보며 웃던 설아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주헌의 사진 중, 뜻밖의 사진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잠깐, 이거 뭐야? 이게 어떻게 여기에 있어?"

그랬다.

설아가 발견한 건 바로 직접 주헌과 찍은 투샷.

문제는 그게 회귀 전의 모습이라는 것이었다. 그 증거로 배경이 TKBM 도굴단 사무실이었고 날짜도 지금과 달랐다.

유재하도 그 사진을 보며 입을 떡 벌렸다.

"뭐야, 이거 진짜 그 시절이네? 근데 어떻게 이때의 사진이...!"

[어떻게 있긴! 이걸로 찍었지!]

"!"

대답한 것은 뜻밖에도 지렁이.

지렁이는 멀린의 카메라 위에서 팔짝팔짝 뛰고 있었다. 양 쳰이나 단의 미래. 즉, 회귀 전 모습을 찍어냈던 바로 그 카메라였다.

지렁이는 아주 좋은 돈줄이라며 눈을 번득였다.

[서주헌 놈. 이걸로 찍으니까 지금하곤 다른 모습이 나와서 말이야. 공주들에게 퇴폐미 컨셉으로 팔아도 떼돈을 벌 것 같지 않아?]

"..."

뭐, 남자인 자신이 보기엔 퇴폐미가 아니라 그냥 폐인새끼지만.

'그래도 전에 아이린의 사진집을 만든 솜씨를 보면 확실하지.'

남덕과 여덕들이 뭘 좋아하는지 안다고 해야 하나.

'저 지렁이 새끼. 나중에 엔터테인먼트 운영시켜도 될 듯.'

물론 아이린의 사진집은 주헌한테 쳐맞고 빼앗기고 말았지만.

그리고 그럴 때였다.

"이거 분명 둘이 도굴단을 운영하던 때지?"

유재하는 슬쩍 설아와 주헌의 투샷을 툭툭 쳤다.

설아는 도굴단 첫 멤버.

즉, 이 사진은 자신들이 들어오기 전 사진이라는 의미였다.

설아는 그립다는 듯 예쁜 미소를 지었다.

"맞아. 부단장이 들어온 건 여기서 반년 뒤."

그러자 유재하는 재밌다는 듯 음흉하게 웃었다.

"뭐야, 그럼 첫눈에 반한 그런 건가?"

그러자 설아는 배를 잡고 꺄르륵 웃었다.

"뭐? 첫눈에 반해?"

제정신이면 그때 서주헌에게 첫 눈에 반할 여자 따위 없을 걸.

***

"반갑다, 서주헌이다."

덥수룩한 머리, 핏기 하나 없는 피부와 입술. 인간에겐 관심이 없다는 듯, 자료실에 파묻혀 있는 남자.

스물일곱의 주헌은 웃음이라는 걸 모르는 사내였다.

주헌은 이쪽에 시선도 주지 않고 자료를 해독하고 있었다.

얼굴에 짙게 깔린 음영은 멋있지만, 묘하게 음울하다고 해야 하나.

마치 하드보일드 영화에서 나올 것 같은 건조하고 무감한 남자.

'그래도 남들은 말단 사원일 나이에 팀장 직이라니.'

첫인상은 존경스러웠다. 산전수전을 겪은 노련함과 어른스러움마저 느껴졌던 만큼.

'두 살 밖에 차이가 안 나는데도...!'

그래서일까, 설아는 배우겠다는 의지를 담아 힘차게 고개를 숙였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저는 이번에 TKBM 특수발굴팀으로 발령받은..."

"아, 됐어."

"네...네?"

주헌은 관심없다는 듯, 책장을 넘겼다.

"어차피 금방 죽을 놈, 이름 들어서 뭐해?"

"...!"

황당해진 설아는 급히 고개를 들었지만, 주헌은 설아를 개무시했다.

"생긴 꼬라지를 보니 일주일도 못 버티겠네. 권 회장 비서 노릇을 해야 하는 거 잘못 온 거 아냐?"

"...?!"

주헌은 귀찮다는 듯이 열람실을 나가려고 했다. 이에 설아를 데려온 직원이 당황해서 붙잡았다.

아니, 저놈은 무슨 말을 저리!

"잠깐, 주헌아! 이제 널 지켜줄 부하야. 여차하면 너도 지켜줘야 할...!"

그러자 주헌은 담배를 입에 물면서 비웃음을 날렸다.

"내가 왜? 무덤에서 뒤지든가 말든가."

그 말에 설아의 얼굴이 썩어갔다.

'아까 전에 존경스럽다고 한 거 전면 철회.'

이때의 주헌은 천하의 썅놈(?)이었다.

***

"설아 씨, 설아 씨. 서주헌 팀장님은 어때?"

"역시 소문대로 좋은 분이시지?"

설아는 여직원들의 질문에 표정이 썩어갔다. 점심시간. 방금까지 행복한 얼굴로 늦은 점심을 먹으려던 그녀였다.

하지만.

"지금 뭐라고...?"

설아의 질문에 몰려왔던 여직원들은 툴툴 거렸다.

"아이참, 왜 모르는 척해. 설아 씨. TKBM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됐는데도 서 팀장님한테 배정받았잖아."

"설아 씨가 배정된 곳은 일명 권 회장님이 밀어주는 부서라고!"

설아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중국 정부에서 일하던 참이었다.

정확히는 진채원, 그 여자가 있는 중국 발굴단. 적화단의 비밀요원으로서.

하지만 권 회장의 손에 이끌려 TKBM에 들어왔다.

'정확히는 팔려왔다는 표현이 맞겠지.'

설아의 레이더 능력을 눈여겨 본 권 회장이 중국 정부에서 그녀를 사 온 것이다.

심지어 자신은 제 발암덩어리 가족들 때문에 이번에 처형당할 뻔한 처지.

'그런 날 빼냈다는 건, 중국과 모종의 거래가 있었겠지.'

그리고 TKBM에 오자마자 배정받은 곳은 다름 아닌 주헌이 있는 특수발굴부서.

신설부서라기에 짐보따리 취급하는 줄 알았는데, 직원들의 반응을 보니 꽤 주목 받는 곳인 모양이었다.

아마도 그 부서의 치프인 서주헌 때문에.

"서주헌 팀장님은 스카웃되기 전에도 혼자 7대 무덤을 클리어한 천재라고! TKBM에서도 탑급! 실력만 보면 왕급일걸?"

"TKBM에 와서도 홀로 독주했을 정도야. 그런 사람이 소수정예로 팀을 만드는 거라고. 승진은 따 놓은 당상이야! 부럽다, 설아 씨!"

그러나 설아는 젓가락을 든 채 눈을 부릅떴다.

아니, 승진이고 자시고!

그녀는 아주 젓가락으로 주헌의 콧구멍을 쑤셔버릴 기세였다.

남들은 주헌에 대해 능력이 좋네, 인물 훤칠하네, 친절하네, 심지어 부하직원을 제 목숨보다 아끼네, 아주 바람직한 상사로 평가했지만...

'난 그 인간 때문에 TKBM에서 쫓겨나게 생겼다고!'

그랬다.

설아는 지금 위기에 처해있었다.

바로 주헌 때문에.

"네? 제가 권 회장님의 유물을 빼돌렸다고요? 그런 적 없습니다!"

"그럼, 왜 아직도 유물제출을 안하시는 건데요?"

유물관리부서 직원의 말에 설아는 당황스러웠다.

"제출을 안 하다니...! 그건 벌써 일주일 전에 서 팀장님한테 제출했습니다."

"네? 서 팀장님은 아무것도 받지 않았다고 하셨어요!"

당황한 설아는 주헌을 찾아갔지만 글쎄.

"그래, 난 받은 기억이 없는데?"

설아는 정말 황당해했다.

"무슨 소리세요...! 분명 일주일 전에 팀장님께 제출했잖아요!"

그러자 주헌은 귀찮다는 듯 귀를 후볐다.

"글쎄? 쓰레기라서 버렸나보지."

"팀장님!"

그랬다.

주헌은 늘 이런 식이었다. 매일같이 철야로 부려먹고, 주말도 반납해 가며 업무를 하고 주헌의 뒷바라지까지 해주면 뭘 하나.

'글씨체가 마음에 안 들어, 다시.'

'초딩이 해도 이거보단 잘하겠네.'

'여기 먼지 묻은 거 안보여?'

남들은 대단하다고 하는 성과물도 주헌은 가차 없이 찢어버렸다.

그게 벌써 4개월 째.

결국 설아는 오늘도 파르르 떨면서 물었다.

"그, 그럼 유물관리부서 일은요? 제가 자리에 없을 때 팀장님한테 말을 전해달라고 했다던데...!"

"그래, 어제 말해줬잖아. 관리부서한테 A자료 정리해서 보내라고."

"네? 하지만 전 들은 적이...!"

그러자 주헌이 쯧쯧, 혀를 찼다.

"그 나이에 치매야? 아니면 얼굴만 볼만하고 머리가 나쁜 건가? 이거 회사가 아니라 병원부터 가봐야 하겠는데?"

"#$**!"

"뭐, 이번엔 특별히 내 선에서 봐 줄 테니 잘 좀 해봐. 괜히 또 업무 평가 F 받지 말고. 어떻게 사람이 되어가지고 F 따위를 받냐. 멍멍이도 A는 받을 기초 평가에서."

그 말에 설아는 속으로 울부짖었다.

'그 F를 주는 건 당신이잖아아아!'

그랬다.

설아는 아직 엄밀히 말해 인턴. 연수기간 동안 A 이상의 평가를 받아야 이 도굴팀에 남아있을 수 있었다.

'도굴팀에 남지 못하면 TKBM에서 쫓겨나고, 그러면 가족들도 빼올 수 없어.'

그게 권 회장의 비밀계약 조건.

그런데 하필 주헌의 미움을 산 건지, 평가는 역대 최악.

게다가 주헌은 설아를 부하라고 생각 하지 않는 건지, 투명인간 취급하기 일쑤.

심부름꾼, 짐꾼은 기본. 심지어 적들의 공격에 다쳐 피투성이가 되어도...

"야. 똑바로 안 들어? 내 가방 다 망가졌잖아."

"다 망가지긴 개뿔! 실오라기 하나 터져 나온 것뿐이잖아요!"

"몰라, 빨아와. 니 피 묻었잖아. 더러워."

"#*$*!"

만 원짜리 가방 보다 못한 취급을 받았다.

그런 마당이니 어느 여자가 주헌에게 반할 수 있을까.

'천하의 쫌생이...!'

설아는 매일 같이 주헌을 욕(?)했다. 커피에는 설탕이 아니라 소금을 타서 복수하기도 했다.

"와, 대박. 단장님 처음에 진짜 그랬단 말이야?"

유재하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입을 떡 벌렸다.

자신은 처음부터 주헌과 설아가 사이가 좋은 줄 알았다. 자신이 도굴단에 들어왔을 땐 그런 모습이 아니었으니까.

그래서 여자라고 편애하는 거냐며 징징거렸을 정도였으니.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설아는 거의 괴롭힘(?) 수준으로 주헌에게 갈궈졌었다!

"그런데 도대체 왜 반한 거야? 이제 보니 얘 마조였...컥!"

"뭐, 이유가 있긴 했어."

설아가 주헌의 그런 행동을 이해하게 된 건, 아마 한 달 정도 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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