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3화. 도굴왕 (1)
단원들은 정말 깜짝 놀랐다.
사라진 주헌은 정말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당황하던 그들은 곧 씩씩거렸다.
"이 인간이 또...!"
"또 치우 유물로 내뺀 거야?"
그들은 주헌이 혼자서 또 사라졌다고 여겼다.
치우 유물을 얻은 이후, 주헌은 툭하면 이런 식으로 혼자 튀었기 때문이다.
"뭐, 그래 봐야 멀리 가진 않았겠지만..."
그들은 건조한 흙먼지를 툭툭 털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눈 앞에는 완전히 먼지덩어리가 되어버린 발할라가 있었다.
단원들은 그게 못내 아쉬웠다.
정확히는 유재하가.
"허,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 아까운 걸 부수고 말이야. 젠장, 이런 성에서 한 번 살고 싶었는데! 캐 멋졌는데!"
"글쎄. 니새끼가 복원하라고 부순 거 아냐?"
하늘에서 깐죽이는 일리야의 말에 유재하는 분노했다.
"장난하냐! 고치게 할 거면 인간적으로 핵은 부수지 말아야지. 세상에 지폐도 절반은 남아야 은행에서 바꿔줄 수 있는 법이에요! 최소한 50%는 남겨 놔야 뭘 고쳐보든 하지 않냐? 어?! 아무튼 저건 나도 못 고쳐!"
그러나 일리야는 뭘 본 건지 낄낄 웃는 것이었다.
"아니? 너 이거 꼭 고쳐야 할 것 같은데?"
"뭐? 왜?"
곧 일리야가 지면을 가리키자, 단원들 모두가 높은 곳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드러난 지면의 글씨.
[고쳐.]
[기품 있게.]
[못하면 뒤짐.]
"#$**&*!"
이건 무슨 미스테리 서클도 아니고!
주헌 특유의 달필이 사막 한 가운데에 쓰여 있었던 것이다. 심지어 메시지는 그게 다가 아니었다.
[참고로 디자인은 고풍스러우면서도 미래적으로. 아주 화려하고 심플하게.]
"썅! 장난하냐!"
틀림없이 치우 유물을 활용해 글씨를 새겨놓고 간 거겠지만...
"야 이 개 같은 새끼야! 어디로 토꼈는지 모르겠는데 나 이거 안 고쳐. 아니 못 고쳐! 알았어?! 애초에 고풍스러우면서도 미래적인 건 뭔데! 그리고 화려함과 심플함은 같이 쓰는 단어가 아니라고! 썅!"
그렇게 다들 흥분하는 유재하를 보며 낄낄 웃을 때였다.
"설아야, 너 왜 그래?"
단원들은 기묘하게 조용한 설아를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그래? 얼굴은 왜 그리 새하얗게 질려가지고."
그러나 설아는 드물게 몸을 파르르 떨고 있었다.
"사라졌어."
"뭐?"
"단장님의 기운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전혀 안 느껴져!"
"...?!"
그런 그녀의 말에 단원들은 순간 굳었다. 눈치 빠른 그들은 그게 뭘 의미하는지 모를 리 없기 때문이다.
"단장님의 기운이 사라졌다고?"
"야. 그거 설마..."
하지만 그들은 애써 웃었다.
"그래 봐야 치우 유물로 안개가 되었으니까 못 느끼는 거지."
그러나 그들은 곧 침묵했다.
설령 주헌이 미세먼지가 되어 지구 반대편으로 사라졌다고 해도, 설아라면 당연히 눈치를 챘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거 단장 유물 아냐?"
일리야가 뭔가를 가리켰다.
악마들이 모래에서 주워온 물품들은 다름 아닌 주헌의 유물들. 펜, 목걸이, 반지, 벨트, 등 멍멍이들부터 시작해서 다양한 물건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중, 손가락만 한 크기의 곡괭이가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그 곡괭이는 다름 아닌 마몬. 곡괭이가 뭐라고 하는 지 알 수 없지만, 행동거지를 봐선 주헌을 애타게 찾는 것이리라. 그리고 그 유물들을 보던 율리안의 표정도 심각해졌다.
"세상에 이런 일이..."
"왜 그래? 무슨 일인데?"
"주헌 유물의 계약이 전부 풀려 있어...!"
"뭐라고?!"
그랬다.
소모성 유물은 원래부터 소유권이 없으니 그렇다 쳐도, 귀속성 유물들이 죄다 계약이 해제되어 있었던 것이다. 완전히 이 세상에서 사라진 사람마냥.
그러니 단원들은 창백하게 질릴 수밖에 없었다.
"계약이 풀렸다는 건 소유자가 죽거나, 소유권을 포기했다는 소리잖아!"
"그 유물성애자가 소유권을 포기했을 리도 없고...!"
"...단장님!"
그렇게 혼란에 빠진 단원들은 주헌을 찾아나서기 시작했다.
***
[서주헌 덕분에 묵시 유물들의 존재들이 사라졌습니다. 사실 세상은 서주헌에게서 구해졌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겁니다.]
[그런데 판도라가 묵시 유물들을 이용해 재기를 꿈꿨다는 증거자료가 발견이 되면서 다시 한 번 충격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각 나라에서는 판도라 연관자들을 끝까지 축출하고, 연관된 피해자들에게 사죄하고 피해보상을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공을 운운할 이야기도 아니지만, 사실 서주헌이 아니었으면 세상에 묻혔겠죠. 재미있지 않습니까.]
[결론적으로는 그의 도움을 받았다고 해야 하나요.]
세상이 떠들썩했다.
묵시 유물이 사라진 지 벌써 반년.
마치 종말 영화를 방불케 했던 세상의 모습은 상당히 빠르게 변해 있었다.
[다행히 유물의 힘으로 파괴된 도시는 반년 만에 90%나 복원이 되었습니다.]
[도시의 복원에는 악마왕 일리야 볼고프와 호구왕 유재하가 앞장을 섰고...]
하지만 사람들이 정말 놀라는 건 그런 게 아니었다.
[정말 놀랄 만한 건, 그 이후로 무덤이 전혀 나타나지 않고 있다는 점입니다.]
[맞아요. 그날 이후로 새로운 유물도 등장하지 않고 있다는 말이죠.]
[그뿐이 아닙니다!]
언론에서는 세상에 일어난 이변에 대해 침을 튀겨가며 흥분하고 있었다.
[세상에 흩어져 있는 유물들이 무슨 연유인지 전혀 반응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움직이지도 않는 단순한 고물딱지가 되어버렸다고요!]
[맞습니다. 이제 세상 누구도 유물을 사용할 수 없게 되었어요...!]
[하지만 현재, 서주헌 발굴단만이 세계에서 유일하게 유물을 쓸 수 있으며...]
[각 나라의 정부와 기업들은 서주헌 발굴단에게 모든 의뢰와 컨설팅을 받는 중입니다.]
삑.
아이린은 작업실의 TV를 껐다.
세상은 변해 있었다.
특히 도굴단의 구성원들이.
'주헌 씨.'
주헌 하나가 없을 뿐인데도, 단원들은 구성원이 크게 바뀌었다고 여길 만큼 빈자리를 느끼고 있었다.
'도대체 어디서 뭘 하시고 계시는 거예요.'
아이린은 주헌이 죽었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연락도, 모습도 전혀 확인된 바가 없지만 아이린은 믿었다.
'무엇보다 저거...'
아이린은 책상 위에 쌓여 있는 종이들을 보았다.
그건 보내는 사람 이름도 없이 쿨하게 작업실로 날아온 편지.
그리고 거기에 쓰인 건 딱 한줄.
[고치랬지.]
[품격 있게.]
심지어 낯익은 궁서체였다.
뭐 편지를 본 유재하야 쌍욕을 하면서 뛰쳐나갔지만.
"주헌 씨."
주헌은 이것만 봐도 분명 살아 있었다.
그리고 주헌을 그리워하듯, 아이린이 종이를 집어들려고 할 때였다.
딩동.
"!"
갑자기 들리는 소리에 아이린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
딩동.
지금 그녀가 있는 곳은 도굴단이 임시로 모여 있는 유재하의 작업실.
누구지?
순간 아이린의 심장이 떨렸다.
'우리 중엔 벨을 누르고 올 사람이 없는데.'
그렇게 아이린이 고민하고 있을 때, 삑삑삑삑 문을 여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그 모습에 아이린이 침을 꿀꺽 삼켰다. 택배나 배달원이 문을 따고 들어올 리도 없고.
설마.
'주헌 씨?'
아이린은 홀리듯이 문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곡괭이 하나도 함께 팔짝팔짝 뛰기 시작했다.
[인간! 그 인간이 드디어 돌아온 것이냐!]
울부짖는 건 다름 아닌 마몬이었다.
마몬은 주헌이 사라지자 매일 같이 창가에서 훌쩍이며 그를 기다렸던 것이다.
다른 유물들이야 포기하라고 했지만, 마몬은 포기하지 않았다.
'유일하게 그 밧줄 녀석도 함께 사라지지 않았느냐.'
까마귀도 사라졌지만, 그놈은 사라지든 말든 전혀 신경 안 쓰고.
틀림없이 살아있는 것이리라!
그리고 마침내 문이 열리고, 키가 훤칠한 남자가 들어섰다.
"!"
그 실루엣에 아이린도 마몬도 감격했다.
"치킨 10박스 배달 왔습니다."
그 말을 듣기 전까진.
"..."
"어 이상하다. 문 열려 있으니까 대답 없으면 그냥 놓고 가라 하셨는데...?"
이에 살찐 비만 멍멍이들이 침을 흘리며 꼬리를 흔들었다. 어찌나 살이 쪘는지 거의 질질 기어오다시피 했다.
[만세에에에! 갈릭 반 핫양념 반이 왔다! 어서 내려놔, 인간아! 헥헥!]
[아씨, 야! 왜 또 여기 시켰쌰! 지겨워서 새로운 데 찾아보자고 했잖아!]
[...엥? 뭐야? 네가 시킨 거 아니야?]
그리고 그 순간, 아이린과 마몬의 눈이 번득였다.
"당신 누구야!"
동시에 둘이 수상한 배달원을 붙잡으려고 할 때였다.
일이 틀어졌다고 생각한 건지, 배달원이 도망가려고 했다.
"기다려!"
"젠장!"
아이린은 눈을 번득이며 파산의 힘을 썼다.
그녀 역시 주헌의 단원들처럼 유일하게 유물을 쓸 수 있는 사람 중 한 명.
[잠깐! 공격은 하더라도 치킨은 좀 내려놓게 하고... 커헉!]
그럴 때였다.
"너희들 딱 걸렸어!"
도망치려는 배달원을 누군가가 잡아서 날려버렸다.
쿵!
"!"
배달원의 팔을 꺾어 잡아 날린 것은 다름 아닌 단.
그리고 신난 듯이 입을 촐싹인 건 유재하였다.
"딱 걸렸어. 요놈들아."
"젠장! 이거 놓으라고!"
"역시 사방에 쫙 깔렸군요."
밤늦게까지 들어오지 않은 단원들이 드물게 이 시간에 모여 있었다.
각자 수상한 사람들을 하나씩 데리고.
유재하는 단이 붙잡은 배달원을 퍽퍽퍽퍽 걷어차면서 말했다.
"그래서. 니들은 또 치킨 배달하면서 뭘 훔쳐가려고 왔냐. 어? 이 빌어먹을 정부의 개들아!"
"크윽!"
그랬다.
단원들이 붙잡아 온 건 자신들을 감시하는 각 나라의 정부요원들이었다.
판도라가 사라진 지금, 임시정부 개념으로 임시 유물기구가 설립된 상황이었다.
그리고 마제스티가 된 주헌이 남기고 간 유물들의 처사를 두고 갑론을박이 이루어진 것이다.
그건 당연할지 몰랐다.
"아니. 세상 사람들이 유물을 잘 쓰다가 하루 아침에 못 쓰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서주헌 씨의 재보는 보통 유물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래요. 특히 아카식레코드. 그게 있어야 사람들은 다시 유물을 쓸 수 있게 될 거라고요!"
"그렇다고 해도 그건 단장님 유물...!"
그러자 그들은 눈을 번득였다.
"애초에 서주헌은 묵시 유물과 함께 죽지 않았습니까! 새 유물기구의 법률상, 소유권을 잃은 유물은 새 임시유물기구의 소속으로 한다는 판례가 나왔어요!"
"그리고 그만한 유물은 개인의 소유로 둬서는 안 됩니다. 나라 차원에서 관리를 해야 하죠. 그러니 아시아 대표로 우리 일본에서..."
"무슨 소리입니까! 죽은 서주헌은 우리 대한민국 국민입니다!"
"아니 서주헌은 미국에서 죽었어요! 미국에서도 계속 편의를 봐줬었고요. 그리고 당연히 유물을 관리할 능력도 되는 미국이..."
그 말과 함께 정부요원들의 비명소리가 울려 퍼졌다.
빡친 아이린 때문일까.
"주헌 씨는, 아직 죽지 않았어요."
붙잡혀 있는 요원들은 배와 엉덩이를 움켜쥐며 죽어가려고 했다.
"크, 크윽...! 잠깐! 화장실 화장실 좀!"
"커헉, 제, 제발! 잘못했으니까!"
세상은 갑작스러운 변화에 당황스러워하고 있었다.
주헌이 사라지자 나타난 기이한 현상.
무덤의 소실.
전 세계적으로 고물이 되어버린 유물들.
뭐, 유물의 경우엔 정확히 말하면 고물이 된 건 아니지만.
왜?
[야. 솔직히 이쯤 되면 슬슬 서주헌 죽은 거 확정 아님?]
[맞아. 괜히 놈도 없는데 이렇게 고물인 척할 필요 없지 않아?]
[그러게. 그놈이 살아있다면 벌써 나타나고도 남았지.]
모든 유물은 마제스티를 따랐다.
하지만 대부분의 유물들은 서주헌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리고.
[서주헌이 사라지기 전에 칙령을 내렸잖아. 모든 유물은 쥐죽은 듯이 닥치고 있으라고.]
[맞아 맞아...]
[근데 이쯤 되면 묵시 유물하고 같이 카오스로 떨어진 거 아냐? 옥좌도 성도 없고, 마제스티 기운도 안 느껴지는데.]
[맞아. 몸도 뻐근한데 우리 언제까지 이러고 있어야 해? 이제 없잖아. 마제스티!]
[어, 그러게...?]
그리고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단원들이 요원들을 끌고 가려는 순간이었다.
"저, 저거 뭐야!"
돌연 끌려가던 요원들이 비명을 질렀다.
길거리에서 떼를 지어서 이동하는 건 생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잠깐, 저거 유물 아니야?"
"뭐, 뭐?!"
"!"
세상은 다시 난리가 났다.
고물이 되었던 유물들이 갑자기 겨울잠에서 깨어나기라도 한 듯, 난동을 부리기 시작했다.
[서주헌은 죽었다! 틀림없다! 내가 내 눈으로 확인했다!]
[오오오! 정말이냐!]
[와아! 그딴 폭군 잘 죽었다!]
박물관, 혹은 정부기관에 모셔져 있던 유물들은 신이 난 듯 깽판을 치기 시작했다.
세계 각 도시와 언론들은 다급해졌다.
[긴급 속보입니다. 고물이 되었던 유물들이 갑자기... 꺄악!]
그리고 그 순간, 전 세계에서 지진이 감지되었다.
그건 6개월간 단 한 번도 관측되지 않았던...
"고, 고분화 현상?"
동시에 전 세계의 사람들, 그리고 단원들은 TV를 보고 놀랄 수밖에 없었다.
"자, 자, 잠껀 저거!"
틀림없었다.
브라운관에 생방송으로 중계되고 있는 건 고분이었다.
묵시 유물 이후로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던 그 무덤!
"세, 세상에 저 규모... 틀림없이 2단계짜리 무덤이다!"
"주, 중하급이지만 저게 어디야! 만세!"
"아, 아니 그게 문제가 아니야."
"뭐?"
사람들은 난동을 부리는 유물들을 보며 입을 떡 벌렸다. 물 만난 듯이 꺄르륵 신나게 날 뛰던 유물들이...
[야, 이, 이거 실화냐.]
뭔가를 감지한 듯 달달달 떨기 시작한 것이다.
놈들은 마치 악마라도 접견한 듯한 표정이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브라운관에 잡힌 뭔가를 보고 제 눈을 의심했다.
심지어 단원들조차도.
"잠깐 저거...!"
전 세계에서 급하게 생방송 중인 무덤에는 낯익은 것이 튀어나왔기 때문이다.
[#$*#&*!]
드디어 밖으로 나왔어! 나왔어!
낯익은 밧줄이 눈을 반짝이며 꿈틀거리고 있었고.
[새끼들이. 쥐죽은 듯이 닥치고 있으라니까 뒤지려고?]
낯익은 청년이 흉흉하게 웃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