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2화. 라그나로크 (4)
콰지지직!
주헌의 돌발행동에 다들 깜짝 놀랐다.
"단장님! 지금 무슨!"
심지어 권혁수조차도.
"주헌아! 그게 어떤 유물인데!"
까마귀도 내심 놀란 듯했다.
그 증거로 다급한 메시지가 떠올랐다.
[옥좌와 반드시 계약을 해야 합니다.]
[옥좌를 지배해야 이 성을 손에 넣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주헌은 메시지를 무시하며 옥좌를 파괴했다.
그것도 평소처럼 평범하게 파괴하는 것이 아니었다.
옥좌에 미련이 없다는 것처럼 무자비하게 파괴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예 세상에서 그 존재를 지워버리려는 것처럼. 그래서일까.
유재하가 제일 당황하는 눈치였다.
그야말로 저 유물성애자가 왜 저러나 하는 표정.
"단장님, 미쳤어요?! 지금 그거...!"
주헌이 지금 파괴하는 건 무려 마제스티의 재보였다.
게다가 저런 식으로 파괴하면 복원조차 할 수 없다는 걸 모르지도 않을 텐데!
"그만...! 그러면 아무리 나라도 복원 못한다니... 으악!"
하지만 닥치라는 듯이 엄청난 스파크가 튀기면서 오라가 폭발했다.
콰지지직!
옥좌가 공격을 받자 성 전체에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아아아악!"
그러자 주헌에게 무릎을 꿇던 과거의 망령들이 눈을 부릅떴다.
[침입자다.]
[왕이 아니다!]
망령들은 곧바로 무기를 들었다.
과거로 회귀하고, 찬란한 때를 맞이한 성은 주헌을 적으로 인식했다.
[왕의 침전을 파괴하려는 침략자다!]
[죽여라!]
놈들은 옥좌를 파괴하려는 주헌에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주헌은 그러거나 말거나 입꼬리를 올리면서 옥좌를 파괴했다.
콰광!
마침내 박살이 난 흘리드스캴브.
과거 찬란한 영광을 누렸던 신의 성이 뒤흔들리기 시작했다.
쿠르릉!
[성의 핵을 파괴했습니다.]
[성이 힘을 잃고 무너지려고 합니다.]
그 거대한 지진에 성에서 황금 잔해들이 떨어졌다.
마제스티의 성을 지키려는 망령들은 비명을 지르며 괴로워했다.
단원들은 정말 의아했다.
"단장님! 그 옥좌 꼭 가지고 싶어하셨던 거 아니에요?"
"그런데 왜...!"
그러나 주헌은 대수롭지 않은 듯 옥좌에서 발걸음을 돌렸다. 평소처럼 복원하라는 말도 없었다.
오히려 복원은커녕.
"깔리기 싫으면 전부 꺼져, 망령새끼들아!"
주헌은 무덤파괴 스킬로 거침없이 발할라 성까지 파괴하기 시작했다.
콰과과광!
[주의. 정말로 핵을 복원할 수 없게 됩니다.]
[주의. 정말로 성이 무너집니다.]
[주의. 전대 마제스티가 이룩해놓았던 모든 것들이 사라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그런 그가 시선을 준 곳은 하늘.
카오스에 끌려가는 묵시 유물들이었다.
묵시 유물들은 옥좌와 성을 파괴하는 주헌을 욕했다.
[저놈이 감히 우리가 차지한 성을!]
그건 당연할지도 몰랐다.
마제스티의 성은 유물들의 거룩한 총본산.
마치 그리스 신화의 올림포스처럼 신성하고 상징적인 장소이기도 했다.
인간에게는 신의 힘이 발동하는 장소, 그리고 유물에게는 선망의 장소라고 해야 할까.
물론, 지금까지는 족보 있는 유물들만 마제스티와 함께 그 성에 입성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번엔 족보 태생을 몰아내고, 묵시 유물들이 그 총본산을 차지할 생각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걸!
[저 깨부수는 것밖에 모르는 도둑놈 새끼가!]
[멋대로 들어온 것만으로도 모자라서 기어이 성까지 깨부수냐!]
그러나 곧 놈들은 주헌을 비웃어댔다.
[아냐, 저놈이 지금 멍청한 짓을 한 거라고!]
[그래, 자기 스스로 재보를 부순 거야! 유물을 얻을 기회를 자기 손으로 버렸어!]
놈들은 캬캬캬 웃어댔다.
동시에 묵시 유물들은 기분이 좋아졌는지, 크게 요동쳤다.
[저딴 머저리한테, 우리가 이대로 당할 것 같으냐!]
[서주허어어어언!]
쿵, 쿵쿵!
카오스로 빨려 들어간 묵시 유물들은 최후의 발악을 했다. 닫히지 않는 카오스의 문틈으로 빠져나오려고 한 것이다.
[이대로 끝날 거라고 생각 하느냐!]
[최강의 유물들을 우습게 보지 마라!]
***
요동치는 엄청난 오라에 천지가 뒤흔들렸다.
[한낱 인간 주제에 카오스를 불러낸 건 칭찬해주마!]
[역대 마제스티들도 못 하고, 이 세상 그 누구도 못한 일을 네놈이 해냈다!]
[하지만 우리를 카오스에 완전히 처넣을 수 있는 게 쉬울 것 같더냐!]
[어차피 네놈의 힘으론 카오스의 문까지는 닫지 못한다!]
쿵!
[위험. 묵시 유물들이 카오스에서 빠져나오려고 합니다.]
그들은 발버둥치면서 카오스의 문에서 빠져나오려고 하고 있었다.
"문이!"
묵시 유물들은 정말 강했다. 괜히 그 어떤 인간도 다룰 수 없는 유물이라는 말다웠다.
뭐, 애초에 저놈들은 그야말로 멸망만을 위한 유물들.
주헌에게는 안중에도 없을 놈팡이들이었지만.
[서주헌의 정신을 흩트려라!]
[카오스 하나를 불러낸 것만으로 이미 지배력의 대부분을 쓰고 있을 거다!]
[지금도 죽을 만큼 괴롭겠지! 집중이 흩어지면 저놈이 도리어 카오스에 먹힐 테니까!]
카오스는 묵시 유물들을 삼킬 정도로 대단한 유물이었지만, 그만큼 리스크도 상당한 유물.
그 혼돈을 불러내는 동안 집중이 끊기면 카오스는 주헌은 물론 지구까지 삼키고도 남았다.
그는 지금 카오스라는 우주, 그리고 거대한 블랙홀 공간을 소환한 셈이나 마찬가지니.
그리고 그 순간이었다.
쾅!
"...저게 뭐야!"
지면에서 끔찍한 놈들이 솟아올랐다. 허연 좀비 같은 놈들이 지면에서 돋아났던 것이다.
심지어 보통의 좀비들이 아니었다.
멀린, 헨리, 요한 등 판도라 기사들부터 판도라 이사회들. 그리고 수많은 발굴단들까지.
"전부 단장님이 처리했던 적들이잖아...!"
"저놈들이!"
"유물이야! 하나하나 전부 언노운이 되었다고!"
유물사용자들의 비참한 최후일까.
원래부터 멀린도 묵시 유물을 통해 언노운 제조법을 들었던 것.
주헌이 처결했던 적들은 묵시유물들에 의해 전부 언노운이 되어 있었다.
급했는지 얼굴도 살아생전과 거의 똑같았고.
기겁한 단원들은 급히 자신들의 유물을 발동했다.
"젠장, 언노운은 보통의 방법으론 파괴할 수 없는데!"
자신들의 언노운을 상대해보면서 깨달은 게 있었다. 보통의 유물은 몸체의 핵을 부수면 파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언노운의 핵은 몸체에 있었다.
언노운의 핵은 모태가 된 인간. 즉 시체가 가장 애착을 가지고 연이 깊은 장소였기 때문이다.
유재하의 언노운인 루이로 치면, TKBM의 도굴단 사무실.
자신들의 언노운이야, 서로 애착을 가진 장소가 어딘지 알기 때문에 쉽게 파괴했지만...!
"저놈들이 애착을 가지는 장소가 어딘지 알 게 뭐야!"
"일단 막기라도 해!"
발동된 유물들은 각자 적들을 상대했다.
단원들의 유물들은 그 어느 때보다 열심히었다.
[서주헌을 지켜라!]
[묵시 놈들이 우리 자리를 차지하는 건 볼 수 없다!]
그러나 묵시 유물들의 타겟은 오직 하나.
[다른 놈들은 피하라! 시간이 없어!]
[서주헌, 서주헌만 노려라!]
[어차피 카오스를 쓰는 이상 다른 유물은 못 써!]
그들은 간악하게 요리조리 피하며 주헌만을 노렸다.
주헌의 근처에 있던 펜릴도 주헌을 삼키려고 했다.
'젠장, 저놈만 한 입에 삼키면 전부 끝인데!'
아니, 굳이 삼키지 않아도 되었다.
팔, 아니 손가락 하나만 잘라내도 주헌의 지배력은 끊기고, 카오스를 제어하지 못하게 될 것이었다.
'그러면 서주헌도, 이 세상도 한번에 쾅.'
하지만 팔 하나는 개뿔.
질질 끌려가는 펜릴은 동아줄에게 신나게 두들겨 맞고 있을 뿐.
철썩 철썩 철썩!
[#$*$&*!]
손 하라니까! 손!
[아오 진짜 이 똥 같은 밧줄 놈이! 너 뭐하는 놈이냐고!]
그리고 그 순간이었다.
"새끼들이 인간을 우습게 봐도 유분수지."
주헌의 섬뜩한 미소와 함께 검은 안개가 피어올랐다.
[!?]
묵시 유물들은 놀랐다.
카오스를 불러낸 상황에서 주헌은 치우 유물을 발동한 것이다.
심지어 아누비스의 저승군단들 까지!
[저놈이...! 카오스를 불러내면서도 재보급 유물을...!]
마침내 튀어나온 도깨비 군단과 역사 속의 유명한 영령들, 도깨비 군단과 영령들은 콤비를 이루며 전장을 향해 달려갔다.
콰과과광!
검은 물결과 흰 물결이 뒤섞이는 순간이었다.
주헌의 군단과 단원들의 일격이 뒤섞여 언노운들이 비명을 질렀다.
묵시 유물들은 기겁했다.
하지만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주헌은 오히려 이 순간을 기다린 듯, 입꼬리를 올렸다.
"니들은 몰랐나본데, 내가 카오스의 문을 안 닫은 건, 때를 기다린 것뿐이다."
[...?!]
"니들 쪽수가 보통 많아야지!"
동시에 그가 던진 건 남은 두 개의 7대 유물!
[!]
그건 탐욕과 탐식의 유물, 마몬과 총수였다.
지금껏 쓸 만한 재물이 없어 각성하지 못했지만, 묵시 유물을 해치우면서 그 조건도 만족되어가는 모양이었다.
[조건을 충족했습니다.]
[7개가 모여 마제스티의 열쇠가 완전 각성합니다.]
그동안 각성하지 못하고 있었던 두 개의 유물이 각성을 시작했다.
지금까지 묵시 유물들을 처리한 숫자만 해도 이미 수천 이상! 그것도 급이 아주 뛰어난 재물들뿐이니, 열쇠를 각성시키기엔 충분했다.
곧 주헌의 손가락에 끼어져 있던 반지가 번쩍 빛을 내고.
쾅!
위압적인 마제스티의 오라가 터져나왔다.
카오스는 그 힘에 반응하듯 마지막 힘을 발동했다.
쿠구구구궁!
[세상의 모든 묵시 유물들을 빨아들입니다.]
티끌 하나 남기지 않고 모든 묵시 유물들이 빨려 들어가고, 곧 주헌의 입에서 마지막 명령이 떨어졌다.
"폐문(Closed)."
[아아아아악! 싫어어어!]
[싫다고!]
마침내 묵시 유물들의 비명소리와 함께 카오스의 문이 굳게 닫혔다. 세상에 평화가 찾아오는 순간이었다.
***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진 묵시 유물들.
사람들은 흔적도 없어진 유물들을 보면서 입을 벌렸다.
"사..."
"사라진 거지?"
마침내 현실이라는 것을 깨달은 사람들은 울부짖으며 열렬히 환호했다.
"만세! 그 괴물들이 모두 사라졌다!"
"이걸로 다 끝났다!"
"살았어, 우리 다 살았다고!"
전 세계의 사람들은 눈물을 흘리며 살아남은 기쁨을 만끽했다. 모두가 밖으로 나와 살았다며 부둥켜안고, 환희했다.
하지만 환호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단원들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왜?
"다, 단장님이 안 보여!"
"뭐?!"
그럴 때 목소리가 들려왔다.
"거기서 뭐하고 있어? 멍하게 있으면 죄다 깔린다?"
"?!"
주헌은 언제 이동한 건지, 자기 혼자 출구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쿠구구궁!
"아악!"
주헌이 옥좌를 부순 탓인지, 금이 가던 발할라가 완전히 박살 나기 시작했다.
뭐, 주헌이 추가적으로 성을 부수기 시작해서이기도 하지만.
덕분에 단원들은 입에 거품을 물면서 주헌을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단장님, 그만 부숴요!"
"도대체 이 아까운 궁전을 왜 버리고!"
"맞아요! 왜 옥좌까지...!"
하지만 그들은 말문을 잇지 못했다.
"위험해!"
콰르릉!
위대한 신의 성은 무섭게 무너졌다.
과거로 회귀해 찬란하게 빛을 냈던 황금은 잿빛으로 변했다. 성에 있던 망령들도 넋을 잃고 무기를 떨어트렸다.
[와, 왕이시여...!]
마치 체념하고 운명을 받아들이는 듯한 얼굴들.
무덤은 마치 무로 돌아가듯이 모래로 쓰러졌고, 단원들을 집어 삼키려듯 홍수처럼 덮쳐왔다.
쿠구구구궁!
흉악한 모래더미는 단원들의 발을 노렸다.
그리고 그 모래에 다들 집어 삼켜지려는 순간!
쾅!
"허억!"
요란한 폭발 소리와 함께 단원들 모두 탈출할 수 있었다.
단원들은 모두 헉헉 거친 숨을 몰아쉬며 죽으려고 했다. 물론 진작 밖으로 나온 주헌은 코웃음을 쳤지만.
"아이고 바보들, 느려들 터져가지고."
그러자 단원들은 딱딱한 모래를 씹으며 씩씩거렸다.
"뭐래 이 개 같은 단장이! 지는 치우로 쏙 빠져나가놓고!"
"맞아요! 치사해! 이건 조건 자체가 다른 거라니... 어?"
그러나 그들은 곧 눈을 동그랗게 떴다.
"단장님?"
주헌이 그 어디에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마치 이 세상에서 사라진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