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8화. 마지막 재보 (6)
"넌...!"
그들은 마치 귀신을 본 듯했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들의 옆에 앉아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주헌!
"이, 이놈이 왜 여기에 있어!"
그러나 주헌은 천하태평하게 술을 따랐다.
비싸도 맛은 더럽게 없다며 엑 혀까지 내밀면서.
"거참, 한 병에 수십만 원이나 하는 것들을 몇 개나 시킨 거야. 맛대가리도 없구만."
그를 본 양 쳰과 요한 역시도 몸을 떨고 있었다.
'저, 저놈이 왜.'
혹시 몰라 그 후로 뒷조사를 했지만, 틀림없이 그 비행기는 추락했고 놈이 아마존에 떨어진 걸 확인했기 때문이다.
'분명 묵시 유물에게 붙잡혔을 텐데.'
그런데 왜!
그러나 그 순간, 그들은 아차 싶었다.
"다른 단원들... 설마 다른 놈들도 살아있는 건 아니겠지!"
그러자 주헌은 코웃음을 치며 입꼬리를 올렸다.
"개 같은 새끼들. 괜한 짓을 해서 이런 일을 만들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
곧 주헌이 순식간에 뽑아낸 건 유물 단검!
품에서 나온 쇳덩어리는 스치는 것만으로도 술병을 가르고.
쨍그랑!
그는 룸에서 술을 마시고 있던 임원들과 판도라 중추들에게 칼을 겨누었다.
푸욱!
"꺄아악!"
"아악!"
순식간에 벌어진 피바람.
살벌한 오라를 띄는 칼은 놈들의 기름진 살을 갈라냈다.
"커허억!"
그들은 거품을 물면서 도망가려고 했지만, 고분 밖으로 도망칠 수는 없었다.
"허억! 살려줘!"
"판도라를 불러달라고! 젠장, 직원들은 죄다 어디 간 거야!"
쿵쿵, 그들은 자신들에게 다가오는 주헌을 보며 기겁을 했다.
"잠깐! 우리 말로 하세. 돈이든 판도라 자리든, 뭐든 줄 테니까 우리 대화로!"
그와 함께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
원탁의 유물 때문에 죽지 않는 이들은 까마귀로 포식하거나 고분의 함정에 던져 지옥을 보여주었다.
"처음에 한 약속만 지켜줬으면 이런 사단은 안 났을 텐데."
그의 칼은 적들의 심장에 꽂혔다.
"아악!"
공포에 질린 사람들이 엉금엉금 그 공간으로 도망치려고 했지만.
"커허억!"
소용없었다.
그 와중에 주헌의 칼은 양 쳰에게 향했다.
양 쳰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주헌을 보며 파르르 떨었다.
서주헌을 죽이는 대신, 높은 자리를 약조 받았던 그였다. 그래서 놈들의 정보를 빼돌리고, 놈들의 유물 증후군 증세가 더 악화되도록 했었지.
"저기, 그러니까 단장...! 그게!"
"그래, 네놈은 단장으로서 내가 직접 처리한다고 다짐했었는데."
"!"
주헌은 양 쳰의 머리카락을 콱 움켜쥐었다.
"저쪽에선 노친네가 먼저 죽여버려서 안타까웠지 뭐야."
"자, 잘못했...! 용서해줘, 단...!"
그러나 주헌의 칼은 곧바로 양 쳰의 배를 찔렀다.
"커헉...!"
그리고 복부에서 비틀리는 칼날!
창자가 믹서에 갈리는 감각에 양 쳰은 숨을 토하는 비명을 질렀다.
주헌은 웃음기도 띄지 않고 양 쳰을 노려보았다.
"이렇게 공명이는 쥐들한테 산 채로 창자를 갉아먹혔고."
"크아아악!"
"단은 자리가 갈렸지."
"커헉!"
대퇴근을 잘린 양 쳰은 발작하듯이 몸을 튀겼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뒤를 이어 목, 어깨, 팔!
주헌은 무덤에서 단원들이 괴로워했을 부위에 똑같이 칼을 박아 주었다.
그리고 처절하게 느끼게 해주었다.
가장 믿었던 동료에게 배신당해 죽어가는 그 고통을.
"자, 잘못 했...! 이대로 죽기 싫...! 살려줘...!"
"싫어."
순식간에 피가 솟구치고, 주헌은 얼굴에 묻은 피를 닦으며 회장에게로 향했다.
권 회장은 당황한 듯했다.
"서, 서주헌...!"
"또 한 번 죽일 수 있게 해줘서 고마워, 노친네."
"...?!"
"하지만 이걸로 진짜 끝이야."
칼이 다시 한번 원수의 목을 찔렀다.
***
그리고 그 무렵.
"헉, 허억. 진짜 미쳤어."
유재하는 아직도 제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 자신이 알고 있던 호구 단장이.
그 호구 단장이...!
그런 지배력이라니. 아마존을 씹어먹는 힘이라니! 게다가 자신들을 죽이려고 한 적들을 저렇게 한순간에...!
'어, 엄마야. 개기면 진짜 죽는다.'
심지어 살 떨리게 고분까지 일으켜서!
'아니, 이런 것도 할 수 있는 인간이었어?!'
자신이 정말 위험한 놈한테 그동안 개기고 있던 건 아니겠지!
유재하는 덜덜 떨면서 고분화가 된 주변을 살폈다.
그러나 이때였다.
"새끼야. 뭘 그리 떨고 있어."
"으, 으아악! 잘못했어요! 뭐든지 할게요! 멍멍! 꿀꿀! 꼬끼오!"
"돌았나."
주헌은 헛웃음을 흘렸지만, 유재하는 낑낑거리며 주헌을 보았다.
"그, 다른 녀석들은? 아니 다른 녀석들은요? 무덤에서 거의 죽어가고 있었잖아요. 괜찮은 거 맞아?"
물론 이번엔 유재하도 주헌을 도와 직접 무덤에 들어갔었다. 이번엔 후회하지 않게끔, 울지 않게끔. 단원들을 구하는데 성공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상태가 상태였던 터라 유재하는 다급해졌다.
"그놈들 살아 있는 거 맞냐고!...요!"
그 질문에 주헌이 쿨하게 까마귀의 힘일 불러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슈욱!
까마귀의 오라가 슬금슬금 튀어나오더니, 곧 퉤퉤 뱉듯이 뭔가를 뱉어냈다.
뱉어낸 것은 다름 아닌 단원들!
"커헉!"
"콜록 콜록!"
무덤에서 다 죽어가던 부하들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허억, 도대체 무슨 일이...!"
그리고 포식의 힘으로 단원들을 꺼낸 주헌은 치유 유물들을 툭툭 던져 주었다.
"대충 치료는 해놨지만, 그걸로 마저 치료하고."
"단장...?!"
"단장님?!"
그들은 무사했었던 것이냐며 주헌을 바라보고 있었다.
"단장. 암살자들한테 위협받는 거 아니었어?!"
"그래. 그래서 그 무덤에 들어갔던 건데...!"
그러자 주헌은 빠악 빠악, 굴러다니던 쟁반으로 단원들의 머리를 때렸다.
"누가, 멋대로, 나 없이, 그딴 곳에 들어가래. 어?"
"아악!"
"악!"
"아아악!"
"뭐 됐어. 다들 죽기 전에 끝났으니."
주헌은 쿨하게 뭔가를 던졌다.
"자, 이것도 이것도 써라. 아마 유물증후군에 효과가 있을 거야. 재하 놈이 복제하면 더 많아지겠지."
주헌이 던진 물건을 본 단원들은 깜짝 놀랐다.
"이, 이건!"
"불로초잖아요! 권 회장의 물건을 어떻게...!"
어떻게긴.
[귀속성 유물들을 일부 소환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억압되어 있던 힘이 풀려서인지, 그 덕분에 저쪽하고 연결이 되어서인지, 마제스티의 힘도 쓸 수 있게 되었고, 귀속성 유물들도 소환할 수 있었다.
제한이 풀렸다고 해야 하나.
즉, 이 불로초는 저쪽의 유물인 것이다.
'하지만 왜 갑자기 제한이 풀렸지.'
그리고 그 의문에 답을 하듯,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전능하신 왕을 뵙습니다."
"!"
주헌의 앞에 무릎을 꿇고 땅에 머리를 찧은 것은 다름 아닌 준이었다. 그는 언제 오만불손하게 굴었냐는 듯, 아주 깍듯하게 주헌에게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제가 감히 왕을 시험했습니다. 무례를 용서해주십시오."
***
준이 고두하자 유재하와 단원들이 놀란 듯이 그를 보았다.
"주, 준아...?"
"너. 왜 그래?"
다들 황당해했지만, 주헌만큼은 미간을 찌푸리며 준을 보았다.
"너..."
"늦었지만, 주인께 인사를 드립니다."
동시에 준의 검은 머리색이 금색으로 변했다.
"!"
"재보들의 총수, 마제스티의 요람이옵니다. 요람이라 부르셔도 되고, 문, 카오스, 뭐라고 부르셔도 되나이다."
단원들은 눈을 휘둥그레 떴고, 유재하는 입을 떡 벌렸으며, 주헌은 같잖다는 듯 웃었다.
얼마나 정체를 꽁꽁 숨기고 있던 건지, 그제야 까마귀도 놈을 요람이라고 인식하기 시작했다.
뭐, 준이 요람이라고 말하는 건 의외였지만...
"역시 너 나한테 사기친 거지?"
주헌은 동아줄을 손가락으로 쓰다듬으면서 웃었다.
"동아줄은 아마도 요람이 아니야."
즉, 준은 주헌을 시험한 것이었다.
아니 처음부터 마제스티를 섬길 생각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혼란을 주려 했던 건지, 일부러 변강쇠 유물들에게 제 기운을 묻혀놓지를 않나.
하지만 주헌은 그 시험에 넘어가지 않았고, 오히려 준을 시공을 연결한 건지 주헌이 마제스티 힘을 100% 활용하도록 해주었다.
지금 힘을 100% 발휘할 수 있는 것도 그 탓이리라.
"하지만 만약 그대로 네가 열어준 문을 넘어갔으면 난 요람도 없이 저쪽으로 넘어갔겠지. 그리고 거기서 묵시 유물들한테 살해당했을 거야."
그러자 준이 활짝 웃었다.
"아뇨. 아까 열어드린 문은 카오스 직행 문입니다. 제 소멸의 공간에 들어가셔서 먼지가 되셨겠죠."
"...!"
준의 눈빛은 꽤 차갑고, 날카로웠다.
"어차피 그 정도의 뚝심도 없는 인간은 요람을 가져도 묵시 유물들에게 잡혀먹혔을 겁니다. 그리고."
준이 눈을 번득였다.
"자신과 상관없는 세계라 버리고 가는 무책임한 인간이 할 짓은 뻔합니다. 또 다른 판도라 이사회를 만들게 될 뿐이죠."
"꺼져. 너도 그냥 인간이 싫을 뿐이잖아. 묵시 유물인 척하고 마제스티를 괴롭히려 한 거 아냐?"
그러자 준은 무례를 용서해달라며 고개를 숙였다.
"그래도 이번 왕께는 충성을 바쳐도 될 것 같다는 기분이 듭니다."
동시에 주헌의 눈이 바뀌었다.
"그래서. 널 이용하면 유물을 만들어낼 수 있는 거야?"
"아, 저로는 못하십니다."
"뭐?"
"정확히 말하면 저는 카오스. 즉 우주는 생산과 소멸을 동시에 담당합니다. 저는 그 중 유물의 소멸을 담당하는 존재... 일종의 블랙홀 같이 거대한 소멸의 공간인거죠."
주헌은 흥미로웠다.
"어쨌든 지금은 너만 있으면 묵시 유물은 처리할 수 있는 거지?"
"예. 목숨을 걸 정도의 난이도에, 아무도 해내지 못한 일이지만 왕께서라면 이루어내실 일이라고 사료되옵니다."
"좋아. 그럼 저쪽으로 돌아갈 문을 열어."
"따르겠습니다."
그 순간 준의 눈빛이 변하고, 엄청난 섬광이 터져나왔다.
동시에 주헌은 작은 신음을 흘렸다.
[시공의 문이 열립니다.]
[카오스를 통한 시공이동이 시작 됩니다.]
그럴 때 심술궂게 준이 마지막으로 물었다.
"왕이시여. 그냥 이곳에서 속편하게 새 인생을 시작하셔도 됩니다."
차라리 그게 더 편할 거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주헌이 비웃었다.
"시끄럽고 열어."
준은 웃었다.
동시에 주헌의 정신이 뒤흔들렸다.
그건 자신이 처음 이 세계에 넘어왔을 때와 똑같은 감각!
"큭!"
"단장님!"
단원들은 본능적으로 주헌을 붙잡았다.
제 부하들은 눈치가 빨랐다.
대충 준과 이야기 한 것만 들어도, 주헌에게 무슨 일이 있는 건지 모를 리 없으리라.
"단장님!"
가지마세요, 그들은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주헌이 향해야 할 곳은 이곳이 아니었다.
회귀 후, 자신이 선택한 곳은 저쪽인 만큼.
그래서일까.
유물 증후군, 그 끔찍한 병에서 해방된 단원들을 보며 주헌은 미소를 지었다.
'이제 이 녀석들은 더 이상 TKBM을 위해 일하지 않아도 된다.'
더 이상 자신의 밑에서 일할 필요도 없었다.
병이라는 족쇄가 사라지고 그들을 부려먹던 원수들이 사라진 이상.
그들을 막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으니까.
하지만 저쪽에 있는 녀석들은 다르다.
그들은 자신이 새로운 삶을 시작하면서 다시 제 삶에 끌어들인 녀석들.
죽게 내버려둘 수는 없었다.
주헌은 생기를 되찾은 녀석들을 보며 웃었다.
저 건강한 얼굴을 자신이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얼마나 이 녀석들을 자유롭게 해주고 싶었는지.
"그동안 못난 단장 믿고 따라와 줘서 고맙다."
해산.
짧은 외침과 함께 시야가 바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