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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굴왕-377화 (377/409)

377화. 마지막 재보 (5)

"지금밖에 저쪽으로 돌아갈 기회는 없습니다. 어쩌시겠습니까?"

이놈이. 주헌은 같잖다는 듯이 준을 바라보고 있었다.

확실했다.

검은머리는 그대로였지만, 검은색이었던 놈의 눈동자 색이 바뀌어 있었다.

동공이 아주 잘 보이는 황금빛으로.

그리고 주헌은 그 순간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유물.'

준은 틀림없이 유물의 기운을 풍기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까지 전혀 느낄 수 없었던 오라를.

그것도 상당한 기운이었다.

그래서 내심 당황한 주헌이 준을 쏘아보았다.

'설마 묵시 유물이 빙의했나?'

아니, 그런 게 아니었다.

[주의. SSS급의 위험한 유물입니다.]

[유물이 자신의 힘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

그랬다.

준은 묵시 유물이 빙의했다든가, 언노운이라든가 그런 것이 아니었다. 처음부터 유물이었던 것이다.

마치 프로메테우스처럼 사람의 모습을 한 채, 인간들 사이에 숨어 있던 유물.

그리고 아마도 도굴단에 왔을 때부터 그랬겠지.

아니나 다를까, 준이 눈을 가늘게 뜨면서 말했다.

"놀라실 건 알고 있습니다만, 시간이 얼마 없습니다. 빠른 결단을 내려주시길."

가늘어지는 동공에서는 유물 특유의 차가움이 느껴졌다.

환하게 웃고 있지만 주헌조차도 얼어붙을 냉기였다.

그래서 황당했던 것이다.

저놈이 저런 눈빛을 숨기고 있었다니.

준은 신입 인턴으로서 주헌이 많이 아껴주었고, 다른 단원들도 이뻐라 해주었던 참이었다.

하지만 자신은 물론, 천하의 공명이 조차도 유물의 기운에 대해서는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는데.

그것만으로 놈이 얼마나 위험하고 강한 유물인지 알 수 있었다.

그럴 때였다.

[시공의 문이 열렸습니다.]

"!"

준이 정체를 드러내는 순간부터 하늘이 뭔가 수상쩍다 싶더니, 엄청난 힘이 창공에 쏠리고 있었다.

그리고 천지개벽이 일어나듯 구름이 갈라지고, 그 안에서 검은 폭풍의 눈이 보였다.

안에 빠지면 어디로 날아갈지 모를 폭풍의 눈은 그 존재만으로 위압적이었다.

주변에서 소용돌이치는 바람과 번개는 덤이었다.

준이 자신 있게 말했다.

"저곳을 지나면 원래의 세계로 바로 돌아가실 수 있을 겁니다."

"...!"

놈이 거짓말을 하는 건 아닌 것 같았다.

그 증거로 준에게 파괴당하던 묵시 유물들이 항의했기 때문이다.

[뭐하는 짓이냐!]

[시공의 문을 열다니!]

[정말 저놈을 원래 세계로 돌려보낼 생각인 것이냐!]

저건 틀림없는 시공의 문.

주헌은 미간을 좁히고 준을 보았다.

'그럼 저놈이 묵시 유물 중 시공의 유물이었던 건가.'

그리고 놈이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참고로 당신이 저 문을 이용할 수 있는 시간은 앞으로 단 삼 분. 닫히면 두 번 다시 원래 세계로는 못 돌아갑니다."

"뭐라고?"

"또다시 열릴 일도 없고요."

그러나 주헌은 비웃으면서 까마귀를 불러내려고 했다.

뭐가 지금이 아니면 기회가 없단 말인가.

'저놈을 내 것으로 삼으면 다시 열 수 있는 거잖아.'

하지만 그 생각을 뻔히 읽은 듯, 준이 입꼬리를 올렸다.

그리고.

"!"

그 순간 까마귀의 기운이 사라지고 말았다.

그건 한순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준은 여유롭게 웃었다.

"이 세계에서는 까마귀한테 못 기댈 겁니다. 고작해야 50%도 안 되는 힘으로 누구를 사역하겠다고."

이놈이.

주헌은 까마귀를 불러내려고 했지만, 정말로 까마귀의 기운은 느껴지지 않았다.

원래부터 까마귀는 이 세계에선 50% 정도밖에 힘을 발휘할 수 없었다.

묵시 유물이라면 아예 0%까지 억누르는 것도 불가능하진 않겠지.

"분명히 말씀드렸습니다. 남은 시간은 이제 앞으로 2분. 그 시간이 끝나면 전 저 시공을 타고 다른 차원으로 넘어갈 겁니다. 이곳도 저쪽도 아닌, 아예 다른 곳으로."

"...!"

즉 주헌이 이 세계를 벗어날 방법이 아예 사라진다는 의미였다. 그러자 묵시 유물 중 누군가가 외쳤다.

[왜 자꾸 저놈을 원래 세계로 보내려는 거냐! 놈은 여기에 가둬야 한다니까!]

[싯! 바보냐! 서주헌은 요람을 못 찾았어. 이대로 넘어가면 우리한테 이득인 거라고.]

[아하...!]

그 말에 준은 가볍게 웃었다.

"그거라면 걱정 마시길. 왕께서는 이미 요람을 얻으셨으니."

[?!]

묵시 유물들은 충격에 빠졌다.

그러나 준은 이미 알고 있지 않느냐는 시선으로 주헌을 보았다.

"이미 눈치 채셨을 텐데요. 요람의 기운을."

준이 이어서 가리킨 것은 동아줄.

준은 태연하게 웃었다.

"그게 바로 요람입니다. 이걸로 이 공간에 연연해하실 이유는 더 없으신 거겠죠."

주헌은 말없이 동아줄을 보았다.

확실히 동아줄에게서는 전에 없던 요람의 기운이 점점 커지고 있었다.

그리고 묵시 유물들은 그제야 준의 계획을 눈치챈 듯이 항의했다.

[배신자, 배신자다!]

[저놈이 우리를 배신하는 거야!]

곧 준을 의심하듯 보던 주헌이 웃었다.

"보아하니 너도 묵시 유물인 것 같은데, 왜 날 돕는 거지?"

그러자 준은 대수롭지 않게 웃었다.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지 않는 놈들이 있어서요. 왕께서라면 그놈들을 처리할 수 있으실 것 같기에."

[이 배신자!]

[당장 이 사실을 다른 놈들한테도 알려라!]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준은 주헌만 바라보았다.

"망설이실 이유는 이제 없지 않습니까. 요람도 가지셨겠다, 이제 미련없이 저곳으로 돌아가시면 됩니다. 이곳에 있어봤자 왕께 도움이 되는 일도 없고요."

여유롭게 웃고 있지만 다소 오만불손함이 느껴지는 미소였다. 그럼에도 놈이 하는 말은 결코 틀린 말이 아니었다.

이곳은 다른 시간선. 평행세계였고, 또 자신이 버려버린 축의 시간선이기도 했다.

어차피 자신이 살 세계도 아닌 세계.

그러나 이야기를 가만히 듣던 유재하가 외쳤다.

"잠깐, 이게 다 무슨 소리야! 원래 세계라니! 단장 딴 사람이야? 다른 데서 왔어? 무슨 말이야, 도대체!"

준이 보트에서 밀어버린 터라 물에서 허우적거리고 있긴 하지만, 들을 건 다 들은 모양이었다.

"단장! 최근에 단장 행보가 좀 이상하더니 혹시...!"

주헌은 그 말에 웃었다.

'그래, 이상했겠지.'

그리고 그런 유재하의 말에 새삼 깨달았다.

이 세계는 자신의 세계가 아니라는 것을.

어차피 요람만 찾고 떠날 생각이었던 곳이라는 걸.

"확실히 네놈이 하는 말은 잘 알겠다. 어차피 여기는 내가 살 곳도 아니고, 부하들도 죽든 말든 상관 안해도 된다는 거지."

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내밀었다.

"예. 아셨으면 어서 원래 세계로..."

그러나 그 순간이었다.

"나한테 명령하지 마, 새끼야."

주헌은 준을 보트에서 가볍게 밀쳤다.

'!'

풍덩!

곧 보트를 빼앗은 주헌은 뒤도 보지 않고 무덤으로 향했다.

***

풍덩!

졸지에 보트에서 빠진 준은 당황스러웠다.

물론 헤엄을 못 치는 것도 아니니, 물에 빠진 건 상관없었다. 보트를 빼앗긴 것도 상관없었다.

하지만.

"잠...!"

주헌은 시공의 문은 개뿔, 그딴 건 개나 쳐먹으라는 듯 순식간에 물에 닿았다.

그리고 눈 깜짝할 사이에 그가 향한 곳은 바로 까마귀의 무덤이었다.

자신의 부하들이 갇혀 있을 바로 그 무덤이었다.

"단장!"

"...!"

설마 원래 세계로 안 돌아갈 셈인가.

준은 당황했다.

주헌이 이렇게 나올 건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설마 정말로 이곳의 부하들을 구할 생각인가.'

당연히 저쪽으로 갈 거라 생각했건만.

'이러면 계획이...!'

"잠깐, 요람도 찾았잖아요? 굳이 왜!"

그러나 주헌은 비웃었다.

동아줄이 요람이란 말을 곧이곧대로 믿으라고?

그것도 유물의 말을?

돌았나.

곧 주헌이 무덤입구에 가까이 다가가자, 준이 하늘을 보며 다급하게 외쳤다.

"정말로 문이 닫힙니다! 다시는 못 돌아간다고요! 이곳의 부하들은 그냥 버려요! 어차피 지금의 당신한테는 가짜잖습니까!"

그러나 주헌은 개무시했다.

"어디에 있든 똑같은 내 사람들이야."

"...!"

단원들이 자신도 없이 무덤에 들어간 이유는 뻔했다.

놈들이 자신의 명령 없이 무덤에 들어갈 이유는 딱 하나.

'단장을 해하겠다.'

분명 그런 말을 듣지 않고서야 놈들이 멋대로 감옥에 들어갈 리가 없었다. 그런 놈들을 나 몰라라 버리고 갈 리가 없지 않은가.

뭐, 설령 그런 이유가 아니더라도 상관없었다.

"내가 좀 욕심이 많아서. 어느 것 하나만 고르는 건 성질에 안 맞거든."

준은 충격을 받은 듯 했지만, 곧 헛웃음을 흘렸다.

"소용없다니까요! 까마귀의 힘도 없이 그 안에 들어가는 건 자살 행위입니다! 안에는 묵시 유물들이!"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주헌이 입구로 들어가려 할 때였다.

번쩍!

"!"

준에게 억압되고 있던 까마귀의 힘이 폭주하듯 돋아났다.

쿠구궁!

[억압을 뚫습니다.]

[힘이 되돌아옵니다.]

[50% 한계선까지 완전히 돌아왔습니다.]

메시지가 떠오르기 무섭게 주헌의 눈이 붉게 물들었다.

'...!'

준은 놀란 듯했다.

자신의 억압을 뚫어내다니.

그리고 그 순간, 저쪽에서 사용했던 흉흉한 까마귀의 힘이 치솟아올랐다.

쿵!

결국 준은 주헌을 보며 눈을 감았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제한되었던 힘이 점점 더 돌아옵니다.]

[60, 70, 80... 90... 100%, 온전한 힘을 발휘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마침내 완전히 되찾은 힘!

그 위력은 상당했다.

덕분에 헤엄쳐서 뭍으로 나온 유재하는 기겁할 수밖에 없었다.

"미, 미친! 저게 뭐야!"

천하의 왕급들, 아니 사황급조차도 굴복시킬 만한 엄청난 지배력. 여타 유물들을 집어 삼킬 재보의 강력한 힘.

다른 차원에서도 온전한 마제스티의 힘을 발휘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 덕분일까.

사나운 검은 오라가 흉흉하게 아마존 일대에 뻗어나가고.

쾅!

무서운 속도로 뻗어나가는 까마귀의 오라는 아마존에 숨은 모든 유물들을 집어삼켰다.

쿠구궁!

곧 아마존 전 일대를 뒤덮은 검은 그림자!

마침내 태양을 삼킬 정도로 사나운 오라는 대감옥에 침입했다. 대감옥에 침입한 오라는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삼키고.

쾅!

시커먼 오라가 무덤 입구에서 터져 나왔다.

권 회장이 야심만만하게 불러냈던 무덤이 박살 나는 순간이었다.

***

"하하, 이걸로 서주헌을 비롯한 눈엣가시들도 사라지겠군요."

"손해도 있겠지만, 차라리 잘된 결정이었습니다. 서주헌의 최근 행태를 봐도 그렇고, 그놈이 언제까지 얌전히 있을 거란 보장도 없잖습니까."

"그건 그래요."

시내에서 술판이 벌어지고 잇는 룸.

여자들은 바쁘게 부대끼며 술을 나르고, TKBM의 임원들 그리고 판도라 중추들은 끼리끼리 모여 웃고 있었다. 주헌과 그 도굴단의 존재를 지워버리고자 한 그들은 이걸로 다 잘된 것이라고 여겼다.

그래서일까.

"너희들의 실수도 그냥 넘겨주지."

그들은 주헌을 놓친 양 쳰과 요한을 보면서 흔쾌히 웃었다.

"생각 같아선 처분 받아야 마땅하나, 오늘은 좋은 날이니 용서해주지."

"비행기에 심어두었던 승무원들이 놈들을 그 무덤에 처박은 건 확실한 것 같으니."

"그 일대는 기괴한 유물들이 쫙 깔렸어. 절대 살아서 못 돌아올 테지."

둘은 머리를 깊게 숙였다.

"감사합니다! 두 번 다시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좋은 날이니 어서 이리로 와서..."

그러나 그 순간이었다.

쾅!

"여기 술맛이 그렇게 좋나?"

"?!"

그 목소리와 함께 그들이 있던 실내가 고분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고분화 현상이 벌어집니다.]

안에 있던 여자들과 직원들은 온데간데 없고, 자신들만 고분에 갇혀버렸다.

"아니, 도대체 무슨 일이야! 이건!"

하지만 기절초풍하던 그들은 고개를 돌린 순간, 다른 의미로 더 기겁했다.

"술맛이 그리 좋으면 나도 한잔 주면 좋겠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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