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6화. 마지막 재보 (4)
"그래. 그래서 너희는 왜 여기에 있지?"
공항에 도착한 주헌은 입꼬리를 올리고 있었다.
그곳은 TKBM의 회사 전용기가 있는 곳이었다.
그리고 전용기에 올라탄 주헌은 무척이나 살벌하게 웃었다.
그도 그럴 법한 게, 전용기에 타고 있던 것은 다름 아닌 양 쳰과 사무엘이었기 때문이었다.
과거의 배신자였던 그 죽일 놈들이.
둘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 주헌을 반기려고 했지만...
"어?"
"어어?"
그들은 당황하고 말았다.
왜?
전용기에 올라탄 건 주헌 뿐만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아씨! 내 하와이! 내 휴가!"
그들의 시선은 주헌을 따라 들어오는 유재하에게 꽂혀버렸다. 마치 귀신을 본 듯, 그들은 당황해서 서로의 얼굴을 보았다.
아니, 막내 준이야 그렇다 쳐도...!
'뭐야. 저 새끼가 왜 여기에 있는 거야?'
'분명히 휴가를 보냈을 텐데!'
포커페이스를 자랑하는 그들조차도 놀랄 정도였다.
둘은 서로를 쿡쿡 찌르며 속삭였다.
'뭐야, 복원사도 데리고 가는 거였어?'
'아니. 난 그런 지시는 못 들었는데. 넌?'
애초에 이 계획은 주헌의 도굴단을 몰살하기 위한 마지막 작업. 주헌을 지옥으로 끌고 가기 위해 이 자리에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권 회장이 아끼는 SSS급 복원사라니?
'회장님도 아시는 일이야?'
어쨌거나 이건 곤란한 일이었다.
그래서일까.
"유재하. 너 휴가 간 거 아니었어?"
그들은 곤란하다는 듯이 유재하를 막았다.
"왜 네가 여기 있는지 모르겠지만, 넌 여기 있을 때가 아니라 회장님한테 가봐야..."
그 말에 유재하는 짜증을 내면서 그들의 앞에 다가왔다.
그리고.
쫘악!
둘의 뺨을 날려버렸다. 그것도 유물까지 써서 더 막강해진 파워로!
"?!"
졸지에 풀파워로 얻어맞고 날아간 그들은 피를 토했다.
"커, 커헉!"
정말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바닥에 나가떨어진 그들은 정말 황당했는지 어리둥절하게 유재하를 보았다.
아니, 이놈이 갑자기 왜 이래?
하지만 유재하는 사나운 눈빛으로 주먹을 우득거리고 있었다.
"뭐? 휴가? 내가 왜 여기에 있는지 몰라?"
그리고는 손에 이어 구둣발로 놈들을 찍었다.
빠각!
"?!"
사무엘과 양 쳰. 두 서포터는 정강이와 명치에서 느껴지는 격통에 괴로워했다.
"커헉, 허억! 아니 잠깐, 도대체 왜...!"
그러자 유재하는 같잖다는 듯이 살벌하게 웃었다.
"왜? 니들이 나 찾았다며! 꼭 필요하다고! 단장이 그랬는데?"
"?!"
아니, 그건 또 무슨 개소리야!
그들은 황당한 표정으로 주헌을 보았다.
그러나 좌석에 앉은 주헌은 시치미를 뚝 떼고 TV를 볼 뿐이었다. 묘한 웃음기를 띄는 게 아주 얄미울 정도.
'저놈이...!'
곧 분노한 유재하가 눈을 번득였다.
"니들 때문에 내 휴가 날아갔어. 어?! 5년 만에 찾아온 내 포상휴가! 내 하와이 비행기표 어쩔 거야!"
동시에 양 쳰과 사무엘은 다급하게 유재하를 붙잡았다.
"잠깐 이건 오해!"
"우리는 그런 적이... 커헉!"
뻐억!
"아니긴 뭐가 아니야. 병신 단장이 호구긴 해도 거짓말은 안 하거든!"
"아악!"
유재하는 퍽퍽퍽 둘을 패며, 피떡을 만들었다.
둘은 저항도 못하고 정말 죽으려고 했다.
저항하고 싶어도 유재하는 괜히 이 시절의 왕급이 아니었다. 전투는 젬병이라며 얕잡아보기도 했지만, 사황급 빼고 3위권에 드는 만큼 기본 스펙이 넘사벽!
"커헉!"
그에 비하면 양 쳰은 왕급이었다가 몰락한 서포터.
그리고 사무엘, 아니 요한은 자신의 힘을 극한으로 죽이고 있는 판도라의 감시꾼.
둘 다 힘을 쓰지 못하는 입장으로써 저항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어디 그뿐인가.
'이 자식은 회장님 직속의 복원사...!'
권 회장이 아끼는 놈을 감히 건들 수 있을 리도 없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아주 잘 이용해 먹고 있는 유재하는 날 잡았다는 듯이 눈을 번득였다.
"5년 만에 찾아온 포상 휴가를 날린 대가는 똑똑히 치르게 해주지. 앙?"
'젠장!'
둘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그와 함께 큭큭큭 미친 듯이 쪼개는 주헌의 웃음소리는 덤이었다.
***
"아니 잠깐! 단장! 저희도 함께 가야!"
"그래요! 단장! 저희가 도움이...!"
양 쳰과 사무엘은 비행기 출입구에서 주헌에게 사정하고 있었다. 어떻게든 주헌을 따라가겠다, 무덤에 함께 가겠다고 했지만 글쎄.
"응, 꺼져. 필요 없어."
주헌에게 뻥뻥 걷어차이며 비행기 밑으로 추락하고 말았다.
"잠깐 단장! 아악!"
심지어 들고 온 유물과 짐들까지 빼앗긴 채, 알몸으로 쫓겨났다.
[비행기가 곧 이륙합니다. 승객 여러분들께서는 안전벨트를...]
부아아앙-
그리고 둘은 그렇게 떠나가는 비행기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둘은 떠나는 비행기를 보며 똥줄이 타들어갔다.
"젠장, 이 대로면 계획은 실패잖아!"
두 사람은 이를 갈았다.
양 쳰은 나름대로 권 회장이 걱정.
게다가 사무엘의 경우에는 판도라 이사회가 걸려있었다. 자신들의 실수를 절대 용서할 리가 없었다.
서주헌을 죽이지 못하면 자신이 죽는다.
그들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원래의 계획대로 서주헌의 발굴단을 전부 죽여야만 했다.
하지만...!
"젠장, 이게 다 유재하 새끼가 와서야."
"도대체 그 새끼는 왜 따라와서!"
양 쳰과 사무엘은 똥줄을 태우며 서둘러 다른 비행기를 찾기 시작했다.
***
"자, 그럼 이제 말해보시죠."
TKBM의 전용기가 아마존에 거의 도착했을 무렵이었다. 둘을 개패듯이 팼던 유재하가 주헌에게 물었다.
"왜 그놈들을 패게 한 건데?"
"뭐?"
유재하는 마치 칭찬해달라는 듯 히죽거렸다.
"아까 그놈들이 나 필요로 한다는 거 구라잖아. 내막은 모르겠지만 단장이 그놈들 패고 싶어 하는 거 같아서 장단은 맞춰주긴 했는데."
주헌은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럼 구라란 걸 알면서도 그놈들을 쥐어 팬 거냐?"
"당연하지. 그놈들보단 우리 호구 단장 쪽이 천만 배 나으니까."
아무래도 유재하는 사무엘과 양 쳰이 마음에 안 드는 모양이었다.
"딱 보면 알아. 가까이 할 타입은 아니야. 나 이래 보여도 사기꾼이거든? 괜히 눈치로 밥 먹고 사는 직업이 아니라고."
자랑은 아닌데 말이다.
"갑자기 포상 휴가를 보내준다는 것도 그렇고 느낌 구리잖아. 그리고..."
유재하는 힐끔 주헌을 보았다.
"안 따라오면 내가 울고불고 난리날 거라는 건 또 뭔 소린데?"
아마도 그게 못내 신경 쓰였던 모양이었다.
그 좋은 휴가도 때려 치우고 따라올 정도면.
"내가 왜 우는데?"
"넌 몰라도 돼."
그냥 주헌은 제 부하 놈이면 누구든 질질 짜는 게 보기 싫었을 뿐이었다.
사실 동료를 잃는 죄책감은 한 번으로 족하지 않나. 비록 세계는 다를지라도 그냥 놈에게 기회를 주고 싶었을 뿐.
"별 건 아니니까 신경 끄고."
그러자 유재하는 다 안다는 듯 주헌을 보았다.
"에이 보나마나 내 재산 들고 튀려고 했겠지. 그치?"
주헌이 황당하다는 듯 비웃을 때였다.
"단장님. 저기, 입구가 보여요!"
준의 외침에 주헌이 확 고개를 돌렸다.
까마귀도 반응을 보였다.
[대감옥의 일부가 보입니다.]
비행기의 창문 밖으로 보이는 길고 긴 아마존 강.
그리고 그 주변에 우뚝 서 있는 수상한 돌무덤.
'우리가 들어갔던 곳이다.'
곧 유재하가 물었다.
"정말 저 안에 그 녀석들이 들어갔다고?"
"네. 안에서 다른 단원 분들의 기운이 느껴져요."
"에이. 시스템이 경고한 것치고는 약해보이는 곳인데."
제법 흉흉하긴 하지만 그래도 도굴단 정도면 클리어 할 수 있을 것 같은 무덤.
하지만 주헌은 비웃었다.
'그래. 우리도 그렇게 갔다가 전멸했지.'
물론 지금이야 다른 의미로 골치 아플 무덤이긴 했지만.
[감옥 안에서 묵시 유물의 기운이 느껴집니다.]
[시공 유물로 침입한 놈들 같습니다.]
그랬다.
지금 저 안에는 시간을 넘어온 묵시 유물들이 있었던 것이다. 자신이 요람을 가져올 것이 두려워 쳐들어 온 놈들이.
그리고 놈들은 이 시간선의 인물을 이용해 자꾸만 자신을 죽는 길로 끌고 가려는 것이었다.
지금만 해도 그랬다.
'그 새끼들, 내가 저기로 들어갈 걸 알고 있는 거야.'
저 안에 있는 부하들을 구하러 갈 걸 알고 있을 테니까.
'내 부하들이니 강제로 처넣지는 못했을 테고.'
보나마나 자신을 가지고 협박을 하든, 명령을 내리든 해서 저 안에 들어가게 했겠지만...
"역시 안 들어가는 게 낫지 않을까요."
돌연 준이 미간을 좁혔다.
아무래도 위험하다는 걸 파악한 모양이었다.
실제로 까마귀도 경고했다.
[요람도 없이 묵시 유물을 상대하는 건 위험합니다.]
그러자 주헌은 물끄러미 제 동아줄, 아니 실뭉치를 바라보았다.
실은 주헌이 자신을 보자 기분이 좋은 듯 씰룩거렸다.
'요람이라...'
동아줄에게서 느껴지기 시작한 요람의 기운에 주헌은 눈살을 찌푸렸다. 준은 그런 주헌을 의미심장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번득이는 눈빛이 꽤나 수상했다.
그리고 그 순간이었다.
"저, 착륙 전에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전용기에 타고 있던 승무원이 주헌에게 다가오고, 동시에 준이 같잖다는 듯 웃으며 손가락을 까닥거렸다.
그러자 순식간에 전용기에 찬 흉악한 오라.
[굉장히 흉악한 오라가 차오릅니다.]
"!"
그와 함께 갑자기 그들이 타고 있던 전용기에서 폭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콰과광!
"뭐야!"
균형을 잃은 비행기가 거칠게 뒤흔들리고, 심하게 요동을 치면서 비행기가 한쪽으로 기울어졌다.
끼이익!
"아악!"
그 바람에 주헌 역시 균형을 잃었고, 유재하는 아예 날아가 벽에 처박혔다.
곧 벽에 달라붙은 유재하가 죽으려고 하며 승무원에게 외쳤다.
"이러다가 추락하겠어! 빨리... 어?!"
그러나 승무원을 보던 유재하는 말문이 막혔다.
승무원들 역시 자신들처럼 당황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뭐, 뭐야?!"
승무원이 흉흉한 오라를 뿜어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건 인간이 아니었다.
"유물?!"
동시에 주헌이 미간을 찌푸렸다.
[경고, 묵시 유물의 짓입니다.]
이때 유재하가 외쳤다.
"단장! 비행기가!"
그들이 타고 있던 비행기가 기어이 두 쪽으로 갈라지기 시작했다.
유재하는 재빨리 제 능력으로 비행기를 붙여보려고 했지만.
끼이이익!
결국 비행기가 동강나면서 주헌과 유재하가 아마존으로 추락했다.
***
"아아아악!"
둘이 떨어지자 당황한 동아줄, 아니 실이 긴 몸을 늘렸다.
[$#*#&$*!]
위험해! 위험해!
실은 다급하게 주헌과 유재하를 감쌌다.
하지만.
[능력을 발휘할 수 없습니다.]
지금은 하늘이 내려준 동아줄이 아닌, 고작해야 실뭉치!
전혀 날 수가 없었다!
[...!!!!]
결국 그 사실을 깨달은 동아줄도 비명을 지르며 주인과 함께 아마존 강으로 곤두박질 칠 수밖에 없었다.
풍덩!
다행히 둘은 각자 유물의 힘으로 비행기에서 떨어지고도 살아남을 수 있었다.
하지만 강은 상당히 깊었다.
그리고.
[위험. 강 전체에 묵시 유물의 힘이 깔려있습니다. 모든 유물이 파괴됩니다.]
[해당 세계에서 힘을 다 발휘할 수 없습니다.]
[신체능력이 따라주지 않습니다.]
'젠장!'
묵시 유물의 오라 때문인지, 강에서 올라오는 비릿한 냄새는 덤이었다.
곧 강에 빠진 그들은 서둘러 육지로 향하려고 했지만.
풍덩!
"큭!"
일행 모두가 함께 떨어진 승무원에게 붙들려 강 깊숙한 곳으로 끌려가고 말았다.
"커헉!"
주헌은 숨이 막혔다.
그는 자신들을 강바닥으로 끌고 가는 여자들을 쳐내려고 했다. 그러나 제 힘을 다 발휘하지 못하는 까마귀가 먼저 묵시 유물의 타겟이 되었다.
이 세계에서 가장 까다로운 유물이라고 할 수 있으니만큼.
하지만 의외의 복병은 있기 마련.
동아줄, 아니 실이 승무원의 목을 졸랐다.
그러자 승무원이 괴로워하며 일순 힘이 풀리고, 주헌이 여자의 얼굴을 뻐억 걷어차면서 헤엄쳤다.
잠시 후, 흠뻑 젖은 주헌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헉!"
근처에서 유재하의 목소리가 들렸다.
"단장! 빨리 이거 잡아!"
먼저 수면 위로 빠져나갔던 유재하가 나무 보트로 올라가고 있었다. 그 사이 유물로 보트를 만들어 낸 것이리라. 그렇게 주헌이 보트 쪽으로 향할 때였다.
"?!"
자신의 발밑으로 거대괴물상어, 메갈로돈을 보는 듯한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서주헌. 네놈은 여기서 죽어야한다.]
놈은 주헌을 집어 삼키려고 했다.
그뿐이 아니었다.
[주의. 묵시 유물들이 몰려옵니다.]
강에서 해파리 촉수 같은 것들이 뻗어 나오면서 주헌을 옭아맸다.
"큭!"
까마귀 역시 묵시 유물에게 힘을 빼앗기기 시작했다.
'칫...!'
주헌이 마몬을 불러내려는 그 순간이었다.
아마존 강 전체에서 빛이 나기 시작했다.
번쩍!
마치 강 아래에서 터진 섬광이 물 위로 뻗어 나오는 듯했다.
동시에 강 안에 있던 묵시 유물들이 크아아 비명을 질렀다. 아주 강력한 힘이었다. 그리고 그 힘의 주인을 눈치챈 그들은 이를 갈았다.
[이게 무슨 짓이냐! 우린 같은 아군이라고!]
[그래. 서주헌을 죽일 기회인데!]
그러자 누군가가 보트 위에서 조소를 흘렸다.
"아직 저쪽에서 마제스티의 교체가 이루어지지 않았어. 그 전까지 서주헌은 아직 죽이면 안 된다고. 그 뻔한 것도 몰라?"
그 말에 유재하가 황당하다는 듯 보트 위를 보았다.
그도 그럴 법한 게, 제가 만든 보트 위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타고 있는 건 준이었기 때문이다.
"야... 인턴!"
준은 방긋 웃으면서 보트를 잡고 있던 유재하의 손을 쳐냈다. 그와 함께 유재하는 바로 강으로 빠졌다.
"악! 푸흡! 허푸! 야! 이게 무슨... 허억!"
동시에 준은 보트 채로 주헌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그가 다가올 때 주헌은 눈살을 찌푸렸다.
[상당한 유물의 기운이 느껴집니다.]
[SSS급의 위험한 유물입니다.]
저 자식 설마.
아니나 다를까. 유물의 기운을 풀풀 풍기는 준이 능력을 발휘했다.
쿠구궁!
그러자 하늘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마치 문이 열리듯이.
그리고 준이 주헌에게 제시했다.
"왕이시여. 왕께 제의를 하나 하겠습니다."
"!"
"이대로면 당신은 영원히 이 공간에 갇혀 죽게 될 겁니다. 어차피 이곳의 동료들은 지금의 당신에게 있어서는 가짜."
준이 총명해 보이는 눈을 사납게 번득였다.
"시공의 문을 열어드릴 테니, 이대로 여기 일은 무시하시고 저쪽으로 돌아가십시오."
"뭐?"
"지금밖에 저쪽으로 돌아갈 기회는 없습니다. 어쩌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