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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굴왕-375화 (375/409)

375화. 마지막 재보 (3)

아이린의 가녀린 몸이 주헌의 품에 쏙하고 들어갔다.

그 광경에 지켜보고 있던 단원들은 깜짝 놀랐다.

특히 유재하가 식겁했다.

"저, 저 인간. 돌았어?!"

아니, 미치진 않았을지 모른다.

남자들이라면 한 번쯤 소원이랍시고 기도해봤을지도 모르는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래도 이건 아니었다.

"야! 파산왕이 아무리 예뻐도, 젠장 부럽... 아니! 너 그러다가 진짜 뒤져! 이거 장난하는 거 아니라고!"

유재하는 그래도 다급하게 주헌을 걱정했다.

괜히 파산왕이 나타나면 다들 도망가는 것이 아니었다.

같은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도 위험하기 짝이 없는데, 아예 사정권 안으로 들어간다고?

순간 까마귀 오라도 꿈틀거린 듯했다.

[주의. 매우매우 강력한 파산의 힘이 작렬합니다.]

[차원이 다른 힘입니다. 매우매우 위험합니다.]

됐으니까 빨리 떨어지기나 하라는 의미일까.

실이 된 동아줄도 주머니에서 슬금슬금 기어 나와 찰싹 찰싹 주헌의 다리를 치는 듯했다.

하지만 주헌은 더 꽉 끌어안았다.

평소라면 끌어안으면서 조물조물 거릴 수 있는 곳이 있겠지만, 참았다. 메시지가 또 올라왔다.

[당장 떨어져야 할 것 같습니다.]

주헌은 무시했다.

'됐으니까 능력이나 개방해라.'

그 명령과 함께 주헌의 눈색이 붉게 변했다.

이 시대에서 개방할 수 없을 까마귀의 힘이 발현된 것이다.

[50%의 힘을 발휘합니다.]

[파산의 힘을 잡아 먹습니다.]

[파산의 힘을 잡아 먹습니다.]

하지만 그를 알 턱이 없는 아이린은 정말 당황스러웠다.

"이러면 당신도 위험...읍!"

주헌은 시끄럽다는 듯, 아이린의 작은 뒷통수를 잡아 다시 품었다. 덕분에 아이린은 정말 당혹스러웠다.

유물증후군 때문에 약해보일 것 같은 외견과는 달리 탄탄하고 넓은 가슴.

'기분 좋은 체취...'

그렇게 생각한 순간, 그녀의 얼굴이 확 붉어졌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주헌의 눈이 번득였다.

그리고 그런 그가 손을 쭉 뻗는 곳은 다름 아닌 아이린의 가방!

'내 재보!'

주헌이 가방에 손을 쑤욱 집어넣자 아이린은 움찔했다. 동시에 본능적으로 들끓는 힘.

[파산의 힘이 피어오릅니다.]

그러자 주헌이 달래듯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오구오구, 가만히 좀 있어봐요. 그러다가 다 부서지겠네."

"?!"

아이린은 여러 의미로 당황스러웠다.

파산의 힘도 안 통해, 심지어 남자에게 안겨.

이때였다.

"아, 찾았다."

그 밝은 목소리와 함께 주헌이 뭔가를 집어 들었다.

그건 가방 안에 있던 팬티!

이어서 그는 아이린이 쥔 흉측한 막대기도 빼앗아갔다.

'!'

"주세요!"

놀란 아이린이 도로 빼앗아가려고 했지만, 주헌이 안 된다며 밉살맞게 웃었다.

"어허, 더 좋은 걸 눈앞에 냅두고 왜 이딴 걸."

더 좋은 거?

주헌은 하하 웃으면서 흉물을 그 자리에서 뽀개버렸다. 그러자 애꿎은 유물이 울부짖었다.

[아이고, 나리! 나리이이이!]

그리고 주헌은 유재하에게 휙 던져주며 말했다.

"고쳐."

"뭐?!"

"고쳐 새끼야. 귀 먹었냐?"

유재하는 그저 어이가 없었다. 이딴 식으로 부려먹어본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허참, 방금 부순 놈이 누군데 나한테 고치라 마라 지랄...!"

그러나 곧 그는 주헌의 눈빛을 보고 땀을 삐질 흘렸다.

"...할 수도 있지 뭐. 뭐 어려운 일도 아니니까 뭐... 수고비는 1,000만 원. 아니 100만 원만 받을게."

유재하는 눈을 데구루루 굴리며 흉물들을 가져갔다. 어지간히 만지기 싫은지, 나뭇가지로 툭툭 쳐가며 복원을 하기 시작했다.

이에 아이린이 주헌을 쏘아보았다.

"뭐하는 거죠?"

"저것들이 꼭 필요해서. 환불은 여기."

주헌은 유재하의 핸드폰을 휙 던지면서 말했다.

"이 새끼 은행비밀번호 8407. 가져가고 싶은 만큼 다 뽑아가시고."

"뭐, 뭐? 야!"

"저주를 푸는 방법에 대해서는... 뭐 나중에?"

주헌은 아이린의 뽀얀 볼을 살살 쓰다듬다가 바로 볼일을 보러 갔다.

그 손길에 아이린의 눈빛이 흔들렸다.

곧 아이린이 무의식중에 주헌을 붙잡으려 할 때였다.

쿵!

갑자기 일어난 격렬한 지진에 다들 깜짝 놀랐다.

"아악!"

뒤이어 전국구의 모든 새들이 급하게 어디론가 날아가기 시작했다. 아니 새들 뿐이 아니었다.

"단장님!"

놀란 준이 어딘가를 가리켰다.

***

준이 가리킨 것은 나무와 지면.

지면에는 개미들부터 하늘에는 비둘기까지 다급하게 줄을 지어 대이동을 하고 있었다.

"벌레들까지...!"

도시는 발칵 뒤집혔다.

"꺄악! 뭐야 이거!"

"아아악! 살려줘!"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건가 싶을 때 주헌은 재빨리 자신의 유물 시계를 보았다.

이 시대에는 TKBM에서 자체적으로 배포한 시스템이 있었다. 그리고 시계에서 음성이 흘러나왔다.

[경고. 정보단계를 뛰어넘는 무덤의 출현.]

[무덤의 증상으로는...]

시계 위로 TKBM의 시스템이 분석한 무덤의 정보가 떠올랐다. 마치 3D 스캐너로 지형을 스캔한 듯, 한 홀로그램 이미지가 떠오르고 여러 분석 자료들도 덧붙여졌다. 그리고 그 정보를 확인한 주헌의 얼굴이 굳었다.

'이건.'

확실했다.

'이건 수년 후에나 나올 무덤인데?'

지금이 아닌, 자신이 죽기 직전에 나와야 할 무덤이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경고. 정체를 알 수 없는 무덤의 출현.]

[모든 데이터베이스에서 유사점을 찾아볼 수 없는 희귀무덤의 출현.]

이어서 떠오르는 또 다른 무덤의 정보에 주헌은 눈살을 찌푸렸다.

'이 무덤은...!'

그건 당연한 일이었다.

"뭐야, 이 무덤? 이런 무덤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

유재하도 발동된 TKBM 시스템을 보며 당황하는 눈치였다. 그는 시계가 아닌 핸드폰으로 이를 확인하고 있었지만.

하지만 분석 수치들만 봐도 재앙 레벨을 훌쩍 넘어간 위험한 무덤. 무덤에 자주 드나들지 않는 그조차도 이상하다고 여길 정도였다.

"무슨 수치들이 다 이 모양이야? 최고치를 다 뛰어넘잖아!"

"정말이요?"

하지만 주헌은 기묘함을 느꼈다.

'죽기 전쯤에나 나와야 하는 무덤들인데.'

마치 미래에 벌어질 일이 수년을 앞당겨 벌어지는 것처럼. 그 징조와 증상 모든 것이 똑같았다.

뉴스까지도.

[속보를 알려드립니다. 판도라에서는 재난 레벨을 초과하는 무덤이 나와...]

똑같은 뉴스멘트, 똑같은 남자와 여자 앵커.

그리고 몇 초 뒤엔 아마...

'남자 쪽이 죽는다.'

그리고 그 순간이었다.

[꺄아아악! 괜찮아요? 누가 구급차 좀 불러주세요! PD님!]

주헌의 예상처럼 남자 쪽이 거품을 물면서 쓰러졌다.

그건 척 봐도 고분화에 중독된 증상.

유재하는 그 믿기지 않은 광경에 입을 떡 벌렸다.

현재 고분화가 일어난 장소는 아마존과 남미.

아무리 그래도 고분화 증세가 태평양을 건너올 리는 없거늘.

"도대체 무슨 무덤인데...!"

그럴 때 주헌에게 날아온 친구의 메시지.

[주헌! 어떻게 된 거야? 애가 아픈데 교통이 다 끊겼다고!]

'역시.'

소름 돋게도 토씨하나 틀리지 않고 내용이 똑같았다. 그 모습에 주헌은 확신했다.

'까마귀 무덤이다.'

누군가가 수작을 부리고 있었다.

더 미래에 벌어져야 할 일을, 누군가가 앞당기고 있다는 의미였다. 그리고 이런 짓을 할 만한 놈은...

[주의. 묵시 유물의 개입이 시작되었습니다.]

[시간축이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역시나.'

아무래도 묵시 유물들이 수작을 부리기 시작한 모양이었다. 자신을 확실하게 이곳에서 없애기 위해서, 새로운 마제스티를 뽑기 위해서.

'내가 요람을 찾고 있다는 걸 들킨 모양이군.'

그렇지 않고서야 묵시 유물들이 게거품을 물고 이런 짓을 할 리가 없었다. 요람은 묵시 유물들조차도 덜덜 떠는 태초의 존재였으니까.

그리고 갑작스러운 사태에 아이린도 쫓아온 비서에게 끌려갔다.

"아이린 님! 어서요! 급한 일입니다!"

"잠깐만...! 그래도..."

그녀는 어째서인지 주헌을 보았지만, 주헌은 괜찮다는 듯 손을 저으며 그녀를 안심시켰다.

주헌은 바로 변강쇠와 옹녀 유물을 살폈다.

하지만.

[둘에게서 강한 요람의 기운이 느껴지지만, 요람이 아닙니다.]

"...!"

주헌은 눈살을 찌푸렸다. 예상은 했지만...!

오히려 지금 요람의 기운이 느껴지는 곳은 다른 곳이었다.

"단장님, 이거...!"

***

준이 가리킨 것은 주헌의 주머니에서 새어나온 실자락.

동아줄이었다.

"...!"

설마.

그리고 이때였다.

부르르.

주헌은 그 사이에 들어온 전화에 눈살을 찌푸렸다.

[권 회장님]

"..."

주헌은 오만상을 쓰면서 전화를 받았다.

이 시간대에서 저장된 이름을 바꾸는 것을 깜빡하다니.

"뭐, 새끼야."

거침없는 폭언에 권 회장은 잠시 말문이 막혔다.

그러나 곧 정신을 차린 회장이 입을 열었다.

[지금... 뉴스는 보고 있겠지? 아마존에 나타났다는 무덤 말이야.]

"그게 뭐?"

[거기에 아주 특별한 유물이 있다고 한다. 그걸 가져와라. 그럼 지금까지 저지른 잘못에 대해서는 용서하지. 자네 가족과 단원들을 지켜야하지 않겠나.]

까마귀 무덤에 들어가라는 소리.

주헌은 웃음이 터져 나왔다.

"좆이나 까세요. 나 아니었으면 폰팔이나 하고 있었을 등신 주제에."

주헌은 들을 것도 없다는 듯 끊으려고 했다.

그런데 이때였다.

[잠깐! 일단 자네 부하들을 그곳에 보내놓았네.]

"...?"

[자네 부하들이 뛰어난 건 맞지만, 단장도 없이 무덤에서 살아나올 수 있을지는 모르겠는데?]

주헌의 눈이 번득였다.

'이것도 혹시 묵시 유물 짓인가.'

미래를 앞당기고 자신을 죽이기 위해 개입하고 있는 것은. 곧 전화를 쿨하게 끊은 주헌은 제 동료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지금은 전화를 받을 수 없어 소리샘으로...]

[지금은 해외출장 중입니다. 메시지를 남겨주시면...]

[안녕하세요. 율리안 밀러입니다. 변호상담은 1번, 물품구매는 2번...]

아무도 응답하지 않았다.

주헌은 이 상황이 뭘 의미하는지 깨달았다.

'벌써 무덤으로 향했나.'

보나마나 일리야의 악마를 이용해 아마존으로 이동 중이리라. 그리고 그 순간이었다.

주헌의 옆에 있던 유재하의 핸드폰이 울린 것은.

[휴가 안내]

TKBM 임직원들을 위한 휴가 안내입니다.

사원번호 384728유재하 과장님의 5년 만기 포상휴가 날짜가 지정되었습니다. 금일부터 9박 10일 동안 휴가로 회사에서 하와이 비행기표, 숙박권을 지급할 예정입니다.

PS. 금일 안에 필시 본사에 방문해주십시오. 불참시 휴가는 취소됩니다.

***

"엥? 휴가? 갑자기 왜?"

유재하는 갑자기 자신에게 날아온 휴가 소식에 황당해했다. 주헌은 그걸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낯익은 무덤의 데이터. 유재하에게 날아온 포상 휴가.

확실했다.

'까마귀의 무덤이다.'

이 모든 것이 바로 죽기 전의 일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원래라면 5년 정도 더 뒤에 날아왔을 유재하의 포상휴가. 그것으로 유재하는 까마귀 무덤 멤버에서 빠지게 된 것이 아닌가. 덕분에 유재하는 자신들이 무덤에서 꽥꽥 죽을 동안 여자들을 끼고 휴양지에서 놀고먹었다나 뭐라나.

'뭐 나중에 울고불고 후회한 모양이긴 하다만...'

이때 유재하의 눈앞이 번쩍였다.

퍼억!

"아야! 왜 때려!"

"그냥 빡쳐서."

"????"

곧 메시지가 떠올랐다.

[묵시유물이 침입해온 것 같습니다.]

[어서 요람을 사용해야 합니다.]

해결 방법은 현재로서는 그것밖에 없었다.

주헌은 바로 준과 유재하를 불렀다.

"둘 다 따라와, 갈 곳이 있다."

하지만.

"아싸, 하와이. 하와이다! 심지어 다 공짜! 알로하~"

따라가기는 개뿔.

신이 난 유재하는 본사로 향하려고 하고 있었다.

"오예! 하와이! 술! 여자! 파티!"

저 등신.

곧 눈을 번득인 주헌이 아무것도 모르는 유재하의 머리를 내려쳤다.

"또 울기 싫으면 닥치고 따라와."

"아씨 왜! 싫어! 내 하와이... 내 휴가!"

주헌은 유재하를 잡아끌고 갔다.

준도 급하게 물품을 챙기고 따라갔다.

'조금만 기다려라. 내가 간다.'

그런 주헌의 몸에서 점점 더 강한 힘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뭐, 그러거나 말거나 도축장에 끌려가는 것 마냥 유재하는 발버둥을 쳤지만.

"안 돼! 싫어어어어! 내 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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