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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굴왕-374화 (374/409)

374화. 마지막 재보 (2)

"뭐라고? 퍼주기도 안 먹힌다고?"

TKBM의 상층부는 난리가 나 있었다.

그 임원들에는 당연히 권 회장도 있었다.

"역시 뭔가 이상합니다."

"맞습니다. 서주헌이 이렇게 나올 수 있을 리가 없는데...!"

물론 주헌의 능력만 보면 그가 얼마든지 자신의 권리를 주장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하지만 주헌이 지금껏 그러지 못하는 건 인질들이 있기 때문이다.

'보통의 치유 유물로는 안 되는 수준이라지.'

뭐, 회사에서 당하는 취급만 보면 더러워서 때려치겠네, 독립하겠네, 조건이나 더 올려다오. 그럴 수도 있겠지만...

"예전에 그 사건 때문에 그런 생각은 이제 못 품을 텐데요."

그랬다.

주헌이 처음에도 TKBM에서 이런 취급을 받는 건 아니었다.

'세상에. 주헌 씨. 능력이 대단하시네요.'

'어떻게 아무도 클리어 못한 무덤을...!'

'선배님. 배울 것이 많네요. 잘 부탁드립니다.'

그래서 과거 TKBM에서는 주헌을 중심으로 파벌까지 생긴 적이 있었다. 문제는 그걸 권 회장이 대단히 싫어했던 것이다.

왜?

'저놈에게 세력이 생겨도 곤란하지.'

원래 능력있는 놈들은 독립을 꿈꾸기 마련이었다. 그런데 주변에서 바람이라도 넣어봐라, 같잖게 자신의 자리까지 노리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저놈은 충분히 왕급이 되고도 남을 놈이야.'

그건 안됐다.

하지만 회사 내부에서는 이미 파벌이 형성되고 있었다.

'이야, 실은 회장님보다 주헌 씨 실력이 더 뛰어난 거 아니야?'

'그래. 왜 독립 안 하고 이런 곳에서 썩고 있어. 충분히 단을 꾸릴 정도일 텐데. TKBM도 알아주기는 하지만 그래도 충분히 왕급은 노릴 수 있을 텐데.'

'독립한다면 나도 따라갈게. 응?'

'소문으로는 TKBM이 주헌 씨의 인질을 잡고 있다던데...'

그건 권 회장에겐 상당한 마이너스였다.

무엇보다 권 회장은 주헌이 딴 생각을 품게 되는 게 괘씸하고 두려웠던 것이다.

권 회장은 그래서 이를 원천봉쇄해버렸다.

주헌과 주헌을 좋아하고 밀어주던 회사 사람들을 이간질시킨 것이다.

'뭐라고? 서주헌이? 2팀의 공을 가로챘다고?'

심지어 주헌의 짓으로 꾸며 주헌에게 독립을 부추기던 놈들은 죽이기도 했다.

'젠장! 권 회장이 우리를 전부 여기에 가뒀어!'

하지만 회사에 퍼진 소문은...

'세상에. 돈에 눈이 멀어서 자기 밀어주던 사람들도 배신했대. 크리스 팀을 아예 무덤에서 버리고 왔다나봐.'

'방패로 써먹고 자기만 살아 나왔다던데.'

'미친 거 아니야? 호의를 그렇게 이용해? 어떻게...!'

'그렇게 안 봤는데 완전 사이코패스였어. 회장님도 어떻게 저런 놈을...!'

'가까이 하지 마. 너도 이용만 당할걸? 참, 제대로 된 놈이 아니니까 도굴 같은 짓이나 하고 있지.'

그 뒤로 주헌은 TKBM의 은따 같은 존재가 되었다고 해야 하나. 그가 속한 특수발굴부서 자체에 좋지 않은 풍문이 돌았다. 그렇게 주헌의 도굴단은 낙인이 찍혔다.

단원들은 억울한 나머지 주헌에게 얽힌 소문은 전부 거짓이라고, 권 회장의 짓이라고 밝히고 싶어 했지만, 주헌이 관두라고 했다.

'내가 절대 건들면 안 되는 권 회장의 선을 건들게 된 거야.'

'하지만 단장님은 아무것도 안 하셨는데...!'

'애초에 파벌을 꾸릴 생각도 없으셨잖아요.'

그러나 권 회장은 의심이 많았다.

그리고 뭐든 자신이 우위에 있지 않으면 성이 안차는 성격이란 건 누구보다 주헌이 잘 알았으니까.

'그러니까 권 회장은 나한테 은밀하게 경고를 하는 거지.'

자신의 정원에서 튈 생각하지 말아라.

주제넘게 헛된 생각은 품지도 마라, 그렇게.

뭐, 처음부터 그럴 각오로 입사한 것이지만 주헌은 입을 꾹 다물었다.

'그래도 이대로는 억울해요!'

'진실은 너희들만 알아줘도 충분해.'

그리고 주헌에겐 방법이 없었다.

자신에겐 당신에 대한 반항의 의사가 결단코 없음을, 침묵으로 호소하는 방법밖에는. 그리고 그 뒤로는 뻔했다.

사건에 대해 모르는 직원들이야 줄을 잘못 서기는 싫었을 것이다.

'저 팀 완전히 찍혔어. 괜히 저 라인으로 취급되기 싫으면 친한 척하지 말라고.'

'판도라 때문에 회사도 어쩔 수 없이 데리고 있는 거라나.'

'아, 전무님이 저 팀 되게 싫어해. 적당히 불이익 주고 욕하면 좋아하실걸.'

자연스럽게 회사의 분위기를 읽었고, 오히려 출세를 위해 정치적으로 이용해먹었다.

주헌도 권 회장의 노여움을 풀기 위해 욕을 먹어도 가만히 있으니, 어느새 동네 호구로 변질.

그럼에도 주헌의 능력에 반해 다가가는 놈들이 있다면 위에서 나섰다.

'자네. 실적이 영 딸리는구만?'

굳이 주헌과 비교를 하면서 자존심을 처참하게 뭉개고, 이간질하고 악감정을 품게 했다. 그래도 안 되면 자르거나.

그렇게 오랜 세월.

동료들에게 무시당하고, 자신의 위치를 처절하게 알았을 그놈이 갑자기 깽판을 쳤다?

"허참, 갑자기 빡 돈 것 같길래 기껏 좋게 나가줬더니."

권 회장은 기껏 큰 당근을 준비했던 모양이었다. 최근 주헌이 이쁜 공도 많이 세우긴 했으니까.

"그런데 주제도 모르고 계속 그리 뻗대면 곤란하지."

"사내에는 유물 리스크 때문에 생긴 일이라고 말해뒀으니 괜찮을 겁니다."

임원들은 눈살을 찌푸렸다.

"역시 다시 지난번 때처럼 다시 교육을 해야..."

"맞습니다. 더 기고만장해져서 회장님의 자리를 노려도 곤란하지요."

"그놈이 아무리 미쳤어도 제 동생까지 버릴 놈은 아니잖습니까."

그들은 음흉하게 웃으면서 주헌을 막을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그래 봐야 의미 없는 짓이지만.

***

한편 그 무렵이었다.

[확실해, 서주헌이 요람과 아주 가까워져있어.]

묵시 유물들은 주헌을 보면서 이를 갈았다.

[이대로면 놈이 요람을 불러낼 것이다.]

묵시 유물들은 이대로는 곤란하다고 여겼다.

[시공 유물을 통해서 아군을 보내라! 그곳의 서주헌은 마제스티의 힘을 제대로 쓰지 못할 터, 충분히 저지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외침에 묵시 유물들 중 상당한 거물급들이 사라졌다.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이미 그 차원에는 우리 동료들이 인간들 틈에 숨어들긴 했잖아.]

[그건 그렇지.]

[그래도 혹시 모르니 좀 더 장치를 깔아둘까.]

묵시 유물들이 눈을 번득였다.

그럴 때,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전대가 미간을 좁혔다.

정작 주헌을 그쪽으로 날려보냈던 그는 내심 다급해보였다.

'이대로면 얼마 못 버텨.'

아마 몇 시간 이내에 묵시 유물들은 세계를 파괴하려고 할 터였다. 그랬기에 그는 빨리 주헌이 눈치채기를 바랐다.

'요람은 그 시대, 네 가까이에 있을 거다.'

이미 유물이 된 전대는 마지막 염원을 담았다.

'후손아, 믿기지 않겠지만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하지 말고 반드시 의심해야 해. 네가 잘 알고 있을 대상이라고...! 절대 그냥 지나치면 안 돼!'

그리고 그 시각.

"하, 역시 그 흉물들이 요람인가."

아이린에게 향하던 주헌은 헌터가 찾아온 듯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요람이면 재보들 중에서 대충 총재급이라고 들었는데.'

비보가 마제스티의 직속보좌관이라면 요람은 일종의 총재급. 뭐, 그만큼 격이 높아 유물들을 총괄한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그딴 놈들이 그 격 높으신 재보?"

'분명히 다른 뭔가가 더 있어.'

이건 단순히 현실부정이 아니라, 직감이었다.

애초에 그 흉물들이 재보였다면, 천하의 프로메테우스나 판도라가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었다.

그럼에도 아이린에게 향하고 있는 건 혹시 모른다는 생각 때문일까. 아니면 단순히 아이린이 보고 싶어서일까.

아무래야 좋았다.

"제대로 파산왕한테 연락해둔 거 맞지?"

그러자 공원 벤치에 앉은 유재하가 심드렁하게 엉덩이를 긁었다.

"흥, 하기는 뭘 해. 내가 미치지 않고서..."

그 말에 주헌이 주먹을 우득거리고, 옆에 있던 준이 당황해서 주헌을 말렸다.

"하셨어요! 과장님이 연락하시는 거 분명 봤어요!"

"정말이지?"

"네. 아마도..."

준이 힐끔 시선을 보내자 유재하가 성질을 냈다.

"그래. 했다니까! 커헉!"

"...요. 붙이고."

"아씨 했다니까요! 아놔 꼭 인턴 앞에서 이래야겠냐! 그것도 이제 갓 들어온 놈한테!"

"앞으로 이런 상사 되지 말라고 미리 가르치는 거야."

유재하는 괜히 짐꾼으로 데려온 준을 쏘아보며 화풀이했다.

"허참. 넌 성별 속이고 들어왔냐? 이쁘게도 생겼다. 하여간 단장이랑 인사팀 취향 하곤, 어휴 그래서 무덤에서 재구실은 하겠어? 어? 제일 먼저 도망이나 안 가면 다행이지."

"니 새끼가 지껄일 소리는 아닌 것 같은데."

"커허억! 아오 그게 아니라...!"

주헌은 약속장소에서 아이린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대충 유재하를 이용해 '보내준 물건에 하자가 생긴 것 같으니 잠시 보자'하고 불러낸 것이다.

물론 질질 끌려온 유재하는 죽을 맛이었지만.

"야. 솔직히 어떻게 생각해도 수상하게 생각할 거 아니야! 이런 인적 드문 장소에서, 갑자기 물건에 하자가 생겼으니 가져오라니! 진짜 미군 부대를 끌고 올걸?"

그러나 공원의 시계를 보는 주헌은 태연했다.

"내가 전하라는 말은 했고?"

"뭐! 가족을 되살릴 방법을 알려주겠다고? 저주를 풀 방법을 알려주겠다고? 말이야 했지만 그딴 걸 믿을..."

바로 그때였다.

"정말 알아요?"

"?!"

유재하는 낯익은 목소리에 깜짝 놀랐다.

이윽고 공원에 나타난 것은 나타난 것만으로도 여신이 강림했다는 소리가 나올 만한 여인. 아이린이었다.

"거짓말은 아니겠죠."

선글라스를 벗는 아이린은 굉장히 아름다웠다.

금발의 긴 머리카락에 간소한 자켓 하나 걸쳤을 뿐이지만, 말 그대로 후광이 비치는 듯한 모습.

물론 파산왕일 때의 아이린은 얼굴에 웃음기가 조금도 없었지만 말이다. 오히려 사람을 불신하는 딱딱한 얼굴.

비유하자면 얼음여왕 같은 느낌이었다. 아마 그게 이 시대에서 그녀의 얼굴이리라.

'뭐, 그래도 여전히 예쁘지만.'

주헌은 쓰게 웃었다.

옛날에는 눈치채지 못했지만, 지금은 어떤 상황인지 잘 알기에 주헌은 괜히 측은해졌다. 하지만 정작 유재하는 정말 놀란 모양이었다.

"뭐야. 진짜 왔어? 진짜 혼자서? 미군도 안 데리고? 리얼?"

같은 왕급이라 아이린에 대해 잘 아는 유재하였다.

평소라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

그러나 아이린은 주헌을 힐끗 보았다.

"당신 말은 안 믿어요. 하지만 서주헌 씨가... 가족도, 저주를 풀 방법도 안다고 하셨잖아요."

그러나 유재하가 대단하다며 박수를 쳤다.

"와, 미친. 그럼 그걸 진짜 믿고 온 거야?"

그러자 아이린의 눈빛이 사납게 번득였다.

"그럼 역시 거짓말이었나요?!"

"엥? 아, 아니 그게!"

아이린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유재하의 말은 신빙성이 없었고, 주헌과도 딱히 아는 사이는 아니었다.

권 회장과 만날 때 얼굴을 마주친 것 정도.

그래도 주헌이라면 치유 유물을 독식한 권 회장의 오른팔, 뭔가 방법을 알 거라 생각한 탓인데.

결국 창백한 입술을 짓이긴 아이린의 눈이 다시 번득였다.

"그럼 하자품이라는 건?"

동시에 그녀는 가방에서 흉물을 번쩍 뽑아들었다.

곧 길쭉한 뭔가가 당당하게 뽑혀 나오자 유재하는 캬악 비명을 질렀다.

"야! 그런 거 가방에 넣고 다니지 말라고!"

"물건을 잘못 보냈으니, 교체해주려고 부른 건 맞겠죠?"

그러자 유재하의 목소리가 울듯이 기어들어갔다.

"아, 아니... 그건 교체해줄 맘이 없는데..."

동시에 흉흉한 파산의 오라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유재하는 이제 죽었다며 비명을 질렀고, 주헌은 움찔했다.

[흉악한 파산의 오라가 위협해옵니다.]

[이 일대를 초토화시킬 수 있는 위력입니다.]

[무척이나 위험합니다.]

[흉물들이 파산의 힘에 파괴되어갑니다.]

그리고 그 순간이었다.

주헌이 아이린을 끌어당겨 품에 안은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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