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2화. 내가 왔다 (3)
유재하는 진짜 이 인간이 미쳤나 싶었다.
"씹으면 뒤진다고 했지."
그 목소리와 함께 제 어깨에 손을 얹은 주헌.
그의 모습은 평소와 달라도 너무 달랐다.
아니 사람은 똑같은데, 표정이...
'미친 개...!'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잠시, 유재하는 끔찍한 비명을 질렀다.
눈 깜짝할 사이에 닥친 어퍼컷 한 방!
"커허억!"
턱을 얻어맞은 그는 눈앞이 번쩍였다.
하지만 그것은 시작일 뿐.
유재하는 신나게 얻어맞았다.
퍽! 퍼억! 퍼억!
"새끼야. 니 새끼가 죽어봐야 정신을 차리지."
"커헉, 아니 그게. 아니 야이 호구가 어디서 아악!"
이어지는 발길질에 유재하는 거품을 물었다. 그래도 이때는 나름 호신술이라는 걸 익혀놓긴 했는데 그딴 건 개뿔, 한순간에 쓰레기가 되는 순간이었다.
무엇보다 주헌은 아주 아플만한 부위만 골라 유재하의 정신을 빼놓았다.
"정도라는 게 있는 거다. 내 돈으로도 모자라서 멋대로 보증인으로 세우고, 유물까지 빼돌려?"
"아니 그게! 아아아악!"
결국 개 패듯이 패는 그 광경에 자리에 있던 회장들은 새하얗게 질려 도망...
"오호라. 이 노친네 새끼들은. 감히 내 물건을 사려고 했고."
가지는 못하고 똑같이 정신교육을 당했다.
"아아아악!"
"허억! 서주헌, 서주헌이 미쳤다!"
그들이 서주헌의 존재를 모를 리가 없었다.
그만큼 유명한 존재였다.
공식적으로는 얼굴을 비춘 적이 한 번도 없지만, 세계가 경악하는 요주의 인물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는 권 회장의 충실한 투견.
악명에 비해서 꽤 온순한 타입이었다.
매서워 보이지만 흡사 잘 교육된 도베르만이라고 해야 하나. 나름대로 잘 교육되어 번견의 품격이라는 게 있었다. 하지만 이건 품격은 개뿔...
"이것들 다 뒤졌어."
번득이는 그 눈빛은 그야말로 야생의 핏불테리어!
웬 도사견이 이빨을 쩌억 벌리며 주변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이윽고 튀겨나가는 핏덩어리!
"아윽, 아허억! 잠깐 병신단장아, 잠깐 허으억!"
이건 끔찍한 광경이었다.
이놈이 주인의 허락도 없이 이렇게 미친듯이 날뛸 리가 없건만!
"으아아악!"
"저놈이 진짜 미쳐도 단단히 미쳤어!"
그 사이 피떡이 된 유재하는 쌩 도망쳤다.
그래 보여도 사기꾼으로서 도망치는 데는 천재적인 왕급.
주헌 몰래 도망치는 건 일도 아니었다.
물론 꼴은 그야말로 엉망이었다.
비싼 슈트는 찢어지고 잘 세팅된 머리는 엉망, 패션용 안경조차도 박살이 났다.
하물며 이빨도.
결국 주차장으로 도망쳐온 그는 구석에 숨어 오들오들 떨었다.
"진짜 저 호구새끼가 미쳤나! 갑자기 왜 저래?"
쪼그리고 앉은 유재하는 도무지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물론 주헌이 성깔이 없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다들 호구 취급했던 것은 그 성깔로 자신의 의견을 낸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에.
그래 봐야 주헌은 권 회장의 허락없이는 입마개조차 풀 수 없는 처지라고 해야 하나.
그런데 이 무슨...!
'그놈이 이렇게도 할 수 있는 놈이었나!'
충격이었다.
이렇게 할 수 있는 놈이면서 왜 이제까지...!
하지만 곧 유재하는 고개를 저었다.
"아, 아냐. 잠깐 미친 걸 거야. 무슨 유물 리스크 같은 걸 거라고."
맨날 권 회장한테 이상한 하자품만 받으니까 그 모양 그 꼴이 된 것이리라.
그래서일까.
그는 재빨리 뛰쳐나와 자신의 차로 향했다.
'일단 회장 놈한테 이 사실을...!'
그렇게 그가 차의 문을 열 때였다.
쾅!
"?!"
뭔가 박살 나는 소리와 함께 비싼 포르쉐의 문짝이 날아갔다.
"어, 어버버...!"
유재하는 그대로 엉덩방아를 찧으며 주저앉았다.
눈앞에는 운석에라도 맞은 듯 찌부러져 울고 있는 제 차가 있었다.
그리고 은색 차문을 사정없이 날린 주헌이 섬뜩하게 웃었다. 마치 찾았다는 듯이.
"오호, 호구. 좋은 차 타고 다녔었네? 차에 딸린 옵션만 수십억이었겠어 아주?"
유재하는 그래도 왕급. 다른 도굴단 멤버들에 비하면 꽤나 호의호식하던 놈이지만...
'졸부 마인드 때문에 돈을 모으던 타입은 아니지.'
상당히 비뚤어졌다고 해야 하나.
제 그림으로 돈을 벌기보단, 나쁜 짓으로 돈을 모으다보니 돈을 펑펑 벌어도 펑펑 써댔다.
'이 차도 그런 차겠지. 허세스러운 옵션도 그렇고.'
그러나 유재하가 벌벌 떨었다.
"아, 안돼! 권 회장님한테 받은 차가...!"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차가 아예 종이짝이 되어 구겨지고 말았다.
쾅!
"꺄으아아악!"
아니, 아예 흔적도 없이 가루가 되어버렸다.
그렇게 수십억짜리 차는 공중분해 되고 말았다.
동시에 주헌이 주먹을 우득거리며 방긋 웃었다.
"새끼가. 다른 동료들은 아파서 골골거릴 때 누구한테 뭘 받아? 어?"
"아, 아니... 커허억!"
이어지는 극심한 고통!
그 후에 유재하는 다빈치 유물로 도망가려고 했지만 어림도 없었다.
게다가 웬 정체 모를 회색 실이 나타나 제 목을 조르지를 않나!
어딜 도망 가! 도망 가!
"커, 커헉. 잠깐 나 진짜 죽어. 나 죽으면 세계 유일의 SSS급 복원사도 사라지는 거라고...!"
"꺼져. 니 새끼 죽여도 안 죽는 거 다 알아. 시뻘건 불닭이나 쓰는 주제에."
"?!"
그 뒤로 유재하는 혼절했다.
그렇게 피떡이 된 채 주헌에게 질질 끌려온 것이었다.
***
그리고 현재.
"흠, 역시 열쇠가 필요하군."
지원팀에서 깽판을 치고 온 주헌은 TKBM의 금고 앞에 서 있었다.
굳게 닫혀 있는 금고는 괜히 철벽이 아닌 모양이었다.
하지만.
"야 호구, 빨리 열쇠 만들어."
"뭐... 뭐라고?"
"내가 왜 니 새끼를 죽이지 않고 데려왔다고 생각하는 거야?"
유재하는 그저 황당했다.
아니, 이 새끼가 제 비보에 대해서는 어찌 아는 거며, 심지어 TKBM의 금고까지 털려고 하다니!
'서주헌 주제에...!'
"잠깐만, 너 미쳤어? 진짜 유물 부작용이야? 너 진짜 뭐 처먹었는데 이래... 커헉!"
"깍듯하게 요, 붙여라."
"이씨?!"
결국 얻어맞은 유재하가 금고의 열쇠를 만들어낼 때였다.
부르르.
아무래도 깽판을 부리고 나온 탓인지, 주헌의 전화기에서 불이 나고 있었다.
부르르! 부르르르!
상층부, 일원들에게서 온 부재중 전화만 수십 통이었다. 그리고 이번에도 미친 듯이 울리는 전화에 주헌은 느긋하게 전화를 받았다.
"네. 전무님. 무슨 일이시죠."
상대는 아주 불을 뿜고 있었다.
[지금 사내에서 벌어진 일이 정말인가? 아니 그보다 사표라니?]
아무래도 서주헌이 난동을 부렸다는 소문이 임원들에게도 쫙 퍼진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주헌이 사고를 친 것보다도 사표라는 말에 더 똥줄이 타들어가고 있었다.
그건 당연한 일이었다.
대접은 못 받고 있지만, 현재 TKBM의 주가는 주헌의 도굴단이 만들어주고 있는 셈이었으니.
특히 그들을 이끄는 주헌의 존재는 둘도 없는 차원의 인재였다. 무덤공략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는 이 판국에서도 유일하게 SS급을 클리어할 수 있는 인물.
괜히 TKBM만 승승장구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유물증후군 때문에 골골 거려서 그렇지, 권 회장의 자리까지 위협할 만한 인물.
그러니 주헌을 붙잡을 수밖에.
[다 알았네. 불만이 있다면 말해보게. 원하는 대로 맞춰줄 테니. 그러니 이러지 말고...]
그러자 주헌이 꺼지라는 듯 웃었다.
"그러니까 있을 때 잘하지."
그들은 당황했다.
[뭐든 챙겨주겠네! 그러니...!]
"꺼져. 사표 쓸 거라니까. 앞으로 남은 상급 무덤들은 우릴 무시하던 네놈들이 알아서 잘 캐보시든가?"
[아니 잠깐만! 제발! 이러지 말고...!]
뚝.
무참히 전화를 끊은 주헌은 유재하의 손에서 열쇠를 빼앗았다.
그리고 시원하게 열려버린 TKBM의 금고문!
그 광경에 유재하는 정말 당황한 기색이었다.
'아니 열쇠를 만들라고 해서 엉겁결에 만들긴 했지만...!'
그걸 진짜로 여냐!
아, 아니 진짜로 열렸냐!
저 금고는 SS급 유물이었다. 그 열쇠도 왕급이 아니면 쓸 수 없을 터.
'이씨, 나 진짜 뒤졌네!'
진짜로 열 수 있을 줄은 몰랐는데!
하지만 유재하는 곧 됐다고 생각했다.
'아냐. 저놈. 어차피 못 가져가. 저기 보안이 얼마나 끔찍한데...'
이 뒤로는 자신이 말만 잘하면 그만이었다.
'좋았어. 경비대가 오면 난 그냥 피해자인 척 해야...'
그렇게 유재하가 웃을 때였다.
"?!"
그는 기겁했다.
'저게 뭐야?'
금고로 가는 주헌의 몸에서 흉흉한 오라가 돌았다.
미약하긴 해도 분명한 검보랏빛 오라.
하지만 유재하는 경악했다.
'도대체 무슨 유물인데 저런 힘을...!'
그리고 마침내 주헌이 포식의 능력을 발동했다.
쿵!
그러나 까마귀는 좋아하면서도 약간 고민하는 기색이었다.
왜?
[해당 세계에서는 100% 힘을 발휘할 수가 없습니다.]
[일단은 요람을 대비해 힘은 아껴두는 편이 좋을지도 모릅니다.]
[권 회장의 경비대가 올지도 모릅니다.]
그러자 주헌이 입꼬리를 올렸다.
"괜찮으니까 몽땅 먹어치워! 내가 허락한다."
그러자 까마귀는 기다렸다는 듯, 눈을 반짝이며 금고 안의 맛난 먹이를 몽땅 먹어 치워버렸다.
***
"정말이야? 서주헌이 그런 짓을 했다고?"
TKBM 특수발굴사업부, 사무실 안.
사무실 안에 모인 도굴단 멤버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아니, TKBM 본사에서 일이 터졌다길래 다급하게 달려온 건 좋은데...
"지금 회사가 난리도 아니에요."
"임원들도 당황한 것 같은데...!"
단원들은 믿기지가 않았다.
언제나 '네, 네.' 하던 주헌이 지원팀을 날려버렸다고?
게다가 무려 사표를 쓰겠다고 했다고?
"아니 우리도 내심 바라던 일이긴 하지만..."
"허, 난 안 믿어. 설마 호구 단장이 그랬을라고?"
일리야의 불신에 인턴사원 준이 힐끔 어딘가를 보았다.
"그래도 저걸 보면 맞는 것 같기도..."
그가 바라본 곳은 다름 아닌 유재하의 자리.
거기엔 피떡이 된 유재하가 골골거리고 있었다.
"흐어억... 단장님. 잘못했어. 한번만 봐주... 허억."
단원들은 모두 믿기지 않는 얼굴로 유재하를 보았다.
지금까지 주헌이 유재하를 저렇게 만든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야. 그래도 속은 시원하다. 저놈 깝치는 거 보면 늘 쥐어 패고 싶었는데."
"그래도 저쯤 되면 불쌍할 수준이긴 하네."
그럴 때였다.
쾅!
"뭐야. 니들 왜 이러고들 있냐?"
"단장님!"
사무실 안으로 주헌이 들어왔다. 그리고 주헌이 어깨에 맨 물건을 보며 단원들은 기겁했다.
'저건 권 회장의 신급 보따리...!'
'미친, TKBM의 금고를 털었다는 말이 진짜였어?!'
그들은 충격에 빠진 듯했다.
"다, 단장. 이런 짓도 할 수 있는 인간이었어?"
심지어 외부에서는 임원들이 '털어간 유물 가져가도 좋네! 제발 사표는 접어두게!'하고 난리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주헌은 문을 잠그고 제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약간 정신이 나간 듯한 유재하를 깨웠다.
"자, 그럼 이제부터 말해봐. 내 유물들 누구누구한테 더 팔았어. 어?"
유재하는 울상을 지었다.
"아, 아니 그게... 단장아."
"단장'님'이겠지, 새끼야."
주헌의 눈이 호랑이처럼 번득이자, 유재하는 바로 일어나며 깨갱했다.
"조, 조, 조, 존경하는 단장님아! 그게 이제 남은 건 파산왕 뿐...!"
꼬리를 내린 유재하를 보며 단원들은 입을 쩍 벌렸다. 같은 왕급 외엔 죄다 쓰레기 취급하는 천하의 왕급을 저렇게...!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주헌은 양장본으로 유재하의 머리를 내리쳤다.
"하다하다 이젠 아이린... 아니 파산왕한테도 팔았냐?"
퍽퍽퍽!
"아악! 잘못했어. 한번만!"
"하여간 남의 유물에 손이나 대고 말이야."
"어, 어차피 노친네가 버리듯이 준 하자품이었잖아...! 병신단장... 아니 단장님도 잘 안 쓰는 거면서 판 게 뭐가 나쁜데? 기껏 판 돈으로 더 좋은 유물을 채워주려고 했더니... 커헉!"
"안 닥쳐? 구라치지 마."
젠장 들켰나.
"그리고 애초에 시킨 적도 없는데 누가 멋대로 남의 캐비닛을 청소하래. 누구야? 열쇠를 준 게?"
그러자 화들짝 놀란 준이 벌떡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제가...!"
도굴단의 서포터 중 하나인 준.
그는 이제 막 고등학교를 졸업한 소년이었다.
그리고 최근... 그러니까 주헌이 서른 살 무렵에 인턴으로 들어온 막내였다.
그리고 실수는 가끔 있었지만 인턴주제에 능력도 쓸 만하고, 눈치도 빨라 주헌이 제법 아끼고 있었다.
'뭐 저쪽 세계에서는 아직 못 찾았지만.'
요한과 비슷한 경우였다.
찾아도 찾아도 이미 죽어버린 건지, 그 흔적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 세계에 준을 만나게 되어 꽤 반가운 주헌이었다.
그래서일까. 주헌은 발발 떠는 준을 달래며 유재하를 보았다.
"괜찮아, 떨지 마. 나쁜 건 저 새끼야."
그 안에 요람이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아무튼 대부분의 유물은 찾았지만, 요람으로 추측되는 유물만큼은 찾지 못했다.
'벌써 아이린한테 팔았다고 했나. 하필 그걸...'
어쩌면 그게 캐비닛에서 느껴졌던 요람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주헌도 아직 그 물건을 확인하진 못했다.
권 회장이 쓸모없는 것이라며 자신에게 던진 걸, 준이 캐비닛에 넣어둔 거라고 했으니까.
자신이 보기도 전에 유재하가 날름해버린 것이다.
"아무튼, 난 그걸 찾으러 갔다 온다. 그 전에 어떻게 생겨먹은 놈인지 내놔봐."
그러자 유재하가 훌쩍이며 메모지에 그림을 그려서 주었다.
"전설 속의 마제스티 재보라고 해서 비싸게 팔았는데... 흑흑."
지금이야 예술은 사기라며 일체 그림을 안 그리지만, 괜히 그림쟁이가 아닌지 아주 몽타주 수준으로 리얼하게 그려냈다.
"이거다, 새끼야. 엉엉."
"좋아, 요람 놈 어떻게 생겨먹었..."
그러나 메모지의 그림을 본 주헌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진심이냐, 이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