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9화. 마제스티 등극! (3)
"마음씨가 곱기는 개뿔이."
전대가 이죽였다.
어디서 그딴 말을 하느냐는 듯한 미소.
"어떤 놈의 마음씨가 고와?"
"누구긴. 나. 아주 비단결 같지."
곧 주헌의 시선이 시체와 부딪쳤다.
눈동자는 찾아볼 수 없지만. 그 뚫린 눈구멍 안에서도 놈의 감정을 읽는 건 어렵지도 않았다.
놈은 웃고 있었다.
아주 즐거운 듯이. 후대의 인간을 봐서 재미있기라도 한 것일까.
아니면 설마 자신에 대해서 눈치챘을 줄이야, 그렇게 비웃기라도 하는 것일까.
꽤 불편한 자세로 앉아 있던 놈이 입꼬리를 올렸다.
"그래서 언제 알았지?"
놈의 질문에 주헌이 대수롭지 않게 웃었다.
"척 하면 척이지. 처음 봤을 때부터."
아마도 처음 저 옥좌를 접했을 때일 것이다.
남들이 봤을 땐 단순한 시랍에 불과했겠지만, 주헌에게는 확실히 보였다.
'생물의 느낌이.'
아마 본능적인 직감일 것이다.
무덤에서 생존해오면서 가지게 된 짐승 같은 감각, 거기에 까마귀가 가져다 준 탐지능력까지 더해지면서 확실하게 느꼈다.
뭐, 까마귀가 사라지면서 감지할 수 있는 기운도 확 줄긴 했었지만.
"그래서 뭐냐, 미련이 남아서 성불을 못하고 있는 신파극 찍는 중이냐? 아, 됐으니까 비켜."
그러나 시체는 웃을 뿐이었다.
"애석하게도 난 이 자리에서 일어날 수 없어서."
"왜. 하도 쳐 앉아만 있어서 근육이 해파리가 되었나보지?"
시체는 황당한 듯 했지만, 곧 흉흉한 미소를 지었다.
"닥쳐라. 그냥 이 자리를 넘겨줄 수 없다는 의미다."
동시에 뿜어져 나오는 흉흉한 오라.
'!'
그건 놀랍게도 악신 계열 유물에게서나 느껴질 사악한 기운이었다.
[!]
괜히 마제스티라고 불린 게 아닌지, 그 힘이 엄청났다. 비록 시체이지만, 그 육신에 남아 있는 기본적인 힘이 상당한 것이리라. 그러나 유물들은 당황했다.
[아냐, 잠깐 뭔가 좀 이상해!]
자신들이 알고 있던 전대의 힘과는 너무나 달랐다.
그리고 그 변화는 누구보다도 까마귀가 먼저 깨달았다.
그 증거로 메시지창이 무섭게 폭주했다.
[경고, 시체를 박살 내야 할 것 같습니다.]
자신의 옛 주인을 적으로서 경계했다.
그와 함께 솟아나는 흉포한 까마귀의 오라.
그리고 멍멍이들조차도 거품을 물었다.
[주인! 이건 전대가 아니야!]
[그래! 전대는 호구놈이었다고! 이럴 리가 없어!]
[맞아! 유재하 같은 놈이었다고!]
얼씨구, 도대체 얼마나 호구였으면.
뭐, 아무래야 좋았다. 주헌은 바로 유물 검을 소환했다.
"모처럼 요람에 대해 정보를 얻을 수 있나 했는데."
마지막 재보, <요람>은 언노운의 원본 유물이자 유물을 탄생과 소멸을 담당하는 궁극의 유물, 카오스(chaos)였다. 그리고 그건 비단 그리스 신화 속에서 나오는 카오스만을 일컫는 유물은 아닐 것이다.
아마 대부분의 신화의 첫장에서 시작되는 태초, 먼지, 어둠, 우주.
다양한 수식으로 전해지는 모든 것.
즉, 만물발생 이전 태초의 상태.
"최소한 너는 그게 어디에 있는지 알 거라 생각했는데 말이지!"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주헌이 뭔가를 깡 쳐냈다. 바로 눈에 보이지도 않는 뭔가를!
[!]
주헌이 쳐낸 건 시체의 일격!
그걸 시작으로 주헌이 궁니르를 소환해 던졌다.
하지만.
우뚝!
궁니르는 놀랍게도 시체의 코앞에서 멈춰 섰다.
자의로 멈춘 건 아니었다.
"방해로구나."
마치 보이지 않는 힘에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는 것 같은 모습. 그리고.
"가서 네 주인이나 찌르려무나."
그 말과 함께 떠오르는 메시지.
[상대가 아카식레코드에 침범했습니다.]
[궁니르의 능력이 바뀌었습니다.]
[상대의 급소를 맞출 때까지, 에서 서주헌 동료의 숨통을 끊을 때까지로, 로 능력이 바뀝니다.]
이놈이.
메시지와 함께 궁니르가 울부짖으며 날아갔다.
이에 주헌이 손을 뻗어 궁니르는 낚아채려고 했지만.
[#$*$#&*!]
끄아아아아, 살려줘!
살상의 창은 주헌의 손가락을 비껴가고 말았다.
'!'
***
창은 순식간에 비껴갔다.
쉬이이익!
궁니르는 가기 싫다며, 울면서 성 밖으로 날아가고 말았다.
아마도 타겟은 제 동료들 중 하나!
주헌은 순간의 찰나 궁니르를 재소환하려 했지만 먹히지 않았다.
'소유권을 빼앗아갔나?'
아니, 그건 아니었다.
놈은 단지 아카식레코드에 침범해 기능을 바꾼 것뿐!
덕분에 아카식레코드도 당황한 기색이었다.
아마 전대와 접견하고 방심한 것일 수도 있었다.
실제로 아카식레코드도 까마귀처럼, 전대를 보자마자 넋을 잃었으니. 그러나 곧 아카식레코드가 말했다.
[수정된 내용을 재수정합니다.]
하지만 주헌은 쿨하게 됐다고 했다.
"냅둬. 아마 바뀌지도 않을 테니."
[...!]
주헌의 말대로였다.
아카식레코드는 아예 일시적으로 봉인되었다.
'분명 뭔 수를 썼다.'
동시에 멍멍이들이 말했다.
[괜찮은 거야? 주인의 인간 노예놈들이 죽을지도 모르는데?]
"알게 뭐야, 찔려서 죽든가 말든가."
주헌은 귀찮은 듯이 손을 저었다.
"죽으면 죄다 갈아서 팔아버리면 돼."
[?!]
괜히 궁니르한테 배에 구멍 나기 싫으면 알아서 잘하라는 의미일까. 어쨌거나 주헌은 개의치 않았다.
어차피 그 정도로 죽을 놈들도 아니란 걸 알기에.
그리고.
"그 전에 네 목을 따면 그만이거든!"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주헌이 땅을 박차고 올랐다.
까마귀와 계약하기 전에는 놈에게 손도 댈 수 없었지만 지금은 달랐다.
놈과 대등한, 아니 어쩌면 더 우위일지도 모르는 팔팔한 신생 마제스티였다. 이제는 충분히 시체 놈에게 위해를 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시체는 바로 손가락으로 옥좌를 쳤다.
그런데 그 순간이었다.
[전대 마제스티의 흉포한 오라를 잡아 먹습니다.]
[전대 마제스티의 흉포한 오라를 잡아 먹습니다.]
[전대 마제스티의 공격을 막아냅니다.]
시체의 공격을 인식한 것일까, 까마귀가 재빨리 전대의 오라를 삼켰다. 시체의 오라는 빨아들이듯, 순식간에 사라졌다.
'!'
동시에 전대의 시선이 까마귀를 향했다.
웃고 있던 전대의 표정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배신이라고 여긴 탓일까.
"네가 주인으로 여기는 쪽은 결국 그쪽인거냐?"
[...!]
그 화난 음성에 까마귀는 움찔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까마귀는 오라를 빨아들이는 걸 멈추지 않았다. 전대에게 돌아갈 생각이 없는 것이다.
결국 화가 치밀어 올랐던 건지, 전대의 폭격이 시작되었다.
쾅! 콰과과광!
엄청난 위협이었다. 유물도 아닌 주제에 내뿜는 오라의 힘. 심지어 그 기이할 정도로 흉악한 힘은 어느 유물에게서도 볼 수 없었던 힘이었다.
그래서 유물들이 당황하는 것이다.
[잠깐, 이 힘은 역시...!]
[역시 유물의 힘이잖아!]
그 말에 주헌은 미간을 좁혔다.
'유물. 설마.'
주헌은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졌다.
거의 보이지 않을 속도로 치우의 가면을 발동한 것이다.
마제스티가 된 주헌은 평소 때와 달랐다.
더 능숙하고 더 강력하고, 훨씬 빨랐다.
그 모습은 안개에서 흡사 검은색의 번개.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졌다.
콰지직!
100% 치우의 힘을 발휘할 수 있게 된 주헌은 그야말로 신의 몸을 지닌 자!
예로부터 인류는 자연현상의 존재를 신으로 생각했다고 했던가.
마침내 그 검은 번개가 나타난 곳은 시체의 바로 코앞!
주헌은 아예 유물파괴 스킬로 전환해 놈을 노렸다.
어차피 인간에게는 통하지 않는 스킬이라 내버려두고 있었던 그 스킬을!
그리고 놈을 손으로 쳐내는 순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쾅!
주헌의 손길이 닿자마자 그 단단하던 전대의 팔이 완전 박살이 났다.
콰지직!
그건 틀림없는 유물파괴 반응!
'설마.'
이에 뭔가 눈치챈 주헌은 눈살을 찌푸리며 손을 까닥거렸다.
그러자 눈치 빠른 동아줄이 눈을 반짝이며 길쭉한 몸을 쭈우욱 뻗었다.
잠시 후, 어디에선가 들려오는 비명소리.
"아아아아아."
그 비명 소리는 정말 가까워졌다.
"아아아아악!"
그리고.
쾅!
이거 맞지? 맞지?
동아줄이 물고 온 건 다름아닌 율리안.
그야 말로 인간 낚시를 보는 광경이었다.
그리고 졸지에 동아줄에게 묶여 30층 이상을 거슬러 올라와야 했던 율리안은 죽으려고 했다. 그야말로 살아 있는 게 기적이라 느낄 만하리라.
아니, 진짜 상식적으로 사람을 이렇게 다룰 수가 있는 건지!
"이 몰상식한 인간아! 늘 말해두는데 너...!"
"아 꺼져. 시끄러워. 닥쳐. 됐으니까 저놈이나 좀 확인해."
"뭐, 뭐?"
무작정 끌려온 율리안은 화를 내려다가 일단 시키는 대로 했다.
"뭐야. 저 시체라면 지난번에도 분석을... 어?"
동시에 율리안이 입을 떡 벌렸다.
전대의 몸이 파괴된 탓인지, 그 내부가 훤히 들여다보였기 때문일까.
"언노운이잖아!"
"역시."
그랬다.
막연하게 시체라고 생각했었던 전대는 틀림없는 언노운. 즉, 저놈은 이미 유물화가 진행된 놈이라는 것이었다.
뭐 기존의 언노운과 차이가 있다면...
'산 채로 유물이 되었다는 것 정도겠지.'
그러나 율리안은 황당해했다.
"잠깐, 그럼 전대도 언노운이 되어 있었다는 거야? 누가 언노운으로 만들었는데? 멀린이? 아니면..."
그럴 때였다.
"묵시 유물이다."
답한 건 시체였다.
***
그 말에 율리안은 물론, 드물게 유물들까지 놀랐다.
"묵시 유물이라고?"
"정확히는 멀린이 묵시 유물들을 이용하려고 하고 있었어. 애초에 언노운의 제조방법은 놈들이 일러준 거니."
그 말을 하며 시체는 하늘을 보았다.
마치 천지개벽이 일어나듯 하늘에서 이상 현상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닥쳐오는 살벌한 오라.
그걸 본 시체는 주헌에 대한 공격의사를 지웠다.
어쩌면 처음부터 주헌을 죽일 생각은 없던 건지도 모른다.
단지 시험해보려고 한 것 뿐.
하늘을 본 그는 좀 다급하게 말했다.
"잘 들어라, 서주헌. 난 불완전한 마제스티였다."
"그래 그랬겠지. 유물한테 호구 잡혀서 뒤졌으니까."
"..."
거참 말하는 싸가지 보라며 시체가 눈살을 찌푸렸지만, 곧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그...도 그렇긴 한데, 유물의 왕으로서 지배하지 못한 유물들이 있기 때문이지."
그건 바로 묵시 유물.
세상을 멸망시키는 유물들이었다.
그리고 새 마제스티의 탄생과 함께 놈들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건 기정된 일이었다.
자신 때도 그러했듯이.
"놈들도 다른 유물들처럼 인간왕을 원하지 않는다. 똑같이 인간들을 괴롭히고, 멸망을 바라고 있지. 단지 차이점이 있다면, 놈들은 같은 유물들도 죽이려 한단 거다."
"!"
시체는 예상 밖의 말을 했다.
"묵시 유물들은 단순한 재앙 유물이 아니야. 유물들은 사람들의 전승을 통해 태어나는 존재들. 하지만 역사는 늘 승자에 의해 기록되지."
"...!"
"전승되지 못한 기록들. 승리자들에 의해 지워진 기록들. 그리고 역사의 굴레에서 기억하지 못하고 매장된 유물들이 묵시 유물들이다."
"그럼...!"
"필두로 재앙 유물들이 있지만, 근본은 그래. 그래서 똑같이 다들 매장하려는 거지. 자신들도 불행하니, 너희도 불행해져보라며 다 같이 죽자는 거야."
그뿐이 아니었다.
"유물들이 인간들을 괴롭히고 죽이는 본성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있나?"
율리안이 놀랐다.
"그럼 설마!"
"그래 사실 모순이지. 인간 없이는 태어날 수도, 살 수 없는 유물들이 인간을 죽이는 게 본능이라는 건."
확실히 그건 그랬다.
"유물의 본성은 원래 그게 아니야. 악 계열, 타락한 유물도 있긴 하지만... 모든 유물의 본성을 조작한 거다. 그리고 마제스티를 없애 인간 문명도, 최종적으론 유물들도 없애고자 하는 게 묵시 유물들의 속내고, 그리고 내가 당한 것처럼, 너 역시도..."
그리고 그때였다.
[아이고, 친절하게 왕위계승에 대해 알려주고 있는 모양이군.]
[발버둥 쳐봐야 소용없거늘.]
"!"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 묵시 유물들.
세상을 멸망시키려고 하는 놈들은 마제스티를 향해 비웃음을 흘렸다.
[이번 마제스티 놈도 허수아비로 써먹을 수 있을까 했는데...]
[저놈은 안 돼. 저건 성질머리가 너무 더러워.]
[나 참, 지배력이 뭐 저따위야?]
너무나 고압적인 주헌의 지배력은 천하의 묵시 유물들조차도 꺼려지는 모양이었다.
그래서일까.
[허참 마제스티니 죽일 순 없고. 할 수 없지.]
[전대처럼 육신만 살아 있으면 되는 거잖아?]
[정신만 못 돌아오게 하면 그만이지.]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번쩍 섬광이 일었다.
그리고 떠오르는 메시지.
[묵시 유물 중 시공 유물이 힘을 사용합니다.]
[묵시 유물들이 무한의 굴레, 우로보로스의 힘을 추가적으로 사용합니다.]
곧 상상을 초월하는 오라가 닥쳤다.
쿵!
묵시 유물들은 원한 탓인지, 아니면 멸망에 기능이 맞춰진 탓인지 하나같이 SS급보다도 훨씬 강했다.
모두가 최소 SSS급!
도저히 인간이 지배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리고 마제스티 조차도.
아니나 다를까.
콰직.
주헌이 가지고 있던 재보들에 일순 금이 갔다. 그리고 그 순간 주헌은 직감했다.
죽음.
그 까마귀 무덤에서 느꼈던 동일한 느낌.
그러나 또다시 느껴지는 이 느낌은...!
[인간,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차원으로 빠져버려라.]
[그곳은 아무것도 없고, 영원한 허무만을 느낄 세계.]
[그 무의 공간에서 영원히 고통스러워해라!]
그렇게 주헌의 정신이 뽑혀져 날아가려는 순간이었다.
[전대 마제스티가 은밀히 시공의 궤도를 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작게 들려오는 목소리.
"놈들을 처리하려면 재보를 모두 모아 완전한 마제스티가 되어야 한다."
"!"
"남은 재보는 이제 하나. <요람>, 카오스면 놈들을 처리할 수 있을 테지. 그게 있는 세계를 잘 안다. 그러니 그걸 찾아서 와라."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주헌의 의식이 끊겼다.
그리고 그 뒤는 고통이었다.
고통이 얼마쯤 이어졌을까. 주헌은 그 고통 속에서 숨을 헐떡였다.
'이것들이 진짜 무의 세계로 날려 버렸나...!'
근데 처음 접하는 세계라기엔 가슴에서 느껴지는 고통이 묘하게 익숙...
잠깐, 익숙?
주헌은 번쩍 눈을 떴다.
"헉!"
눈에 보이는 건 회사 천장.
심지어 TKBM의 사옥이었다.
[강한 유물의 기운이 느껴집니다.]
[매우 강력한 유물의 기운입니다.]
그 메시지창과 함께 보이는 달력의 날짜.
<2032년 8월 25일>
그리고...
<부장 서주헌>
날아와 있었다.
30살 무렵의 시대.
자신이 아주 잘 아는 그 시절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