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8화. 마제스티 등극! (2)
멀린은 기겁했다.
"왜 그렇게 놀래?"
"?!"
이건 부정하려고 해도 틀림없는 서주헌 놈의 목소리!
당황한 멀린은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비록 지금은 고양이 똥 신세라고 해도 마법으로 사물을 감지할 수 있다.
그리고.
"어이쿠야, 이래서는 어디 갈 수도 없어 보이는데?"
"?!"
바로 옆에서 들리는 목소리.
'역시나 놈이 있다.'
멀린은 식은땀이 흘러내리는 것 같았다.
잠시 후 당황한 멀린이 주변을 살폈지만 글쎄.
'아무것도 없잖아...!'
느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리고 실제로 이곳에 있는 건 자신과 옥좌의 시체뿐.
'도대체 어떻게 된 거지.'
설마 시체가 말을 했을 리도 없고, 목소리조차도 주헌과 똑같았는데.
그렇게 혼란스러워하고 있을 때 목소리는 다시 들려왔다.
"여기야, 여기."
순간 멀린은 기절할 뻔했다.
그도 그럴 법한 게, 말을 하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시체였기 때문이다.
"저, 저게 어떻게...!"
그러나 옥좌의 시체는 또 이렇게 말해왔다.
"내 보물들이 그렇게 탐이 나나? 어?"
"꺄아아악!"
멀린은 너무 놀라 시체를 공격했다.
유물을 사용한 것이다.
그렇게 옥좌에 앉아 잠들어 있던 시체가 방어에 들어갔다.
쿵!
시체는 황금의 줄기로 일격을 막아냈다.
하지만 그녀의 공격을 받아내면서 성의 방어까지 완벽하게 할 수는 없는 법.
그 순간 성벽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
쿠구궁!
"!"
멀린은 아차 싶었다.
이 순간을 노린 듯, 까마귀 오라가 성벽을 마구 파괴하고 있었다. 그에 반해 시체는 언제 말을 했냐는 듯 침묵. 그제야 그녀는 모든 걸 깨달았다.
'서주헌 이놈이 같잖은 잔머리를...!'
그랬다.
현재 성벽은 전대의 시체가 방어하고 있었다.
그리고 주헌은 허점을 만들기 위해 시체가 말하는 척, 간교한 수를 쓴 것이다. 그럼 혹시라도 틈을 만들 수 있을 지 않을까 하고.
실제로 목소리를 내는 유물로 잔꾀를 부린 주헌은 낄낄 웃고 있었다. 그는 여유롭게 빌딩 근처에 도달할 수 있었다.
사실 멀린을 골려줄 생각이 99% 였지만, 아무래야 좋았다.
'성역에 들어오는 데는 성공했다.'
성의 방어를 뚫기 위해 힘낭비를 해야 하나 싶었는데.
왜?
옥좌가 있는 저 탑은 보통의 빌딩이 아니었다. 저 빌딩의 정체는 다름 아닌 오딘의 성, 발할라 궁.
발할라 궁은 철벽의 성벽을 친 아스 신족의 땅.
아스가르드에 있는 주신의 궁전으로, 아스가르드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성으로 불렸다.
오딘은 세계 종말을 대비해 명예롭게 죽은 전사자들을 발할라 궁에 초대에 전투 훈련을 시켰다나 뭐라나.
아무튼 병도 노화도 없으며, 날마다 산해진미와 명주가 나오고, 그 모두가 귀족스러운 생활을 할 수 있다는 꿈의 궁.
즉, 북유럽 사람들의 이상향으로써 전승된 장소형 유물.
그리고 저 성이 드루이드의 탑으로 불렸던 건 유물의 정체를 숨기기 위해, 또 멀린의 요새로써 쓰였기 때문에.
하지만 저곳의 실제 정체는 마제스티의 성이라 할 수 있었다.
'애초에 신화 속 옥좌는 발할라 궁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의자였지.'
옥좌가 있는 곳에 발할라 유물이 있어도 이상하지 않다는 의미였다.
그리고 영역 안에 들어온 주헌은 신이 난 듯이 쾅쾅 빌딩을 파괴했다.
그리고 그 무렵.
"서주헌 저놈이...!"
주헌이 무식하게 쾅쾅 부수며 들어오자 멀린은 똥줄이 타들어갔다. 그리고 다시 시체를 부리기 위해 옥좌를 보았다.
그런데 이때였다.
"그 마지막 수라는 걸 써보라니까. 왜 안 쓰는 것이지."
"!"
또다시 놀리듯 들려온 목소리.
결국 그녀는 참다 못해 이를 갈았다.
"서주헌! 농락도 정도껏 해라!"
하지만.
"왜? 써보라는 데도."
"...!"
순간 멀린은 소름이 돋았다.
그랬다. 이번에 말을 한 것은 주헌이 아니었던 것이다.
말을 한 것은 바로 시체였다.
***
멀린은 정말 당황했다.
분명했다.
지금 저 시체가 눈을 뜨고, 자신에게 말을 한 것이었다.
좀 마르긴 했지만, 온전한 상태의 시체는 멀린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물론 눈앞이 위치하고 있을 구멍은 텅텅 비어 있어 눈이 마주치게 되는 일은 없었다. 그러나 멀린은 확신했다.
시체는 분명 자신을 보고 있다는 것을.
하지만 놈은 멀린이 당황하거나 말거나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
"왜. 역시 못 쓰겠느냐? 뭐 그래. 목숨이 아까우면 그 수는 접어두는 게 좋을 테지."
이런 미친.
이에 정신이 나갈 것 같았던 멀린은 몸을 떨었다.
"그, 그래. 이... 이것도 서주헌의 농간이야."
결국 멀린은 치를 떨며 외쳤다.
"서주헌이 못 들어오게 막아! 보자보자 하니까 이 건방진 놈이!"
그 말에 반응한 유물들이 성 밖으로 뛰쳐나갔다.
[네놈을 마제스티로 인정할 것 같으냐!]
[당장 썩 꺼져라!]
수많은 유물 군단이 주헌을 노렸지만 글쎄.
"새끼들이, 버선발로 나와서 머리를 조아려도 모자랄 판국에."
주헌이 입꼬리를 올리며 낯익은 유물을 꺼내보였다.
그건 다름 아닌 토르의 유물!
곧 작렬하는 번개가 유물들을 박살냈다.
콰과과광!
[크아아악!]
[아악!]
굳이 묠니르까지 쓰지 않아도 되는 유물들도 많았지만, 그래도 상관없었다.
"그래, 이렇게 한 번 휘둘러보고 싶었어."
재미삼아서 신급 유물을 써본 것뿐이니까. 그리고 이에 토르를 버리고, 주인을 갈아탄(?) 묠니르가 눈을 반짝였다.
앞으로 새 주인께 충성할게!
아마 제 무기를 빼앗긴 토르는 엉엉 울지도 몰랐다. 하지만 묠니르는 눈을 반짝이며 열심히 꼬리를 흔들었다.
앞으로 뭘 할까? 헥헥!
그러자 주헌은 망치를 휙 던졌다.
"됐으니까 넌 저기서 짜져 있어."
[?!]
주헌에게 묠니르는 그저 무거운 망치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흥, 나중에 제우스랑 같은 곳에 쳐 박아놔야지."
[?!!]
새로운 마제스티는 아부가 전혀 통하지 않았다.
어디 그뿐이랴.
이번 마제스티의 폭정은 가차 없으리라.
곧이어 유물들이 더욱 몰려왔다.
[저놈만큼은 절대로 왕이 되어서는 안 된다!]
[막아라!]
묠니르로 처리가 안 된 놈들이 있었지만, 그래도 상관없었다.
"좋아, 죄다 삼켜주마!"
그의 눈이 번득이면서 까마귀가 거칠게 포효했다.
곧 튀어나온 포식의 오라는 단숨에 창공에 뻗어나갔다.
그 범위는 근방이 아니라 도시 하나를 집어 삼킬 크기!
[유물을 포식했습니다.]
[유물을 포식했습니다.]
[유물을 포식했습니다.]
...
[유물을 포식했습니다.]
주헌을 피해 도시에 숨어 있던 유물들이 얄짤없이 주헌의 먹이가 되었다.
그렇게 점점 주헌은 옥좌를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한편 이때였다.
"큭, 저놈이 옥좌에 앉기 전에 빨리...!"
주변에 있던 포교왕이 급히 주헌을 막으려고 했다.
그는 용병단을 꾸려 이곳에 왔지만, 주헌의 부하들 때문에 재미를 못 보고 있던 판국이었다.
'언제 저렇게 강해졌지...!'
주헌의 단원들.
과거에도 분명 능력이 있긴 했으나, 사황급에 비하면 별 볼일 없는 것들이었는데. 지금은 완전히 차원이 달랐다.
그리고 지금 역시도.
"개새끼야. 가긴 어딜 가!"
일리야가 포교왕을 붙잡았다.
포교왕은 욕설을 흘렸다. 그건 당연할지도 몰랐다.
"젠장, 요한이 없어져서 좀 편하게 일을 하나 했더니! 웬 이상한 약쟁이가!"
포교왕은 본래 이슬람 종교 유물을 사용하는 능력자.
그래서일까, 이슬람 유물과 적대적인 크리스찬 유물 사용자는 꺼려지는 게 사실이었다.
이슬람과 기독교는 뿌리가 같네, 아니네 갑을논박이 항상 나오지만, 어쨌거나 역사적으로 갈등이 심했던 종교. 십자군 전쟁에서도 볼 수 있듯이 성전이라는 이름으로 피로 얼룩진 역사가 깊었다.
그만큼 두 문화권 유물은 기본적으로 적대상성.
상대를 파멸시키기 전까지는 절대로 놓아주지 않았다.
그리고 일리야는 놀랍게도 요한이 가지고 있던 크리스찬 유물을 사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저놈이 어떻게 요한의 유물을...!"
물론 일리야가 요한의 유물을 가지게 된 계기는 간단했다.
사실 주헌이 요한을 죽이고 난 뒤, 요한은 예수의 유물로 사흘 째 되던 날 되살아났었다.
물론...
'안녕, 멍텅구리?'
일리야가 무덤에서 꼬박 기다리며 웃고 있었지만.
그렇게 요한의 목을 따고, 일리야는 요한의 크리스찬 유물을 거두었다.
그리고 일리야는 악마 유물 사용자지만, 전직 바티칸 성직자.
신부 시절 성전 유물을 썼었던 만큼, 요한의 유물도 충분히 다룰 수 있었다.
뭐 그래 봐야...
"커헉! 아씨 나 진짜 죽겠네! 그러니까 빨리 뒈져라 좀!"
악마 유물 사용자가 크리스찬 유물을 쓰니 정말 죽으려고 했지만.
결국 그 광경에 주헌이 멀리서 한마디 했다.
"일리야, 너 괜찮냐?"
"괜찮아 보이냐, 이게! 쿨럭!"
하지만 효과는 뛰어났다.
악마 유물을 쓸 때보다도 포교왕을 물고 늘어지는데 효과적이라고 해야 하나.
결국 주헌이 도와주려고 하자, 일리야가 말했다.
"괜찮으니까, 볼일이나 봐요! 이 새끼는 내가 처리할 테니까!"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포교왕이 괴로운 비명을 질렀다.
주헌은 결국 누가 이길지 궁금하긴 했지만, 발걸음을 옮겼다.
지금 주헌이 노려야 하는 건 옥좌.
주헌은 당당하게 탑에 입성했다.
쾅!
성의 정문은 주헌의 미친 파괴 스킬에 큰 구멍이 뚫려버렸다.
곧 황금의 줄기가 뒤늦게 주헌을 가로 막으려고 했지만, 소용없었다.
"자, 어디어디 숨었나."
섬뜩한 웃음소리가 빌딩에 울려 퍼졌다.
그리고 밑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멀린은 똥줄이 타들어갔다.
그러나 그 순간.
"그래서 써보라니까? 그 마지막 수라는 걸?"
"꺄아아악!"
언제 여기까지 온 건지, 멀린은 바로 옆에서 들리는 주헌의 목소리에 기겁했다. 그리고 곧 그녀는 비명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살짝 공중에 떴나 싶었던 그녀는 그대로 어딘가에 내던져진 것이다!
"아아아악!"
무려 냄새가 지독한 구덩이, 바로 화장실이었다!
심지어 수세식 화장실도 아니었다.
어디에서 소환한 건지 모를 푸세식 화장실!
"커헉, 커허억!"
뭐, 정확히는 내용물이 가득 담긴 요강이었지만.
'칼로 죽일 수는 있지만...'
아무리 그래도 주헌은 제 유물이나 손에 똥을 묻히긴 싫었다.
"그러니까 그대로 똥물에나 익사해버려. 아주 댐 수준일 거다."
[#*$#&*!]
주헌은 손을 툭툭 털면서 옥좌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곧 동아줄이 스르륵 기어와 주헌의 팔에 감겼다.
주헌의 유물들도 바짝 긴장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한 걸음 두 걸음.
점점 옥좌가 가까워져갔다.
그러자 어깨 위의 까마귀가 몸을 떨었다.
옥좌에 점점 가까워질수록, 그리고 시체와 가까워질수록 까마귀는 몸을 떠는 듯했다.
당연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전대가 죽고, 수천 년 만에 다시 만나는 그였다.
이미 분신체로 그와 만나보긴 했지만, 그걸로는 기껏해야 TV로 보는 느낌밖에 들지 않았다.
실제로 조우한 시체는 훨씬 더 참혹한 모습.
곧 주헌이 옥좌로 향하는 계단으로 향했다.
"이제 내놔라. 옥좌. 수천 년 동안 앉아있으면 엉덩이에 땀띠도 안 나냐?"
그리고 그렇게 한 계단.
두 계단을 밟은 그는 자리에 멈춰서 입꼬리를 올렸다.
"일어나. 움직일 수 있는 거 다 알아."
[!]
그 말에 유물들은 놀랐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주헌이 살벌하게 웃었다.
마치 놈이 깨어나 있다는 걸 안다는 듯이.
"아무리 내가 마음씨가 곱다고 해도 시체 놈이랑 공용 의자를 쓰긴 싫거든?"
그러자 시치미를 떼고 있던 시체가 번쩍 눈을 떴다.
"마음씨가 곱기는 개뿔이."
전대가 이죽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