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7화. 마제스티 등극 (1)
대감옥을 집어삼킨 포식의 오라는 위험천만했다.
무척이나 강했고, 포악했다.
그 힘이 어찌나 강한지, 일반인의 눈에 보일 리 없는 유물의 오라가 고스란히 보일 정도.
"저, 저게 뭐야!"
그렇게 전 세계에 있던 대감옥의 입구에서 검은 오라가 치솟아 올랐다.
쿠구궁!
기둥처럼 솟아오른 검은 기둥은 창공을 뚫었다.
그리고 마침내 사납게 솟아오른 기둥은 태풍처럼 흩어졌다.
그 흩어지는 모양새가 흡사 살아있는 검은 불꽃.
주헌이 마제스티가 되는 순간 뿜어져 나오던 섬광과 어우러져 더욱 기괴해보였다.
하지만 잠깐인 줄 알았던 검은 오라가 사납게 요동쳤다.
[대감옥에 있는 모든 유물을 포식합니다.]
그와 함께 대감옥이 박살 나기 시작했다.
콰과과광!
"서둘러요!"
조금만 더 대감옥 안에 있었으면 깔려버렸을 지도 몰랐다.
율리안의 외침에 재빨리 뛰쳐나왔던 설아와 아이린은 숨을 헐떡였다.
"도대체 무슨 일이...!"
둘은 걱정스럽게 입구 쪽을 바라보았다.
"단장님...!"
둘이 무덤에 다가가려고 하자 율리안이 붙잡았다.
"괜찮아요. 소동의 범인 그놈이니까."
"네?!"
율리안은 질린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정작 둘은 기겁하듯이 바라보았다.
"잠...이 엄청난 오라가 단장님이라고요? 간수들이 아니라?"
"정말로요? 이 괴물이?"
율리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한눈에 이 흉흉한 오라가 까마귀라는 걸 알았다. 그리고 그 까마귀 오라에 무덤의 유물들이 잡아먹히고 있는 것도.
설아도 내심 당황한 듯했다.
"평범한 기운이 아닌데...!"
너무 강력해서 오히려 주헌이 아니라고 생각했었던 것이다. 사실 인간이라고 생각하기 힘들었으니까.
율리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까마귀 본체와 계약을 한 모양이야."
분명 마제스티의 왕관이라고 불리는 재보와 계약을 한 것이겠지.
'이 힘이 마제스티의 힘인 거야.'
율리안조차도 오싹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직접 주헌을 보지 않았는데도 이 정도라니.
아마 전 세계에 있는 왕급이며, 상급 유물 사용자들도 이 힘을 느끼고 있겠지.
그리고 그 오라에 놀랄 사이도 없이 대감옥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콰과광!
탐식의 오라는 감옥 전체를 삼켰다.
감옥 곳곳으로 뻗어나간 그림자 같은 검은 오라는 도망치려는 유물들을 붙잡았고.
[아아아악! 살려줘!]
콰직! 콰직!
사정없이 유물들을 먹어치웠다.
웃긴 건 간수들은 분해해버리고, 죄인들은 곱게 삼키기만 한다고 해야 하나.
결국 까마귀, 아니 주헌에게 먹힌다는 건 똑같지만.
그리고 무섭게 뻗어나가는 오라는 낯익은 이들까지 노렸다. 우선은 감옥에서 한껏 주헌에게 훼방을 놓으려고 했던 오딘.
[젠장! 그 오딘 놈이...!]
죽어도 주헌을 마제스티로 만들 수 없다며 반발하던 그였다. 이 사태가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기어이 까마귀와 계약을 한 것이냐!]
오딘은 이를 갈면서 마법으로 감옥에서 벗어나보려고 했지만...
[!]
어딜 가냐는 듯 그림자 같은 오라가 늑대의 모습으로 변하며 오딘을 집어삼켰다.
[아아악!}
[아버지!]
그뿐이 아니었다. 홍수가 밀려들어오듯 습격해오는 오라는 다른 북유럽 유물들까지 싹쓸이.
[아아아악!]
그렇게 감옥에 있던 유물들은 죄수, 간수 할 것 없이 모두 주헌의 먹이가 되어버렸다.
심지어 대감옥의 죄인으로 전락했던 프로메테우스조차도.
[크윽, 그 까마귀...! 서주헌이!]
이대로 다시 인간왕이 탄생하게 된 것인가.
이렇게 자신들의 야망은 끝이 나는 것인가.
[안 돼! 절대로 그렇게 둘... 아아악!]
프로메테우스는 소멸되면서 처절한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그 순간이었다.
"위험해! 물러서!"
감옥에 있던 유물들이 거의 잡아먹히자, 까마귀 오라는 마지막으로 힘을 확장했다. 그리고 까마귀가 마지막으로 먹어치운 건, 대감옥 그 자체!
대감옥 역시 유물들을 가두고 있을 만큼 봉인 능력이 담겨 있는 장소형 유물이었다. 충분히 먹이가 될 만한 수준.
쿠구궁!
기어이 그 감옥의 힘까지 먹어치우자 감옥은 힘을 잃고 평범한 장소가 되었다.
그러자 여기저기 금이 가고 무너지고, 붕괴되기 시작했다.
쿠웅!
마침내 오랜 시간 동안 유물들을 잡아두고 있던 증오스러운 감옥이 박살이 났다.
이에 놀란 아이린이 소멸되는 무덤으로 향하려고 했다.
"주헌 씨!"
그걸 율리안이 붙잡았다.
"괜찮아요, 단장은 무사해요! 그 자식이 어디 머리를 물에 쳐박아도 죽을 놈인가!"
안도하던 아이린이 율리안을 보았다.
"괜찮으세요? 분명 언노운이...!"
그러자 율리안이 웃었다.
언노운이 아무리 강해 봐야 모두 자신들을 모태로 한 유물들. 까다롭긴 해도 서로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이들이었다.
"그러니 그런 건 전혀 문제가 안..."
"야이씨! 이것들 뭐야!"
문제가 안 되긴 개뿔.
멀지 않은 곳에서 일리야의 쌍욕 소리가 들려왔다.
"야! 이거 단장 새끼 처리 좀 해 봐!"
"...!"
언노운 중에서도 까다로운 놈이 있었던 걸까.
'확실히 단장의 언노운은 골치 아플지도...!'
그러나 돌아본 곳엔 뜻밖의 모습이 있었다.
"썅! 이 검은 오라 뭐냐고!"
까마귀의 오라가 단원들에게 슬금슬금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다. 아주 맛나 보이는 구나, 차져 보이는 구나, 그렇게 슬금슬금.
"미친. 이 오라, 우리들도 노리고 있잖아!"
서주헌 이 자식이.
율리안이 제 버릇 개 못 준다며 이를 갈았다.
"알았어, 금방 간..."
그런데 그때였다.
"그 까마귀는 내 것이다!"
무너지는 무덤에서 깔려 뒤진 줄 알았건만.
가까스로 빠져나온 건지, 권 회장이 눈을 부라리고 있었다.
그는 피투성이가 된 채 이를 갈고 있었다.
"서주헌이 그 까마귀를 얻었을 리가 없어! 그건 내 거야!"
그 말에 율리안이 뭐라 하려 할 때였다.
"그럼 가져가 보시지?"
"!"
***
낯익은 목소리에 그들은 깜짝 놀랐다.
하지만 깜짝 놀라는 것도 잠시, 엄청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쾅!
주헌이 포식했던 대감옥이 완전히 박살 나면서 낯익은 얼굴이 튀어나온 것이다.
나타난 것은 다름 아닌 검은 안개.
주헌이었다. 권 회장은 주헌을 보자마자 눈을 부라렸다.
"저놈...!"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주헌은 귀신의 투구를 벗어내며 걸어왔다. 용병들의 테러로 엉망이 된 도시.
그 도시 사이를 걸어오는 주헌은 확실히 전과는 달라보였다.
'저 느낌은...!'
마제스티로 승격한 주헌은 그 위압감부터가 달랐다. 그래서 보고 잇는 권 회장도 내심 당황했을 정도로.
하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욕심이 나는 그였지만...
콰직!
정복의 유물로 까마귀를 빼앗으려 한 게 들켰던 것일까.
권 회장의 몸 주변으로 거친 까마귀 오라가 튀어올랐다.
그리고!
"커허억!"
무자비하게 권 회장을 물어뜯었다. 그리고 그와 함께 박살 나기 시작하는 유물.
콰직!
기생형 유물을 가진 만큼, 그 유물이 박살 날 때 딸려오는 고통이 상당했다.
"커허어억!"
권 회장이 괴로워하며 주헌을 노려보았다.
어딜 보나 자신의 밑에서 구르던 그때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유물사용자의 지배력. 즉 카리스마는 같은 인간도 쉽게 느낄 수 있다고 해야 하나. 그때와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강해진 모습.
아파서 골골거리던 모습. 꾀죄죄한 모습은 사라졌고, 몸놀림에서 여유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그래서 문득 넋을 잃거나 시기를 느낄 정도로.
'그래봐야 울면서 내게 머리나 숙이던 놈이...!'
주헌은 기껏해야 제 노예 놈이었다.
물론 노예 중에서는 좀 특출나긴 했지만, 그래도 제 신분을 망각하면 안 되는 하찮은 부품.
그러나 그 순간, 권 회장은 말을 잇지 못했다.
"...큭!"
머리에서 느껴지는 묵직한 힘.
주헌이 권 회장의 머리를 짓누른 것이었다.
"분명 이렇게 머리를 숙이고 당신한테 부탁했었지."
"...!"
"하다못해 단원들만이라도 살려달라고. 녀석들은 내 말에 따라 무덤에 들어간 죄밖에 없으니까."
주헌은 섬뜩한 눈빛으로 입꼬리를 올리고 있었다.
"그래도 그때 난 진심이었어. 진심으로 댁을 아버지처럼 따랐고."
이제 와서 생각해보는 것이지만 권 회장과 주헌의 사이는 결코 나쁜 게 아니었다. 오히려 사이는 좋았다.
권 회장이 스카웃을 제의하기 전. 그때도 이 노친네와 술친구부터 시작했던 것이니까.
주헌도 당연히 권 회장을 믿었다.
독립하지 않고 TKBM에 들어오면 반드시 약을 주겠노라. 물론 사람이 조금씩 변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기업이 커가고 높은 자리에 앉게 되면서 오는 일시적인 현상이라 생각했다.
계약서상의 약속은 유효했으니까.
그리고 친했을 무렵의 권 회장에 대해서는 잘 알았으니까.
하지만 믿었던 사람에 대한 배신.
처음부터 이 노친네는 자신들을 버러지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주헌의 말에 권 회장이 입술을 콱 깨물었다.
"그래서 시간을 거슬러 미래를 바꾼 것이냐...! 내가 마제스티가 될 수 있는 미래를...!"
"어차피 그거 다 내가 만들어준 자리였잖아. 영감."
"...!"
할 말을 잃었던 권 회장이 웃음을 터트렸다.
"아직 경기는 안 끝났다. 이대로 네 놈의 뜻대로 될 것 같으냐! 절대로 못 뺏긴다...!"
"그래? 댁이 여기서 뭘 더 할 수 있는데?"
"우리를 우습게 보지 마라. 아직 재기할 수 있는 것들이..."
그럴 때였다.
"재기라고 하면 이것들을 말하는 건가."
주헌은 그의 눈앞에서 서류들을 떨어트렸다.
권 회장은 그걸 보고 파르르 떨었다.
그건 TKBM의 전 지분은 물론, 권 회장이 남몰래 보험으로 들어놓았었던 연결고리를 주헌이 매수했다는 증표였다.
게다가 숨겨놓았던 비자금까지 사정없이 모두 털렸다.
거기에 비리까지 얽혀 그야말로 재기가 불가능한 상황.
그리고 이 모든 것에 권혁수가 끼어있다는 걸 알았을 때, 권 회장은 허망해졌다.
'그놈이 서주헌에게 홀라당 넘어가서... 이딴!'
분명했다.
주헌이 권혁수를 이용해서 권 회장의 모든 탈출로를 파괴한 것이다.
그러니 억울할 수밖에!
"내가, 내가 어떻게 만들어 놓은 것들인데 네놈이... 커헉!"
권 회장은 피를 토했다.
그러나 주헌은 살벌하게 웃었다.
까마귀의 오라가 권 회장을 찢어발기려는 것이었다.
"이제 너도 끝이다. 최소한 고통없이 보내주지."
그 죽음의 공포에 권 회장이 몸을 떨었다. 그러나 그 순간이었다.
"안 돼, 안 돼, 그마아안!"
권 회장의 필사적인 외침에 어디에선가 짐승들이 몰려왔다. 날아오는 방향은 바로 드루이드의 탑.
왕의 옥좌, 그리고 마제스티의 시신이 있는 곳이다.
마침내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권 회장의 애원에 반응하기라도 한 것일까.
유물들은 권 회장을 돕기 위해 날아왔다.
그 모습에 권 회장은 웃었다.
'멀린이다.'
그랬다.
아직 기회는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사실을 깨달은 권 회장은 입꼬리를 씰룩였다.
"하하, 서주헌. 네놈한테는 빼앗길 수 없다. 절대로! 이대로 네 뜻대로 될 거라고 생각하면...!"
하지만 그 순간이었다.
번쩍!
까마귀가 포효하며 태양의 섬광을 뿜어냈다.
그러자 태양열에 녹아내리듯, 터져나가는 유물들!
"허억...!"
곧 이어 섬뜩한 붉은 눈이 바로 코앞에 나타났다.
그리고.
푸욱!
권 회장은 주헌이 내리치는 칼에 사정없이 찢어발겨졌다. 그리고 비명을 질렀다.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자존심도 지키지 못한 채.
***
그리고 같은 시각.
"허억...! 말도 안 돼!"
고양이 똥 멀린은 권 회장이 죽는 광경을 보며 공포에 떨었다. 기껏 권 회장을 위해 남아 있던 수장 유물의 세력, 그 최정예 부대들을 골라 보내주었건만...!
아무리 그래도 시간은 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자신이 전대의 시체를 조정하고 있을 정도의 시간은!
하지만 이건 도대체...!
"젠장, 서주헌이 이쪽으로 온다...!"
주헌이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남은 제 보물을 얻기 위해서.
'이제 남은 마제스티의 재보는 단 두 개.'
하나는 자신도 찾을 수 없었던 궁극의 재보, 마제스티의 요람. 또 하나는 마제스티의 권능 자체라고 할 수 있는 저 시체가 앉은 옥좌!
'하다못해 옥좌를 지키고, 요람이라도 찾아내야 한다.'
그것만 있으면 재기는 아주 꿈도 아니었다.
그래서일까.
"어서 모든 문을 봉쇄해!"
멀린의 외침에 시체가 반응을 하며 탑을 꽁꽁 싸매기 시작했다. 황금의 줄기가 빈틈없이 꼭꼭 틀어막기 시작한 것이다. 멀린은 침착하게 굴었다.
"괜찮아, 아직 마지막 비장의 수가 남아 있어."
그때였다.
"그래? 무슨 수인데? 그렇게 좋은 거면 나도 같이 좀 듣자."
멀린은 기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