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1화. 까마귀는 안 돼! (1)
쾅!
주헌이 대감옥에 들이닥쳤다.
까마귀가 있는 대감옥으로!
사실 까마귀의 무덤은 모든 것의 끝이었고, 또 모든 것의 시작이었다. 권 회장의 명령으로 들어와 아끼던 동료도 잃었고, 최후엔 목숨을 잃었던 곳.
하지만 목숨을 잃는 것보다 주헌이 더 슬펐던 건 그곳에서 희망까지 잃었다는 것이었다.
다 함께 미래를 꿈꿀 수 있다는 희망.
오랜 정을 나눈 사람들에 대한 희망.
지금껏 자신이 걸어온 길이 잘못되지 않았다는 희망.
그리고 그것들이 완전히 무너졌을 때, 놈이 나타났다.
[확실히 이대로 죽이기엔 그 재능이 아깝군.]
수많은 유물을 접해왔지만, 자신조차도 어떤 유물인지 알 수 없었던 놈. 하지만 세상의 그 누구라도 마음을 빼앗겼을 유물.
마제스티의 재보, 왕관(crown).
그 터지는 섬광 속에서 놈은 말했다.
[네게 기회를 주지. 그리고 진짜 왕의 자리를 차지해보거라.]
그 빛과 함께 자신은 과거로 돌아왔다.
그리고 놈이 말했던 대로 왕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여기, 이곳까지!
"자, 내가 왔다!"
쾅!
주헌이 또다시 무덤에 들이닥치자 대감옥 내부는 난리가 났다.
[왔다! 그놈이 왔어!]
[젠장, 역시 다시 돌아왔구나!]
[전력을 다해라! 이번엔 절대 살려서 내보내면 안된다!]
간수들은 눈에 불을 튀겼고.
[서주헌, 서주헌이다!]
[우리를 꺼내다오!]
죄인들은 애절하게 팔을 뻗어댔다.
주헌이 이 대감옥에 들어오는 건 이걸로 겨우 두 번째.
하지만 놈은 한 번 들어온 것만으로 그리스 문화권을 싹쓸이 해갔던 놈이었다. 간수들과 죄수들이 난리가 나는 것도 당연했다.
[서주헌, 어서 우리도 꺼내다오오!]
[어서!]
죄수들이 절규하듯 외치자 간수들은 돌았느냐며 욕을 했다.
[이 바보들! 제정신이냐?]
[그리스문화권 놈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몰라서 그러는 거냐!]
[그래! 저놈한테 끌려가면 노예가 된다고!]
그러자 죄수들이 피거품을 물었다.
[꺼져! 여기에 있는 것보다 차라리 저놈한테 끌려가서 자유가 되련다!]
[그래!]
하지만 죄인들 중 누군가가 이렇게 말했다.
[소문에 의하면 그놈들 죄다 거기 떼였다던데...]
[...]
[뭐, 그런 의미에선 자유일지도...]
그러자 손을 뻗던 죄인들은 슬그머니 손을 집어넣었다.
[...아, 안 구해줘도 된다.]
[어, 어서 까마귀나 데리러 가려무나.]
하지만 주헌의 눈이 번득였다.
"싫은데? 특등급부터 3등급까지는 죄다 쓸어갈 건데?"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죄인들은 우아앙 도망가기 시작했다.
저놈한테 끌려가서 떼일 바에야 그냥 감옥에 갇혀 있는 게 훨씬 나을지도 몰랐다. 그리고 그럴 때 주헌이 감옥 안으로 손을 쑥 집어 넣었다. 주헌에게 잡힌 유물은 캬악 비명을 질렀다.
[난 없어! 없다고! 내건 노리지 마!]
"니 불알 관심 없고. 까마귀는 어디에 있나."
주헌의 협박에 동아줄도 튀어나와 크앙거렸다.
죄인들은 거품을 물면서 외쳤다.
[까마귀는 오딘 놈이 자세히 알 거야!]
"오딘?"
[까마귀 놈은 특수한 장소에 있어! 그냥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라고!]
오딘은 북유럽 신화의 주신이기도 하지만, 뛰어난 주술사로도 유명했던가. 그래서 그놈이 알 거라는 말을 하는 것이리라. 하지만 다른 유물이 말했다.
[텔레포트 안개를 잘 타면 까마귀에게 갈 수 있을지도...]
결국 그 말을 들은 주헌은 미련없이 죄인을 풀어주...
[크아아악! 살려줘!]
지는 않고 펑 터트리며 끌고 나왔다.
"2등급짜리. 접수 완료."
주헌은 낄낄 웃으며 잔해들을 주머니에 구겨 넣었다. 그리고 그 모습에 안에 있던 죄인들이 공포에 떨었다.
[저, 저놈은 악마다.]
[악마야!]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주헌은 흥얼거렸다.
"텔레포트 안개라... 재하 놈이 분명 오딘한테 갔을 때도 그걸 썼다고 들었는데. 어디에 있다고 했더라."
결국 주헌이 성큼 성큼 걸어오자 간수들은 눈에 불꽃을 튀겼다. 지난번에는 그래도 나름대로 숨어서 들어오더니, 이번엔 그럴 생각도 없어보였다. 아니, 숨을 필요가 없다고 여긴 걸지도 모른다.
그 증거로 주헌이 치우의 가면을 썼다.
그 귀신의 면상에 간수들은 질겁했다.
[서둘러!]
저건 마제스티가 출격한다는 신호!
그들은 과거의 망령에 사로잡힌 듯, 경기를 일으키며 발작했다.
[이번엔 전력으로 막아라!]
[그분들을 모셔와!]
간수들은 무려 상급 간수들에게도 연락을 넣었다. 상급 간수들은 유물의 수장들도 길들이지 못하는 짐승들. 동시에 과거 주헌과 그 부하들이 손도 쓰지 못하고 죽어야 했던 괴물 같은 놈들.
[놈은 분명 까마귀를 노리고 온 걸 거다!]
[가는 길을 모두 봉쇄해라!]
그 외침과 함께 주헌은 웃었다.
동시에 주헌의 몸이 검은 안개로 흩어졌다.
쉬이이익!
마침내 흩어진 안개는 돌풍이 되어 간수들의 사이를 빠져 나갔다.
[크아아악!]
그 과정에서 안개에 닿은 무리들은 무참하게 갈려 나가며 피를 토했다.
그야말로 순식간이었다.
그렇게 주헌은 간수들을 말려 죽이고 목적지로 향했다.
남은 간수들은 눈을 부릅떴다.
[젠장! 어서!]
[까마귀를 얻지 못하게 해야 한다!]
그러나 검은 안개는 이미 사라져있었다.
***
한편 그 무렵이었다.
"아오씨, 내가 왜 여기까지 와서 이 짓을...! 아오!"
도서관 한 구석에서 씩씩거리며 유물을 복원하고 있는 꼬마가 있었다. 그 아이는 다름 아닌 루이 마틴. 바로 유재하의 언노운이다.
원래는 미국 기지에 있었지만, 지금은 포교왕에게 잡혀와 있었다.
'빌어먹을!'
아니 루이는 정말 억울했다. 서주헌 그 망할 놈이 진채원을 히틀러에게 보냈을 때부터 뭔가 느낌이 싸하다 싶긴 했는데...
'응. 니들 거슬려. 꺼져.'
콰과과광!
난데없이 들이 닥친 진채원이 미국 유물 기지를 박살 내버리지를 않나!
'나 데이트 해야 해. 빨리 꺼져.'
콰과과광!
심지어 히틀러까지 개박살을 내버렸다.
안 그래도 히틀러는 주헌에게 능력을 빼앗기고 골골거리던 타이밍. 데이트를 한답시고 쳐들어온 진채원은 제2의 TSOF를 박살내고, 히틀러가 잡고 있던 키이라까지 만났다. 그리고 진채원은 키이라를 기억하는 듯, 입꼬리를 올렸던 것이었다.
'어머, 이게 누구야. 과거 사황 동지네? 반가워라.'
키이라는 과거 진채원과 같은 사황. 동시에 미국과 중국이라는 입장상. 이가 갈리는 원수.
제3차 세계대전을 치를 정도로 사이가 안 좋았다.
뭐, 그래 봐야 지금은 죄다 주헌에게 탈탈 털린 동지였지만.
'주헌이도 참. 그땐 왕급이 아니라 죽이기까진 좀 힘들었나 보구나.'
그때야 목을 자르면 그만이었겠지만, 사황급이면 제 급소는 철저하게 지키고도 남았다. 그리고 진채원은 남은 잔당들을 싹 제거했다.
어디 그뿐이랴. 주헌에게 복수를 품고 새로운 사황으로 부흥하려던 히틀러 세력도 싹 뿌리를 뽑았다.
'조금만 더 빨리 나왔으면 위험했을지도.'
그러니까 루이는 빡치는 것이었다.
키이라는 기억을 잃은 자신을 거두어준 은인이기도 했지만...
"단서를 또 잃었어!"
자신이 누구인지, 어떻게 여기에 오게 된 건지 그 여자만이 알고 있었는데!
아무튼 그렇게 진채원 몰래 도망친 건 좋았는데, 이번엔 재수 없게 다른 놈에게 잡혀버린 것이다. 그게 포교왕이다.
루이는 유물들을 집어던지며 빼액거렸다.
"악! 아무튼 이게 다 서주헌 때문이야! 이젠 하다하다 테러조직의 복원 셔틀이나 되다니!"
그는 이유는 모르겠지만 서주헌이 너무 싫었다.
그냥 그놈과 얽히면 좆 된다는 본능으로 가득했다.
그리고 그럴 때였다.
"그럼 네가 누구인지 내가 알려줄까?"
여자의 목소리에 루이는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거기엔 고양이 똥이 있었다.
루이는 이게 뭔가 싶었지만, 고양이 똥이 이렇게 말했다.
"그 전에. 눈을 떴을 때 너 혼자만 있었는지 말해봐."
왜 고양이 똥한테 그딴 걸 말해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혼자는 아니었던 거 같은데."
죄다 어디론가 사라지긴 했지만.
***
한편 제 동생에게 배신당한 후, 세상에서 아예 자취를 감추었던 TKBM의 총수.
권태준 회장.
그는 지금 괴로워하고 있었다.
"#$&*$#*!"
그는 주헌에게 끌려와 어딘가에 갇혀 있는 상태였다.
그곳은 다름 아닌 저승 한가운데였다. 바로 오시리스가 관장하는 망자의 세계다.
그리고 그 지옥의 바다에서 권 회장은 으드득 이를 갈고 있었다.
그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 버러지 같은 놈이 주인도 못 알아보고...!'
권 회장은 주헌이 이곳에 끌고 왔던 일을 잊지 못했다.
아마도 몇 달 전이었을까.
"커헉, 커허억...!"
아킬레우스의 갑옷이 파괴되고, 불사의 힘을 잃은 권 회장은 죽어가고 있었다. 유재하가 아닌 이상, 목과 몸이 떨어지면 죽는 건 당연했으니까.
그리고 불사의 힘이 사라지자마자 닥쳐오는 끔찍한 호흡곤란.
모든 것이 정상적인 인간으로 돌아가는 과정은 그야말로 공표였다. 하지만 진짜 공포는 따로 있었다. 차라리 이대로 정상인으로 돌아가 죽으면 최소한 고통스럽지는 않았으련만.
주헌은 권혁수가 던져준 권 회장의 목을 집어들며 입꼬리를 올렸던 것이다.
"이대로 숨줄은 겨우 붙어 있게 해. 할 수 있지?"
"네. 할 수 있어요."
클로에는 자신의 수술 유물을 발동했다.
[수술대 위에서 절대로 죽지 않게 하는 의신의 기적(SS급-신급)]
쉽게 말해, 수술이 끝나기 전까지는 강제로 육체의 기능을 살려둔다.
외과분야에서는 그야말로 기적적인 유물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러면 뭘 하나. 마취도 않고 이걸 응용하면 결국 고민인 것을.
그랬다.
목이 떨어진 권 회장은 수술대 위에서 계속 그런 상태여야 했던 것이다.
"커헉, 커억...!"
닥쳐오는 호흡곤란. 하지만 그럼에도 죽지 못하는 죽을 듯한 고통.
'제발 그냥 이대로 죽여줘!'
하지만 그럴 수 없다는 듯, 주헌은 영악하게 까마귀의 눈물을 꺼냈다.
"자, 깨어날 시간이야 영감."
그리고 발동된 까마귀의 눈물!
권 회장은 고통 속에서 과거의 기억까지 떠올려야 했다. 동시에 전생의 기억이 뇌리에 스며박히는 그 순간, 권 회장은 울었다. 그건 당연했다.
[당장 죽여라! 그놈은 내 자리까지 넘볼 놈이야!]
[잘했다, 사기왕. 네 덕에 놈들을 처리할 수 있었어.]
놈을 처리하고 천하를 거머쥘 수 있었던 자신이었다. 이번 생에서도 자신은 최고가 될 수 있었다.
그런데 서주헌이, 자신이 죽인 그놈이 살아 돌아와 자신을 이 지경으로 만들다니!
서주헌이 밉고도 두려웠다. 이정도 녀석일 줄은 사실 꿈에도 몰랐다.
'젠장!'
하지만 더 두려운 것은, 이 끔찍한 상황이었다.
아니 이대로 죽지도 못하고 전생의 기억을 떠올리며 괴로워해야하다니!
그 공포를 잘 알기 때문일까.
주헌은 권 회장의 귓가에서 험악하게 이빨을 들이댔다.
"난 당신을 절대 편하게 죽게 하지 않아. 내가 당신을 다시 소환할 때까지 계속 과거의 영광을 떠올리며 분해하고, 고통스러워하고, 울부짖으라고."
"!!"
마치 악마와 같은 웃음이었다. 그렇게 주헌은 권 회장을 저승에 두고 가버렸다. 그리고 그 말대로 권 회장은 이 저승에서 눈물을 흘리며 괴로워했다. 심지어 권 회장이 있는 곳은 외부와 달라 고통을 느낀 시간만 해도 체감상 벌써 수 년.
그리고 현재.
"허어억! 내가 잘못... 허억!"
잘못했다.
그러니 제발 편하게 죽게 해달라. 그렇게 약한 마음을 먹을 때였다. 그런 그의 앞에 뜻밖의 손님이 찾아왔다.
"권 회장. 안녕하신가."
바로 포교왕이다. 포교왕은 권혁수가 그랬던 것처럼.
저승을 뚫고 이곳을 찾아왔다. 그리고 포교왕은 이 마지막 발굴에 권 회장을 데리고 가려고 했던 것이다.
왜?
서주헌에게 피해를 입은 대표 주자라고 하면 다름 아닌 이 사람이 아니겠는가.
'전생에 기르던 개한테 완전히 물린 불쌍한 회장님.'
"내가 그 고통을 풀어드리지."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포교왕이 권 회장에게 발동되고 있는 수술대 유물에 손을 가져갔다.
'수술대 유물을 파괴한다.'
그 뒤에 권 회장의 목을 붙여주는 건 어려운 일도 아니니까!
"알라의 이름으로...!"
***
한편 그 무렵이었다.
안개로 변했던 주헌이 무덤 깊숙한 곳으로 들어갈 때였다.
"!"
포교왕이 권 회장의 수술대에 손을 대는 그 순간, 주헌이 움찔했다.
'누군가 노친네를 건드렸다.'
용의주도하게 탐지장치를 걸어놓았던 그였다.
그리고 누군가 저승에 불쑥 침입한 사실을 깨달은 순간 주헌은 입꼬리를 올렸다. 누구인지, 그딴 건 중요하지 않았다.
'감히 내 즐거움을 건드리려 하다니.'
다른 건 몰라도 노친네는 안 됐다. 지난 몇달 간, 권 회장의 비명소리를 종종 들으며 즐거워하던 그였으니만큼.
그 생각에 미친 주헌은 바로 오시리스를 발동했다.
동시에 저승에 있던 포교왕은 깜짝 놀랐다.
팟!
엄청난 섬광이 권 회장이 있던 수술대를 삼켜버린 것이다.
"권 회장이 사라졌어!"
포교왕이 당황하다가, 급하게 권 회장을 추적했다.
'그 회장을 꼭 데리고 나가야 해.'
하지만 권 회장을 옮긴 주헌은 씨익 웃으면서 가던 걸음을 계속했다.
'그 노친네는 내 즐거움이다.'
그렇게 어느 정도 걸었을까.
"오. 저거로구만."
유재하가 말한 안개를 발견하고, 안개에 손을 집어넣은 주헌은 순식간에 어디론가로 빨려 들었다.
그렇게 텔레포트 안개에 휘말리고 눈을 뜨자 완전히 다른 공간이 나왔다.
"!"
그리고.
[드디어 왔구나]
그곳에는 검은 새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