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0화. 왕좌를 위하여 (4)
번쩍!
엄청난 오라의 폭발이 일어났다.
그 상당한 힘에 탑 내부에 있던 사람들 모두가 비명을 질렀다.
"아악! 이게 뭐야!"
"아아아악!"
강한 바람이 일었다.
그건 피부가 타들어갈 정도의 열기.
덕분에 이사회는 물론, 그들의 유물들조차도 도저히 주헌에게 다가갈 수가 없었다.
"젠장!"
"저놈이 무슨 짓을!"
곧 이어 눈을 아리는 섬광이 일어났다.
주헌은 그걸 보면서 입꼬리를 올렸다.
그리고 같은 시각.
전화를 받았던 진채원은 눈앞에서 일어나는 광경에 오, 감탄하고 있었다.
[아아악! 살려줘!]
[이건 아니야, 이건 아니라고오오!]
주헌의 섬, 타르타로스에서는 섬광이 터져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수많은 감옥 중에서도 빛이 터져 나오는 곳은 구덩이. 동아줄이 붙잡아왔었던 1,000여마리의 악신 유물들은 그야말로 죽으려고 했다.
[갑자기 끌고 나오더니 이게 뭐냐!]
[아아악! 몸이 갈린다! 갈...!]
[커허어억!]
구덩이 안에서는 보기에도, 듣기에도 끔찍한 분쇄날이 돌아가고 있었다.
쿠와아아아앙!
기이이이이이잉!
그 분쇄날의 크기만 해도 어지간한 집 하나 크기. 드릴형부터 시작해서 다양한 분쇄기들이 구덩이 안의 악신 유물들을 갈아댔다.
[아아아아악!]
분쇄날들은 거침없이 유물들의 몸통을 절단하고, 빻아대고, 그야말로 가루로 만들어냈다. 그 위력은 신급 유물들조차도 괴로워하며 박살이 날 정도.
그리고 그 잔인하고 험악한 분쇄기의 창작자는 다름 아닌 주헌의 쌍둥이 조이.
그랬다.
이 물건은 얼마 전에 조이가 감옥에 달아놓은 유물 전용 분쇄기였다.
'확실히 유물들은 미사일이나 핵무기로도 파괴할 수 없지.'
그런 만큼 유물을 파괴하는 방법은 세상에 딱 두 가지.
강한 공격 유물을 쓰거나, 무식한 강도의 지배력으로 파괴하는 방법. 하지만 1,000개가 넘어가는 유물들을 하나하나 주헌이 터트리고 앉아있을 수도 없는 노릇.
귀찮고, 시간 낭비였다.
그래서 주헌은 조이에게 한방에 유물들을 파괴할 수 있는 방법을 논의했다.
그 결과 조이의 취향이 듬뿍 담긴(?) 대량 살상용 유물 분쇄기가 탄생한 것이다.
게다가 누가 공학과 아니랄까 봐, 신급 파괴 유물로 신나게 기계로 만들어주었다! 덕분에 유물들은 피를 토하며 갈려갔고, 펑펑펑 터져나갔다.
결국 악신 유물들은 괴로워하며 필사적으로 구덩이에서 빠져나오려고 했지만...
"응. 안 돼. 거기에 있어."
[아아악!]
진채원은 환하게 웃으면서 유물들을 구덩이에 뻥뻥 도로 차 넣었다. 괜히 사황급이 간수로 있는 게 아니었다. 결국 걷어차인 악신 유물은 눈물을 흘리며 구덩이에 도로 골인. 콰가가가각! 분쇄날에 갈려 최후를 맞이했다.
그리고 얼마를 갈았을까, 비교적 이름 없는 악신들까지 포함해 유물들이 죄다 갈갈 갈렸을 그때.
구덩이에서 빛이 터져 나온 것이다.
희한한 건 이번엔 신급들의 비중이 높았던 탓인지, 놀랍게도 무려 두 개나 동시에 각성했다.
이때였다.
쾅!
각성한 것은 바로 살리에리와 달기.
평소라면 그와 관련해서 메시지가 떠올랐겠지만, 지금은 까마귀의 힘이 완전히 소실된 상태.
메시지는 떠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굳이 메시지가 떠오르지 않아도 주헌은 짐작할 수 있었다.
'마제스티의 키를 총 5개 개방했다.'
완전체는 아니어도 키의 기능을 거의 80% 이상 사용할 수 있을 수준이리라.
아니나 다를까.
"문을 개방해라!"
그 외침과 함께 시체가 만들어내던 벽에 빛의 원이 생겼다.
쾅!
그 빛은 외부와 연결된 통로!
물론 전대의 힘이 상당한지, 구멍의 크기는 상당히 작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판도라 사람들은 다급해졌다.
"젠장! 문이 열렸어!"
"설마 시체의 힘을 누른 거야?"
"저러다가 나가겠어!"
물론 시체의 힘도 만만치 않았다. 주헌이 마제스티의 키로 문을 만들어내자마자, 시체가 반응을 보인 것이다.
쿠구구궁!
마제스티의 키는 그 어떤 문도 열고, 닫을 수 있는 재보. 주헌이 문을 열려고 하면, 시체는 당연히 문을 닫으려고 했다.
"단장님! 구멍이 점점 작아져요!"
"빨리!"
닫히는 속도가 상당했다.
구멍이 점점 작아지자 주헌은 재빨리 안개로 변했다. 판도라 사람들이 다급하게 외쳤다.
"저놈이 빠져나가려고 한다!"
"절대로 빠져나가게 하면 안 돼!"
그들은 유물을 사용했지만, 그 누구도 안개로 변한 주헌을 막을 수는 없었다.
"하하하, 이 기회에 그 무덤을 싹 털어와야지!"
마침내 주헌은 눈 깜짝할 사이에 돌풍처럼 구멍으로 빠져나갔다.
제일 먼저 주헌이 빠져나가고, 단원 중 몇명도 빠져나왔다. 그리고 문은 순식간에 닫혀버렸다.
"젠장!"
"잡놈들이 나가버렸어!"
차라리 이 탑에 가둬두는 게 멀린이 움직이기 더 편할 텐데! 그래서일까, 그들은 아직 완전히 기능이 죽지 않은 판도라 시스템 유물, 즉 시체에게 외쳤다.
"우리도 여기서 나가게 해주게!"
"지금 나간 놈들을 막아야하네!"
"아니 그냥 다 파괴해버려!"
물론 시체가 자신들의 말을 들을리는 없었다.
멀린만이 이 시체를 조종할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시체는 바로 반응을 보였다.
정확히는 시체와 연결 된 채 지직거리는 모니터에서.
[시스템 작동을... 시작... 합니다.]
하지만 그런 그들을 가만히 보고 있을 단원들도 아니었다.
콰지지직!
어딜 감히 발동하려냐는 듯, 사나운 번개가 시스템 유물을 일순 마비시켰다.
"!"
그들이 놀라 주춤거리자,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가긴 어딜 가. 아저씨들 처리는 우리 담당이거든?"
다빈치 유물을 든 채 이죽거리는 호구왕은 제법 무서웠다. 율리안도 방긋 웃었다.
"그럼 시작은 체험으로 해볼까."
"체험?"
"산 채로 박제되어보기 체험."
"뭐, 뭐?!"
드물게 빡친 목소리와 함께 탑에서 비명이 울려 퍼졌다.
***
그리고 그 무렵이었다.
[아아아악! 젠장, 살려줘! 아아악!]
[헉... 헉! 멀린, 들려? 서주헌하고 몇 놈들이 도주했어!]
[서주헌이 재보를 썼다고! 헉... 아악! 젠장, 쫓아오지 마!]
이어폰에서 들려오는 처절한 비명소리에 멀린은 골머리를 썩고 있었다.
'젠장.'
기껏 재보를 빼앗으라고 영혼까지 이탈해가며 궁니르를 붙잡아줬더니.
뭐라고?
'서주헌이 재보를 쓸 수 있다고?'
도대체 어떻게!
그리고 그녀가 미간을 짚는 상황에서도 비명 소리는 계속 되었다.
[빨리! 빨리 작전대로 해! 판도라가 재기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그걸 모르지는 않는다.
하지만 서주헌이 재보를 쓸 수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졌다.
'왜 까마귀가 사라졌을 텐데도 재보를 쓸 수가 있는 거지.'
까마귀와 계약이 아예 끊긴 게 아닌가?
그뿐이 아니었다.
'창고에 있던 묵시 유물도 사라졌어!'
악신 유물의 비명 소리를 듣고 타르타로스로 날아갔던 건지, 멀린이 사용하려 했던 재앙 유물 태반이 사라졌었던 것이다.
'칫, 이걸로는 좀 부족한데...!'
다른 재앙 유물들은 대감옥 안에 있었고 말이다.
그리고 그럴 때였다.
쐐애애애액!
"!"
궁니르가 미친 듯이 날아오자 멀린은 다급하게 유물을 발동했다. 그리고 그 순간 궁니르가 멀린의 등에 꽂혔다.
"커헉!"
멀린을 또 찌른 궁니르는 엉덩이를 씰룩이며 좋아했다.
이번엔 진짜 찔렀어! 찔렀다구!
궁니르는 흥얼거리며 멀린에게서 떨어졌다. 그리고 혹시 몰라 이 주변을 다시 한 번 확인하려는 듯, 하늘을 돌아다녔다. 그리고 그때였다.
"참, 성가신 창이로군."
멀린이 들어왔던 도서관 안에 누군가가 있었다. 중년의 남자였다.
"거참 저걸 잘도 피해 다니는구만."
그리고 남자의 말에 모래 속에서 뭔가가 끙끙거리며 움직였다.
"하여간. 이딴 무생물의 몸에까지 들어오게 될 줄이야."
이젠 하다하다 이딴 것에 들어온 멀린은 씩씩거렸다. 수치도 이런 수치가 없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궁니르에게 찔린 지 벌써 6번째. 영혼을 갈아타는 방식으로 궁니르를 속이고는 있었지만, 궁니르도 서서히 이상한 걸 감지한 모양이었다.
덕분에 찾아내는 속도도 점점 빨라졌고, 심지어 멀린이 다른 사람의 몸에 빙의하기 전에 찌르려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아 됐어요. 그래서 이번엔 제가 어디에 들어왔죠? 앞이 안 보이는데, 책인가요?"
그 질문에 남자는 대수롭지 않게 웃었다.
책이면 양반이지.
"고양이 똥이야, 똥."
"?!"
멀린은 못 들을 걸 들었다는 듯, 비명을 질렀다.
"아니 왜! 도서관에 똥이 있는데! 꺄아악! 누가 이 도서관에서 고양이를 들여놓으래요!"
그러자 남자는 애교를 피우는 고양이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이슬람에서는 흔한 일인데."
멀린은 말을 잇지 못하다가 질색하듯 외쳤다.
"아무튼 좋아요! 그간 이 도서관에서 허송세월을 보낸 건 아니겠죠!"
"당연하지."
멀린이 찾아온 도서관은 다름 아닌 도서관 유물 내부였다. 아카식레코드와는 다르지만, 세계적으로 유명한 도서관 유물.
[지혜의 보고- 알렉산드리아 도서관(S급-영웅전설/귀속성)]
바로 멀린의 연구실이기도 한 장소였다.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도서관이자 지중해권의 지식의 보고. 당시의 과학자들을 이어주던 학술의 성지였다.
그리고 이 유물은 세계의 모든 신화 기록, 지식기록, 예언기록 등, 기록서들이 모여들게 하는 유물.
멀린은 이곳에서 언노운의 개발방법을 알아낸 것이고 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눈앞에 있는 이 남자.
그는 평범한 인물이 아니었다.
"위대하신 쿠란 유물을 여기서 만나게 해준 은혜는 잊지 않지."
그랬다.
눈앞에 있는 인물은 다름 아닌 과거 사황 중 하나이자, 세상에 출현하지 못했던 남자.
포교왕이다.
뭐, 원래는 아베스타 경전 유물로 세상 사람들을 신도로 만들었던 강적이지만...
"그 유물도 서주헌이 빼앗아가고."
세상에 나올 기회를 잃었다.
무엇보다 그는 주헌에게 이를 갈고 있었다.
왜?
"놈은 이 내가 사황이 되는 길을 막았어. 알라신의 계시를 이루지 못하게 했다고!"
그랬다.
한손엔 쿠란을, 한손엔 검을 든다고 했던가.
그는 유물 테러단체를 지원하고 있었고, 전 세계를 이슬람권으로 통일하려던 사내였다.
그리고 포교왕을 이곳에 데려온 건 다름 아닌 멀린.
그녀는 사실 각종 사건에서 등장하던 까마귀 눈물에 집중하고 있었다.
왜?
'서주헌은 전생의 기억이 있다.'
그래서 그걸 흉내내보려고 여기의 지식을 참고해 카메라 유물을 만들어봤던 것이고 말이다.
하지만 전부 실패. 도저히 까마귀의 눈물에 버금가는 유물을 만들어낼 수는 없었다.
그리고 그러던 와중 멀린은 이 도서관에서 쿠란을 발견한 것이다. 물론 쿠란은 보통의 적합력이 아니면 사용할 수 없는 유물.
그래서 수색 끝에 포교왕을 만났고, 포교왕은 이곳에서 쿠란 유물을 사용하면서 미래를 보게 되었다.
쿠란은 요한계시록처럼 계시록 성향을 띤 예언 유물이었으니까.
그 과정에서 그는 전생에 대한 것도 떠올릴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어떻던가요, 그 꼬마에 대한 건? 미국에서 분명 붙잡아왔죠?"
그 꼬마라는 건 바로 루이 마틴을 말하는 것이었다. 유재하의 아들인 줄 알았지만, 실제론 유재하로 만든 언노운이었던 유물.
포교왕은 미소를 지었다.
"확실하네. 그 꼬마는 묵시 유물 중 시공 유물을 통해서 이곳으로 날아온 거야. 미래에서 온 유재하의 언노운이지."
"요한이 한 말이 사실이었군요. 서주헌의 도굴단을 죽이고 죄다 언노운으로 만들었다더니."
"그래, 물론 그 꼬마는 시공을 넘은 탓인지 본인에 대한 걸 전혀 기억하지 못하지만..."
그러자 고양이 똥 멀린은 후후 웃었다.
"그럼 서주헌 놈들의 언노운도 분명 가져올 수 있다는 거겠네요?"
서주헌 일행의 언노운.
그거라면 분명 주헌을 방해할 도구가 될 수 있으리라.
곧 포교왕이 말했다.
"참, 그 꼬마가 기억은 없는데 마제스티의 재보를 기억하는 것 같더라고."
"어떤?"
"마제스티의 요람."
"!"
멀린은 정말 놀랐다.
'그건 이 세상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았던 재보...!'
원래도 재보는 마제스티 없이는 무용지물이었지만, 요람 쪽은 아예 발견도 안 되어서 포기하고 언노운을 만든 것이었는데.
뜻밖의 보물 이야기에 멀린 없는 입꼬리를 씰룩였지만, 가까스로 참았다.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에요. 마제스티가 되지 못하면 그 보물도 아무런 소용이 없죠."
중요한 건 빨리 대감옥에 가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시체는 지능이 없어서 장기적으로 볼 땐 좋지 못하고.'
"일단 까마귀, 그 까마귀를 얻어서 누군가가 마제스티가 되어야 해요! 지금은 그 방법 밖에 없어요."
"좋아. 그럼 난 다른 피해자들과 권 회장을 찾아서 그 감옥에 들어가지. 우릴 이리 만든 서주헌에게 복수하겠어."
"네! 전 서주헌의 언노운 쪽을 찾을 테니 서주헌보다 빨리...!"
그런데 이때였다.
쾅!
"꺄아악! 뭐, 뭐야!"
[#$*$*!]
이상하다. 여기서 뭔가 냄새가 나는데?
쾅! 쾅! 쾅! 쾅!
하늘을 슝슝 날아다니던 궁니르가 돌연 도서관의 문을 콱콱 박기 시작한 것이다!
***
그리고 그 무렵.
쾅!
시내 한복판에서 큰 폭발 소리가 일어났다.
그건 바로 대감옥의 문을 여는 소리.
더욱 강화된 마제스티의 키로 대감옥의 문을 연 주헌은 웃었다.
"자, 우리 까마귀 어디에 있나. 응?"
까마귀.
모든 것의 시작이자 끝이었던 유물.
그리고 그 마지막 무덤의 도굴을 시작하려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