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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굴왕-358화 (358/409)

358화. 왕좌를 위하여 (2)

"이 개새끼들이."

주헌이 드물게 쌍욕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당연할지도 몰랐다.

의자에 앉은 것처럼 보이는 사람 때문이었다.

아니, 사람이라기 보단 이건 이미 박제.

시랍처럼 그 피부색은 갈색 빛에 가까웠고, 몸이 앙상하게 말라 있었다.

그야말로 피골이 상접했다는 표현이 맞을 수준이리라.

하지만 비록 말라비틀어졌다 한들, 미이라처럼 얼굴이 무너진 건 아니었다.

확실하게 이목구비가 남아 있었고, 짙은 눈썹, 머리카락, 심지어 속눈썹까지 붙어 있었으니까.

단지 괴롭게 잠이 든 듯, 눈을 감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야말로 인형을 방불케 하는 온전한 모습.

그래서 주헌은 바로 이게 누구인지 알 수 있었던 것이다.

'전대 마제스티다.'

틀림없었다.

이건 총수의 기억에서 봤던 바로 그놈이 분명했다.

과거 노예 출신으로서, 왕이었던 총수를 제치고 마제스티가 된 놈. 까마귀의 선택을 받아 유물의 왕이 되었지만...

'결국 까마귀를 배신하고 간신들의 말에 귀를 기울인 머저리.'

그러다가 인간왕을 없애려는 유물들의 반란에 살해당한 놈.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놈을 알아본 유물들이 술렁거렸다.

[이거 그놈이잖아!]

[이 빌어먹을 호구놈!]

곧 주헌이 슬쩍 술렁거리는 유물을 보자 유물들은 헉 입을 다물었다.

아무래도 전대가 맞긴 맞는 모양이었다. 놈의 가슴엔 오래된 창 유물이 꽂혀 있었고, 얼마나 깊숙하게 박혔는지 그것이 옥좌까지 꿰뚫고 있었다.

아마 놈은 그렇게 살해당한 것이리라.

그럴 때였다.

전대 마제스티를 접했기 때문일까, 비록 분신이라 약하긴 하지만, 까마귀의 기운이 파르르 흔들리고 있었다.

분노하거나 우는 건지도 몰랐다.

어쩌면 한때 자신이 섬겼던 위대한 왕이 이런 처참한 몰골로 박제되어 있는 꼴에.

그래서 주헌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혹시 이놈을 구해달라고 과거로 돌려보낸 건가?'

뭐, 단순히 자신을 배신한 인간을 보고 치를 떠는 걸 수도 있지만. 아무래야 좋았다.

"그래서, 이 시체는 뭐야. 왜 이딴 박제된 꼴로 냅둔 건데?"

그 불쾌하다는 듯한 질문에 유물들이 또 술렁거렸다. 아주 민감한 질문을 한 것이 틀림없었다.

하지만 다들 쉬쉬할 때였다.

[왜긴 왜야. 인간왕은 비천하지만, 마제스티 힘은 꼭 필요하니까?]

[!]

대답한 건 세트였다.

동시에 유물들은 거품을 물었다.

[야! 돌았어? 그거에 대해서 왜 말해!]

[그건 우리 유물의 약점이야!]

[아무리 그래도 그걸 말씀하시면...!]

[알아. 나도 더 이상 말 안 해.]

그러나 주헌은 악랄하게 웃었다.

"그-으-래? 이걸 보고도?"

세트는 움찔했다.

그리고 예상대로 주헌이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들었다.

그건 바로 치킨 교환권!

"각 브랜드 신상 메뉴들이다. 무려 백 장이지. VVIP 고객이라면서 각 본사에서 자진 납세하러 오셨지. 무려 세상에 공개되지 않는 테스트 제품까지 먹을 수 있다고. 너만 맛볼 수 있는 거야!"

그러나 그는 라이터를 팍 켰다.

"뭐, 기껏 네게 주려고 했는데, 그냥 재가 되어 사라지겠군."

[악, 아악! 그런 아까운 짓 하지마라!]

"자. 10초 준다. 하-..."

유물들이 비웃었다.

[허, 신급 유물이 그딴 걸로 넘어갈 것 같은...]

[헥헥! 충성!]

세트는 1초 만에 함락당하고 말았다.

***

세트는 꽤 옛날 일을 떠올렸다.

그건 인간들이 고대라고 부르는 시기.

그리고 그때도 비보를 쥔 왕급들과 수많은 유물사용자들이 활기를 치고 있었다.

"쳐라! 마제스티가 되는 자! 최후의 승자가 천하를 쥘 것이다!"

당시엔 영토전쟁과 유물전쟁이 함께 치러지던 때였다. 나라나 부족의 왕이 왕급이니 당연할지도 몰랐다.

뭐, 결국 마제스티가 된 건 거대한 제국의 황제가 아니라 그 황제의 노예였지만.

하지만 그것도 오래가지 않았다.

[만세! 더러운 인간왕이 사라졌다!]

[이걸로 하찮은 인간 놈을 따라야하는 운명에서 벗어났다!]

[우리는 이제 자유다!]

인간중심 정책에 불만을 품은 유물들의 반란.

하지만 반란에 성공을 하고 자유를 얻고 나서도 그들은 내심 불안해했다.

[정말 마제스티가 없어도 저희는 살 수 있는 겁니까?]

[마제스티가 있어야 저희가 유지될 수 있는 거 아닙니까.]

[그래, 살 수 있다.]

그는 박제의 창에 꽂힌 채 옥좌에 박힌 마제스티를 보며 비릿한 웃음을 흘렸다.

[중요한 건 이 마제스티의 옥좌가 비어있느냐, 아니냐하는 것이다.]

[!]

[옥좌가 비어있으면 마제스티도 부재중으로 판단되어 우리 유물들도 사라진다. 하지만 저 상태라면 옥좌도 마제스티가 있다고 인지하겠지. 즉 마제스티의 권능은 계속되고, 우리도 살 수 있는 것이다!]

그야말로 마제스티를 산 채로 쪽쪽 영양분을 뽑아먹겠다는 의미였다. 마제스티는 불사의 힘을 가져다준 파트너 비보, 즉 까마귀(왕관)를 파괴하지 않으면 죽지 못했으니까.

이에 유물들은 환호했다. 그런데 그럴 때였다.

[수장님, 큰일입니다!]

[뭐?]

[까마귀가...! 까마귀가 이쪽으로!]

[뭐? 잡아두지 않았느냐! 그놈이 왜!]

[그게 탈출을 해서...!]

[막아라! 쓸데없는 놈은 들이지 마! 그래봐야 생전 왕에게조차 버림받은 쓰레기 놈이다!]

그런데 그때였다.

쾅!

그들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까마귀가 들이닥쳤다.

그리고 그 모습은 살아생전, 마제스티가 아껴주었던 인간의 모습. 곧 마제스티를 조우한 까마귀는 드물게 넋이 나가있었다.

[...!]

그야말로 처참하기 짝이 없는 광경.

그 찬란하게 빛났고, 누구보다 친절했던 마제스티는 한낱 의자나 데우는 산 고깃덩어리가 되고 말았다. 결국 까마귀는 그 고운 얼굴 위로 눈물을 뚝 떨어트렸다. 그리고 그 순간, 유물들은 새로운 지옥을 봐야만 했다.

폭주한 까마귀의 반란. 흉포한 본성을 드러낸 까마귀는 사납게 동족을 잡아먹었다. 그 과정에서 엄청난 유물들이 희생당했다. 물론 그래 봐야 까마귀는 대감옥행.

[절대 죽이지 마라! 이놈의 목숨이 붙어 있어야 마제스티를 이용할 수도 있다!]

그리고 말을 안 듣는 놈들과 함께 다 같이 처넣어버렸다.

'다 마제스티의 힘이 있어서 가능했다.'

그들은 비릿하게 웃었다.

애초에 프로메테우스 및 호루스, 기타 신급 유물들은 전대의 직속 유물들. 그들은 왕을 속여 유물 지배권을 일부 받아냈던 것이다.

유사시엔 마제스티의 권능으로 대리청정을 하겠다는 이미로. 덕분에 그 자격으로 프로메테우스는 옥좌를 이용해먹을 수 있었다.

하지만 수천 년의 세월이 지나고.

기껏 인간의 간섭 없이 유물들의 파라다이스에서 걱정 없이 세월을 보내고 있을 무렵. 아마 주헌의 시대로부터 30년 정도 전일 것이다.

[마제스티의 힘이 약해지고 있다. 옥좌가 기능을 멈추려고 한다고!]

프로메테우스의 뜬금없는 선포에 다들 충격을 받았다. 그동안 마제스티가 있는 것처럼 꼼수를 부렸지만, 그것도 통하지 않게 된 건가.

[까마귀는!]

[별 이상 없습니다. 어차피 재보인 이상, 스스로 죽지도 못하는 놈이잖습니까, 자해가 고작이지.]

[젠장. 그럼 어떻게 된 거지? 이러면 곤란하잖아! 옥좌가 기능을 멈추면 우리도 사라질 거야!]

[당장은 아니야. 시체에 모아둔 힘이 있으니 향후 20년. 더 아끼면 30년 정도는 버티겠지만... 그래도 위험해.]

[즉, 새로운 마제스티를 뽑을 때가 되었다는 거냐?]

그 말에 신급 유물들은 당황했다. 어떻게 인간왕을 몰아냈는데, 또다시 마제스티를 뽑아야 한다는 말을 할 수 있다는 건가!

[또 인간을 위하는 왕을 뽑을 수 없습니다!]

마제스티란 왕인 것과 동시에 기록을 관장하고, 유물들이 사라지지 않게끔 관리할 수 있는 절대적 기록자. 쉽게 말해 그의 손에 모든 유물들의 생사가 달려있었다.

왜?

유물은 인간의 전승에서 탄생했다.

하지만 정작 그 전승이 세월이 지나면서 사라지고, 잊히면 그 힘 역시 사라져 유물이 소멸하게 된다.

그걸 방지하기 위해 마제스티가 있는 것이었다.

아카식레코드를 활용해 소멸하려는 전승을 꾸준히 막고, 행여나 세월이 지나면서 달라진 기록이 있으면 그를 바로잡기 위한.

'그래서 마제스티에게 요구되는 덕목 중 하나가 뛰어난 기억력이기도 하고.'

애초에 마제스티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유물들은 생명력을 얻는다. 그런데 옥좌가 멈추려고 하다니!

'빨리 새 왕을 뽑아야 한다!'

'골동풍이 되는 것만큼은 안 돼!'

'차라리 그 추방된 묵시 유물들이 되고 말겠어!'

'바보냐! 묵시 유물이 되면 다신 이쪽으론 못 와! 망령이 된다고!'

'하지만 인간왕을 뽑으면 전대와 똑같은 일이 반복될 거야. 또 인간 따위를 섬기라고 할 거라고!'

그러자 프로메테우스는 웃었다.

'걱정 마라. 다 방법이 있으니까. 우린 그저 우리 입맛에 맞는 인간왕을 뽑기만 하면 돼.'

그렇게 프로메테우스는 인간과 접촉했고, 판도라가 세상에 나오게 된 것이었다.

***

그리고 세트의 말에 주헌은 이제야 좀 알겠다는 듯 웃었다.

'프로메테우스는 이걸로 그간 수장 행세를 했었던 거구만.'

어떻게 마제스티를 죽여놓고, 그 힘을 쓸 수 있었던 건지 궁금했었는데. 뭐, 아무래야 좋았다.

"미, 미친. 저게 진짜 전대 마제스티라고요?"

뒤따라온 유재하가 대뜸 기겁을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시체를 보고 겁을 먹었나 싶었더니, 유재하는 대뜸 제 이마를 탁 쳤다. 마치 엄청난 세기의 비밀을 깨달았다는 듯!

"와, 대박! 나 이제야 알았어요! 까마귀 놈이 단장님을 고른 이유!"

"뭐? 왜 골랐는데?"

"얼굴!"

"?"

"까마귀 그 자식, 지독한 얼빠였던 게 틀림없어!"

"?!"

그게 뭔 개소린가 싶었지만, 유재하는 확인사살(?)을 했다.

"봐! 전대도 저딴 얼굴이고, 지금도 이딴 얼굴이잖아! 와씨, 세상 더럽다 진짜! 유물도 외모지상주의 쩌네!"

[?!]

졸지에 공격당한 까마귀 오라는 당황한 듯했다.

그, 그게 아닌데?!

물론 단순한 우연이겠지만, 둘의 외견이 훤칠한 건 사실이리라. 결국 그 말에 단원들이 고민에 빠졌다.

"그러고 보면 이 시랍, 묘하게 너하고 닮은 거 같기도 하고..."

주헌은 기분 나빠했다.

"뒤질래? 닮긴 뭘 닮아. 시체 따위하고."

"하하. 그래 봐야 아주 약간인 것 뿐이지만."

그렇게 모두의 시선이 마제스티에게 집중된 바로 그 순간이었다.

'자, 어서 손을 대라. 옥좌에 욕심을 내란 말이야.'

숨어 있던 원탁의 기사들이 입꼬리를 올리고 있었다. 그들은 숨을 죽이고 주헌의 손을 응시하고 있었다.

'이건 마지막 기회다.'

옥좌를 활용해서 서주헌에게 역공격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

'행여 마제스티가 말을 안 들을 때를 대비해서 깔아둔 함정이지.'

그랬다.

그들은 본인들의 입맛에 맞는 마제스티를 뽑으려고 했었다. 하지만 인간은 변심의 동물. 흔히 변소에 들어가기 전과 그 후가 다르다고 하지 않나.

마제스티가 되기 전에는 입맛에 맞았다고 해도, 그 후에는 욕심이 생겨 마제스티의 권능을 마구 부릴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그를 위해 프로메테우스가 장치해둔 것.

'전대와 똑같이 살아있는 박제로 만드는 장치.'

즉, 주헌이 옥좌를 차지하려고 하면 전대 마제스티의 힘이 발동하면서 주헌을 산 박제로 만들어버릴 것이었다.

'오히려 이렇게 된 게 잘 된 것일 수도 있어.'

어차피 마제스티는 뽑아야했다.

일을 수월하게 하기 위해 말이 통하는 마제스티를 뽑으려 했던 것뿐.

'살아있는 존재를 박제하는 건 리스크도 크고 유지비도 너무 많이 들긴 하지만...'

이번만큼은 어쩔 수 없었다. 지금 상황에서는 서주헌을 이길 방법이 없었으니까. 그러니 놈을 전대 마제스티를 뽑아먹었던 것처럼 뽑아먹는 수밖에.

그렇게 서주헌을 없애고, 새 왕급들을 모아 왕위전을 다시 시작하면 되는 것이다. 그게 자신들이 재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자! 그러니까 어서 옥좌에 손을 대! 멍청한 전대처럼 노예가 되라고!'

함정의 조건은 판도라에 불손한 마음을 품는 것.

그리고 주헌이라면 그 조건을 충족하고도 남을 터.

'어서 뒤져!'

실제로 주헌이 손을 가져가자 마제스티의 함정이 발동하려는 기미가 보였다. 그런데 그럴 때였다.

눈부심 섬광이 터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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