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3화. 해체되는 아성들 (2)
쾅! 콰과광!
바티칸에서 폭발이 일어난 건 불과 몇 분 전이었다.
때는 늦은 저녁.
장소는 조용하고 평화롭기 그지없던 이탈리아 북부, 바티칸 시국.
세상에서 가장 성스러운 곳이라고 불리는 이 작은 도시에는 끔찍한 악마들이 들이닥치고 있었다.
"젠장! 저게 뭐야!"
"마귀다, 마귀야!"
잡스러운 마귀부터 시작해서, 고위급의 악마까지 우글우글 몰려오고 있었다.
물론 처음부터 이런 군단이 들이닥친 건 아니었다.
시작은 아마 작은 마귀.
"흠, 판도라의 연락은 아직인가."
성 베드로 성당의 신부가 성경을 읽고 있을 때였다.
"!"
신부는 성경책을 와그작 와그작 먹어치우고 있는 악마를 보며 기겁할 수밖에 없었다.
생긴 것은 손가락 길이.
성경을 와구와구 먹어치운 그놈은 눈이 없었다.
오로지 이빨만 발달한 그 악마 놈은 순식간에 성경의 한 페이지를 먹어치우고.
"아악!"
깜짝 놀란 신부가 악마를 쳐내자, 악마는 이빨을 번득이며 신부가 착용한 유물 반지를 노렸다.
콱!
"아아아악!"
악마는 반지 채로 신부의 손가락을 앗아갔다.
신부는 피를 흘리며 눈을 부릅떴다.
'더러운 약마형 유물...!'
신부는 재빨리 자신의 십자가를 집어들었다.
하지만.
"끄아아악!"
처절한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
결국 신부의 비명에 놀라 달려온 동료들은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이게 뭐야!"
내부에 남아 있는 건 아수라장이 된 건물과 사람의 팔 한 짝 뿐.
그리고 그 한가운데에 신부를 잡아먹은 털복숭이 괴물이 있었다.
사람을 먹어치운 악마는 더 뚱뚱해져 있었고, 4족의 다리까지 솟아나 있었다.
결국 교황 직속의 신부들, 동시에 요한의 동료들은 십자가를 들었다.
"유물이다! 악마형 유물이야!"
탕탕!
그들은 유물 총까지 쏘아댔지만 글쎄.
"아, 안 먹혀!"
피부를 뚫기는커녕, 놈은 간지럽다는 듯 몸을 흔들며 도약했다. 마침내 짐승처럼 도약한 악마가 입을 쩌억 벌렸다.
그리고.
"아아아악!"
그들은 역시 유물 채로 씹어먹히고 말았다.
그렇게 바티칸을 습격한 악마들은 사정없이 그리스도 유물을 삼켜버렸다.
쾅! 쾅! 쾅!
그리고 그 난동의 주범, 악마왕은 소리높여 웃었다.
"하하하, 더러운 바티칸 유물들! 죄다 먹어치워주마! 우리 단장처럼!"
그는 어째 주헌을 동경하게 된 모양이었다. 유물을 포식하던 그 모습이 굉장히 멋있어서 내심 반했던 것일까.
"하하하, 우리 개 같은 단장 최고! 그리고 나도 좀 멋있어 보이자!"
관광객들은 어차피 악마들의 흥미대상이 아니었다.
악마들이 입맛을 다시는 건 그리스도 유물을 가진 놈들 뿐! 그리고 여긴 애초에 주헌의 명령으로 온 거긴 하지만...
'버러지 같은 놈들. 그래, 니들이 그렇게 물고빠는 신성 유물과 함께 뒈져라.'
바티칸에 원한이 있는 건지, 일리야의 눈이 내심 번득였다.
그리고 같은 시각. 이 같은 사건에 고위 성직자들은 다급해졌다.
"큰일입니다! 악마가 더 많아지고 있어요!"
"놈이 파괴한 그리스도 유물의 숫자가 상당합니다!"
그들은 탄식했다.
'그 미친놈이 여기는 또 왜.'
특히 그중 교황이 몹시 못 마땅해했다.
그는 전임 교황을 강제퇴임 시키고 그 자리를 차지한 인물. 즉 유물을 인류의 실질적인 미래자원으로서 인정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현재. 그가 이끄는 바티칸의 목적은 세상의 모든 그리스도 유물을 모으는 것.
특히 그리스도 유물이 유색인종이나 외부인의 손에 들어가는 걸 극히 꺼려했다.
왜?
여호와급 유물은 오직 교황의 상징이 되어야 할 유물.
그게 다른 곳에서 발현된다면 그야말로 수치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다른 종파가 관련 유물을 가져가 목소리를 키우는 것도 꼴 보기 싫은 일.
그리고 결국 그들은 그리스도 유물을 전부 쓸어모으기 위해 판도라의 악행을 오히려 이용해먹었던 인물들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현재.
안 그래도 사탄을 다루는 일리야가 그들에게 달가울 리가 없었다. 아니 달갑지 않은 이유는 또 있었지만.
'그 배덕한 쓰레기 놈.'
"사제였던 신분도 잊고 악마 유물따위를 쓰다니요."
그랬다. 일리야는 원래 바티칸의 일원이었던 것이다.
사후처리반으로서 권혁수에게 거두어지기 전까진.
하지만 그들은 태연했다.
왜?
"아무래도 그 일로 관심을 끌려고 오기엔 장소 선정이 잘못된 것 같은데."
"하긴, 다른 보고를 듣자하니. 놈이 다른 길로 이탈했다고 해요."
"막상 사제들과 부딪치니 겁을 먹은 거죠."
하지만 보고를 하러 온 신부들은 그게 아니라며 급히 외쳤다.
"아닙니다! 놈은 도망치는 게 아닙니다!"
"뭐?"
"놈이 향하는 곳은 바로 교황청 도서관이라고요!"
"!"
동시에 그들은 급하게 일어섰다.
"잠깐! 거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어딘가에서 폭발음이 울려 퍼졌다.
"도서관이 파괴되었습니다!"
평화로웠던 그들이 다급해진 건 한순간이었다.
***
"자, 그래서 어딨어. 아카식레코드?"
주헌의 질문에 요한은 히죽거렸다.
알려줄 것 같냐.
'어차피 이놈이 알게 될 일은 없다.'
그곳의 위치를 아는 건 자신과 주교급 이상의 고위 성직자들이었으니까.
그래서일까.
"죽여."
요한이 작정한 듯 입꼬리를 올리자 주헌은 같잖다는 듯 웃었다.
"뭐, 말하기 싫으면 안 해도 돼. 알아낼 방법은 많으니."
"그래 봐야 넌 평생 알 수 없어."
그렇게 요한이 주헌을 비웃을 때였다.
부르르.
'!'
땅에 떨어져 있던 요한의 핸드폰이 울렸다.
그리고 발신자를 확인하던 주헌은 웃으면서 전화를 받았다. 그건 당연한 일이었다.
[요한? 요한! 지금 문제가 생겼네!]
전화를 걸어온 건 바로 추기경이었기 때문이다.
스피커 상태에서 전화를 받자 그의 다급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일리야 볼고프! 그 퇴출자가 바티칸에 쳐들어왔다! 악마를 끌고!]
'!"
요한은 내심 놀랐다.
그 새끼가 다른 곳도 아니고 하필 바티칸에 쳐들어갔다고?
'악마 유물로 나라를 이동했나.'
아니나 다를까, 전화기 너머로는 아주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놈이 그리스도 유물을 전부 파괴하고 있어! 속도가 너무 빨라!]
그건 당연한 일이었다.
놈은 전 바티칸 소속 사제였으니 지리도 훤할 테고, 직접 만난 적은 거의 없지만 능력도 출중하던 구마사제.
그러니 이런 사태도 당연한 수순이지만...
'그 미친놈이!'
하지만 괜찮았다.
'뛰어난 형제들이 거기에 있어.'
그는 차분히 지시했다.
"당황하지 마세요. 그놈의 약점은 뻔하잖습니까."
그딴 배덕한 악마놈 따위, 충분히 바티칸에서 생매장 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문제는 그놈이 도서관으로 향했다!]
순간 요한의 표정이 묘하게 일그러졌다.
'뭐? 도서관이라고?'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이대로면 그게 드러나게 돼!]
이런 개 같은 새끼.
'왜 가도 하필 거기에!'
그리고 순간 요한은 아차 싶어 주헌을 살폈다.
순간적으로 자신의 표정이 무너졌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요한은 금방 표정을 지웠다.
'눈치 못 챘을 거야.'
아무리 이놈이 개 같은 눈치를 가졌다고 해도.
그런데 이때였다.
"아항."
주헌이 소름끼치게 웃었다.
그리고 그 미소에 요한의 등골이 오싹해졌다.
아니나 다를까.
"커헉!"
주헌이 붙들고 있던 궁니르를 콱 놓아버렸다.
그 반동으로 요한은 피를 머금고 뒤로 쓰러졌다.
쿵!
궁니르는 요한의 배를 찍어 누르고 있었다.
그리고 궁니르가 찌른 것은 원탁 유물의 매개체.
'젠장, 원탁의 수혜가 사라진다.'
물론 그 정도로 요한은 죽지 않았다.
원탁의 가호가 없어도 기본적으로 성스러운 유물을 쓰는 이상 그 생명력이 엄청났다.
괜히 예수급 유물을 다루는 유물사용자가 아니리라.
그래서일까.
어디론가 가려는 주헌을 보고 요한은 다급해졌다.
'분명 바티칸에 가려는 거야.'
요한의 동공이 흔들렸다. 이놈이 거기 가는 순간, 마제스티의 재보가 넘어가게 되는 건 불을 보듯 뻔한 일.
시간을 끌어야했다. 어떻게든,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놈의 발을 붙잡아야 했던 것이다!
결국 죽은 척이라도 했으면 살았을 걸, 그가 외쳤다.
"어디에 있는지 알려줄게!"
"!"
"재보의 위치를 알려줄 테니까 거래하자!"
그는 피까지 토해가며 외쳤지만, 주헌이 웃었다.
마치 뭐야, 너 살아 있어? 그렇게 말하는 듯한 눈빛.
그리고 주헌이 말했다.
"거래하려는 건 기특해. 그런데 넌 이제 필요없을 것 같은데."
그 말과 함께 요한의 심장이 찔렸다.
"커...컥."
그리고 궁니르를 뽑아든 주헌은 동아줄로 자신의 팔을 궁니르에 묵었다.
그리고!
쉬익!
냅다 궁니르를 던졌다.
바티칸을 향해서!
동시에 하늘로 치솟는 궁니르!
동아줄로 묶여 있는 주헌 역시 궁니르에 딸려 날아가고 말았다.
쉬이이익!
그는 궁니르에 제대로 올라타며 순식간에 미국에서 사라졌다. 회수하지 않은 유물 쪽은 상관없었다.
[오오, 인간 주제에 대단하네.]
[크리스천인지 뭔지 그거, 뭐 그리 대단한 신이야?]
[됐고. 일단 유물 회수부터 하자고. 나 치킨 먹어야 해.]
[난 거기를 되찾아야 해.]
주헌이 남기고 간 똥들이 히죽거리고 있었다.
***
"젠장, 놈이 도서관에 쳐들어왔습니다!"
"천사 유물로도 막을 수가 없습니다!"
일리야가 바티칸에 들이닥친 지 고작 30분.
그 사이에 일리야가 모조리 쓸어버린 여호와 유물의 숫자만 해도 그 개수가 상상을 초월했다.
어디 그뿐이랴.
"확실히, 여기서 뭔가 좋은 냄새가 나는데."
일리야는 당당하게 도서관에 침입해왔다.
특히 그가 주목하는 곳은 도서관 지하에 있는 비밀서고.
"내가 없는 사이에 또 무슨 유물들을 쳐넣으셨대."
일리야는 척척 비밀통로를 열며 지하로 내려갔다.
중간 중간에 천사 유물들이 강림해 방해했지만, 상관없었다.
"다들 지옥 불에나 떨어져라."
화르르륵!
[#*$*!]
꺄아아악! 살려줘!
[#*$#*!]
더러워졌어!
도리어 천사를 타락천사로 만들어버리는 그였다.
그리고 그가 비밀서고에 들어서려는 순간이었다.
"일리야! 거기까지다!"
"!"
일리야를 따라온 주교들이 있었다.
"거기서 멈춰라."
그들은 유물이 막 나왔을 때의 일을 떠올렸다.
그 당시, 판도라의 권혁수라는 남자가 교황청에 이상한 컨택을 해왔다.
'갈리나라는 아이가 거기에 드나들고 있을 겁니다. 그 아이, 주목하는 게 좋을 겁니다.'
갈리나라는 건 일리야가 맡고 있던 신자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가 악마 유물을 쓸 수 있게 된 계기가 된 여자. 그리고 그 사실을 잘 알기에 주교들이 말했다.
"갈리나, 그 아이를 그리스도 유물로 되살려주지."
"!"
"그 아이 때문에 그런 악마와 계약을 하게 된 것이 아니냐."
"..."
"넌 우리 동료다. 그러니..."
하지만 그 순간이었다.
쾅!
엄청난 오라가 교황청의 도서관을 휩쓸고, 지독한 지옥불이 뿜어져 나왔다.
콰과과광!
마침내 터져나가는 도서관의 내벽들.
사방에서 유리가 터져나가고, 벽이 갈라지고, 건물이 터져나갔다. 덕분에 주교들과 사제들도 함께 터져나갔다. 그리고 일리야가 귀를 후비면서 말했다.
"엠병. 니들이 죽여놓고 뭘 다시 살린다 만다야. 시체놀이도 정도껏 해야지."
"뭣...!"
"보나마나 니들이 물고빨던 유물을 쓰든지. 아니면 언노운으로 만들겠다고 지랄하는 걸 텐데."
그의 눈이 번득였다.
"일 없어요, 등신들아."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악마가 사제들을 죽였다.
잠시 후 그는 당당하게 비밀서고에 들이닥쳤다. 마침내 그가 마주하게 된 아카식레코드!
"오, 빙고."
척 봐도 엄청난 오라가 터져 나오고 있었다.
보아하니 그리스도 유물은 아니었고, 그냥 지나치기에도 너무나 좋아보이는 유물!
그럴 때였다.
부르르.
일리야는 대수롭지 않게 전화를 받았다.
전화를 건 사람은 호구였다.
[야, 찾았어? 단장님한테 들었어! 거기에 있다며! 어떻게 생긴 거야? 무슨 능력인데!]
"몰라, 인마. 지금부터 알아봐야지."
[오오, 단장님 또 대박 유물 건지는 건가! 한 건 했으니까 보너스 왕창 요구해!]
그러자 일리야가 비웃었다.
"꺼져. 먼저 가져가는 사람이 임자지."
[뭐?]
"오호, 그게 무슨 소리지?"
"무슨 소리긴. 맨날 단장만 좋은 거 먹잖아. 나도 하나쯤은 먹어야하지 않겠..."
"흠."
순간 일리야는 등골이 오싹해졌다.
지금... 다른 목소리 들리지 않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