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2화. 해체되는 아성들 (1)
눈으로 봐도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와아아아! 판도라를 쳐라!"
"개 같은 새끼들! 끌어내! 전부 죽이라고!"
"야 개새끼들아! 너희들 때문에 내 새끼가 괴로워한 걸 생각하면!"
요한은 가까스로 천사를 불러내며 본부로 도주 중이었다.
거기가 서주헌한테서 도망칠 수 있는 유일한 곳이었으니까.
그리고 택시만 잡으면 본부가 있는 드루이드의 탑까지도 얼마 걸리지 않을 것이라.
하지만.
'!'
택시를 잡기 위해 큰길로 향하던 때였을 것이다.
'저건 분명 판도라 지부.'
요한은 거기서 폭동을 일으키는 사람들을 보았다.
"다들 죽여라! 이 쓰레기들아!"
"너희는 사람들도 아니야!"
분노한 사람들이 판도라 시설을 부수고, 직원들에게 항의를 하고 난리도 아니었다.
덕분에 요한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이게 무슨.'
그는 다급하게 자신의 핸드폰을 살폈다.
서주헌의 일행의 추격이 무른 것도 아니라, 핸드폰을 볼 여유도 없던 그였다.
그래서 동료에게 괜찮다는 확답을 들은 후, 안심하고 있었는데.
'이게 무슨 일이야.'
그의 손길은 점점 다급해졌다.
아니 사실 요한도 알고 있었다.
저들이 저런 반응을 보일 만한 이유는 딱 하나라고.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판도라 R&D에서 신원불명의 시체들이 쏟아져나와... 그 이유는?]
[시체들의 신원은 파악 중, "정황상 실험재료로 보인다."]
[그레이브 컴퍼니 "판도라, 유물을 만들기 위해 유물증후군에 걸린 사람을 이용했다 주장."]
[이어지는 충격 제보 "유물병을 퍼트린 건 사실 판도라"]
[전 세계 시민들 분노 "시민보호기구라는 건 거짓이었나."]
{판도라 미 소속 국가 및 중러연합 "있어서는 안 되는 끔찍한 이야기."]
[과학수사대 무너진 R&D 부서에 투입]
그들이 가장 우려했던 속보가 전세계 톱뉴스로 떠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전 세계를 도배한 뉴스에 요한의 왼팔이 분노에 파르르 떨렸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마치 이건 오마주.
과거 주헌이 전쟁왕 키이라를 묻어버렸을 때의 일을 보는 것 같았다.
'그땐 판도라에서도 골치 아파서 꼬리자르기식으로 키이라를 버렸었건만.'
그런데 그때 그녀에게 벌어졌던 일이 고스란히 자신들에게 벌어지고 있는 것이었다.
마치 '너희는 해당 없을 줄 알았지?' 그렇게 꼬리를 잘라냈던 걸 비웃기라도 하듯이.
물론 파급력에 있어서 그때의 정신지배 따위와 비교가 안됐지만.
실제로 사람들은 흥분할 대로 흥분해서 폭동까지 일으키고 있었다.
"이 속도가 사실이냐!"
"유물병을 일부러 뿌린 게 니들이냐고! 그걸로 약 팔아 쳐먹고 돈 뜯어간 걸로도 모자라 뭐? 사람을 유물새끼로 쳐 만들어?"
"아무리 유물로 뭐든 할 수 있는 시대라지만, 이건 아니지 않냐!"
"내 아버지 돌려내! 젠장, 판도라 계열 병원에서 시체가 사라진단 소문이 진짜였어!"
"인간을 모독한 행위다!"
"우릴 속였어! 지금까지 왜 꼬박꼬박 세금까지 내주면서 니들을 지지해줬는데!"
속보가 터진 지는 그리 오래된 것 같진 않았다.
아마도 터진지 대략 두 시간 정도.
자신이 주헌 일행에게 쫓길 그 시간이었다.
그 사이에 뉴스를 접한 사람들이 근처 지부로 몰려와 난동을 부리는 것이리라.
그도 그럴 법한 게, 판도라는 세계의 정상들이 합의하여 유물과 관련된 모든 권한을 위임받는 공식기구.
전 세계의 유물관리 및 무덤의 관리.
시민들의 보호를 이유로 각 나라에게 돈을 지원받았고, 공공연한 경찰 역할까지.
배신감을 느낀 사람들이 깜짝 놀라 몰려올 만했다.
"사실입니까! 이 속보가 사실이냐고요!"
'젠장. 골치 아파졌군.'
물론 이번에도 적당한 책임자를 만들어 총알받이로 세우면 그만이긴 했다.
속보로 뜬 건에 대해서는 부정하면 그만이었고, 실제로 처신도 그렇게 하고 있기는 했다.
[R&D 시설은 서주헌이 침입하면서 상황을 날조한 것뿐.]
[판도라 이사회, "되려 서주헌에게 책임을 물려야."]
["바보같이 악의세력 세력에게 선동당하면 안 돼..."]
하지만.
"새끼들아! 누가 누굴 까! 그레이브 컴퍼니가 그간 해온 걸 봐라!"
"오히려 니들보다 나을 때가 더 많았거든!"
젠장 저것들이.
그리고 이때였다.
"어이쿠 미안해서 어쩌지."
"!"
"우리 회사가 생각보다 신뢰도가 높은가 봐."
"!"
낯익은 목소리와 함께 뭔가가 날아와 박혔다.
푸욱!
박힌 곳은 등.
순간적으로 습격을 당한 그의 눈이 흔들렸다.
"커헉."
날아와 박힌 건 다름 아닌 궁니르.
하지만 즉사하진 않았다.
궁니르가 깊게 박히기 전에 주헌이 붙잡았기 때문이다.
덕분에 궁니르는 애가 타 죽을 것 같은지, 안달이 나서 엉덩이를 씰룩거렸다.
어서! 어서 찌르게 해줘! 어서어어!
곧 주헌이 웃었다.
"이를 어째. 의외로 사람들이 우리 회사를 많이 믿어주고 있는 모양인데."
"크윽."
사실 주헌의 회사는 의외로 신뢰도가 높았다.
기본적으로 물건에 대한 브랜드 신뢰도가 높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다른 면.
유물의 시대에서 점수를 딸만 한 사회적 공헌을 종종 해왔으니까. 이를테면 판도라가 구조를 포기한 곳의 구조, 대피소 설립, 생존과 약 계열 유물 무료배포, 실질적 유물교육, 지원 등 수백 가지가 넘어갔다.
통제하기만 하고 특정인들만 유물을 허가해주는 판도라에 비하면 좋게 보일 수밖에.
물론 그레이브 컴퍼니의 대표는 세계에서도 유명한 쓰레기 양아치(?). 흔히 있는 수단적 이미지메이킹이라며 비난받기도 했지만 글쎄, 좋은 게 좋은 거다.
주헌은 궁니르에서 아주 살짝 힘을 뺐다.
그러자 궁니르가 신이 나서 요한의 몸에 조금 더 깊게 들어갔다.
"크윽...!"
요한은 치를 떨었다.
"도대체 어떻게...!"
분명 자신이 동료와 연락을 했을 땐 개 같은 언론을 틀어막았다고 했는데.
다시 문자를 확인해 봐도 확실했다.
[언론사들 다 막고 있어?]
[일단 ㅇㅇㅇ. 막는 중]
[증거물은 처리 완료함.]
막는 중이라더니 설마 실패한 건가?
그런데 그걸 훔쳐보며 주헌이 낄낄 웃는 것이었다.
"어이쿠 우리 애가 열일했구만."
"?!"
"팀원 중에 안 보이던 사람이 있다싶지 않았어?"
그 말에 메시지를 보는 요한의 동공이 흔들렸다.
'설마, 이거...!'
그랬다.
두 시간 전, 도로 위에서는 끔찍한 일이 벌어져 있었다.
"커, 커허억."
"저걸, 저걸 빼앗기면 안 된다...!"
사실 율리안은 호리병에 시신 몇 구를 담아왔었다.
국가공인기관에 맡기고, 공식적인 답을 듣기 위해서다.
물론 조작의 의심을 피하기 위해 일단 경찰에 보내놓았고 말이다. 그리고 경찰들은 증거품들을 국가과학 수사대로 보내게 되었다.
유물을 활용한 감식은 필수였으니까.
동시에 그들은 판도라의 시선을 피하기 위해 퀵서비스를 이용했다는 걸 깨달았다.
하지만 그건 오히려 판도라에겐 기회였었다.
[증거물들을 빼앗아 와라.]
[과학수사대로 보내지기 전에 빼돌려!]
그러나 그러면 뭘 하나.
"커헉... 너, 넌!"
"거참, 이 양반들. 배달에 방해되니까 방해마쇼."
정작 그 퀵 배달원이 단이었던 것이다.
단은 칼을 번득이며 눈도 번득였다.
이건 뭐 빼앗으려고 하다가 자신들의 목숨까지 지옥으로 배달 될 느낌.
그리고 그곳에 있던 요한의 동료는 좆 됐다면서 긴급요청을 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핸드폰을 빼앗기고.
"헉!"
단은 요한의 메시지를 읽었다.
그렇게 단은 태연하게 동료인 척, 답장을 보내놓은 것이다. 익숙하지 않은 말투를 흉내 내느라 혼났다.
그 뒤로 단은 언론을 공격하려는 판도라 병사들도 전부 때려 눕혔다. 수라왕이라고 불리는 배달부를 막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현재.
"이미 끝났어. 이사회 150명의 명단도 떠돌기 시작했고, 전 세계의 판도라 지부에도 폭동이 돌고 있다고. 막으려고 해도 소용 없을걸?"
요한은 비웃었다.
"어차피 한순간의 루머로 끝날 거야."
그러자 주헌은 밉살맞게 웃었다.
"바보야. 왜 지금 여기에 나밖에 없다고 생각해?"
"!"
"널 쫓아오던 다른 녀석들, 전부 다른 판도라 시설로 향했거든?"
"...!"
"새로운 정보를 얻어서 다들 그쪽으로 향하고 있어. 내 동생이 만들어준 특제 열쇠가 있으니 침입이 어렵지도 않겠지."
그 말에 요한의 동공이 떨렸다.
'새로운 정보라니. 또 뭐!'
워낙 판도라에 쌓아둔 비밀이란 게 많은 터라 요한은 초조해졌다. 그 반응에 주헌은 웃었다.
"애초에 이상했지. 유물이 나타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판도라가 그렇게 빨리 튀어나올 수 있었던 게. 갑작스러운 재난에 대처하는 것치곤 조직 구성의 완성도도 높았고. 마치 유물의 존재에 대해 오래전에 알고 있었던 것처럼."
"...!"
"니들이 얼마나 오래전부터 유물에 대해 알고 있었는지 모르지만, 이 사실 역시 파급력이 상당할걸."
요한은 코웃음이 나왔다.
'그래봐야 증거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면...'
"듣자하니 본부 동쪽 창고건물에 증거물이 있을 거라는데."
'젠장, 도대체 누가 그걸!'
그 사실을 알만한 건 원탁 구성원 정도인데.
하지만 요한은 내색하지 않고 웃었다.
"말해두지만 우린 유물에 대해 전혀 몰랐어. 그리고 알았다고 해도 유물은 위험한 자원이야. 출현하기 전까지 존재를 말해봐야 혼란만 부를 뿐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그래서 유물이 막 튀어나오고, 재앙에 사람들이 휘말렸을 때도 저희도 처음 보는 거예요 하고 시치미를 뚝 뗐었나?"
"...!"
"너희는 그냥 희생양들이 필요했던 것뿐이지. 니들이 확실한 이득을 취하기 위한."
그리고 그 희생양에는 자신들은 물론, 동생과 아이린의 부모도 있었다. 자신들은 착취용, 아이린의 부모는 유물증후군 실험용으로.
아무래도 아이린의 부모는 막대한 인맥 등 큰 힘을 가졌지만 정작 판도라에 찬동하지 않았으니까.
내버려두면 골치 아파지니, 본보기 겸 유물증후군과 언노운의 실험대상으로 삼은 거고.
아이린이 파산왕이 되자 겸사겸사 이용해먹을 수단으로 삼았고. 부모를 치료해주니 뭐니 하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들만 생각하는 구라쟁이들.'
주헌의 눈이 번득였다.
"그러니까 시민을 위한다고 구라쳤던 판도라 기구는 이제부터 해체야. 아니, 내가 그렇게 만들 거야."
곧 이를 간 요한이 급히 뛰쳐나가려고 했다.
궁니르에서 살갗이 뜯겨 나가는 고통도 상관없었다.
하지만.
"컥!"
"가긴 어딜 가. 마지막으로 내 질문 마저 답해야 하는데."
"...!"
그가 물으려는 건 다른 게 아니었다.
"너 기억은 어떻게 찾았냐?"
동시에 요한의 눈빛이 크게 흔들렸다.
주헌이 그걸 궁금해하는 이상, 좋지 않은 미래가 그려졌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주헌의 눈빛이 흉흉했다.
"너 아카식레코드가 어디에 있는지 아는 거지?"
젠장!
예상대로 눈치 빠른 주헌이 요한의 숨통을 조이기 시작했다.
"내 유물들이 말하길, 너한테서 재보의 냄새가 난다고 하더라고."
요한은 침을 삼켰다.
"자, 어디에 있는지 말해. 그게 있으면 원탁이니 뭐니 다 없앨 수 있을 것 같으니까."
말 할 것 같냐, 새끼야!
"죽여."
요한은 죽어도 마제스티의 서고가 교황청 도서관에 있단 말은 할 수 없었다.
목숨은 아깝지 않았다.
이대로 자신이 입만 벙긋 하지 않으면 이놈이 알게 될 일은 절대 없을 테니까.
'교황청 도서관의 보안을 무시하지 마라.'
이대로 비밀을 간직한 채 그냥 죽자.
요한은 웃었다.
***
그리고 그 무렵이었다.
"악마, 악마가 나타났습니다!"
"마귀가 습격해왔습니다!"
바티칸 시국은 지금 난리가 나 있었다.
그리스도 유물을 보유한 바티칸의 창고들이 죄다 박살 나고 있었던 것이다.
바로 요한에게 당하고 빡친 일리야의 짓이었다.
뭐, 주헌의 명령 때문이기도 했지만.
'교황청도 이사회하고 연관이 있을 지 모른단다. 조용히 조사 좀 하고 와.'
하지만 조용히 조사는 무슨.
"썅. 몰라! 그냥 세상의 모든 성(聖) 유물을 박살 내버릴 거야!"
그는 악마군단을 이끌고 홀로 바티칸 시국을 찾았다.
세상에 나온 90%의 그리스도 관련 유물은 거의 바티칸에 있었다. 그러니 유물을 모아둔 창고는 아주 적절한 타깃. 말 그대로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눈을 흘기고 있다고 해야 하나.
그리고.
"음, 저기 왠지 유물이 많아 보이는데."
일리야는 교황청의 도서관에 주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