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0화. 동료인 척하지 말고 (2)
마주한 주헌은 웃고 있었다.
그리고 요한을 가로막고 있는 길쭉한 짐은 평범해 보이는 악기가방. 주헌은 그걸로 요한을 막고 있었다.
마치 어딜 가느냐는 듯이.
요한은 황당하다는 듯이 웃었다.
'서주헌 이놈이.'
하지만 그는 황당한 기색을 감추고 말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서주헌 씨죠?"
그러나 주헌은 비뚜름하게 웃는 것이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그건 아니지."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그가 들고 있던 검은 악기가방이 터졌다.
펑!
그리고 악기가방에서 나온 건 다름 아닌 번쩍이는 검! 주헌은 그걸 낚아채는 것과 동시에 요한을 습격했다.
쾅!
그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튀어나온 것은 다름 아닌 마몬의 검.
원래는 곡괭이 형태가 기본이지만, 오늘만큼은 특별하게 검의 형태로 변형시켰다.
마몬은 채굴의 악마라 파괴력 전문은 아니지만 어쨌든 성향은 기본적으로 악마.
성스러운 유물을 다루는 요한에게는 모기같이 징글맞은 유물일 터!
쉬익!
곧 팔뚝만한 길이의 단검이 요한의 목을 노렸다.
채굴의 검은 흉흉한 오라를 띄며 요한을 파헤치려고 했다.
놈에게 박혀 있는 그리스도 유물을 캐내기 위해!
하지만 초인적인 능력으로 요한이 고개를 젖혀 피해내고.
쉭!
요한은 재빨리 주머니에서 손을 꺼내려고 했다.
주머니에 넣어둔 유물을 발동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푸욱!
"큭!"
뭘 하려는 지 뻔히 보인다는 듯, 그의 오른팔에 칼날이 박혔다!
후벼오는 칼날은 참을 수 없는 고통을 몰고 왔다.
그리고 요한이 이게 무슨 짓이냐는 듯 쏘아보자 주헌은 같잖다는 듯 웃었다.
"그리스도계 유물은 분명 오른팔로 쓸 수 있었지?"
"...!"
기독교에서 오른손은 신의 성스러운 권능.
창조, 구원, 동시에 징계의 권능을 뜻했다.
때문에 반드시는 아니지만 기독교 유물은 대부분 오른손을 활용해야 했고.
그리고 두 번이나 놈과 팀을 맺었던 주헌이 그 사실을 모를 리 없다.
아니나 다를까.
주헌의 눈이 번득이기 무섭게 요한의 오른팔이 날아가고 팔았다.
"크윽!"
순식간에 날아온 칼날이 요한의 팔을 가른 것이다.
마침내 요한의 팔이 바닥에 떨어지고, 피가 튀기자 공항은 난리가 났다.
"꺄아아아악!"
"무슨 일이야!"
물론 난리가 난 건 비단 공항에 있던 사람들뿐이 아니었다.
"다, 단장님!"
잠복하고 있던 단원들도 기겁했다.
"어떻게 여기에!"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율리안이 재빨리 외쳤다.
"일리야, 빨리 이 주변일대 봉쇄해!"
"!"
그러자 일리야가 유물을 발동하며 툴툴거렸다.
"칫, 단장이 먼저 선수를 쳤어...!"
저 새끼는 자신이 처리하려고 했는데!
곧 악마가 나타나 결계를 치기 시작했다.
결계는 사람들을 모조리 잠재우며 기억을 덧씌우고.
주헌은 그 사이 요한과 격돌했다.
쾅!
요한은 한손을 잃었지만, 재빠른 몸놀림으로 주헌의 칼날을 피했다.
그리고 왼손으로 총을 뽑아 쏘았지만 주헌은 근접전 최강의 유물, 항우의 검을 가진 몸.
캉! 캉! 캉!
총알도 쳐낸 주헌이 재빠르게 요한의 시야로 파고들었다.
그 속도는 신속, 번득이는 눈빛은 맹수.
마침내 눈 깜짝할 사이에 요한의 앞에 나타난 주헌이 그의 목에 칼을 꽂아 넣었다.
푸욱!
요한은 그대로 뒤로 넘어갔고, 주헌은 그런 그를 즈려밟았다.
"크윽!"
그야말로 찰나에 벌어진 일이었다.
"오 역시 단장. 대단해."
일리야는 순수하게 감탄했다.
하지만 감탄하는 무리 사이에서 유일하게 한 명.
유재하가 슬금슬금 어디론가 도망가기 시작했다.
"다들 서둘러! 단장님한테 들키기 전에 도망쳐야 한다고!"
"뭐? 도망쳐? 왜?"
"바보야! 우리가 여기 있는 거 단장님한테 들켜봐!"
그들은 그제야 아차 싶었다.
왜?
'단장님한테는 거짓말을 하고 여기에 온 건데.'
주헌이 요한과 접촉하지 말라고 지시를 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확인할 것이 있었던 단원들은 주헌에게 거짓말을 하고 공항에 온 것이었고.
그리고 다른 건 몰라도 주헌은 단원끼리 거짓말은 용서하지 않았다. 단원들끼리의 신뢰는 기본이니까.
그러니까...
'이 자리에서 걸리면 바로 정신교육이야!'
그들은 새하얗게 질려 황급히 공항에서 빠져나가려고 했다.
하지만.
"!"
주헌이 손가락을 까딱거리고 있었다. 뒤도 보지 않은 채. 까딱 까딱. 나와. 전부.
그렇게 등으로 말하고 있는 게 보여서 단원들은 벌벌 떨었다.
그리고 또다시 손가락이 움직였다.
까닥 까닥.
묘하게 아까보다 성질이 더러워진 느낌.
빨리 안 나와?
'젠장, 죽었다.'
***
"...저기."
한편 그 무렵.
조이는 굉장히 당황하고 있었다.
그럴 만도 한 게, 지금 자신의 앞에는 앨런비 일가가 무릎을 꿇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건 무슨 상황이죠?"
곧 양부모는 물론, 의붓동생 미쉘까지 조이에게 납작 엎드려 머리를 박았다.
"뭐, 뭐든 시키는 대로 하마!"
"제발 목숨만큼은. 정말 우리가 죽을죄를 지었어!"
"여기! 이게 그동안 네게서 빼앗은 돈이고! 필요한 게 있으면 뭐든 말하거라. 시키는 대로 뭐든 다 할 테니."
조이는 이 사람들이 왜 이러나 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아니, 이상해도 정말 이상했다.
갑자기 지난 10년 이상의 잘못을 하나하나 나열하며 사과하지 않나, 빼앗아간 돈은 물론, 물건들까지 싹 새로 대령하지 않나!
"미안하다. 여기 돈도 이자까지 쳐서 다 돌려주마!"
이 인간들이 정녕 약을 빨았나.
실제로 재산을 모두 매각당한 그들은 정말 티끌까지 탈탈 털어서 모두 조이에게 바치고 있었다.
"제발 받아줘! 부탁이야아아!"
"...다들 미쳤어요? 갑자기 왜 안 하던 짓을 하고 그래요?"
그 말에 그들은 울먹이며 누군가의 눈치를 살폈다.
그건 다름 아닌 클로에.
그들은 애원하듯 시선을 보냈지만, 클로에는 어림도 없다는 듯 눈을 번득였다.
그 지적이면서도 번득이는 파란 눈빛은 흡사 맹금류의 독수리. 덕분에 그들은 덜덜 떨며 다시 머리를 조아릴 수밖에 없었다.
"제발 우리에게 뭐든 시켜다오! 제바아알!"
결국 조이는 미심쩍은 표정으로 클로에를 보았다.
"주헌이죠. 분명 주헌이가 무슨 이상한 짓 했죠."
그러나 클로에는 상큼하게 웃었다.
"아뇨, 전혀요. 단장님은 아무런 짓도 안 하셨어요."
"그럴 리가 없는데. 다친 곳은 없어 보이지만, 이거 분명 고문이라도 한 것 같은 느낌인데."
그 말대로였다.
판도라에서 나온 후, 주헌은 앨런비 일가에게 혹독한 본보기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클로에는 그저 겉의 상처만 멀쩡하게 고쳐줬을 뿐이었다. 쉽게 말하자면 겉은 멀쩡한데 속은 썩어문드려졌다고 해야 하나.
그러니 꽤나 아플 것이었다. 그리고 앨런비 일가는 어떻게든 도망쳐보려 했지만 글쎄. 도망가려고 해도, 클로에 이 여자가 도통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의사라고 만만하게 봤었는데...!'
'저 새파랗게 어린년이...!'
그리고 결코 만만하지 않은 의사 클로에는 예쁜 얼굴로 차갑게 웃었다. 그녀는 주헌이 한 말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뒷처리는 피해자한테 제대로 사과부터 시킨 후에 시작한다.'
예스 단장님, 말씀하신 대로 거행하지요.
'단장한테 보수도 두둑하게 받았고, 오랜만에 제대로 일을 해볼까.'
그녀는 시치미를 뚝 떼며 조이에게 말했다.
"괜찮으니까 조이 씨는 그냥 이분들의 순수한 호의와 친절만 받으시면 돼요. 전혀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클로에는 활짝 웃었지만 앨런비 일가는 알았다.
이 뒤에 자신들은 조이 몰래 죽을 거라고.
저건 하얀 가운을 입은 악마라고!
그리고 그러거나 말거나 클로에는 느긋하게 시계를 보았다.
'단장 쪽은 슬슬 해결되었으려나.'
요한을 붙잡아 딱 한 가지 확인해 볼 게 있다고 했는데.
뭐, 별일 없겠지.
***
하지만 별일이 없기는 개뿔.
"야이씨, 궁니르는 아니지!"
정작 단원들이 단장에게 살해당할 위기에 처해있었다. 단장의 부름에도 섣불리 나가지 못하자, 성질 급한 주헌이 궁니르를 집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단원들과 조우한 주헌이 활짝 웃어보였다.
"그래서 너희들. 여기가 법원이고, 여자친구 묘지고, 헬스장이고, 작업실인가? 우리 애들이 그새 거짓말들이 늘었네?"
그러자 율리안은 커흠, 헛기침을 하면서 말했다.
"그게 아니라 이번 피고인 국적이 유럽이야. 그래서 재판도 다른 나라 법원에서 이루어지니까 할 수 없이 비행기를..."
"지랄. 그쪽 변호사 자격증은 아직 따지도 않은 주제에."
"큭...!"
"뭐, 됐어. 보나마나 옛 동료를 확인하려고 했겠지."
그의 시선은 요한을 향해있었다.
"내가 이놈을 처리할 거라니까 납득할 수 없었던 거 아니야?"
그 말에 단원들은 깜짝 놀랐다.
"아니요! 그게 아니라... 단장님보다 먼저 위험을 확인해보려고!"
"정말 그 사무엘이 맞나 확인해보려 한 거야!"
"그냥 단장보다 내가 먼저 죽이려고 온 건데요."
아무래도 각자 다른 이유가 있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이때였다.
"에이 단장님 너무 그러지 마시고, 이때의 사무엘은 아직 기억이 없는 것 뿐이잖아요."
잔머리꾼 유재하가 음흉하게 속삭여왔다.
"어쩌다보니 판도라에 있는 걸지도 모르고... 기억을 찾아주면 우리들처럼 아군이 되지 않을까요?"
판도라를 치기엔 더없이 좋지 않겠냐는 것이다.
"그리고 아군이 되면 옥좌 유물도 가져올 수 있는 거 아닌가? 게다가 그, 그 원탁 유물. 그것도 박살 내버리게 하죠. 비보도 없는 것들이 왕을 선발하네 어쩌네, 그렇게 오만하게 굴 수 있는 건 다 그 꼼수 유물 때문이라니까? 우리도 콱 놈들 뒤통수를 쳐버리자고."
과연 사기꾼이 생각할 만한 방법이었다.
나쁜 이야기도 아니고.
하지만 그 제의에 정작 귀가 밝은 요한이 느긋이 웃을 뿐이었다.
왜?
'좋아. 계획대로다.'
패턴대로라면 이제부터 놈들은 까마귀 눈물인가 뭔가를 쓸 것이었다.
자신을 동료로 삼기 위해.
그리고 사실 요한은 이 순간을 위해 붙잡힌 척 하는 것이었다. 오른손을 당하긴 했지만 그걸로 날개가 꺾일 만큼 하수도 아니었고.
목에도 칼이 꽂혀 있었지만 신성한 유물 덕에 상처부위가 재생되고 있었다.
'그러니 이대로 시치미를 떼면서 까마귀 유물을 쓰게끔 하자.'
그럼 동료인 척 합류해 암살하는 것도 쉽겠지.
'서주헌을 상대로 정면공략은 비효율적이야.'
어디 그뿐이랴.
'난 네 마제스티 재보에 흥미가 많다고.'
요한은 교황청 비밀도서관에 아카식 레코드를 몰래 관리하고 있었다. 물론 정작 사용방법을 몰라 애물단지 수준이지만.
'하지만 놈의 옆에 있으면 재보 사용법을 알게 될지도 몰라.'
요한의 눈이 남몰래 번득였다.
'그러니까 어서 눈물을 써! 난 아직 아무것도 기억 못 하고 있는 옛 동료인 거야.'
기억을 찾은 연기를 해줄테니 동료로 데려가라고!
하지만 이때였다.
"이새끼가 어디서 되도 않는 발연기를 하고 있어."
요한은 놀랐다.
하지만 주헌은 요한의 목에 난 상처에 손가락을 찔러 넣었다.
푹!
"큭...!"
그는 같잖다는 듯 웃었다.
"왜 그래? 너 이미 우리 기억하잖아? 우리가 팀원이었을 때의 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