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8화. 빈대를 잡으려면 초가삼간을 태워야지 (4)
궁니르는 주헌의 손을 떠나 헨리의 목뼈를 부수고, 기도를 잘라버렸다.
그와 함께 헨리가 피를 머금으며 뒤로 넘어갔다.
쿵!
바닥에 쓰러진 헨리는 괴롭게 꿈틀거렸다.
비록 왕급 타이틀은 일부러 달지 않았지만, 그들 역시 엄연히 왕급.
독자적인 방법을 통해 이미 초인이 된 이들이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즉사할 만한 충격에도, 죽지도 못하고 오히려 괴로워했다.
"커헉, 커허억..."
그의 입에서 짐승처럼 피와 침이 들끓었다.
고통스러운 눈동자는 시선을 한곳에 두지 못하고 이리저리 배회했다.
그리고 그렇게 흔들리던 눈동자가 결국 꽂힌 곳은 주헌이 있는 곳.
곧 무참히 흔들리는 눈동자와 번득이는 눈동자가 맞부딪혔다.
"고통 없이 갈 것이지. 오히려 초인이라 더 괴롭게 되었네. 미안해라."
주헌의 눈은 웃고 있지 않았다.
이놈들에겐 그 정도 인사도 호화였다.
그리고 그 가증스러운 시치미에 헨리의 눈알이 터질 듯 붉어졌다.
'이 개새끼...!'
어중간하게 찔러봐야 죽지도 않는다는 걸 모르지도 않을 거면서!
'차라리 목을 날려라, 새끼야!'
아니, 사실 그것도 곤란하긴 했다.
목을 날려도 재수 없으면 권 회장처럼 죽지도 못하고 살아 있을 수 있었으니까.
왜?
원탁의 기사들은 원탁의 유물의 수혜를 받고 있는 자들.
'원탁 구성원들은 죄다 불사 수혜를 받고 있단 말이야.'
왕급들이야 비보로 초인이 되었다.
지금은 서주헌이 몽땅 쓸어가서 악신유물로 대체했지만.
하지만 원탁회 구성원은 좀 달랐다.
'원탁의 유물은 버프성 유물이야.'
즉, 원탁 소속 150명은 원탁의 가호를 받고 있었다.
몸에 원탁과 연결된 생존매개체가 있다고 해야 하나.
놈들에겐 그곳이 급소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니 궁니르로 체내에 있는 매개체를 파괴한다.
그럼 그 즉시 평범한 인간으로 변할 것이고, 그와 함께 몸의 상처로 쇼크사하게 될 터.
로키도 그런 식으로 매개체를 파괴당해 즉사했던 것이고.
그걸 아는 건지, 주헌이 곧 궁니르를 뽑아 들었다.
"이제 편하게 해주지."
이에 헨리는 절망했다.
죽는다는 절망 때문이 아니었다.
'이놈들은 우리한테 복수를 해올 거야.'
그것은 다가올 미래가 보이기에 오는 깊은 한탄.
"그럼 잘 가라."
마침내 하늘로 날아오른 궁니르가 헨리의 옆구리를 파고들었다.
푸욱!
원탁과 연결되었던 매개체가 끊겨버리는 순간이었다.
동시에 주헌이 지시했다.
"설아랑 일리야는 여기 어딘가에 있을 가이아를 찾으러 가."
"단장님은요?'
"나? 난 저걸 가져가야지."
"!"
주헌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은 헨리.
동시에 헨리의 몸에서 뜨거운 열기가 피어올랐다.
그와 함께 헨리의 육체가 크게 들썩였다.
"저건...!"
놈의 몸을 파먹으며 뭔가가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
"아악!"
그 형태는 뱀과 같았다.
그리고 마침내 헨리의 몸을 뚫고 나온 뱀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거대했다.
흉측한 비늘, 눈앞을 스쳐 지나가는 것만으로도 한세월이 걸릴 만큼 거대한 크기!
그건 헨리가 사용했던 신급유물!
레비아탄!
놈은 구약성서에서 하느님의 적으로 나타나는 사악한 뱀이었다.
본래 아카드 신화에서 등장하는 신들의 숙적이었지만, 유대인들에 의해 구약성서로 넘어온 사나운 뱀.
바다의 드래곤이라고도 불리는 탐욕스러운 악신이었다.
사탄과도 결합해 하느님을 끌어내리려고 했다는 유명한 유물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만한 유물의 등장에 단원들은 황당해했다.
"아니, 저놈은 여태껏 왜 저런 유물도 안 쓰고!"
그러자 주헌이 느긋하게 웃었다.
"저놈은 하늘을 떨어트리려고 한 엄청난 뱀이야. 아마 기사들 중 다룰 수 있는 놈이 없으니, 친화력으로 가까스로 붙들어 놓기만 했던 걸 걸."
척 봐도 헨리라는 녀석은 비교적 친화력이 높은 케이스였으니까.
"허, 그럼 제 주인이 위험할 땐 꼼짝도 안하다가, 죽고 나니까 튀어나온 거야? 우리 쪽 호구도 그 정도로 무시는 안 받을 거 같은데."
"뭐라고?!"
주헌이 말했다.
"사황급들도 다루기 힘들걸? 레비아탄을 다루었다는 아카드신화의 신 유물이 없는 이상."
그러자 일리야가 시니컬하게 빈정거렸다.
"그럼 단장도 못 다루겠네요. 유물이 되어도 D급 골동품, 아니 폐기물이었는데."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일리야는 주헌에게 걷어차였다.
"크윽!"
"만약 내가 D급이 아니었으면, 넌 그 즉시 진짜 F급 폐기급이 되는 거다. 알간?"
뭐라고?
"저기... 세상에 F급이라는 건 없는데..."
"내가 직접 만들어주지. 네가 그 1호야."
그 말에 일리야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안 그래도 핏기 없이 시허옇던 얼굴이 밀가루가 되는 순간이었다.
'지, 지금이라도 바른 대로 말해야 하나.'
단장은 사실 신급이었다고.
이때였다.
쾅!
레비아탄이 그 큰 몸을 반쯤 드러내자 그들이 있던 시설 내부가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아악!"
쿵, 쿠구궁!
놈은 몸을 쭉쭉 뻗어 그대로 주헌 일행을 압살했다.
결국 벽까지 밀쳐져 압살 당할 것 같았는지, 유재하가 쌍욕을 했다.
"야이, 구렁이새끼야! 여기 사람 있거든!"
그러나 레비아탄은 비웃음을 흘리며 도도하게 유재하를 찍어 내렸다.
쾅!
"재하야!"
싱크홀이 생길 정도로 엄청난 위력!
곧 적의 오라를 감지하던 설아가 새하얗게 질렸다.
"오라가 너무 강해요! 그, 이런 말씀은 드리기 그렇지만 단장님의 까마귀보다...!"
"아오! 원탁의 기사들도 못 다룬 놈이래잖아! 당연하겠지! 일단 언노운도 얻었으니 나가요! 공명이도 지금쯤이면 증거물 다 찍었겠다!"
그러나 주헌이 동아줄로 올가미를 만들어 휘휘 돌리기 시작했다.
"나가긴 왜 나가."
무엇보다 저놈은 앞으로 유용하게 쓰일 유물이었다.
'게다가 저놈이 하느님의 대적자 유물이라면 더더욱.'
그는 날카롭게 웃으며 올가미를 던졌다.
"자, 어디 오랜만에 뱀술이나 담가 보자고!"
마침내 주헌과 레비아탄이 부딪쳤다.
***
"이런 미친 사람들 같으니..."
율리안은 탄식하고 있었다.
아니, 주헌이 언노운을 긁어왔다는 장소에 온 건 좋은데...
"어떻게 사람의 가죽을 쓰고 이딴 짓을 할 수가 있지."
율리안은 끔찍하다는 듯이 얼굴을 찌푸렸다.
그랬다.
주변에는 냉동보관장치와 알 수 없는 유물도구들로 가득했다.
그리고 그 냉동장치에 담겨 있는 사람들은 모두 유물증후군으로 사망한 사람들. 참혹한 광경에 율리안은 탄식하면서 증거사진들을 담았다.
그리고 그는 이 현장째로 옮길 수 있는 방법을 떠올려보기로 했다. 사람들의 신원파악을 하고 가족들을 찾아주기 위해서다.
그때였다.
"뭐야, 이런 장소가 있었어?"
"지하하고 연결되어 있잖아?"
위에서 서두르는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건 다름 아닌 일리야와 설아였다.
"아까는 이런 장소 못 봤는데."
그 목소리에 율리안이 급히 외쳤다.
"올 때 조심해! 이 지하 자체가 유물이니까!"
"뭐?"
그랬다.
몇 분 전, 율리안은 언노운이 있던 방에서 숨겨진 지하를 발견했었다.
자신들이 건물을 깨부수면서 지하와 연결된 통로를 발견한 것이다.
심지어 지하도 평범한 지하가 아니었다.
[샤를르 페로- 푸른 수염의 비밀 방(A급-보물급/소모성) - 75,480/ 87,600시간
하필 써도 푸른 수염의 유물을 썼나 싶었지만, 율리안은 금방 납득했다.
'이런 곳이니까 더더욱 이딴 유물을 썼겠지.'
동화 푸른 수염의 내용은 유명했다.
푸른 수염을 가진 영주가 있었는데, 그에게 시집을 가는 수많은 부인들은 전부 실종이 된다.
그리고 한 여자가 또 시집을 오게 되는데, 푸른 수염은 부인에게 다른 방은 다 들어가도 되지만 단 한곳은 들어가지 말라고 한다.
하지만 부인은 그 방에 들어가게 되고, 지금껏 푸른 수염이 죽여 온 부인들의 시체를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뭐 결국엔 부인은 못 본 척하려고 하지만, 그만 남편에게 발각되고 똑같이 살해당할 위기에 처하게 된다는 내용.
그리고.
'방에 들어간 사람은 자동적으로 살해당하겠지.'
자세한 유물의 능력은 모르겠지만 보나마나 입막음형이나 금고형 유물일 터.
물론 들어오는 데는 어려움이 없었다.
여긴 엄연히 판도라 시설.
조이가 나눠준 열쇠가 반응을 보였으니까.
그리고 현재.
"너희가 여긴 어쩐 일이야?"
율리안의 질문에 설아가 답했다.
"단장님이 부단장님과 합류하라고 지시하셨어요. 가이아를 찾은 뒤, 바로 탈출하라고..."
"뭐? 단장은 뭘 하고!"
이때 일리야가 율리안이 찍은 사진들을 보았다.
그리고 율리안이 찍어 놓은 걸 보더니 일리야가 혀를 찼다.
"너 참, 찍는 재주도 없다. 내가 찍어도 이거보단 낫겠네."
"그럼 니가 찍어."
율리안은 일리야에게 카메라를 거칠게 넘기면서 말했다.
"됐고, 단장은! 그놈이 아무 생각없이 혼자 남을 리가 없잖아."
설아는 눈치를 보았다.
"그게... 단장님은 레비아탄 유물을 상대하시겠다고."
"뭐라고?!"
설아는 자신도 신경 쓰이는지 자꾸 위를 보았다.
하지만 도굴단의 기본원칙은 단장중시가 아니라 임무중시.
그렇게 주헌이 정해 놓았다.
때문에 설아는 주헌이 걱정되어도 그를 구하러 갈 순 없는 노릇이었다.
임무가 주어졌으니까.
하지만 그 말에 그럴 줄 알았다며 율리안의 눈에서 불꽃이 튀겼다.
그건 당연한 일이었다.
"레비아탄이라니 이게 돌았나! 그게 어떤 유물인 줄 알고 혼자서 그걸!"
율리안은 급하게 지하실을 뛰쳐나갔다.
***
"서주헌!"
율리안은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지하실을 벗어났다.
'그 미친놈.'
레비아탄이 어떤 유물인지 모르지도 않을 거면서.
'아프리카 대륙을 날려버렸던 유물이잖아.'
홍해에 나타났던 그 유물이었다.
그리고 당시에 판도라에게 반발하던 사람들을 처리하기 위해 놈이 나타났었지.
아마 반발했던 건 이집트, UAE 등 중동 및 아프리카권인 국가였을 것이다.
하지만 홍해에 나타났던 바다 드래곤은 적들이 숨어 있던 땅을 모조리 날려버렸다.
그리고 그 바다의 무법자는 당시 아프리카 대륙을 본보기로 날려버렸던가.
덕분에 아프리카 북쪽이 지도상에서 사라졌었고.
"그런데 그걸...!"
그러나 위로 올라온 율리안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았다.
"너!"
율리안은 까무러쳤다.
그도 그럴 법한 게 거대한 뱀 레비아탄이 횟감으로 변해 있었던 것이다. 주헌은 태연하게 레비아탄의 이곳저곳을 참치회 뜨듯 썰어내고 있었다.
심지어 일리야가 남기고 간 지옥불에 노릇노릇 굽기까지 하고 있었다.
그러니 황당할 수밖에.
"야, 너 이게 무슨...!"
그러나 유재하만이 입을 뻐끔거리며 말할 뿐이었다.
"저, 저 미친 인간 같으니라고."
"재하야, 도대체 무슨 일이 있던 거야!"
"그, 그게..."
그럴 때였다.
"당장 무기를 내려놓고 투항... 어?"
뒤늦게 들이닥친 판도라 병사들이 입을 떡 벌렸다.
묘한 침묵이 돌았다.
동시에 주헌이 늦었다면서 눈을 번득였다.
"니들도 횟감되기 싫으면 비켜 새끼들아."
어깨에 걸친 칼이 무섭게 빛났다.
한편 이탈리아 공항.
"뭐라고?"
공항에 도착한 요한은 뜻밖의 소식에 충격을 받고 말았다.
"지금 그 말이 사실이야? 정말 헨리가 죽었다고?"
[그래, 가지고 있던 레비아탄도 빼앗겼어. 그러니 서둘러서...]
요한은 헛웃음을 흘렸다.
친구의 죽음은 슬펐다. 물론 헨리의 죽음이야 자신을 무시하고 전화를 끊었을 때부터 불길하다 싶었지만...
'그래도 설마하니 정말로.'
그리고 뭐가 어째?
레비아탄 유물을 가지고 갔다고?
요한은 재빨리 판도라에서 보내준 CCTV 기록 영상을 확인했다.
안에는 보고도 믿기 힘든 서주헌의 날뛰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보아하니 도망가려는 놈을 억지로 회로 뜬 것 같았다.
평소라면 그놈 특유의 유물욕 때문에 또 그리 가져갔구나 싶었겠지만 글쎄.
'하늘의 대적자.'
그건 어떤 의미론 자신과 대적할 수 있는 유물.
그랬기에 영상 속 놈은 말하는 것 같았다.
다음엔 너라고.
더러운 동료의 얼굴로 나타날 생각, 하지도 말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