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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굴왕-347화 (347/409)

347화. 빈대를 잡으려면 초가삼간을 태워야지 (3)

"큰일입니다! R&D 시설이 90% 파괴되었습니다!"

판도라 본부, 철벽의 드루이드 탑이 소란스러웠다.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판도라 부지.

유물들의 연구와 개발을 하고 있는 R&D 시설이 박살이 났다는 소식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그곳은 언노운을 제조하고 만드는 장소.

당연히 비상이 걸릴 만도 했다.

"시설이 파괴되다니! 아까 비상망이 울리더니, 설마 그 도둑놈 짓이야?"

그들은 150명이 앉을 수 있는 원탁 유물의 수혜를 받고 있던 각계의 간부층들.

자신들의 위치를 위협하는 소식에 탐탁찮아했다.

"겨우 한두 명한테 세계 최고의 기관이 뭘 이리 쩔쩔매는 건가!"

병사들은 바로 눈치를 살폈다.

"그게 놈들은 재앙 유물을 가지고 있어서...!"

물론 주헌 일행이 재앙 유물을 쓰고 있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주헌의 이집트신 유물, 율리안의 번개신 유물, 일리야의 악마신 유물은 이미 재앙급.

사실 마음만 먹으면 그들은 자연재해의 형태만으로 세계를 멸망시키고도 남았다.

아마 1시간도 걸리지 않겠지.

"무서운 놈들...!"

그럴 때였다.

"떠들 일도 아닙니다. 우리가 왜 원탁의 기사 유물 자리에 앉아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멀린!"

드물게 모습을 드러낸 그녀가 웃으며 사람들을 진정시켰다.

"우리는 저렇게 설치는 왕급들을 제지하고 교육시키기 위해서 있는 겁니다."

그렇다.

원탁의 기사들은 왕급들을 경쟁시키고 그 중에서 마제스티를 선출하려는 이들.

애초에 그들은 왕급들보다도 우위에 있다고 여기는 사람들인 것이다.

왕보다 왕을 뽑을 권한이 있는 자가 높다고 여기는 건 당연했으니까.

그래서 일찌감치 그 사실을 알았던 권혁수는 권 회장에게 자리를 양보했고, 탐욕스러운 권 회장은 알면서도 마제스티 자리를 노렸다.

원탁의 기사들이 만들어주는 재보가 탐났으니까.

어쨌거나 그런 상황이었다.

그녀는 서주헌의 무례한 침입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

'고작해야 기성품만 다룰 수 있는 하찮은 놈이.'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었다.

물건을 만드는 사람과, 그걸 쓸 줄만 아는 사람.

그리고 자신들은 이미 유물을 창조해내는 단계에 이른 사람들.

즉, 창조자들이었다.

'유물은 앞으로 인류를 먹여살릴 자원이야.'

하지만 그 유물은 대다수가 소모성.

귀속성 유물은 확연하게 적다.

그러니 그 유물을 낭비할 줄만 아는 사람과 유물을 만들어내는 사람의 취급은 당연히 달라야 하는 법인 것이다.

'유물을 축내는 법만 아는 기생충들이.'

물론 더 심각한 놈들이 있었다.

숱한 기생충들 중에서도 만들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쓸 줄도 모르는 놈들.

'그런 어중이떠중이들은 기생충 중에서도 최하급이지.'

C급 유물을 겨우 쓰는 평범한 사람들 말이다.

멀린은 입꼬리를 올렸다.

'어쨌든 그런 기생충들도 사회에 도움이 되어야 세상이 평등해지는 법 아니겠어?'

그래서 재료로 삼았다.

그런 궤변이 언노운을 만들게 된 동기.

애초에 멀린은 그렇게 호들갑을 떨 이야기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고대 민간신앙에도 병을 치료하기 위해 산 짐승을 약의 재료로 삼는 건 흔한 일이었으니까.

물론 유물은 <마제스티의 요람>이 있어야 만들 수 있지만...

'그것도 상관없지. 원리만 알면.'

유물은 본래 인간들의 기억과 이야기 속에서 태어나는 부산물들.

그럼 사실 인간만 있으면 만들어낼 수 있는 거 아닌가?

그리고 인간 개개인이 가진 능력, 그리고 그들이 살아온 인생은 모두 하나의 훌륭한 이야기들이었다.

'충분히 유물로 만들 수 있어.'

기술적인 문제는 멀린 유물이 도움이 되었다.

그렇게 언노운은 탄생했지만, 사실은 아직 미완성단계.

그래서 주헌이 언노운에 대해 알게 된 게 빡치는 것이다.

'완성도 안 됐는데 세상에 퍼트리려하면 곤란하지.'

곧 멀린이 외쳤다.

"아무튼 각지에 흩어져 있는 기사들을 불러서 헨리를 지원해줘요."

사고 현장까지는 그렇게 멀진 않았다.

"괜찮아요. 서두르면 문제 없어요."

헨리에게서 뭔가를 얻어내기 전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었다.

아마도.

***

"까. 머리."

주헌의 섬뜩한 미소에 헨리가 몸을 떨었다.

자신의 머리를 짓밟고 있는 주헌은 당장이라도 뇌를 끄집어낼 기세였다.

'이 자식.'

헨리는 똥줄이 타들어갔다.

아니, 상황이 상황인 만큼 자신의 유물을 애타게 불러댔지만 이게 웬걸.

'이놈의 새끼가 주인 말에도 반응을 안 하고!'

유재하도 제 유물에게 무시당하진 않는데 말이다.

그럴 때 주헌이 말했다.

"아 맞아. 그 전에 재하 놈 불러 와."

"아, 그놈이 까마귀 눈물을 관리하고 있죠?"

헨리는 그 말에 침을 삼켰다.

까마귀 눈물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필시 좋은 유물은 아니겠지.

곧 일리야가 악마를 보내자 헨리는 다급하게 눈알을 굴렸다.

그러자 그의 시선에 닿는 유물이 하나.

그건 미친 듯이 날뛰며 주변을 불바다로 만들고 있는 오토바이였다.

부앙, 부아아앙!

주인도 못 알아보고, 그렇다고 인간이 조종할 방법도 없는 무지막지한 유물.

헬리오스의 마차는 캬캬캬캬 웃으면서 안 그래도 박살 난 R&D 건물을 박살 내고 불태웠다.

아히! 신 난다! 신나!

오토바이 놈이 참으로 극성맞았다.

주헌은 그게 좀 짜증났는지 헨리를 밟은 채 말했다.

"저거 어찌 좀 못하냐?"

"글쎄요. 슬레이프니르 때처럼 길들여보시죠?"

"꺼져. 저건 애초에 조종할 방법이 없는 망나니라고."

그 말에 헨리는 눈을 반짝였다.

'뭐야, 서주헌도 다루지 못하는 거였어?'

그는 뜻밖의 사실에 얼굴이 밝아졌다.

'그래! 내가 이상한 게 아니었어! 그럼 그렇지!'

그는 바로 친화력을 발동했다.

유물은 친화력에 이끌려 오는 습성이 있으니까.

"하하! 이왕 이렇게 된 거, 같이 동반자살이나 하자!"

"!"

마침내 높은 친화력에 움찔한 헬리오스의 마차가 두두두 주헌과 자신에게 달려왔다.

살벌한 불길을 뿜으며.

"같이 죽자!"

이에 놀란 일리야가 급하게 외쳤다.

"단장! 위험...!"

"지랄."

주헌은 쿨하게 옆으로 피했다.

그러자 무식하게 달려오는 바이크는 정통으로 헨리를 찍었다.

콰앙!

"아아악!"

유물 바이크의 무게는 차와 맞먹는 무게였다.

어깨뼈가 부서질 정도로 무거웠다.

"크윽...!"

주헌은 그런 헨리를 보며 코웃음을 쳤다.

"장난해? 이깟 유물로 날 어찌 해보려고 하다니, 사람을 우습게봐도 유분수지."

"크으...!"

"애초에 바토리 유물 따위로 날 견제하려고 한 것부터 어불성설이었어. 날 견제하려면 앙그라마이뉴급의 악신 유물은 붙여놨어야... 엇!"

주헌은 말하다 말고 신음을 흘렸다.

그도 그럴 법한 게, 무식하게 달려오던 바이크가 난데없이 주헌을 태웠기 때문이다.

"단장!"

헨리의 바람이 먹힌 건지, 바이크는 캬캬캬캬 웃으면서 주헌을 태우고 다녔다.

아히! 신낭! 신낭!

주헌이 드물게 유물에 끌려다녔다.

폭주하며 날뛰는 말에 얹어 탄 듯한 모습이었다.

덕분에 헨리는 꺄륵 꺄륵 웃어댔다.

"꼴 좋다! 너 그거에서 절대 못 내릴걸! 네 아군들을 불태워 죽일 거라고!"

그 말대로였다.

주헌을 태운 미친 불길 바이크는 일리야를 노려댔다.

"아악 단장! 오지 마요! 내리라고!"

내리려고 해도 엉덩이가 찰싹 달라붙어 떨어지지가 않았다.

그러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놔주지 않는 느낌.

오빠 엉덩이 섹시해! 섹시해!

이 미친 말 놈이.

주헌은 조종해보려고도 했지만, 애초에 이놈은 슬레이프니르와 다르게 조종방법 자체가 없는 놈.

운전방법이 없으니 사황급이 만져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 유물 자체가 함정 유물이나 마찬가지니.

그래서 조이와 합의해서 함정 옵션으로 넣게 된 것이 아닌가.

'뭐 이따위 유물, 확 파괴하면 그만이긴 하지만...'

헨리는 깔깔깔 웃으면서 절뚝절뚝 도망갔다.

어깨뼈가 박살 나서 움직이기 힘들었지만 괜찮았다.

"개 같은 서주헌! 좆 돼 봐라!"

그럴 때였다.

"거기 홀쭉이! 아까 말한 제안 받아들일게!"

"뭐? 뭐?"

주헌은 천만 불짜리 미소를 지었다.

"그러니까 우리 오늘부터 동료다? 응?"

"뭐? 정말이지? 좋아, 말 바꾸기 없..."

하지만 그 순간 콰앙, 헨리는 날아가고 말았다.

주헌이 동료라고 입에 담는 순간, 오토바이가 헨리를 치었기 때문이었다.

헬리오스의 마차와 충돌한 헨리는 극심한 화상을 입고 날아갔다.

"커, 커허억...!"

갈비뼈와 팔뼈가 으스러지고, 그야말로 난리도 아니었다.

"휴, 한 놈 박으니까 이제야 말 좀 듣네."

일리야는 독하다는 듯 주헌을 보았다.

그 와중에 주헌은 바나나보트를 타듯, 느긋하게 누워 미친 바이크의 질주를 즐기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였다.

"단장님! 까마귀 눈물 가져왔어요!"

유재하의 등장에 주헌이 바이크에서 사뿐히 뛰어내렸다.

"호구야, 하나 묻자!"

"네?"

"우리 다 죽고 나서, 복원했던 유물 중에 우리 없던?"

"에이 당연히... 네?"

순간 유재하는 못 들을 걸 들었다는 듯 창백하게 질렸다.

"엥? 그게 무슨 개소리예요! 댁이 지금 무슨 말을 하는 줄 아는..."

"뭐, 됐어. 답은 머리를 까보면 나오겠지."

"?!"

동시에 일리야가 까마귀 눈물을 빼앗아가고, 섬광과 함께 헨리의 비명소리가 울려 퍼졌다.

***

일리야는 헨리의 기억 속에서 많은 것을 보았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시선을 끄는 건 원탁의 기사들과 이사회의 대화였다.

"확실해요, 서주헌 놈은 마제스티 급입니다. 병에 걸려서 힘을 발휘 못 하는 거지, 위험해요."

"하지만 DNA 추적결과 후손이 아니라고 판결났잖아요. 어렸을 땐 후손인 줄 알고 입양까지 하려 했었는데."

그 말에 누군가가 비위를 맞추듯 음흉하게 웃었다.

"여자애... 조이랬나요? 그쪽은 장관께서 거두셨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네. 하지만 착실하게 병에 걸리게 해서 언노운으로 만들 준비를 하고 있죠. 비록 친화력만 높은 쓰레기였지만."

"하하. 쓰레기라니, 그동안 그 친화력을 가장 잘 이용해 먹은 게 누군데. 덕분에 판도라는 비약적인 발전을 했잖습니까."

"네, 그간 고생했으니 이제 편하게 보내줘야죠. 언노운으로 만들고 유물로써 새로 태어나게 해주겠어요."

그런데 그럴 때였다.

"잠시만요.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왜, 무슨 일이야!"

"옥좌와 원탁 유물이 놈들에게 반응을 했어요! 옥좌에는 서주헌이, 원탁의 기사 자리엔 놈의 부하들이!"

"이런, 벌써 그 단계까지 갔다고?"

"예. 놈들이 우리의 자리를 빼앗으려고 할 겁니다."

"대책은?"

"당연히 죽이는 거죠."

"장난합니까? 놈들은 평범하게 죽일 수 있는 놈들이 아니에요. 병에 골골거리고 있어도 그 능력은..."

그러자 누군가가 눈을 반짝였다.

멀린이었다.

"대감옥 중에서도 가장 위험한 구역이 있습니다. 프로메테우스가 이번 일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그 구역을 소환해주겠다고 하는군요. 전체를 불러내려면 7대 무덤 유물이 필요하지만, 일부라면 공간을 비틀어서 어떻게든 가능할 거라고."

"허허. 얼마나 위험한 구역이길래."

그 말에 헨리가 웃으며 말했다.

"절대 놈들은 살아서 못 돌아올 겁니다. 그리고 그 시체를 회수해서 멀린에게 보내죠. 저녀석이라면 언노운으로 만들어줄 겁니다."

"그래요. 그걸로 유물로 만들어버리죠. 놈들이라면 최소 영웅급은 나오지 않겠습니까."

"서주헌은 신급이 나올 지도요."

권 회장을 포함한 이사회 사람들은 하하하 웃어댔다. 그리고 그 무렵, 헨리의 머리를 뒤지고 있던 일리야가 쌍욕을 했다.

"이 더러운 새끼들."

일리야의 반응에 유재하가 재빨리 다가왔다.

"왜, 왜! 뭘 봤는데! 어?"

"아. 됐어. 넌 몰라도 돼."

일리야는 더럽다는 듯 기억읽기를 관두었다.

그리고 일리야가 주헌을 불렀다.

"단장."

그러자 주헌은 됐다는 듯 말했다.

"굳이 말 안 해도 돼."

일리야의 표정을 보니 아마 짐작대로일 것이다.

자신들은 의도적으로 병에 걸렸고, 그렇게 놈들이 불러낸 까마귀 무덤에서 죽었으며, 그 결과. 최후엔 유물이 되어 유재하 앞에 던져졌을 거라는 개 같은 이야기겠지.

그 사실에 흥미를 느낀 주헌이 낄낄 웃었다.

"그래, 그래도 솔직히 나 정도면 당연히 신급이었겠지? 그치?"

"죄송한데 D급이시거든요?"

"뭐?"

일리야가 비웃었다.

"D급이라고요. 폐기급! 하하하! 아 그래도 저는 S급이었던 거 같지만!"

"뭐! 도대체 왜!"

"낸들 암?"

주헌은 황당해했다.

"인정 못 해. 이거 뭔가 잘못됐어!"

"히히 아무래도 우리 도굴단 단장 자리 교체해야 할 듯? 애들한테 다 말해야지."

둘은 그렇게 낄낄댔지만, 유재하는 달랐다.

"야! 이 미친놈들아!"

그는 원효대사에 빙의된 것 마냥, 메스꺼워했다.

"지, 지금 그렇게 태연하게 말할 이야깃거리가 아니거든?! 어? 거짓말이지? 구라지?"

"응 구라야."

"하 씨, 내가, 내가 뭘 만진..."

그럴 때였다.

"그래... 태연하게 말할 이야기가 아니다 이것들아."

까마귀 눈물로 기억을 찾은 탓인지, 괴로워하던 헨리가 눈을 번득였다.

"너희들, 이제 와서 우리한테 복수냐? 어? 잘 모르겠지만, 이 정보가 들어온 이상..."

"꺼져. 니 역할은 이제 끝났어."

순식간에 헨리의 목에 궁니르가 박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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