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6화. 빈대를 잡으려면 초가삼간을 태워야지 (2)
"이거 내가 떼어줬는데. 수수료 두둑하게 받고."
주헌의 말에 헨리도 앨런비 부부도 눈을 동그랗게 떴다.
주헌의 손에는 틀림없는 유물이 있었다.
[엘리자베스 바토리의 피 뽑는 유물 (S급 - 영웅전설급/귀속성)]]
얼핏 보기엔 가방에 달 수 있는 작은 미니어처 열쇠고리로 보였다.
다만 모양이.
'아이언메이든.'
그랬다.
엘리자베스 바토리는 흡혈귀 전설의 모티브로 유명한 피의 여왕.
중세의 고문도구로 유명한 아이언메이든을 만들었다고도 전해지는 악녀 중 한 명이다.
처녀들을 죽이고 그 피로 목욕을 하면서 젊어지려고 했다는 걸로 유명한 귀족 부인.
물론 그녀와 관련된 비화는 정치적으로 조작된 이야기라는 해석도 있었다.
어쨌든 제 쌍둥이에게 붙어 있던 유물은 그것이었다.
물론 금시초문인지 일리야와 율리안은 황당해했다.
"그 노친네한테 넘어갔었다니, 언제?"
"아니. 붙은 건 알았는데, 언제 뗀 거야?"
언제 떼기는.
원탁에 들어가지 않았느냐며 본사에 쳐들어갔을 때지.
'아무튼 놈은 이걸로 판도라의 인정을 받아 원탁에 들어갔다.'
듣자하니 이사회인 원탁의 구성원은 장관들을 포함해 150명 정도.
그중 원탁의 기사는 아서왕의 자리를 포함해 13명.
물론 기사의 자리도 아니고, 원탁에 들어가는 것뿐이었기 때문에 들어가기 쉬웠던 거 같지만.
멀린이 바토리 유물에 대해 눈치챌 수도 있었지만 상관없었을 것이다.
'멀린은 사람들 앞에 잘 안 나타난다고 했으니.'
그보다 주헌은 한 가지 의아한 구석이 있었다.
바토리 유물이 있었다고 한들, 노친네가 너무 쉽게 원탁에 들어갈 수 있었다고 해야 하나.
하지만 이제야 납득이 될 것도 같았다.
에드워드 본인의 영향력도 영향력이지만, 무엇보다 바토리 유물.
'사람을 죽이기에 딱 좋잖아.'
언노운을 만들 때 아주 좋아보였다.
그리고 사람을 죽이는 유물을 쓰고 있으니, 그들 입장에서는 공범이라서 받아들이는 느낌 아니었을까.
어쨌거나 이쯤 되자 헨리, 그리고 앨런비 부부는 멘붕에 빠진 듯했다.
'이래선 서주헌의 발목을 잡을 수가 없잖아!'
서주헌의 발목은 반드시 잡아야 했다.
다른 것도 아니고 저놈이 언노운에 대해 알게 되었는데!
'키이라 사태 때도 저놈은 만천하에 까발렸지.'
이미 주헌은 전적이 있었다.
키이라 때는 사람의 정신을 지배하는 유물을 썼다는 의혹으로 좌천되지 않았던가.
그런데 이번엔 그 정도로 끝날 급도 아니었다.
'사람을 유물 재료로 쓴다는 게 퍼져나가면 끝장이야.'
거기에 관련된 기업, 나라.
그 숫자만 따져도 엄청났다.
병을 퍼트리고, 죽은 시체를 빼돌리고, 멀린이 그걸 가지고 언노운을 만들 수 있게 해주고.
유물을 만들기 위해 조직적으로 움직이고 있단 이야기 따위.
'퍼지면 판도라의 존립 자체가 위험해진다.'
그동안 시민들의 안전을 지킨다는 목적으로 지지를 받던 연합이었다.
그래서 힘을 가질 수 있었고, 다소 불합리한 점은 있어도 사람들은 판도라의 독식을 합법적으로 봐줬다.
'하지만 이게 퍼지면 다들 들고 일어날 거야.'
판도라법은 좆까라며 각지에서 유물 사용자들이 들고 일어서고, 그간 만들어놓은 체계가 완전히 무너진다.
그건 막아야했다.
'어떻게 만들어놓은 체계인데!'
주헌을 설득해서 손을 잡는 방법밖에는 없다.
그런데 이때였다.
"그래서. 그 유물을 주원이한테 박아넣은 게 댁들이었어?"
앨런비 부부가 졸지에 주헌에게 위협을 받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어깨에 손을 얹은 주헌을 보며 덜덜 떨었다.
"저기, 주헌아. 그게 아니라...!"
"꺼져. 어디서 친한 척 남의 이름을 막 불러?"
그리 말하며 주헌이 웃었다.
"됐고. 어쨌거나 니들 몸에도 좋은 걸 박아줘야 서로 공평할테지?"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총소리가 울려 퍼졌다.
탕!
"커헉, 커허억!"
그리고 총알이 박힌 자리는 부부의 팔과 다리!
바로 조이가 바토리 유물로 아파하던 부위와 똑같은 자리였다.
그뿐이 아니었다.
[피의 처녀가 발동합니다.]
주헌은 부부를 향해 들고 있던 바토리의 유물.
아이언 메이든을 발동시켰다.
"으악, 으아아악!"
그들은 박물관에서 볼 수 있을 법한 아이언메이든의 등장에 기겁을 했다.
하지만 아이언메이든은 순식간에 닫혔다.
쾅!
안에서는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
뭐, 즉사하지는 않을 것이었다.
그런 유물이 아닌 만큼.
그리고.
"끌고 가. 그동안 주원이한테 뺏은 거 다 토해내게 하고."
동시에 헨리는 다급해졌다.
'저 둘이 끌려가면 내 책임이 커!'
앨런비 부부 중 남편은 판도라 이사회의 장관이었다.
그리고 자신의 관할 시설에서 장관이 끌려가면 정말 곤란했다.
동료가 납치당했다며 이사회에서 미친 듯이 물어뜯겠지.
그래서일까.
"진정해. 그 부부들은 잘못 없어! 문제가 있다면 오히려 친화력이 너무 높은 네 동생 쪽이지!"
"뭐?"
주헌은 눈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헨리는 진정하라며 말을 이었다.
"친화력이 높지 않았으면 멀린도 딱히 언노운으로 만들 생각도 안 했을 걸? 아군으로 끌어들였겠지."
그 말에 주헌이 드물게 눈을 동그랗게 떴다.
단원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친화력이라고?"
그들이 관심을 보이자 헨리가 그제야 웃었다.
그는 주헌을 회유하기 위해 정보를 풀었다.
"그래. 언노운의 재료는 주로 친화력이 높은 놈들이야. 재료로 쓰려면 유물증후군에 걸리게 해야 하는데... 그건 친화력 높은 놈들이 직빵이잖아?"
"!"
"그러니까 친화력 높은 니 동생이 언노운 만들기 딱 좋은 개체였을 뿐이지."
하지만 이때였다.
"그러니까 너희는 내 쌍둥이를 언노운인가 뭔가로 만들 생각이었단 거네?"
"그래. 그리고 그 부부는 멀린의 부탁을 들어준 것뿐이야. 그러니 내버려 둬. 아무튼 중요한 건 그게 아니라..."
"그래서 그 유물을 박아 처넣었단 거네?"
"어, 어?"
뭔가 실언을 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
"그래, 네 말을 들으니까 좀 이해가 가려고 한다."
"저, 저기?"
주헌이 드디어 흥미가 생긴 듯 헨리에게 다가왔다.
하지만 그다지 좋은 징조로 보이진 않았다.
그 증거로 주헌의 뿜어내는 지배력이 심상치가 않았다.
"아무리 내 동생이 친화력이 높았다고 해도 그건 정도가 너무 심했거든."
"뭐?"
"그럼 옛날에도 니들 짓이었다는 거네."
"뭐? 옛날? 무슨 말이야? 이건 최근에..."
하지만 말이 떨어지기도 채 전에 헨리는 비명을 질렀다.
주헌이 궁니르를 뽑아들었기 때문이다.
"젠장, 저건 로키 놈도 당했던!"
바이크에 올라타고 있던 헨리는 다급해졌다.
"옛날이라니, 무슨 말이야! 옛날에는 이런 짓을 한 적이 없어!"
헨리는 황당해했지만, 율리안과 일리야는 바로 알아들었다.
그가 말하는 옛날은 당연히 전생.
주헌은 지금처럼 20대 초반이 아니라 중반에 조이를 만났었는데, 그때 조이는 정말 심각한 유물증후군에 걸려 있었다.
자연적인 병이라기엔 그 진행 정도가 너무 심했던.
그랬다.
아이린의 부모가 그랬던 것처럼.
하지만 단순히 친화력이 높아서 남들보다 더 심한 것이겠거니 생각했었는데...
"진짜 질린다. 그럼 과거에도 조이를 언노운으로 만들려고 수작 부린 거란 거잖아."
일리야의 말에 율리안은 침을 삼켰다.
"그게 문제가 아니야."
"뭐?"
"어쩌면 우리 단원 전부."
"!"
그 당시 주헌의 도굴단은 크고 작긴 해도 전부 유물증후군을 달고 살았다.
주헌이 그걸로 치료제를 요구했어도, 권 회장은 진통제만 줬을 뿐 근본적인 치료제는 주지 않았고.
"그러고 보면 지금이야 극단적으로 친화력을 안 올리고 있지만, 그땐 단장도 친화력이 낮진 않았잖아?"
그러자 잠시 생각하던 일리야가 고개를 끄덕였다.
"뭐, 어떤 의미에선 꽤 호구였던 건 인정."
물론 지금의 유재하만큼은 아니지만.
그땐 사람이 근본적으로 나쁜 건 아니라서 권 회장 같은 인간도 믿었으니까.
"뭐, 맨날 우리를 등쳐먹던 유재하를 내치지 않고 매번 거둬준 것만으로도 호구지."
어쨌든 지금 이 순간, 그들은 의혹이 생겨버렸다.
어쩌면 권 회장이 자신들에게 치료제를 주지 않았던 건, 길들이기 목적도 있지만 혹시나 언노운으로 만들어버리려고 했던 게 아닐까 하고.
율리안은 미간을 찌푸렸다.
"생각해보면 우리 단원들, 전부 친화력이 낮진 않아. 권 회장 입장에서는 나름 수지맞는 장사라고 보지 않았을까."
"뭐?"
그러고 보면 이상했다.
산재 요청을 해도 개무시당한 건 그렇다 쳐도, 일에 차질이 있을 거란 부탁에도 그 노친네는 꿋꿋했었다.
그래서 다들 의아해하지 않았었나.
'결과를 위해서라면 뭐든 지원을 안 아꼈던 그 노친네가?'
하지만 애초에 병에 걸리게 해서 죽이는 게 목적이었다면?
"왜 능력은 뛰어나지만, 부하로 두기엔 애매한 놈들. 그런 놈들을 이용해먹다가 죽여. 하지만 그러고 나서도 유물로 활용한다면 끝내주는 재활용 아니겠어?"
일리야는 소름이 돋았다.
"야씨, 끔찍한 소리 하지 마. 그럼 우리 시체는 그 무덤에서 꺼내져서 유물이 됐단 의미냐?"
"뭐, 그럴 수도 있단 이야기지."
율리안의 차분한 분석에 일리야는 바로 털을 세웠다.
"뭘 그럴 수 있어! 그 개 같은 무덤에서 시체만 어찌 회수한다고!"
"그 당시의 프로메테우스가 간수들을 부려서 우리 시체만 꺼냈을지도... 그 까마귀 무덤이 아마존에 나왔던 것도 프로메테우스가 일부를 불러냈던 짓이었다고 하고."
그의 분석에 일리야는 토가 나왔다.
자신들의 시체가 간수들의 손에 들려 무덤 밖으로 나오는 광경이라니.
심지어 갈려서 유물로 만들어진다니!
"미친, 이거 열받네. 그러면 이 부부 뿐만 아니라 진짜 판도라 새끼들 죄다 머리 까봐서 그게 사실인지 확인해야 할 판인데."
"한번 해볼까?"
"그래. 그리고 좋은 먹이가 일단 눈앞에 계시네."
둘은 헨리를 보면서 눈을 번득였다.
그 모습에 헨리가 몸을 떨었다.
왕급이 세 명이나 흉흉한 오라를 뿜어대는 게 무섭지 않다면 거짓말이리라.
"단장."
"좋아, 마음껏 설쳐."
그리고 그 순간 헨리는 비명을 질렀다.
세 왕급의 일격이 동시에 자신에게 닥쳤기 때문이다.
"으악!"
인드라의 번개, 악마왕의 치솟는 지옥불, 그리고 이집트 신들의 모래폭풍.
콰과과과광!
R&D 시설에 끔찍한 재해가 닥쳤다.
땅에서는 무서운 불이, 하늘에서는 날카로운 낙뢰가.
그리고 불과 낙뢰가 닿지 않는 곳에는 모든 것을 휩쓸고 가는 살인 토네이도!
온갖 자연재해를 합쳐놓은 듯한 끔찍한 재앙이 판도라 시설을 덮쳤다.
***
그건 무시무시한 재앙이었다.
판도라 R&D 부지는 최고의 방어가 무색하게 박살 나고 깨지고 난리도 아니었다.
그만큼 세 명의 재해 조합기는 상상을 초월했다.
치솟아오르는 불길은 화산을 통째로 소환한 것 같이 들끓었고, 하늘에서 내리치는 낙뢰는 운석이 떨어지는 것처럼 모든 것을 파괴했다.
그리고 더 숨 막히는 것은 모래가 불러오는 살인 토네이도.
몇십년 만에 나타난다는 미국대륙의 살인 토네이도는 애교 수준이었다.
여기에 쓰나미만 추가되면 아주 완벽한 재해 세트이리라.
그리고 사정없이 시설을 때려 부순 주헌이 말했다.
"저기. 저기가 언노운 제조공장 아니야?"
"!"
주헌은 핸드폰으로 온 유재하의 문자를 확인하며 말했다.
"가서 증거샷 찍어와."
율리안은 재빨리 움직였다.
그리고 그 모습에 헨리가 꿈틀거렸지만, 도무지 일어설 수가 없었다.
'덕분에 오토바이에서 떨어지게 된 건 고맙지만...!'
그러면 뭘 하나.
"큭!"
주헌이 헨리의 머리를 거칠게 짓밟았다.
그리고.
"까, 머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