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5화. 빈대를 잡으려면 초가삼간을 태워야지 (1)
그러자 마침내 언노운의 실험관이 열렸다.
슈슉!
사람이 들어갈 크기의 실험관이 바닥으로 꺼졌다. 그리고 벽이 사라지자 안에서 쏟아지는 언노운!
진주알 같은 느낌의 알갱이들이었다.
이에 앨런비 부부는 기겁했다.
"으읍, 으으읍!"
그들은 필사적으로 굴러가는 언노운들을 주워담으려고 했다.
하지만.
"안 돼, 니들은 못 주워."
주헌은 웃으면서 페트병 모양의 생수병을 꺼냈다. 그리고 그 뚜껑을 열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콰과과과광!
엄청난 소음과 함께 굴러다니던 진주들이 빨려 들어갔다. 진공청소기를 방불케 하는 무서운 흡입력이었다.
일리야는 그걸 보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거 밀러의 유물이잖아요. 서유기 속의 그 호리병!"
"그래, 물건 좀 쓸어오겠다고 해서 빌려왔지."
진짜 빌려온 게 맞는지 모르겠지만.
하지만 그 와중에 앨런비 부부는 치를 떨었다.
'저게 어떤 유물인데!'
하지만 곧 둘은 눈빛으로 주고받았다.
"괜찮아요. 언노운만 있으면 의미 없잖아요."
그 작은 웅얼거림에 남편도 웃었다.
"하긴, 그 대지의 유물이 있어야 쓸 수 있으니까."
대지의 유물이란 바로 그리스신화의 가이아 유물을 말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역시나 그 사실을 전혀 모르는 주헌과 일리야는 다른 것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삐익-삐익.
침입자 경고에 집중한 것이었다.
이에 주헌이 손짓했다.
"아, 잡것들 우르르 몰려오겠어. 빨리 나가자. 아, 저것들 끌고 오고."
"예."
그들이 발걸음을 돌리자 앨런비 부부는 입꼬리를 올렸다.
'그래, 가이아는 찾지 말고 그대로 나가버려.'
'우린 잡혀가도 언노운만 안 빼앗기면 기회가 있다.'
'가이아만큼은 빼앗기면 안 되지.'
그건 언노운이 없더라도, 그 자체만으로 상당한 유물이었다.
근데 이때였다.
'!'
앨런비 부부는 비명을 지를 뻔했다.
동아줄이 부담스럽게 얼굴을 들이 밀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거 쓰러면 가이아 유물도 필요하대! 하대!
곧바로 주헌에게 슝 달려갔다.
결국 노트에 꼬불꼬불 써진 글씨에 주헌은 하하하 웃었다.
"뭐야. 가이아 유물이 필요하다고?"
머리 회전이 빠른 주헌은 음흉하게 웃었다.
"그럼 뭐야, 언노운을 쓰는 놈들이 그 유물이 없을 리도 없고..."
"당연히 이놈들이 가졌겠죠. 그거 초신 급인데 당연히 가져가야하지 않나?"
"?!"
앨런비 부분은 경악했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주헌이 척척 물었다.
"일리야, 그거 뒤질 때 못 봤어?"
"글쎄... 아 설마 그게 가이아였나."
일리야는 아차 싶었다.
부부의 기억 속에 뭔가 수상한 기억이 있기는 했지만, 워낙 초스피드로 기억을 읽었던 터라 살짝 지나쳤던 부분이었던 것이다.
결국 기억을 더듬던 일리야가 재빨리 발걸음을 돌렸다.
"가이아는 이쪽이에요!"
동아줄은 앨런비 부부에게 몸을 씰룩이며 인사했다.
정보 고마워! 고마워!
그 광경에 앨런비 부부의 동공이 흔들렸다.
아니, 이게 아닌데!
***
그리고 그 무렵, 진짜로 망했다며 이를 갈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아씨, 왜 난 서주헌처럼 안 되는 건데!"
바로 헨리였다.
헬리오스의 마차, 아니 폭주하는 바이크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던 그는 비명만 지를 수밖에 없었다.
아니 어떻게 된 놈의 바이크가 브레이크를 밟으면...
부아아아아앙!
더 미쳐서 앞으로 나아가고.
그렇다고 또 엑셀을 밟으면...
부아아아아아아앙앙!
아주 고맙다며 더 세게 나아갔다.
"젠장, 멈추라고!"
그리고 그럴 때였다.
[헨리!]
헨리는 제 손목시계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깜짝 놀랐다.
목소리가 들린 곳은 시계에 박혀 있던 로고!
헨리는 황당했다.
"뭐야, 이 목소리... 설마 요한이냐?"
[그래.]
유물의 힘이라는 걸 깨달은 헨리가 헛웃음을 흘렸다.
"너, 이런 유물을 나한테 달아놨었어?!"
그러나 요한은 안도하는 눈치였다.
[기사들을 도청할 생각으로 모두한테 붙여놓은 거였는데... 지금 상황에선 뭐, 차라리 잘됐나.]
헨리는 기가 막혔다.
"야, 너 어떻게 나한테도 이딴 걸!"
[됐고. 무슨 일이야. 아까 전의 폭발은 뭐고.]
"뭐? 아, 벼, 별거 아냐."
헨리는 여자에게 정신이 팔려 실수했다곤 죽어도 말할 수 없었다. 안 그래도 이 프로젝트는 자신에게 일임되어 있었는데.
"그보다 바쁘니까 끊어. 서주헌이 R&D 시설에 쳐들어온 거 같단 말이야."
[알았... 뭐? 잠깐. 뭐?]
"걱정 마. 언노운은 내가 가서 지킬 테니까."
[잠...! 기다려! 그놈은 안 돼! 헨리! 내가 갈때까지 가지 마!]
"아 시끄러워, 이 배신자야! 그리고 오긴 뭘 와. 이탈리아에서 올 동안 다 털리겠다."
[헨리!]
"지금 엄청 위험한 상황이거든? 언노운이 서주헌한테 넘어가면 끝이라고. 거기엔 유능한 감식가가 있잖아!"
[!]
그가 말하는 감식가는 바로 율리안이었다.
그리고 서주헌이 언노운을 가져간다면, 그놈이 당연히 유물을 감식하게 될 터.
하지만 그건 곤란했다.
'놈이 그 유물들을 감식해서는 절대 안 돼!'
"아무튼 내가 지킬 테니까 끊어."
아니, 끊긴 뭘 끊어!
정작 이야기를 들은 요한은 정말 황당한 모양이었다.
[기다려, 지금 그 정도 상황이야? 아니 애초에 너, 그 시설 책임자잖아! 도대체 그렇게 될 동안 넌 뭘하고!]
그러자 헨리는 불쾌한 듯이 시계를 사정없이 파괴했다. 동시에 연결이 끊긴 요한은 미간을 짚었다.
"헨리 이 자식이...!"
아무래도 자신이 자리를 비운 사이에 뭔가 여러 가지 사고가 터진 모양이었다.
그리고 아무리 헨리도 사기적인 신급을 가지고 있다곤 하지만...
'상대는 서주헌이라고!'
어떻게 그 사이에.
하지만 곧 그는 고개를 저었다.
'아냐. 일단 언노운이 서주헌... 아니 율리안 밀러에게 넘어가는 것부터 막아야 한다.'
결국 요한은 이탈리아에서 급하게 움직였다.
일단 다른 기사들에게 지원요청을 넣으며.
***
그리고 그 지원요청을 받은 것일까.
R&D 시설에는 판도라 병사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분명 차로 수분 거리에 있는 본부에서 나온 것이리라.
그 외에 각 지부에서도 출동하고 있었다.
"밖에서 포위해라! 텔레포트 방지 유물을 써라!"
"서주헌을 내보내면 안 된다!"
그리고 점점 R&D 시설에 사람이 몰려오자 주헌은 웃었다.
"하여간 겨우 판도라 시설 하나에 쳐들어온 거 가지고 거품 무는 것하고는."
물론 다른 누구도 아니고 강탈왕이 침입했으니 경기를 일으킬 만도 했지만.
하물며 자신만만했던 철벽의 요새가 뚫렸다고 해야 하나.
게다가 하필 쳐들어온 곳이 꽤 가관이니 더더욱.
하지만 주헌이 진짜 박살 내고 싶은 건 이 시설이 아니었다.
'드루이드의 시계탑.'
궁니르를 날려도 꼿꼿하게 서 있던 판도라 이사회의 건물.
'하지만 일단 여기부터다.'
그렇게 생각한 주헌이 웃으면서 제 능력을 쓸 때였다.
"야! 너희들 도대체 뭐하는 짓거리야!"
'!'
낯익은 목소리가 시설에 울려 퍼졌다. 그리고 천연덕스럽게 고개를 돌린 주헌과 일리야는 동시에 히죽 웃었다.
"어, 왔어?"
"부단장이랑 설아가 왔네?"
그 천하태평한 모습에 율리안은 뒷목을 잡았다.
아니 이것들이 그냥 안에 들어가서 의붓동생만 조용히 해결보고 오겠다더니!
"도대체 뭔 개짓거리를 한 거야! 그리고 일리야. 너도 단장을 끌고 나올 생각을 해야지! 왜 너까지 따라 쳐부수고 있어! 어?! 그렇게나 둘이 나란히 조간신문에 실리고 싶어?!"
"재밌잖아. 역시 니가 아니라 단장을 따라다녀야 해."
"아오!"
설아는 혈압으로 죽으려는 율리안을 토닥여주었다.
"둘이 이런 쪽에선 죽이 잘 맞잖아요."
"둘 다 약 빤 새끼들이니까 그렇지! 아 됐어! 위험해지기 전에 나가자!"
하지만 주헌은 웃으며 페트병을 율리안에게 던져주었다.
"이거나 들고 너나 먼저 나가."
"이거... 야! 이건 또 언제 가져갔었어!"
"시끄럽고, 다른 건 몰라도 가이아 유물은 들고 나가야지."
"뭐? 가이아 유물? 그 최상급이?"
그런데 이때였다.
페트병, 아니 금각은각의 호리병을 받아들었던 율리안이 바로 눈살을 찌푸렸다.
그리고 그는 급하게 호리병에서 언노운을 꺼냈다.
"잠깐만, 서주헌. 이것들이 다 뭐야?"
"뭐긴 뭐야. 언노운을 쓸어 담았지."
하지만 진주알들을 이리저리 살펴보던 율리안이 헛웃음을 흘렸다.
"이게 언노운이었다고?"
***
한편 그 무렵이었다.
"아아아! 맞다! 그래! 이제 생각났네!"
"!"
조이는 갑자기 소리를 지르는 유재하 때문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슬레이프니르 안에서 얌전히 대기조로 있던 조이와 유재하였다.
방금 R&D 시설이 무너지자 율리안이 씩씩거리며 나간 건 좋은데...
'이 사람은 자고 있더니 또 왜 이러지.'
주헌이 언노운을 찾으러 간다고 할 때부터 골몰이 생각에 잠겨있던 그가 아니었나.
"재하 오빠, 무슨 일인데요?"
유재하는 조이가 오빠라고 불러주자 헤헤 좋아했지만, 그것도 잠시.
금방 정신을 차렸다.
"전화, 전화...!"
그는 다급하게 주헌의 단축번호를 눌렀다.
"아 이제야 생각났네. 아씨. 이 인간은 또 왜 전화를 안 받아."
"뭐가 생각이 났는데요?"
"아직 다 떠오른 건 아닌데, 분명 내가 전생에 언노운 제작 과정을 봤어. 그리고 그때 있던 거 미국 대통령이었다고! 계속 안 떠올라서 말을 못하고 있었는데!"
"네, 네? 전생? 대통령? 그게 무슨..."
결국 전화를 끊은 유재하가 급하게 메시지를 썼다.
[언노운의 재료는 인간임. 그것도 유물증후군에 걸린 인간들! 그러니까 증거라도 찍어 오셈!]
"!"
***
"뭐라고? 운동선수?!"
일리야는 율리안의 말에 입을 떡 벌렸다.
"그리고 얜 얼마 전에 유물증후군으로 급사했다던 그 가수?"
"그래."
"얜 무슨 판도라 반대 시위하던 걔고? 역시나 유물증후군에 걸리고 행방불명되었다는?"
"그래."
"허, 너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말 그대로야. 이거 전부 사람들이야."
언노운은 <마제스티 요람>의 대체품.
즉, 유물이 만들어내는 유물의 대체품이었다.
그 말에 주헌이 웃었다.
"마제스티의 대체품을 만든다더니 아주 기가 막힌 유물을 만들어냈군."
그리고 이때였다.
"그 말대로야. 그러니까 그거 다시 내놔."
"!"
R&D 시설에 들이닥친 뭔가가 있었다.
쾅!
그건 불타오르는 바이크였다.
"뭐야, 저놈은?"
아무래도 헨리는 R&D 시설을 파괴하는 한이 있더라도 주헌을 막아야겠다고 판단한 것 같았다. 그리고 그의 모습에 앨런비 부부는 이를 갈았다.
"헨리! 어디에서 뭘 하나 했더니!"
"어디서!"
그러나 오토바이에 탄 헨리는 퍽퍽 시설을 박아댔다.
"아오씨, 이거 좀... 아씨! 아 됐고! 서주헌! 그거 얌전히 내놓든가, 아니면 우리랑 손잡든가 해!"
"!"
"그 언노운 다 그냥 줄게. 너 유물 좋아하지? 그러니까 그냥 입만 다물고, 우리랑 손잡으면 언제든지 언노운을 만들어서 줄 테니까."
"저놈이...!"
"왜. 엄청 많은 유물이 들어오는 거야. 싫어?"
"싫은데."
"그래? 그럼 니 동생이 위험해지겠지."
그 말에 주헌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 동생이 왜?"
"오는 길에 멀린이 알려줬는데, 알고 보니 걔가 네 동생한테 악신 유물을 붙여놓았대요! 부부에게 부탁해서!"
그 말에 주헌이 힐끗 앨런비 부부를 보았다.
그 시선에 부부는 침을 삼키며 시선을 피했다.
헨리가 말했다.
"이제 상황파악 되나? 이제 내가 신호만 보내면 그 여자애는 꽥이야 꽥!"
그러자 주헌이 태연하게 물었다.
"혹시 그 악신 유물이라는 게 급이 좀 낮긴 해도 엘리자베스 바토리야? 처녀들의 피로 영생을 누리려 한?"
"엥? 그걸 어떻게..."
주헌이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은 채 부부에게 다가갔다.
"그거 내 동생한테서 떨어진 지 오래야. 아는 노친네한테 들러붙었거든."
"뭐? 잠깐. 그게 왜 노친네한테 붙어?!"
"돈 많은 노친네니까 여자들이 많을 거라 생각했나보지."
황당해하던 헨리가 말했다.
"좋아. 그럼 그 노친네가 잘못되는 게 보기 싫으면..."
그러자 주헌은 뭔가를 흔들어보였다.
"그거 여기에 있는데."
"엥?"
주헌이 방긋 웃었다.
"이거 내가 떼줬는데. 수수료 두둑하게 받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