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2화. 참교육하기 좋은 날씨구나 (1)
"그거 분명히 내가 동생 생일선물로 사준 건데."
"!"
"왜 네가 하고 있는지 물어봐도 되나?"
그 미소가 무서웠다.
덕분에 순간적으로 미쉘이 겁을 먹을 정도였다.
그녀는 혼란스러웠다.
서주헌은 판도라에서도 경계하는 세계의 흉악범.
하지만 그녀가 놀란 건 비단 그를 목격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순간적으로 그가 한 말 때문이었다.
'동생?'
쟤 분명 동생이라고 하지 않았나?
아니면 잘못 들은 것뿐인가?
그러는 와중에도 주헌이 성큼성큼 다가왔다.
그녀는 뒷걸음을 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쿵!
미쉘은 벽까지 몰리고 말았다.
곧 주헌이 얼굴 가까이서 읊조렸다.
"난청이신가? 내 말이 잘 안 들려? 사람이 질문을 하고 있잖아. 동생한테 사준 걸 왜 네가 가지고 있냐고."
그제야 퍼뜩 정신을 차린 그녀가 외쳤다.
"자, 자, 잠깐만, 동생이라니? 누가, 누구의?"
주헌은 헛웃음을 흘렸다.
"누구긴 누구야. 방금 전에 판도라에 있다 간 꼬질꼬질한 히키코모리. 나랑 똑 닮았지만, 생긴 건 더럽게 못생긴 여자애."
그렇게 말하고 주헌이 쿡 목걸이를 찍었다.
"그리고 이 목걸이를 선물 받은 네 의붓언니."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미쉘은 소름이 쫙 끼쳤다.
단순히 추측하는 것과 주헌의 입으로 확인사살 당하는 것은 차원이 달랐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년의 오빠였던 거야?!'
미쉘은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아니, 확실히 조이가 주헌과 닮기는 닮았다. 자세히 보면 특히 크고 시원스러운 눈이 닮았다.
하지만 보통 닮아도 남매라고 바로 확신하지는 않지 않은가. 연예인 닮은꼴도 흔한 마당에.
하물며 남자와 여자라는 차이 때문에 닮았어도 다른 느낌이 들기 마련.
무엇보다 의심을 했어도...!
'분명히 아빠도 엄마도 아니라고 했는데!'
서주헌이 등장하고 나서, 부모의 지인들이 종종 묻곤 했다.
'앨런비, 자네집 입양아랑 서주헌하고 닮았군.'
'허허, 동양인이 다 비슷하게 생겼지 뭐.'
'아냐, 혹시 연관이 있지 않나? 입양아 쪽 원래 한국이름이 뭐였다더라...'
그 말에 부모는 도리어 화를 내지 않았던가.
'닮으면 다 부모고 형제인가? 그런 일 절대 없네!'
그래서 미쉘도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덕분에 원래도 조이를 가족의 일원으로 생각하지 않았지만, 서주헌이 매스컴을 타면서 조이는 아예 창고에 가두기까지 했다.
절대로 얼굴을 비치지 못하게 했다.
평소엔 손님들의 유모나 음식을 나르는 하녀로라도 부려먹었으면서.
뭐, 그런 점에선 좀 이상하다고 생각 하긴 했지만...!
'진짜 혈연관계였어?!'
미쉘은 몸을 떨었다.
그리고 그럴 때 주헌의 살벌한 목소리가 떨어졌다.
"자, 그럼 대답을 해보실까."
그러자 퍼득 정신을 차린 미쉘이 다급하게 외쳤다.
"그, 이 목걸이는 내 거야! 가방도! 어디서 착각을 하는 거야? 기가 막혀서."
"그래? 어디서 구했는데?"
"어디서 구하긴, 백화점 한정판으로... 꺄악!"
미쉘은 순간적으로 비명을 질렀다.
주헌이 미쉘의 목걸이를 잡아뜯어냈기 때문이다.
그리고 주헌이 웃었다.
"이거 맞춤제작 한 거라 세상에 딱 하나밖에 없는 건데."
"...!"
"그리고 이 가방도."
주헌은 슬쩍 안쪽을 벌려보았다.
잘 보이는 곳은 아니지만 분명 조이의 이니셜이 새겨져 있었다.
전부 주헌이 특별주문을 통해 새긴 것이다.
"게다가 옷도 묘하게 낯이 익네?"
"...!"
그 순간 미쉘은 공포를 느꼈다.
그래서 순간적으로 유물을 써서 도망 가야겠다고 생각한 순간!
"어딜 도망가."
뻐억!
"커허억!"
미쉘은 배를 잡고 쓰러질 수밖에 없었다.
주헌의 자비 없는 주먹이 무식하게 명치를 파고들어왔기 때문이다.
"커헉, 커후쿠럭!"
종이짝처럼 날아간 미쉘은 꺼억 꺼억 침을 흘리며 버둥거렸다.
죽을 것 같은 고통이었다.
그냥 주먹이어도 아팠겠지만, 이건 보통이 아니었다.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그러자 주헌이 능청스럽게 손을 흔들었다.
"아, 미안해라. 헤라클레스 유물을 쓰고 있다는 걸 깜빡해서."
뭐라고?!
미쉘은 끔찍해졌다.
'헤라클레스라니!'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주헌이 미쉘을 콱 밟으며 말했다.
"아무튼 유물사용자랍시고 괜히 허튼짓하려고 하지 마라? 나도 어떻게 대처할지 모르니까."
"뭐...!"
주헌은 조이의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동시에 그가 보여준 건 바로 미쉘의 개념 말아먹은 문자메시지.
"이거 네년이 보낸 문자 맞지?"
미쉘은 겁에 질린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걸 확인한 주헌은 이번엔 다른 사람의 메시지를 보였다.
"그리고 이 번호는 누군지 말해."
"!"
메시지는 가관이었다.
[빨리 돈 안 넣어?]
[방학 때 오기만 해봐라. 다리를 분질러서 창고에 넣어버릴 테니.]
[네 방의 물건은 전부 버렸다. 정해준 것 외엔 절대 들이지 마.]
[당장 안 돌아와? 집안일이나 할 것이지, 주제에 맞지도 않는 학교는 왜 다니나 몰라.]
주헌의 눈이 번득였다.
그리고 그 번호에 미쉘은 덜덜 몸을 떨었다.
말하면 분명 죽는다.
"나, 난 모르겠는... 꺄아악!"
손가락이 우드득 꺾인 미쉘은 눈물을 머금었다.
주헌이 말했다.
"다른 쪽도 꺾을까?"
"어, 엄마야! 어머니라고!"
"그럼 이건 아버지고?"
"!"
아버지의 메시지를 본 미쉘의 얼굴은 창백해졌다.
물론 어머니하고는 다른 내용이긴 하지만...
[당장 물 가져와.]
[밥 안 가져오고 뭐해?!]
[빨리 옷 벗고 내려와서 애들 시중이나 들어.]
아버지 역시 의붓언니를 하녀 취급한 메시지들이 고스란히.
거기에 뭔가 오해의 소지가 있을 메시지까지 섞여 있었다.
그래서일까.
"자, 잠깐... 오해야. 이거 다 오해... 커헉!"
그러나 주헌은 환하게 웃었다.
"입양을 해갔으면 극빈 대접은 바라지도 않겠는데, 최소한 사람 취급은 해줘야지. 어?"
"...!"
"그래서 네 부모는 지금 어디에 살고 있는데?"
그 말에 그녀가 파르르 몸을 떨었다.
'사람, 사람을 불러야 해!'
이대로는 진짜 일가족 모두 주헌에게 죽을 것같았다. 게다가 생각해보면 조이도 조이지만, 서주헌이 판도라에 침입한 것이 아닌가!
"누, 누가...!"
하지만.
"꺄아악!"
"응, 아무도 안 와. 그러니까 빨리 집 주소부터 대."
젠장!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
어떻게 되기는.
"키야, 프로메테우스 힘 뽑아먹기 작전 성공했네."
연구시설에서 나온 조이는 판도라 본부 근처에 세워진 승합차에 있었다. 그리고 승합차의 운전석에서 대기 중인 건 다름 아닌 주헌의 단원들.
유재하는 여러 개의 열쇠를 보며 정말 좋아했다.
"등신들, 지금쯤 그 자식들은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도 모르겠지!"
그랬다.
사실 판도라 연구시설에 불려갔던 조이는 월권(?) 행위를 한 것이다.
물론 그녀는 성실하게 열쇠를 만들어주었다.
수장의 앞에 길을 열어주는 프로메테우스의 특성을 추츨해서 말이다.
하지만.
'열쇠를 여러 개 만들면 안 된다는 말은 안했잖아?'
그녀는 처음부터 판도라 시설에 들어가 프로메테우스의 힘을 뽑아먹을 생각을 한 것이다.
조이는 열쇠를 단원들에게 뿌려주며 말했다.
"대충 이거면 판도라 시설은 다 뚫을 수 있어요. 수장이었던 프로메테우스의 영향력이 닿는 곳이면 배리어, 건물, 무덤, 거의 다 통과할 수 있을걸요. 그래도 주헌이 키하고 다르게 사용한도가 있고, 닫을 순 없는 거 명심하고."
그러자 전부터 마제스티의 키가 탐났던 유재하는 꺄륵 꺄륵 좋아했다.
"대박, 이거면 탈의실도, 은행금고도 들어갈 수 있는 거 아니야? 판도라 소유 건물이면?"
하지만 이때였다.
"아야, 아야. 이거 뭐야!"
갑자기 유재하의 열쇠가 미친 듯이 날뛰었다.
그리고.
"아야야야! 이 새끼!"
유재하는 사정없이 열쇠에게 콕콕콕콕콕 찍히고 있었다. 다른 단원들의 열쇠는 멀쩡한데 유독 유재하의 열쇠만 난리였다.
"뭐야, 이 자식 이거 왜이래!"
그러자 조이는 땀을 삐질 흘리며 시선을 피했다.
"실은 급하게 대량생산하다보니 불량품이 몇 개..."
"뭐라고?!"
"그래도 놈들 거랑 비교하면 기능엔 문제 없으니까...!"
"그게 문제냐!"
아니, 유재하의 열쇠만 과격해서 튀는 거지, 다른 열쇠들도 조금씩 문제가 보였다.
열쇠가 낑낑거리며 애교를 피우거나, 숨고 도망가거나, 공주병에 걸려있거나, 물건을 훔쳐가거나!
"야! 어디에 들어가는 거야! 하응!"
'...이거 정말 써도 되는 거겠지.'
뭐 아무래야 좋았다.
"중요한 건 단장님이 판도라 보안을 뚫고 저 안에 들어갔다는 거잖아?"
그리고 그 말대로였다.
"니들 덕분에 재미있는 유물을 얻었다."
주헌은 조이가 건네주고 간 열쇠를 흔들어 보이며 웃었다.
심지어 주헌이 들고 있는 쪽은 대량생산(?) 된 열쇠 중에서도 유일하게 내구도가 빵빵한 것이었다.
[프로메테우스가 갈린 만능출입열쇠(SS급-신급) / 소모성)] - 사용횟수 : 998/999
그리고 미쉘은 정체불명의 열쇠에 파르르 떨었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저걸로 판도라 보안 시설을 뚫고 들어왔다는 거잖아!
어디 그뿐인가.
'그년이 우리한테 만들어주고 간 열쇠도 정상적인 게 아닐 수 있어!'
아무리 정밀검사 했을 땐 이상이 없었다지만...!
'사용하게 냅둬선 안 돼!'
그리고 그 무렵, 연구실 쪽에서는 기이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미쉘 얜 뭐 이리 늦어?"
조이를 기다리고 있던 헨리는 밖을 보았다.
기껏 조이와 깊은 이야기를 나누어볼까 계획을 세우고 있던 참이었는데 말이다.
그도 그럴 법한 게, 조이는 능력도 있고, 몸매도 은근 볼만하고 얼굴도 예뻤다.
관심이 갈 수 밖에 없었다.
'물론 얘가 너무 수수하긴 한데... 그건... 아, 그래. 오늘 옷이라도 사주면 되겠네.'
어차피 판도라 이적 이야기를 하려면 환심을 사는 게 좋으니까.
그런데 정작 조이를 데리러 간 미쉘이 오지 않는 것이었다.
"사이가 안 좋아 보이던데 설마 싸우는 건 아니겠지."
왜 안 오냐 문자를 보냈지만 답이 없었다.
곧 눈살을 찌푸린 헨리가 밖으로 나가려는 때였다.
띠링.
메시지가 날아왔다.
[자매끼리 이야기가 길어져서.]
그러자 헨리가 한숨 쉬며 답을 보냈다.
[울리지 마라, 에스코트하기 힘들어.]
[에스코트?]
[그래. 오늘 그 아이랑 최고의 시간을 보낼 예정이니.]
[어머, 그럼 크리스탈 호텔 저녁 7시 어때요? 제가 환심을 사놓을게요.^^]
그 말에 헨리는 허, 웃었다.
"역시 이런 일에선 눈치가 빠르네."
[알았어. 그럼 잘 꼬셔서 데리고 와.]
[네♡]
몇 초 후, 메시지는 또다시 날아왔다.
[참, 그 사이에 열쇠 테스트는 꼭 해보세요. 혹시 우릴 속일 수도 있잖아요? ^^]
"안 그래도 그럴 거야."
헨리는 조이가 놓고 간 열쇠를 들고 부하들을 불렀다.
"일단 이 앞에 있는 대감옥에 가보자. 7시까지 여유시간 생겼으니까."
그리고 그 무렵이었다.
미쉘의 핸드폰을 보는 주헌의 눈이 불타오르고 있었다.
"최고의 시간은 개뿔이. 이 발정난 새끼가?"
그랬다.
헨리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있던 것은 다름 아닌 주헌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피투성이가 된 미쉘은 주헌의 밑에서 덜덜 떨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