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0화. 기사 같은 소리 하고 있네 (3)
"뭐라고?!"
한적한 고아원 앞.
여느 때처럼 봉사활동을 하던 율리안은 충격을 받은 듯했다.
그는 평생치 받을 충격을 다 받은 사람처럼 얼이 빠져 있었다.
아니, 난데없이 자신이 봉사활동 하는 곳에 간식이며 생활용품을 왕창 들고 찾아온 건 그대로 훈훈(?)하다 싶었다.
'이 자식 또 기부 리스크가 발동했구만.'
하지만 그가 물고 온 소식은 전혀 훈훈하지 않았다.
그건 훈훈하지 않다 못해 도리어 심장이 안 좋은 소식!
"세상에 권혁수가 아버지라고?! 이게 무슨 막장드...!"
주헌은 사정없이 율리안의 배를 쳤다.
뻐억!
결국 율리안은 차 안에서 앓는 소리를 냈다.
그러나 주헌은 사납게 으르렁거렸다.
"다른 건 하나도 안 듣고 거기만 들었냐? 죽을래?"
"...크으! 그 미안. 너무 충격적인 말이라...!"
이건 뭐 권 회장이 알고 보니 숨겨진 어머니였다는 급의 충격이었다.
상왕을 위한 개드립이라 다행이었지, 아니었으면 율리안은 한 일주일은 정신을 못 차렸으리라.
하지만 주헌은 그런 율리안을 비웃었다.
"야 니가 그래도 내 변호사면 이딴 걸로 하나하나 충격을 받으면 안 돼."
"뭐? 왜?"
"왜긴 왜야. 나중에 가면 얼굴도 모르는 내 자식에 와이프까지 나타나서 소송까지 걸지도 모르니까. 그 정도의 막장전개는 익숙해져야..."
그 말에 율리안의 표정이 볼만했다.
그리고.
"오 세상에... 하느님, 이런 쓰레기는 사회를 위해서라도 처리하겠습니다. 누구야, 엄마는 누구냐고. 한국인이야? 미국인이야? 아니면..."
이 자식을 콱.
"너 내 말 똑바로 안 들어?"
"알았어. 알았다고. 그러니까 요한 하퍼라고 했나?"
주헌의 말을 아예 안 들은 건 아닌지, 율리안이 바로 태세를 전환했다.
"그런데 요한이라고 하면 네 예전 동료 아니야? 그 도굴단이 생기기 전에 한 팀이었다는."
그랬다.
주헌이 악명을 떨치게 된 것은 도굴단 이후의 일이지만, 사실 주헌은 그전부터 암암리에 유명했었다. 막말로 흙수저 출신이 대형발굴단 못지않은 성적을 냈으니까.
그리고 결과적으론 난공불락의 7대 무덤 중 하나, 마몬의 무덤까지.
그렇게 악바리 같은 놈이 있다며 왕급의 눈에 띄고, 결과적으론 권 회장에게도 스카웃을 받았으니까.
그리고 그때까지 한 팀이었던 사람이 요한이라고.
'하지만 TKBM에 같이 입사한 뒤 임무 중에 죽었다고 들었는데.'
그 뒤로 혼자서 TKBM의 부서를 떠돌다가 도굴단을 배정받고 자신들과 만난 거고.
주헌이 유독 동료를 잃기 싫어하는 건 그 옛 동료 탓도 없진 않으리라.
"하지만 그 옛 동료는 이번 생에서 찾았을 땐 이미 죽어있었다며."
주헌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처럼 주헌은 회귀 후 동료들의 수색을 하고 있었다.
요한 역시 그중 하나.
그러나 요한은 기록상 죽어 있었다.
"그런데 그 동료가 원탁의 기사 일원이었다는 거지?"
"그렇다네?"
그래서일까, 튀지 않고 은밀한 회의실이 된 승합차... 아니, 슬레이프니르.
그 뒷좌석에 있던 유재하와 일리야가 심통을 부렸다.
"네네, 우리 단장님 옛 동료가 살아 있어서 아주 기쁘시겠어요. 빨리 빼와서 기억을 찾아서 오른팔로 삼으시든가 말든가."
"좆같은 동료가 생겨서 아주 기쁩니다."
딱 봐도 투덜거리는 꼴이라 율리안이 헛웃음을 흘렸다.
"얘네는 또 왜 이래?"
답해준 건 잡지를 읽는 쿨한 클로에였다.
"무시하세요. 단장님이 얼굴도 모르는 사람을 동료로 넣겠다고 하니까 그냥 둘 다 삐쳐서 그래요."
"야. 나 안 삐쳤거든? 난 지금껏 내가 단장님 오른팔인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딴 놈이 오른팔이었다네? 아니, 그냥 뭐 그렇다고."
"아 난 크리스천 유물 능력자는 다 쉣이야. 다 불 질러 태워야 한다고. 그래 어디 오라해 봐! 그리고 대천사? 허 죄다 지옥불에 떨어트려주지!"
아.
율리안이 단번에 납득했다.
"요한이 분명 그리스도... 그러니까 크리스천 계열 유물 사용자랬지?"
"그래, 대천사급 유물까지 썼지."
마귀와 사탄을 다루는 일리야가 경기를 일으킬만했다.
'대천사면 아주 그냥 천적 끝판왕이지, 뭐.'
유재하는 뭐 그냥 거론할 가치가 없었고.
"아무튼 단장님. 이 바보들은 그냥 신경 쓰지 마시고..."
설아의 미소에 재하가 능청스럽게 웃었다.
"허허 이설아 씨. 그래도 되겠어? 듣자하니 요한이 여자라는 소문이 있던데? 단장님하고 단짝이었다던데?"
순간 설아의 표정이 볼만했다.
그 광경에 주헌은 결국 하하하 웃음을 터트렸다.
"너희들 뭔가 착각하나 본데. 내가 요한을 찾았던 건 팀에 들이기 위해서가 아니야. 죽이기 위해서지."
"네, 네?"
뜻밖의 이유에 단원들은 당황했다.
"그리고 이 영상을 보면 다들 그런 소리는 안 나올텐데."
"무슨 영상이요?"
주헌은 대답 대신 핸드폰의 영상을 보여주었다.
에드워드가 원탁에서 몰래 찍어온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단원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래 봐야 영감의 코스요리 자랑... 어?!"
그들은 다들 뭔가를 발견한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잠깐! 이 녀석!"
그들은 영상 속의 어떤 인물을 보면서 황당해했다.
"잠깐, 이 자식이 왜 여기에 있어?"
단원들은 영상 속 인물을 보며 무척 황당해했다.
"단장님, 이 사람, 사무엘이잖아요!"
그랬다.
주헌의 도굴단원은 주헌을 포함한 총 10명. 배신자 양 쳰을 제외하면 이제 못 참은 멤버가 2명이었다.
그리고 그 서포터 중 한 명이 사무엘이라는 놈이었던 것이다.
재미있는 게 있다면 그 사무엘 역시 크리스천 유물을 썼던 능력자.
아니나 다를까, 그를 본 일리야는 경기를 일으켰다.
"저, 저, 저, 저... 빌어먹을 예수유물 사용자가!"
안 그래도 사이가 안 좋은 그들이었다.
뭐, 사무엘은 요한과 다르게 낮은 랭크의 크리스천 유물을 썼기 때문에 서포터였지만.
'예수 유물이라고 해도 정확히는 예수의 제자나 이름 모를 신자들의 유물을 썼던 거라.'
"아니 그게 문제가 아니라 왜 사무엘이 원탁의 기사에?"
주헌은 웃었다.
"더 재미있는 걸 알려줄까?"
"뭔데!"
"영감은 이 사무엘을 요한 하퍼라고 하더라고."
"?!"
단원들은 혼란스러워했다.
"잠깐만요. 그럼 단장님의 옛 오른팔이... 우리가 아는 그 서포터 사무엘이라고요?"
"설마요. 그 옛 동료는 저희랑 만나기 전에 죽었다면서요. 어떻게 동일 인물일 수가 있죠?"
"그냥 우연히 요한 하퍼란 이름을 쓰는 거 아니야?"
영상을 보던 주헌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동일인물이야. 영감은 이놈이 대천사 유물을 써서 옥좌를 지키고 있다고 했거든."
대천사 유물의 적합자가 그리 흔할 리도 없고.
무엇보다 주헌의 귀신같은 촉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래 봐야 B급 유물 사용자였던 사무엘이 대천사 유물을요? 말도 안 돼...!"
"SS급 유물사용자면 저희가 진작 알았죠!"
다들 까무러치고 있었고, 일리야는 뒤에서 그저 뻐끔뻐끔 거품을 물고 있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지?"
어떻게 되기는.
'그 원탁에 있다는 자네 부하 놈 말이야. 실은 과거에 판도라의 감시자였어.'
주헌은 권혁수가 한 말을 떠올리며 입꼬리를 올렸다.
***
그리고 비슷한 시각, 판도라 이사회.
원탁의 방에서는 회의가 열리고 있었다.
"그럼 다음은 마제스티의 키에 대한 건입니다."
150명이 앉을 수 있는 원탁 유물에는 각종 분야의 수뇌부이자 장관들이 고루 앉아 있었다.
그리고 원탁의 유물 중에서도 왕을 호위하는 13개의 자리엔 원탁의 기사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는 유독 표독한 표정의 남자가 있었다.
겉보기엔 20대 후반. 금발에 온화한 인상을 가지고 있지만 묘하게 눈빛에서 차가움이 느껴지는 남자였다.
그리고 그가 바로 주헌의 옛 동료이자 도굴단의 서포터였던 사무엘.
요한 하퍼다.
그는 멀린과 함께 원탁의 기사단에서도 꽤 영향력이 큰 유물 사용자중 하나였다.
이때였다.
"저기 요한 님? 요한 하퍼 님!"
"!"
"마제스티 키를 만드는 건에 대해서 교황청도 동의했는지 묻고 있는데요."
"아, 네. 문제없습니다."
곧 회의가 다시 진행되고, 옆에 있던 누군가가 콕콕 요한을 찔렀다.
"요한. 너 왜 그래? 서주헌이 날린 궁니르를 본 날부터 계속 기분이 나쁜 기색인데."
그 말에 요한은 코웃음을 쳤다.
당연히 나쁘지.
'서주헌, 전생에서나 지금이나 참 곤란하게 하기는.'
그랬다.
요한은 다른 유물 사용자들하고는 좀 다른 점이 있었다.
바로 주헌 일행처럼 전생에 대해 기억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여간 내가 조금만 더 빨리 전생의 기억을 찾았어도.'
요한은 그것이 못내 아쉬웠다.
"혹시 궁니르에 딸려왔던 이 쪽지 때문에 그래?"
그녀는 주헌이 궁니르에 딸려보냈던 종이 조각 사진을 보였다.
"그래봐야 그냥 도발이잖아."
"치워."
요한은 불쾌한 듯 미간을 찌푸렸다.
전생의 기억을 하고 있는 그는 주헌에 대해 잘 알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동료들에 대해서도.
'뭐, 동료라고 생각한 적은 없지만.'
자신은 처음부터 판도라 쪽의 사람이었다.
하지만 자신들은 마제스티를 만들어야 하는 몸.
마제스티의 후손을 찾고, 후보자들을 물색하는 과정에서 주헌을 발견했다.
TKBM에 들어가기 전의 주헌을.
'서주헌은 마제스티의 후손일 가능성이 컸지.'
그래서 평범한 발굴꾼으로 위장했고 능청스럽게 그와 팀을 맺었던 것이다. 감지의 목적으로.
하지만 권 회장의 눈에 띄어 함께 TKBM에 입사한 건 좋은데, 자신은 그만 주헌에게 살해당했다.
'망할 놈.'
다행히 그땐 기독교의 부활 유물로 되살아나긴 했지만.
아무튼 그당시는 그렇게 사무엘로서 다시 주헌의 도굴단에 합류한 것이다.
주헌과 그 동료들의 감시를 지속하기 위해서.
하지만 서주헌은 끝내 자신들에게 좋을 게 없다는 결론이 나왔고, 원탁의 회의에 의해 까마귀 무덤을 불러내 처리했다.
판도라를 지원하는 교황측도 서주헌을 세상의 재앙, 사탄으로 규명하고 처리를 촉구했다.
그런데.
'왜 세상이 과거로 돌아간 거야.'
이게 다 까마귀와 서주헌 때문이었다.
결국 서주헌은 복수를 시작했고, 당시 우려하던 마제스티의 재보까지 각성시키고 말았다.
뭐, 아직은 괜찮았다.
'이제라도 다시 처리하면 되니까.'
하지만 지금 당장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그럼 요한 님이 마제스티의 키를 만드는 작업을 해주셨으면 합니다."
"뭐? 내가 왜?"
"요한님이 제격이시니까요."
"다른 사람 시켜, 난 지금 그거에 신경 쓸 때가..."
이때였다.
"그럼 제게 맡겨주세요!"
출세의 일념으로 손을 든 건 요한의 부하 직원이었다.
"제가 요한님을 돕겠습니다!"
그녀는 주헌의 동생, 조이의 의붓자매였다.
***
[야, 기생충. 유물 열쇠 하나 만들어. 너 공학사 취직했다며.]
조이는 자신한테 날아온 메시지에 눈살을 찌푸렸다.
보낸 이는 자신의 의붓자매.
즉 양부모의 딸이었다.
최근에 부모의 빽으로 판도라 중추기관에 들어갔다고 좋아죽더니.
'갑자기 무슨 유물을 만들라고.'
자신을 입양해갔으면서 심할 정도로 방치한 양부모.
그리고 그런 가정에서 자신을 하녀 취급하던 의붓동생.
원래부터 양부모 가족과 사이가 안 좋은 그녀는 가볍게 메시지를 무시했다.
하지만.
[닥치고 만들어. 아빠한테 말해서 이번 달 집세랑 양육비랑 생활비 더 올려 받으라고 할 테니까.]
[읽었잖아. 왜 씹어? 야, 너 진짜 죽고 싶지?]
[아빠한테 말해서 학교 퇴학시켜버린다. 이 기생충 년아.]
조이는 신음을 흘렸다.
"아 얜 진짜 왜 이래."
아니, 애초에 판도라 일이라니.
'얘는 내가 어디에 취직했는지는 알고 말하는 거야?'
그레이브 컴퍼니는 판도라의 적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이때였다.
[내 출세가 걸린 일이라고. 거절하면 너 취직한 그 회사부터 날려버릴 거야.]
"허, 이게 진짜..."
그때였다.
"뭐 어때, 만들어줘."
"!"
조이의 핸드폰을 훔쳐보며 웃고 있는 건 주헌이었다.
"주헌아!"
"까짓것 열쇠라는데. 특별히 우리 회사 시설도 써서 팍팍 만들어주라고. 허락해줄게."
"뭐? 하지만...!"
"이를테면 폭탄열쇠나 저주열쇠나 삥 뜯는 열쇠 같은 거?"
그 말을 하며 주헌이 음흉하게 웃었다.
"아니면 만드는데 특별히 내 유물도 빌려주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