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9화. 기사 같은 소리 하고 있네 (2)
"놀라지 말고 잘 들어."
"뭐."
"사실 넌 내 아들이야."
주헌은 조용히 궁니르를 들었다.
아주 콱 엉덩이에 쑤셔 박을 기세였다.
그러자 권혁수는 당황해서 외쳤다.
"잠깐 그거 내려놓고!"
"헛소리하면 바로 전쟁이라고 했지."
지금 바로 시작이라며 주헌은 눈을 번득였다.
하지만 권혁수도 할 말이 많은 모양이었다.
"아니 그러니까 놀라지 말고 잘 들으라고 했잖아. 아무리 충격적인 말이어도 그렇지. 이렇게 나오면 쓰나!"
충격적인 말은 개뿔이!
주헌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궁니르를 집어던졌다.
슝!
그러자 궁니르는 권혁수를 향해 날아갔다.
그 모습이 어느 때보다도 신나 보였다.
그도 그럴 법한 게, 지금까지 궁니르의 용도는 빗자루, 먼지떨이 등 청소도구 일체.
드디어 정상적으로 사용되니 엉덩이춤을 출 수밖에!
죽어라 인간! 인간!
궁니르는 권혁수의 심장을 노렸다.
그 모습이 흡사 신난 악수(惡獸).
하지만 권혁수도 괜히 사황급이 아니었다.
그는 초인적인 반사신경으로 궁니르를 붙잡았다.
쾅!
드드득!
물론 깁스를 낀 손으로는 꽤나 아프고 버거워보였지만, 그렇게 권혁수와 궁니르의 힘싸움이 벌어졌다.
권혁수는 제 코까지 날아온 궁니르를 잡아누르면서 주헌을 보았다.
"잠깐, 주헌아? 믿기 힘들겠지만 이건 진짜야. 넌 내 아들..."
"그래? 그럼 그거 참 훌륭한 아들을 두셨군."
주헌이 손짓하자 궁니르가 쭈욱 고개를 아래로 꺾었다.
동시에 권혁수는 까무러치고 말았다. 놈의 머리끝이 좋지 못한 곳을 향했기 때문이다.
"잠깐! 야!"
권혁수는 거품을 물었지만, 정작 주헌은 방긋 웃었다.
"잘가, 아버지. 아버지 자리는 잘 차지할게."
결국 권혁수가 외쳤다.
"농담이야! 농담이라고!"
"왜? 난 좋은데. 댁 유산은 전부 내 것이 되는 거잖아."
음흉하게 좋아하는 주헌을 보며 권혁수는 질색했다.
이래서는 자신이 이득을 보려다가 더 뜯기겠다!
"알았어! 잘못했다! 농담이라고! 다시는 입에 안 담지!"
동시에 주헌이 쿨하게 궁니르를 도로 불렀다.
곧 죽을 뻔했던 권혁수가 말했다.
"나참, 그렇게 싫어할 줄은 몰랐지!"
"헛소리하지 말라는 거지. 지금도 내 아버지의 얼굴이 선하구만 무슨."
그러자 힐끗 주헌을 보던 권혁수가 능청스럽게 웃었다.
"그럼 숨겨진 아들이라..."
이 노친네를 진짜 콱.
동시에 주헌의 눈이 번득였고, 그에 반응한 듯 동아줄이 무섭게 꿈틀거렸다. 나름대로 비보랍시고 흉흉한 오라를 뿜어댔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권혁수는 분위기도 못 읽고 계속 지껄였다.
"아, 왜 지배력과 친화력은 유전된다고도 하잖아? 자네의 그 뛰어난 실력도 다 이 아버지한테서 물려받은 거라고 생각하면..."
그때였다.
"커허어억!"
권혁수는 결국 동아줄에게 입을 두들겨 맞았다.
헛소리 계속 할래? 할래?
겉보기엔 평범한 밧줄로 보이지만 실제 힘은 쇠몽둥이 그 이상!
아주 이빨이 다 나갈 지경이었다.
아니, 이미 나가버린 이빨도 많았다. 당장 임플란트로 수천이 깨질 정도로.
결국 그쯤 되자 주헌이 말했다.
"상왕 노릇이라도 해서 득을 보고 싶은 모양인데. 같잖은 수 쓸 생각 하지 마."
"$**...!"
권혁수는 결국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주헌은 뻔하다는 듯 웃었다.
이놈은 권 회장보단 의리가 있으나, 남을 이용해 먹는 점에선 어쨌거나 똑같은 인간이었다.
그런 만큼 자신과 동업하겠다고 나선 순간부터 속내는 뻔했던 일.
'뭐, 그 전에 내가 놈을 이용해먹고 있는 것이지만.'
"그러니까 개소리 말고. 내가 알아야 하는 진짜 중요한 정보란 게 뭔데?"
결국 쓰러진 권혁수가 포기한 듯 말했다.
"원탁의 기사들."
"?"
"거기 놈들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나?"
"과거에 우릴 죽인 이사회 놈들이라는 거. 유물을 가지고 사람의 계급을 나누고 병을 뿌리는 개새끼들이라는 거. 당신도 그중 하나였다는 거. 그러니 놈들을 처리할 땐 댁의 목도 날아갈 거라는 거. 그리고 고작 이딴 정보 때문에 불러낸 거라면 앞니 임플란트로는 안 끝낼 거라는 거?"
주헌의 당당함에 앞니가 나간 권혁수는 땀을 삐질 흘렸다. 하여간 틈이라고는 안 보이는 독한 놈.
"그럼 그것도 아나?"
"뭐?"
"그 원탁의 기사 안에 자네 부하도 있다는 거."
주헌이 힐끗 그를 보았다.
"양 쳰 말고?"
"암."
그 말에 주헌은 무척이나 흥미로워했다.
왜?
같잖기도 했지만, 안 그래도 주헌은 원탁의 기사들에게 흥미가 많았기 때문이다.
'놈들은 우릴 죽인 원수들이다.'
그리고 뭔가 특이한 유물도 많이 가진 것 같고.
하지만 놈들은 음모론에 흔히 등장하는 일루미나티나 프리메이슨. 그처럼 비밀결사단체 같은 성향을 띠고 있어 소문만 무성할 뿐, 정확한 정체는 알 수 없었다.
확실한 건 유물의 시대, 지금 시대의 수뇌부라는 것 정도.
그런데 그 안에 제 부하가 있다고?
그뿐이 아니었다. 권혁수는 주헌의 귀가 바로 번쩍 트일 소식을 알려주었다.
"그러고 보니 자네, 이미 마제스티의 재보를 3개나 얻었지?"
"그런데."
"사실 판도라 이사회는 마제스티의 재보 중 하나 '옥좌'를 가지고 있어."
재보라고?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주헌이 퍽퍽 깁스팔을 쳤다.
"영감, 그렇게 좋은 걸 왜 이제야 말해. 콱 죽이고 싶게."
"아야, 아야야. 그래도 마음에 드나보군."
"그래서 그 마제스티의 옥좌는?"
주헌의 관심에 권혁수가 음흉하게 웃었다.
"이 이상은 공짜로는 안 되지."
주헌도 야박하게 굴 생각이 없는 듯, 쿨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럼 슬레이프니르를 한 번 이용하게 해주지."
그러나 권혁수는 욕심이 아주 많은 사내였다.
"에이, 너무하는군. 아예 슬레이프니르를 건네줘야 이야기가 되지."
"하하하하. 그것도 그렇군."
주헌은 활짝 웃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콱 딸내미 내연녀 소문 퍼트리기 전에 말해라."
권혁수는 바로 꼬리를 내렸다.
***
한편 그 무렵 워싱턴.
수많은 글로벌 기업이 들어서 있고, 미국의 심장이라고도 불리는 도시.
그곳엔 세계 3대 유물 회사, 그레이브 컴퍼니의 본사가 있었다. 수십 층에 달하는 건물의 아래층엔 대형 유물 쇼핑센터, 체험관, 전시관 등이 있었고, 위로 올라가면 이제 직원들이 일하는 장소가 나왔다.
그리고 그 로비에 시선을 강탈하는 누군가가 나타났다.
"헉, 저, 저거 포식왕 아니야?"
사람들은 로비를 유유히 지나가는 주헌을 보며 입을 떡 벌렸다.
당당하게 람보르기니에서 내렸을 때부터 시선을 끌긴 했지만, 선글라스에 수트를 입은 그는 그야말로 포스가 넘쳤기 때문이었다.
소위 말하는 수트빨 잘 받는 체격에 아무나 소화하기 힘들다는 올백머리. 남자들이 봐도 멋지다고 할 만해서일까.
"꺄! 주헌 님! 멋있어!"
알아보는 사람들은 꺅꺅 좋아했다.
물론 점심시간을 끝내고 오던 주헌의 동생, 조이는 마시던 커피를 뿜었지만.
'저, 저꼴은 뭐야?'
평소 츄리닝만 입고 돌아다니는 꼴만 보다가 저딴 걸 보니 상당한 충격이었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주헌은 흡사 피리를 부는 사나이처럼 사람들을 몰고 다녔다.
"야! 서주헌 목격 정보 팔아! 빨리! 특종이야!"
"먹이다! 걸어 다니는 유물 창고가 왔어!"
"잠깐. 서주헌이 여기 왜 온 거야? 설마 여기도 털려고?!"
"으이구 바보냐! 털긴 뭘 털어! 서주헌이 여기 대표이사잖아!"
"아...!"
설마하니 자기 회사를 털러 왔을리는 없고.
하지만 직원들도 가끔 헷갈릴 정도로 본사에 얼굴을 안 내미는 주헌이었다.
오히려 그가 나타나는 건 어떤 의미에선 불길한 징조!
아니나 다를까, 그의 등장에 회사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헉, 강탈왕... 아니 대표님!"
"여기엔 무슨 일로!"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주헌은 대수롭지 않게 사장실로 향했다.
그리고.
쾅!
"대, 대표님?"
안에는 놀란 토끼 눈이 된 에드워드가 있었다.
하지만 주헌은 그를 보자마자 아주 같잖다는 듯 입꼬리를 올렸다.
"영감. 나랑 잠깐 이야기 좀 해야지?"
***
에드워드는 지금 떨고 있었다.
바로 눈앞에서 싱글벙글 웃고 있는 주헌 때문이었다.
"저기, 서 대표?"
에드워드의 시선은 주헌이 들고 있는 물건에 향했다. 그리고 주헌은 친한 척 에드워드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왜 이래, 영감. 최근에 좋은 직장으로 이직을 하셨다며. 나도 한 자리 소개 좀 받자."
"에이, 서 대표... 아니 서 대표님. 이직이라니요. 제가 이 자리를 두고 어디를 갑니..."
탕!
순간 회의실에 울려 퍼지는 총소리.
이에 직원들은 식겁했다.
"뭐야, 이거 무슨 소리야?!"
하지만 또다시 총소리가 울려 퍼졌다.
에드워드는 제 귀를 스치고 지나간 총알에 새하얗게 질려있었다.
"영감, 다음엔 머리다?"
그 말에 에드워드가 바로 꼬리를 내렸다.
"죄송합니다! 미리 말씀을 못 드려서! 하지만 나도 원탁에 들어간 건 아주 최근이라고! 일주일도 안 됐어!"
그 말에 밖에서 훔쳐듣던 직원들이 수군거렸다.
"잠깐. 원탁? 거기 판도라 이사회잖아."
"하지만 거긴 우리 회사나 대표님한테나 적인데, 사장님이 왜?"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에드워드가 급하게 말했다.
"아니, 대표님? 우리 오해하지 말고! 적을 알려면 당연히 적의 소굴에 들어가 봐야지. 그래서...?"
"뭐래. 내가 비보를 안 주니까 유물을 얻으러 간 건 아니고? 이거 엄연히 배신행위 아닌가?"
그 능청스러운 말에 에드워드는 콜록 콜록 기침을 했다.
"아니, 배신이라니...!"
사실 자신도 주헌에게 비밀로 한다거나, 그를 배신할 생각이 있는 건 전혀 아니었다.
처음부터 주헌에게 줄 생각이었다.
단지 먼저 얻어서 주헌에게 좋은 값으로 팔거나 딜을 할 생각으로!
그거라면 주헌이 비보를 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나도 원탁회의에 겨우 들어가 본 것뿐이야!"
하지만 주헌은 같잖다는 듯이 웃었다.
"뭐, 됐어. 조사해보니 회사 돈은 안 빼돌린 것 같고. 우리 쪽 정보를 판 것 같지도 않고. 하지만 잘도 들어갔네. 거긴 아무나 못 들어갈 텐데."
그러자 망했다던 에드워드가 아부하듯 눈을 반짝였다.
"그럼 내가 거기에 어떻게 들어갔는지 알려드릴까? 대신 공짜는 안되고... 정보료로..."
하지만 주헌은 비웃었다.
"꺼져. 다 악신 유물 덕분이잖아."
"!"
"내 동생한테 붙어 있던 악신 유물, 지금은 댁한테 붙어 있잖아. 그걸 쓴 것 뿐이면서."
"뭐, 뭐야! 알고 있었다니..."
"그래서 비보도 일부러 안 준건데? 비보 대체품을 잘 쓰고 있는 것 같길래."
"뭣...?! 잠깐, 그, 그런 거였어?!"
"뭐 노인한테 좋은 건 아니니 떼고 싶으면 언제든지 말해. 단 수고비는 비싸게 받겠지만."
"이씨!"
에드워드는 뭔가 굉장히 억울한 듯했다.
뭐 아무래야 좋았다.
오히려 덕분에 실체가 오묘했던 원탁의 기사들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게 될 것이 아닌가.
'놈들은 인위적으로 마제스티의 재보를 만든다고 했지.'
뭐 그딴 짝퉁 유물은 알 바 아니었다.
오히려 관심 있는 것은...
"놈들은 분명 '마제스티의 옥좌'를 가지고 있다고 하던데."
에드워드는 콜록거렸다.
"어유, 이미 거기까지 알고 있다니, 할 수 없지. 맞네. 판도라 시스템유물이 바로 그 마제스티의 옥좌라던데."
그 말에 주헌은 흥미로워했다.
권혁수의 말을 다 믿는 건 아니지만, 놈은 이렇게 말했다.
'원탁의 기사들은 마제스티의 후손을 찾아서 이용해먹고 죽이기까지 했어. 옥좌를 쓰기 위해서.'
하지만 DNA 추적으로 찾은 마제스티의 후손들조차도 마제스티의 옥좌는 다루지 못했다고 한다.
'하지만 자네라면 가능할지도 모르지? 과거나 지금이나, 형님이나 놈들이 두려워하는 것도 그거일 테고.'
그럴 때 에드워드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하지만 나도 그렇고, 자네도 그걸 빼돌리긴 힘들걸."
"왜?"
"그걸 지키고 있는 기사가 끝판왕이거든. 요한 하퍼라고. 그리스도 유물을 쓰는 놈인데..."
그 말을 듣는 주헌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더니 갑자기 하하하 즐겁게 웃음을 터트리는 것이었다.
그건 당연할지도 몰랐다.
왜?
'뭐야, 권혁수 가증스러운 노친네.'
원탁의 기사들 중에 있다는 내 부하란 건 그쪽이었어?
그랬다.
요한 하퍼는 주헌의 옛 단원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그것도 이미 죽었을.